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69화 (69/293)

69화

-아라크네의 흔적 (2)

생각보다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닥터 브라운이 고성을 내질러야 했을 정도로, 일본 관계자의 태도는 완강했다.

“……관심도 없는 던전이었으면서.”

투덜대는 닥터 브라운의 모습에 정우는 쓴웃음을 베물었다.

“아마 제가 한국인이어서 그럴걸요?”

곧장 자신을 데리고 간 닥터 브라운은 체면을 구겨야 했다.

별문제가 없을 거란 그의 호언과는 달리, 일본의 태도는 단호하면서도 차가웠기 때문이다.

“보고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닥터 브라운의 연구를 도와줄 협력 인원이란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과거에 갈등 없었던 나라가 어디에 있나. 쯧!”

혀를 찬 닥터 브라운이 실망감을 안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정우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괜히 맥이 빠졌다.

“옹졸하기는. 이런 얄팍한 수에 넘어갈 것 같나.”

“얄팍하다니요?”

“미스터 한이 한국인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적용이 되었겠지만, 이건 내게 빚을 지우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단 말이네.”

“음…….”

“안 되겠네. 그냥 미국으로 돌아가야겠어. 자네도 같이 가는 게 어떤가? 제임스도 요즘 다시 던전에 들어가고 있다던데….”

“미국이요?”

“어차피 날 만나러 일본으로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간 거 아닌가? 내가 아니었으면 미국에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럴 수도 있었다.

영혼에 대한 더 확실한 개념이 필요했다.

마정석을 완성시켜서 만든 ‘기초 그릇’의 성질도 스킬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플레이어적인 관점이 필요했다.

정우는 회랑에서 현재 필요한 정보를 끊임없이 탐독했지만.

항상 ‘기본’이 되는 정보의 열람을 빼먹지 않았다.

이계의 역사.

마력에 대한 정보.

그릇과 영혼.

기본적인 것들을 항상 놓치지 않고 기록을 찾았다.

이렇게 똑똑했었나 싶을 정도로 회랑에서 쌓은 지식은 정우의 머리에 착착 자리 잡았다.

이대로 1년 정도만 더 있으면 남들과는 전혀 다른 정보를 손에 쥘 것만 같았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미국행은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플레이어의 지식도 필요한 상황에서, 적어도 정우의 선에서는 제임스 밀러와 닥터 브라운만큼 뛰어난 이들도 드물었으니까.

하지만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고민은 해볼게요.”

“음….”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닥터 브라운이 연구 장비를 보았다.

“일본의 태도는 괘씸하지만, 장비는 죄가 없지 않겠나?”

“……?”

“던전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그걸 먼저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 사실 자네를 부른 이유가 하나가 더 있네.”

닥터 브라운이 장치를 조작하며 말했다.

“애당초 투명 슬라임의 핵이 필요한 게, 자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지 않았나.”

“…그렇죠.”

“나는 분명히 미스터 한에게 영혼에 대해서 조금 더 연구해 보겠다고 했네. 영혼의 수복. 마력의 회복 말이네.”

정우가 관심을 보였다.

‘영혼의 수복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있나?’

닥터 브라운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 후 장치 안에 넣었다.

“아티팩트?”

“오, 혹시 감별 스킬도 지니고 있나?”

닥터 브라운이 나지막한 감탄사와 함께 정우를 흥미롭게 보았다.

여러모로 관심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제임스가 관심을 두고 있겠지.’

“플레이어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진 모방품을 만들어 내는 것에 지나지 않아.”

닥터 브라운은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티팩트와 아이템.

두 개의 차이는 분명했다.

던전 안에서만 발견되는 아티팩트를 만들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했지만,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건 아이템에 지나지 않았다.

좋게 봐줘야 아티팩트의 끝자락일 뿐이다.

“자네의 질문을 듣고 많이 생각했었네.”

영혼을 수복할 수 있는 방법.

혹은 마력을 회복하여 마력을 담는 그릇을 복구시킬 수 있는 방법.

정우의 물음에 닥터 브라운은 상당한 고민을 진행했다.

그가 굳이 일본에 남아 있는 이유도 그 고민 때문이었다.

“일본은 마정석 산업이 발달했네. 때문에 마정석을 다루는 세밀한 기술도 자연스럽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지.”

닥터 브라운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이건 ‘마정석 분해 장치’라 부르지. 말 그대로 마정석을 분해하는 장치야. 일본에서 유일하게 탐이 나는 장비인데, 구입이 안 되더군.”

