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저주 해제 (1)
“이대로 3일. 맞지?”
-맞음. 맞음 ヘ(‘◇’、)/
“좋아.”
작동한 마법진의 효과로 마정석의 마력을 받아들인 미완성 마정석이 완성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3일이었다.
정우는 완성된 마정석의 효능이 궁금해졌다.
메아리의 조악한 단어로는 효능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정우는 완성품의 효능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이대로 놔두면 되겠군.”
메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는 방을 나와 뒤늦게 어머니와 해후를 즐겼다.
“그러고 보니 정희는요?”
동생의 부재를 뒤늦게 깨달은 정우가 물었다.
“고것이 요즘에 이상하게 조금 바빠.”
“바빠요?”
“전화도 자주 하고 누굴 만난다고 1층도 자꾸 내려가는 게, 아무래도 남자친구가 생긴 것 같아.”
“남자친구요?”
정우의 눈이 커졌다.
어린아이인 것 같던 동생의 연애 사실이 나름 충격이었다.
누굴까, 뭐 하는 사람이지, 나이는, 성격은?
상상의 나래가 점점 펼쳐져 딱딱하게 표정이 굳자.
“정우야. 놔둬. 고것도 이제야 마음이 조금 편하지 않겠어?”
어머니가 과일을 건네며 만류했다.
잠시 고민하던 정우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그래도 한 번은 얼굴을 봐야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아, 어머니. 방에서 작업 하나 하고 있으니까. 절대 문 여시면 안 돼요. 안 열릴 테니 괜히 여시려고 하지 마세요.”
“알았다. 알았어. 그나저나 밥은 먹고 다니니?”
“잘 먹고 다녀요. 어머니도 아래 식당 자주 이용하세요.”
“이용해. 아주 편하다. 호호.”
어머니의 웃음에 정우는 기분이 풀렸다.
“정우야.”
“네.”
“그 아가씨 한번 모셔와. 식사라도 대접하게.”
“…유 대리님이요?”
“그래. 네 일 처리해주느라 얼마나 고생하니.”
“알았어요.”
어머니는 강단이 있으신 분이다.
유약한 듯 보이지만 졸지에 가장과 터전을 잃은 후에도 슬픔에 쓰러지지 않고 일어나 가족을 위해 직장을 찾아볼 정도로.
하지만 짙은 수심이 사라질 만큼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웃는 모습이 나아지셨어.’
그게 콧잔등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1시간 동안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 정우는 모자를 눌러쓰며 현관문을 나섰다.
정희를 가만히 놔두라는 당부가 연이어 뒤따랐다.
정우도 정희에게 접근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어.’
빌런이 자신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가족을 노릴 수도 있는 법이었다.
정우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정희를 관찰하기로 결정했다.
비약적으로 뛰어나진 시력으로, 정희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통로를 열었다.
스킬의 사용을 감지하겠지만.
‘상관없지.’
바늘구멍 같은 크기의 통로가 생성되자마자 정우는 새로운 마법을 사용했다.
직시의 눈.
효과를 톡톡히 본 그것이 정희의 옷에 심어졌다.
정우는 거리를 벌려 다른 카페에 앉았다.
시야가 분할되며 화면이 하나 등장했다.
정희와.
‘……이승민?’
벌떡 일어날 뻔했다.
정우는 진정으로 놀랐다.
‘왜 승민이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손짓과 몸짓을 하는 이승민의 모습과.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는 정희의 모습을 보자.
“…….”
정우는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다.
하루아침에 생긴 감정은 아닌 것 같아서.
“……설마 어머니도 알고 계신 건가?”
남자친구라는 말에 설마 했었는데, 이승민이라니.
마음이 복잡했다.
슷.
정우는 직시의 눈을 거둬들였다.
마음이야 어쨌든 상대가 이승민이라는 점에서 안심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싫어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정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 * *
이승민과 한정희의 데이트를 목격한 정우는 허탈한 미소를 흘렸다.
친한 친구와 동생의 연애라니.
언제 둘이 만난 건지조차 의문인 상황이었다.
스스스.
“고민이 있나요? 오늘은 집중이 흐트러지네요.”
