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68화 (68/293)

68화

-아라크네의 흔적 (1)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애매했다.

과거 일제강점기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언제나 서로의 성장을 경계했다.

한국의 여러 기업이 일본을 앞지르고, 여러 기술이 일본의 기술을 뛰어넘었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 일본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뒤바뀐 건.

오로지 플레이어의 시대가 펼쳐지면서부터였다.

바람술사 유지석을 비롯하여 수많은 강자들을 탄생시킨 한국과는 달리.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자연재해를 비롯한 여러 요인이 맞물린 일본의 초창기는 암흑 그 자체였다.

한국에 비해 방대한 영토와 자국민을 지녔기에 각성자의 수는 월등했지만.

그것을 유지할 강자들이 현저히 부족했다.

때문에 일본의 관료들은 타국의 플레이어를 영입하는 데 사활을 걸었고, 그중에서도 한국의 플레이어를 사 오는 것엔 목숨을 걸었다.

한국의 인재를 빼앗아 오는 것으로 자국의 국력을 높이고 한국의 국력을 낮추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렇게 막대한 돈에 넘어간 초창기 플레이어 중엔 S급 플레이어도 없는 게 아니었다.

물론, 당시에는 S급이 아니었지만 타국으로 넘어가 S급이 된 이들이 몇 존재했다.

한국에서는 역적.

일본에서는 국민 영웅이 된 ‘강세기’가 빼앗긴 전력의 대표적인 예였다.

그가 설립한 ‘타소가레(황혼)’ 길드는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권에서는 상당히 인정받는 길드였다.

강세기는 천재로 이름을 날릴 때, B급 플레이어로 일본에 영입이 되었다.

과연 그는 일본의 기대에 부흥하여 S급 플레이어가 되었고.

일본 내에서 손에 꼽히는 거대 길드의 수장이 되었다.

그만큼 일본의 인재 영입은 활발했다.

테러로 퇴색되긴 했지만, 세계 유수의 학자들을 모아 학회를 연 건 대단한 일이었다.

구미에 맞는 지원을 앞세워 그들을 영입하려 했던 일본이었기에.

테러는 더욱 뼈아팠다.

그나마 박사 몇 명이 연구를 위해 일본에 남은 게 위안이었다.

특히나 그중 한 명.

닥터 브라운의 체류는 일본 내에서도 화제였다.

그의 영향력은 전 세계에 퍼져 있었고, 자국인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닥터 브라운의 지원은 아끼지 마.”

일본 총리는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막대한 공세를 퍼부었다.

닥터 브라운은 플레이어로 놓고 보면 보잘것없는 F급이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플레이어로서의 힘이 아니었다.

지식.

그리고 방대하게 펼쳐져 있는 인맥.

“저, 총리님.”

“왜?”

“닥터 브라운이 한국에 연락을 넣었습니다.”

“……!”

총리는 한국을 극도로 싫어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경제적으로나 국력으로나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한국이.

“운만 좋은 나라에, 왜!”

자국의 위기를 틈타 성장했고, 이제는 자신들을 제치고 강국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번에 생긴 던전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던전.

그것에 일본은 예민했다.

그건 자신들의 성장을 억제하는 족쇄였다.

“E급 던전입니다. 해당 던전을 직접 공략했었던 닥터 브라운이 한국의 플레이어 한 명을 요청했습니다.”

“E급? 플레이어?”

긴장했던 총리의 인상이 구겨졌다.

고작해야 E급.

그따위 던전은 관심도 없었다.

“E급에 무슨 그런 공을 들여?”

총리는 인상을 쓰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고작 그 정도 관계면 내게 보고를 할 이유도 없었겠지. 누군가? 그 플레이어가.”

수행원은 태블릿을 조작해 한 명의 신원을 띄워 총리에게 내밀었다.

“이름은 한정우라고 합니다. 이번 사고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이번 사고에?”

총리는 관심을 가졌다.

보고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들은 테러를 사고라고 여겼다.

S급 플레이어 중에서도 강자로 분류되는, 초인 수르트의 습격을 이 정도로 막았다는 것만 해도 국제 사회에서 찬사를 받아야 옳았다.

비난이 아니라.

“이놈이… 그놈이군.”

하지만 그런 평가는 한 명의 한국인 때문에 무산되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총리 본인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한국 플레이어 협회장을 움직였고.