그래서 내가 일본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아, 씨익 웃는 닥터 브라운의 말에 정우도 헛웃음을 흘렸다.

마정석 분해 장치를 보는 닥터 브라운의 눈에는 탐욕이 담겨 있었다.

진심으로 이 장비가 탐이 나는 모양이었다.

“닥터 브라운의 영향력으로도 안 되는 건가요?”

“국가 기밀을 개인이 구매할 수 있나?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쉽기만 할 뿐이지.”

정우는 새삼스럽게 장비를 보았다.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장비의 가치가 국가 기밀급이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도 하루에 두 시간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장비야. 시간이 없으니, 얼른 진행하지.”

닥터 브라운이 정우에게 손짓했다.

그의 옆에 선 채로 정우는 설명을 들었다.

“여기서부터 재미있어지네. 내가 왜 마정석 분해 장치에 아티팩트를 넣었을까.”

“…아티팩트를 분해하려는 건가요?”

정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장치에 들어 있는 아티팩트는 분명히 효능이 떨어졌다.

등급만 놓고 보면 하급.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당연하지. 그러려고 구매를 했는데….”

“……!”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잘 보게. 여기서부터가 재미있어.”

아이와 같은 눈빛으로 장치를 작동시켰다.

장비 위쪽에 달린 레이저가 아티팩트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저거… 마력이군.’

한껏 응축된 마력이 레이저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작은 조각품 형태의 아티팩트의 표면을 끊임없이 강타했다.

정우의 눈이 아티팩트에 고정이 되었다.

‘……!’

“강한 마력을 지속해서 주입하는 거야. 그럼 아티팩트의 마력 체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지. 마정석을 분해하는 방식도 똑같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정우의 눈에는 아티팩트의 변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리가 깨어지는 것처럼.

아티팩트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쩌적, 갈라지는 형태는 얼마 전에 본 그것과 비슷했다.

‘던전의 클리어!’

“이 정도면 60% 정도 될 거 같네.”

닥터 브라운이 작동을 멈췄다.

아티팩트를 이루고 있는 마력의 형태가 조각조각 나 있었다.

가뭄의 땅처럼, 쩍쩍 갈라진 사이로 마력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무리더군. 60% 정도 파괴시키는 게 전부였어. 그 이상은, 아예 형태가 흐트러져 버리더군.”

닥터 브라운의 표정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잔여율 40%.

그 이하를 넘겨보고 싶은 호기심을 애써 눌렀다.

이미 몇 번이나 실패를 겪었으니까.

연구가 진행되면 모를까 아직은 한계가 명확했다.

이걸 연구한 게 고작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분해의 반대 개념인 ‘수복’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자, 여기에 미스터 한이 구해 왔으면 좋았을 투명 슬라임의 핵에 진행하려던 작업을 가해 보지.”

“…….”

정우의 눈이 차게 식었다.

‘이 사람, 은근히 뒤끝 있네.’

피식 웃은 닥터 브라운이 옆으로 이동했다.

새로운 조작 패널을 자연스럽게 조작했다.

새로운 장치가 마력이 줄줄 새고 있는 아티팩트의 위로 이동한다.

“곧장 꺼내기엔 문제가 있어서 조금 안정화 작업을 가할 걸세.”

장치가 작동하며 아티팩트의 주변에 랩을 씌운 것처럼 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마력의 누수가 점차 줄어들더니, 불과 한 시간 만에 거의 밀봉되듯 안정화가 완료되었다.

사담을 나누던 닥터 브라운이 벨 소리에 맞춰 이동해 아티팩트를 꺼냈다.

가하학적인 모양의 조각품을 들며 이리저리 살피는 닥터 브라운을 따라, 정우 역시 아티팩트를 살펴보았다.

[ 폼멜 조각 ]

파괴되어 제 기능을 잃은 폼멜 조각.

약간의 능력이 겨우 형체를 유지시켜 주고 있다.

절삭력 : +3

‘폼멜의 일부였군.’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조각품의 정체가 생각보다 상세하게 설명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안정화 이후에 아이템이나 아티팩트의 설명이 조금 더 자세해진 것 같기도 한데?’

“이러면 안정화가 끝난 거네.”

다음 작업을 진행하지, 닥터 브라운이 장소를 옮겼다.

옆 연구실로 들어서자 연구를 진행 중이던 연구원들이 눈인사를 건넸다.