“아…. 잠시 생각할 일이 있어서요.”
중년 여성의 인자한 미소에 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강도를 더 높여도 되겠군요.”
정우의 말에 중년 여성의 마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저주 해제.
딱히 저주 해제 할 게 없는 상황이었지만, 정우는 그 흐름을 보다 예리하게 훑었다.
무섭게 집중하기 시작한 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중년 여성의 마력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힘이 드네요.”
“건재하신데요, 뭘.”
저주 해제가 가능한 인물을 섭외하여 고용한 정우는, 의외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여성의 신원이 궁금해져만 갔다.
마력의 흐름.
스킬의 질이나 위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덕분에.
‘배웠어.’
[ 스킬 ‘저주 해제’를 습득하였습니다. ]
예상이 옳았다.
각인된 스킬의 100%를 채우는 순간 저주 해제 스킬이 습득되었다.
마법서.
스킬북.
두 개의 값어치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염두에 두면, 정우의 ‘마력 회로’는 유례없는 능력이었다.
시간이 걸릴 뿐, 경험하고 보고 체득하는 것으로 해당 스킬을 배울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야.’
메아리와 회랑의 지식.
그리고 마력 회로를 통한 각인 작업.
경험과 지식이 곧 힘이 되는 체계가 자리 잡았다.
“수고하셨습니다.”
“…가만히 보니, 원하는 걸 얻은 모양이군요.”
“덕분에요.”
“호호.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앞으로는 더 필요가 없나요?”
“필요라니요. 도움이었죠.”
“듣기는 좋네요.”
환하게 웃은 중년 여성이 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또 요청해요. 던전만 아니면 또 만날 것 같네요.”
잠깐 고민했던 정우가 악수하며 웃었다.
중년 여성의 멀어지는 모습을 눈에 담은 정우가 시선을 돌렸다.
[ 저주 해제 ]
등급 : B
저주를 해제한다.
저주 해제 외에도 여러 효과가 있다.
“B등급!”
생각 이상으로 높았다.
정우는 중년 여성의 빈자리를 보았다.
범상치 않다는 생각만큼이나, 그녀의 등급이 꽤나 높을 것만 같았다.
협회에서 연결해 주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을 테지만, 막상 그녀와 게약을 맺은 유 대리는 별말이 없었다.
그렇다는 소리는.
‘정보를 속였든가, 저주 해제만 유독 뛰어나든가.’
하지만 정우는 후자보다 전자에 눈길이 갔다.
호감이 있는 눈동자였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정우의 관심은 다시 자신의 아공간으로 향했다.
흑마법사의 지팡이.
사막 고블린 족장을 잡고 얻은 전리품.
놈의 저주를 해제하기 위해 습득한 스킬을 시험해 볼 순간이었다.
“저주 해제.”
손에서 펼쳐지는 스킬의 형태가 중년 여성의 것과 비슷했다.
정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유 대리님께 문자를 보내 놓고.”
정우는 숨을 고르며 아공간을 열었다.
통로와 비슷한 형태의 아공간에 손을 넣으며, 정우는 빠르게 스킬을 준비했다.
지팡이를 떠올리자 곧장 손에 잡히는 감촉이 있었다.
어떻게 된 장소인지 아공간 안에서는 지팡이도 특유의 저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즉, 손으로 잡아도 감촉만 느껴질 뿐 저주는 발현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때문에 타이밍을 잡을 수가 있었다.
‘여차하면 다시 아공간에 넣으면 그만이겠지만…….’
오늘 해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왼손이 빠르게 지팡이를 꺼내며, 오른손이 아공간의 입구에 닿아.
“저주 해제.”
빠르게 스킬을 사용했다.
덕분에 지팡이는 나오는 순간부터 저주 해제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큭.”
손끝이 저릿했다.
지팡이를 든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통증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B급으로도?’
모자랐다.
대체 어떻게 이 정도 저주를 이기며 사용한 건지 의문일 정도로.
지팡이의 저주는 사막 고블린 족장의 능력을 완벽하게 상회했다.
까득!
이를 간 정우의 손에서 더 환한 흐름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증폭.
마력 회로를 통한, 저주 해제의 재각인.