왜 일본에서 태어나지 않았는지 억울해 미칠 지경인 유서린이 파견되었다.

일본 플레이어 협회의 영웅, 사사키가 한국인 플레이어를 높게 평가했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총리인 자신이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했을 터였다.

도망치게 놔두는 게 아니라, 자국이 자랑하는 S급 플레이어의 힘으로 그 악명 높은 수르트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태블릿을 보는 총리의 눈빛이 사나웠다.

“버러지 F급 주제에….”

대일본 제국에 치욕을 안겨준 정우의 얼굴을 보며 총리는 이를 갈았다.

협회장과 직통으로 연결이 되었다는 점에서.

“사사키 군이 이 사실을 알면 극진히 대접하려고…….”

“사사키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대일본 제국의 신민이야! 감히 내 앞에서 누구를 언급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 백인 늙은이를 만나려는 거면, 오사카로 오나?”

“그럴 겁니다.”

“그럼 홋카이도로 보내.”

“누구를 말입니까?”

총리가 수행원에게 거칠게 담배를 던졌다.

볼에 툭 맞고 떨어지는 담배.

걸어간 총리는 발로 담배를 으깨며 이를 드러냈다.

“사사키지 누구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강세기에게 연락해 둬.”

“……!”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옷매무새를 매만진 총리가 ‘그 와중에도’ 여전히 한국 이름을 사용하는 놈의 얼굴을 떠올렸다.

“만약을 대비해서 오사카에 길드원을 파견해 두라고 해.”

“……알겠습니다.”

수행원이 대답한 후 집무실을 나섰다.

혼자 남은 총리는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국과 북한의 정세가 이상해. 이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다.”

총리는 거짓말을 했다.

수행원의 보고에 한정우란 한국인을 기억하는 듯 행동했지만.

그는 이미 정우에 대해 알고 있었다.

“강세기라면 아직 쓸 만한 패야.”

S급이 된 이후로 최근 들어 골치가 아프긴 했지만, 그럭저럭 써먹을 수 있는 패였다.

“이걸 이렇게 날리는 건 아쉽지만 수르트가 관심을 가진다고 하니 재능은 확실하겠군.”

제물의 인과 수르트의 관심까지.

총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손오공이 삼장법사의 말을 듣게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긴고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지만 총리에겐 그와 비슷한 물건이 있었다.

그 유지석과 비슷한 재능이라고 평가받던 천재에게 씌운 물건.

S급 플레이어가 되면서 차츰 자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있었지만, 아직까진 여전히 효과적인 물건이었다.

[ 강제의 인장 ]

등급 : S

행동을 강제한다.

자주 사용할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어쩌면… 수르트까지 옭아맬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야.”

그 악명 높은 불의 왕 수르트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마왕’의 자리를 노리는, 전 세계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강력한 플레이어가?

오싹!

“그 조센징을 엮을 계획을 세워!”

생각만 해도 전율이 흐르는 장면을 떠올리며, 총리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 * *

곧장 일본으로 날아온 정우는 미리 준비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자료 넘어왔어요.”

정신없이 태블릿을 조작하던 유 대리의 말에 정우가 시선을 옮겼다.

넘어온 자료는 스케치 한 장에 불과했다.

“……!”

과한 반응.

유 대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지만, 정우는 대답하지 않은 채 태블릿의 스케치만 뚫어져라 주시했다.

‘이건…….’

번뜩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 정우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차는 곧장 닥터 브라운이 머무는 연구소로 향했다.

공문을 내밀고 신원을 확인한 후 입장한 연구소의 경비는 나름대로 삼엄했다.

순백의 풍경은 딱 연구소를 연상시킬 디자인이었다.

보기에 따라 깔끔하기도 하지만 삭막해 보이기도 하는.

“닥터 브라운!”

정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오, 미스터 한. 또 보는군.”

닥터 브라운이 1층까지 나와 정우를 반겼다.

안내하던 여성이 어리둥절해할 정도로 닥터 브라운은 정우를 환대했다.

직접 등에 손을 얹어 안내를 하는 닥터 브라운의 환대에, 정우도 내심 당황한 투였다.

그가 보여준 정보는 대단했지만.

이 정도로 자신을 기다렸을 것이라곤 예상을 하지 못했으니까.

어쨌든 닥터 브라운의 환대를 받으며 그의 연구실에 들어간 정우는 곧장 한 모니터 앞으로 끌려갔다.

“그림은 봤나?”