“내 팀원들일세. 능력이 괜찮은 친구들이야.”

팀원들을 칭찬한 닥터 브라운이 빈 장치 앞에 섰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지. 아주 재미있을 걸세.”

닥터 브라운이 장치에 대해 설명했다.

어느 날 영감을 받아서 완성시킨 연구 장비로, 제임스의 도움을 받은 물건이라고 설명했다.

“돈만 댔으니 한 1%의 지분은 인정해 주지.”

제임스의 말마따나 ‘영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던 닥터 브라운이었다.

제임스는 영혼을, 연금술의 궁극적인 완성이라고 칭했고.

닥터 브라운은.

“비밀과 진리. 나도 하나님을 믿네만, 사후 세계야 딱히 증명된 게 없지 않나? 성경 어디에도 지금과 같은 설명은 존재하지도 않고. 그래서 점차 신앙심이 약해지고 있지. 아멘.”

닥터 브라운의 눈가 주름이 짙어졌다.

“그래서 비밀을 파헤치고 싶고, 진리를 알고 싶네. 연금술이 궁극적으로 영혼의 연성을 목표로 한다면, 연금술적인 모든 능력이 영혼과 관련이 있지 않겠나?”

닥터 브라운이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희미하게 흐르기 시작하는 마력.

“나는 플레이어로 성장하기를 거부했네. 그 이유는 간단해. 내 직업 때문이지.”

원래부터 과학자였던 닥터 브라운은 플레이어로 각성한 후, 자신의 재능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워리어.”

“……네?”

정우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내 직업 말이야. 워리어네. 재미있지 않나? 평생을 과학자로 살아온 내게 워리어라니.”

거대한 도끼 혹은 대검을 든 닥터 브라운을 머릿속에 그려본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을 수가.

“놀랍더군. 튜토리얼에서 워리어로 각성하고, 강제적으로 던전에 들어갔을 때. 몬스터를 상대하는 재미가 있더군. 흥미를 앞선… 본능이랄까.”

그때부터 닥터 브라운은 던전과 플레이어의 세계에 관심을 보였다.

평생 모르고 있던 자신의 저돌적이고 폭력적인 면모를, G급 던전은 어떻게 알아보고 재능에 적합한 직업을 부여한 건지.

“다시 호기심이 본능을 앞선 순간이었지.”

닥터 브라운은 자신의 과학자적 재능을 앞세워 던전에서 멀어졌다.

던전과 플레이어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며 수많은 데이터를 얻었지만, 본인이 직접 던전에 들어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직업에 맞는 능력을 개화하지. 나는 전투적인 능력을 가지지 않길 원했네. 다행히 과학적인 재능도 뛰어나서 나름대로 핑계를 댈 수 있었지. 제임스 그 친구와 친해진 것도 그런 연유였네. 그 친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었거든.”

연금술.

‘영혼에 관심을 가질 만하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마력의 체계가 궁금했고, 던전의 정체가 궁금했지. 포획한 몬스터를 상대로 실험도 참 많이 했네.”

장치의 경과를 지켜본 그가 물었다.

“내가 왜 직업을 설명하기 전에 눈을 가리켰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진 스킬은 ‘약점 파악’이라는 걸세.”

“약점 파악….”

“눈으로 보는 거지. 심장, 뇌, 목 등이 아닌. 상대가 지닌 또 다른 약점을.”

약점 파악이란 스킬은 유명했다.

아니, 흔했다.

꽤 많은 물리력을 지닌 딜러들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었다.

“약점이 보이면 보완할 부분도 보이는 법이네.”

하지만 닥터 브라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확실히…… 과학자이긴 하군.’

생각의 전환.

공격하기 위해 주어진 스킬을 사용하여 연구에 반영했다.

약점을 연구하고 그 약점이 존재하는 이유를 추론하며, 약점을 보완할 방법을 고민한 끝에.

“트롤의 심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네. 그전에는 가설에 불과했었거든. 확신은 있었네만.”

닥터 브라운이 인위적으로 마력이 주입되는 장치를 힐끗 가리켰다.

“자네의 생각으로 나는 트롤의 심장이 아닌, 아티팩트를 활용할 방법을 모색했네. 이제 자네에게 묻지.”

닥터 브라운의 이름만큼이나 진한 갈색의 눈동자가 진리를 갈망하며 물었다.

“플레이어로서의 자네의 영혼. 마력. 그게 조각난 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