[ 증폭된 저주 해제를 각인합니다. ]
한 줌의 낭비도 허용하지 않게, 통로를 열어 저주 해제의 마력을 다시 지팡이에 집중시켰다.
파스스.
손끝을 타고 올라오던 보랏빛의 저주가 팔꿈치에서 막혔다.
상당한 통증.
인상을 구긴 정우는 통증을 이겨 내며 집중했고.
‘……잡힌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해 저주 해제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욱….”
깊은숨을 내쉰 정우는 전신의 마력 흐름을 통제했다.
한 올의 마력도 허투루 사용되지 않도록.
스킬의 마력 흐름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스킬로는 완전한 저주 해제가 무리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스킬의 영역에서 마법의 영역으로.
즉, 스킬을 통해 마법을 습득하는 단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우의 결정에 반발하듯, 다양한 반발력이 그의 얼굴을 일그러트렸지만.
파직, 파지지직!
스파크와 함께 완성되어 가는 마법은, 기어이 스킬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저주 해제가 스킬이 아니라, 마법처럼 모든 흐름을 다룰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웅웅!
정우의 마력이 일순간 폭증하기 시작했다.
마녀의 마법 체계.
공명.
저주 해제의 위력이 완전히 증폭되었다.
천천히 밀려나던 저주의 흔적이, 불빛 아래 바퀴벌레처럼 우르르 밀려나기 시작했다.
팔뚝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손가락으로.
지끈!
심장의 욱신거림을 무시한 채 쏟아지는 증폭된 저주 해제에.
‘조금만… 더!’
지팡이를 잡은 손가락 끝을 본 정우가 부서져라 이를 갈며 외쳤다.
얼마 남지 않았다.
마력회복물약을 먹을 여유는 없었다.
본능적으로 이 저주가, 지금 해제하지 못하면 더욱 까다로워진다고 경고했으니까.
‘해제…되라!’
어질!
아찔해지는 정신을 다잡으며 마지막 힘으로 저주 해제에 잔여 마력을 탈탈 털어 넣었을 때.
[ 저주받은 지팡이의 저주 해제에 성공하였습니다. ]
축하 메시지마냥 문구가 떠올랐다.
댕그랑!
지팡이를 놓친 정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심장을 뜯을 것처럼 부여잡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력회복물약을 마셨다.
“……후우.”
심장의 통증이 사라지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린 정우의 시선이 지팡이로 향했다.
“……깨졌어?”
지팡이의 보석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저게… 저주의 매개체였구나.”
정우는 지팡이를 들었다.
보랏빛으로 물들기는커녕, 어떠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저주 해제에 성공했다.
“보자….”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B등급 저주 해제에도 견딘 건지, 궁금해졌다.
지팡이를 본 정우의 눈이 커졌다.
* * *
“……죽인다.”
붕대를 감고 있는 도살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정보가 잘못되었다.
리 박사를 납치하려는 계획은, 그녀가 각성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해서 수립되었다.
북한의 정보원도 알지 못했던 사실.
상당히 귀한 정보를 얻었지만, 도살자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계획이 실패했으니까.
북한의 연구소에 틀어박혀 연구에 전념하는 그녀를 납치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북한은 남한처럼 쉬운 장소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의 분노는 정보를 수정하지 못하게 만든 한정우에게 향했다.
가볍게 생각했던 건.
그게 점차 덩치를 불리더니 결국 계획 실패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 버렸다.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도 사용한 결과가 이러니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올라가 모든 인간을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그래도 모두 살아 왔습니다.”
중상자는 있었다.
하지만 잡힌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리 박사의 각성 사실도 알게 되었다.
콰앙!
“그걸 말이라고 해?”
하지만 도살자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죽인다. 이번엔 내가 직접 간다.”
“…상처는, 괜찮습니까?”
그 물음에 도살자가 남자의 멱살을 잡아끌며 으르렁거렸다.
“내가 고작해야 F급에게 당할 것 같아?”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시뻘게진 눈동자로 남자를 노려보던 도살자가 멱살을 풀며 말했다.
“너흰 먼저 돌아가라. 난, 그놈을 잡아 죽여야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