“봤습니다.”

“그럼 알겠군.”

닥터 브라운의 눈동자가 안경 너머에서 반짝였다.

영락없는 호기심이었다.

“네.”

정우는 곧장 대답했다.

흥분으로 펑퍼짐한 엉덩이를 들썩거린 닥터 브라운이 상체를 기울였다.

“던전은 지역을 가리지 않네. 미국이나 일본이나, 자네의 조국 한국이나. 같은 등급의 같은 몬스터들을 가진, 같은 지형의 던전은 위치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지.”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C등급의 초원의 오크 부락이란 던전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애당초 문을 통과할 뿐이니까, 문이 어디에 생겨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던전들이 있지.”

공략 불가 판정을 받은 던전.

혹은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해서 지구에 자신들의 터전을 뿌리내린 케이스.

“그리고 여태껏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던전들도 있네.”

닥터 브라운은 그중의 하나로 정우가 공략해 낸 던전을 언급했다.

“아라크네의 미궁. 분명히 그런 이름이었지.”

이름조차 흔해 빠진 무슨 몬스터의 터전이 아닌.

특별함.

“아라크네의 미궁은 분명히 제임스의 관할이었네. 내가 아는 한, 전 세계 어디에도 추가로 나타난 적이 없었어.”

하지만 이번에.

일본에 생겨난 E급 던전이 ‘아라크네’란 이름을 달고 나타났다.

닥터 브라운은 아라크네의 미궁을 두어 번 들락거렸었다.

때문에 아라크네란 이름이 귀에 익었다.

풍경이야 달랐지만.

“…유 대리에게 보낸 메시지가 정말인가요?”

“맞네. 아라크네의 미궁. 아니, 아라크네의 흔적이란 이름의 던전이 생겨났네.”

“……!”

던전의 내부를 그린 스케치.

그건 마녀들의 마을을 그린 것이었다.

정우가 한달음에 일본으로 달려온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어쩌면 마녀들이 회랑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미스터 한이 그 던전을 처리하지 않았나?”

“그랬죠.”

“여기도 관련이 있을 것 같더군.”

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군요.”

“가보겠나?”

“제가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이미 이야기는 해놨네. 아마 별문제는 없을 거야. 어지간한 일이라면 일본에서 협조를 할 테니 말이야.”

“그렇다면…….”

정우의 표정을 본 닥터 브라운이 몸을 돌렸다.

“좋아. 그럼 준비를 해두지.”

닥터 브라운은 정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나저나….”

순간적으로 그의 갈색 눈동자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투명 슬라임의 핵은 언제 구하러 갈 텐가?”

“…음.”

정우의 당황한 표정을 본 닥터 브라운이 짓궂게 웃었다.

“어떤가. 이번 던전을 공략한 뒤에 슬라임의 던전을 돌아보는 것이.”

그의 권유에 정우는 난색을 표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닥터 브라운.”

“일본보다는 미국이 더 편한데, 어쩌겠나. 미국으로…… 음?”

“투명 슬라임을 보신 적이 있나요?”

투명 슬라임의 핵을 요구했던 닥터 브라운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트롤의 심장을 대체할 물건으로 투명 슬라임의 핵을 요구했다는 것은, 이미 그것을 다뤄 봤다는 소리였다.

“봤지. 봤네.”

닥터 브라운은 부정하지 않았다.

나이트 길드의 정보에도 없고.

협회의 정보로도 딱 두 번 등장한 투명 슬라임은 ‘공략’에 성공한 적도 없는 존재였다.

“1인 던전에서요?”

“그렇지. 그걸 처음으로 확인한 게 나였으니까.”

“음…….”

놀란 건 아니었다.

모든 기록을 놓고 보면 닥터 브라운 본인이 투명 슬라임을 경험했다고 봐야 옳았으니까.

“더불어 핵도 얻었었지.”

닥터 브라운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내 인맥은 생각보다 넓지 않아. 제대로 마음을 주는 상대는 손에 꼽을 정도지. 그중의 하나가 자네의 후원자, 제임스 밀러네. 내가 얻었던 핵은 그와 함께 한 공동 연구에 쓰였지.”

“공동 연구요?”

“하나 더 구해오면 자네에게도 비슷한 걸 만들어주지.”

제임스 밀러가 팔을 툭 건드렸다.

“기대해도 좋을 테니, 얼른 구해오게. 늙으면 조급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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