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65화 (65/293)

65화

-메아리와 마정석 (7)

“완성시킨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른 정우의 말투가 서늘했다.

재빨리 알아들은 메아리가 탁자에 날아와 앉았다.

정우는 그녀의 앞에 투명 슬라임의 마정석과 모은 재료를 꺼냈다.

메아리는 해당 재료를 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우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기에, 이 순간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이게 모든 걸 바꿔 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도약의 시발점 정도는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풀. 끓임 φ(・ω・` )

신중한 표정의 메아리의 지시를 따라, 무표정한 정우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몇 번의 연습.

며칠의 공부.

사라지지 않는 분노를 연료 삼아 정우는 정신을 집중했다.

마루 길드의 소송도 겸허히 받아들였다.

협회 측에서 모든 처리를 진행했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 정우는 고개를 숙였다.

마루 길드의 유일한 생존자인 힐러의 원망 섞인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리고 그 비수는 며칠 동안 정우의 가슴에서 돌고 돌아.

놈들을 향한 적의로 완성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성장.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약간 꺼림칙하여 놔두었던 그것을 더 이상 미루지 않으리.

마정석을 완성시키면 놈들을 잡겠다고 다짐하긴 했지만, 보다 열정적으로 성장하리라!

“……마력억제제. 그리고 회복제를 사용했단 말이지? 쉣!”

제임스 밀러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떠올렸다.

자신의 발명품인 줄 알았던 그것이, 더 발전한 형태로 빌런의 손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게 그의 자존심을 두 번째로 무너트렸다.

제임스 밀러가 S급 던전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로부터 하루 뒤의 일이었다.

벽을 넘어봐야겠어.

그가 요청했던 대화를 뒤로 미뤘다.

그는 곧장 유 대리에게 블랙 카드를 보냈다.

무제한 카드.

수르트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각자 모색하되 필요한 게 있으면 모조리 구매해서 쓰라는 통 큰 메시지와 함께.

그 제임스 밀러 역시 성장을 목표로 다시 움직였다.

치이익!

매캐한 연기와 함께 스파크가 일었다.

어느새 혼탁해진 투명 슬라임의 마정석을 보며.

톡.

정우가 달맞이 넝쿨 씨앗을 녹인 물을 천천히 뿌렸다.

-중지. 중지 (;° ロ°)

메아리의 외침과 동시에 정우의 손길이 거둬졌다.

보글보글.

마정석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는 독특했다.

제임스 밀러가 보았다면 눈에 불을 켜고 참여했을 ‘연금술’이 방금 끝났다.

휘릭, 스윽!

이리저리 엉키던 마력이 빠르게 안정되었다.

상당히 탁해진 마정석.

메아리는 땀을 닦는 흉내를 냈다.

정우는 마정석을 보았다.

[ 미완성 마정석 ]

“……미완성?”

완성시키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달려 있는 수식어가 정우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 * *

여전한 회랑.

언뜻 삭막해 보일 정도로 새하얀 풍경은 고요하기만 했다.

“언제 돌아오는 거지?”

이제 슬슬 걱정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방법이 없었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이들이 활동하고 있는 던전을 찾아가는 것뿐.

“…괜찮겠지.”

정우는 새하얀 복도를 걸었다.

“…마법진.”

중얼거림에 나타나는 책장.

빠르게 다가간 정우의 눈이 책장을 훑었다.

수많은 책들 중 쓸 만한 제목을 찾았다.

< 실전 마법진 >

책을 꺼낸 정우는 빠르게 탐독했다.

마법진의 개념과 방법.

응용과 변형이 고루 담긴 서적.

선 채로 책을 다 읽은 정우가 ‘고등 마법진 과정’ 책을 뒤이어 읽었다.

거의 다 읽어 갈 무렵.

문득 고개를 든 정우의 시선에 다른 것과는 달리 현저히 얇은 책이 들어왔다.

딱 정우의 눈높이에 꽂혀 있는 책이었다.

정우는 두 권을 완독한 후, 그 책을 꺼냈다.

< 청탑의 천재에 대하여 >

“청탑의 천재?”

뜬금없는 위인전인 것 같아서 정우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청탑?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은데….”

정우는 책을 펼쳤다.

얇은 두께만큼이나 내용은 적었다.

하지만.

“……이건?”

정우의 커진 눈은 오히려 앞의 두 권보다도 더 만족스럽게 반짝였다.

청탑의 ‘그’는 마법진의 새로운 역사를 새로 썼다. 두 개의 마법진을 공명시킴으로써 전혀 다른 효과를 만들어 냈다. 특히 ‘인챈트(Enchant)’는 그의 손에서 완성이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인챈트…?”

플레이어 중에서도 소수의 전유물인 능력.

연금술과 재련술의 꽃이라 불리는 그것을 제대로 다루는 플레이어는 극히 드물었다.

수준이 떨어지는 인챈터조차 부르는 게 값일 정도의 대우를 받고 있는 실정.

그리고 지금 정우에게 정확히 필요한 개념이기도 했다.

그의 독창적인 마법은 누구도 재현해 낸 적이 없지만, 그가 가르친 하위 개념만큼은 몇몇의 천재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아니, 퇴보했다.

보다 범용성 있게 변형된 인챈트는 ‘그’의 능력을 온전히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일족은 그의 개념을 재해석했다. 바로 ‘증폭’ 마법을 사용하여 하나의 마법진의 효율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비록 그의 것엔 미치지 못하나, 결코 다른 집단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이어지는 일족의 자랑.

정우는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몇 장을 넘기고서야 나오는 마법의 이론은, 정우의 구미에 딱 맞았다.

인챈트는 매우 세심한 마법이다. 일족의 보물인 ‘통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시작이 굉장히 중요한 마법이므로.

필자는 일족의 미래들이 혹여나 상처를 입을까 염려하여 아주 상세하게 서술하니, 부디 어린아이들은 어른의 손을 빌려 연습하기를 바란다.

어린아이도 가능하게 풀어 설명된 마법.

정우는 몇 번이고 되뇌며 해당 순서를 외웠다.

그림, 형태, 첨언까지.

빠르게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각인시켰을 때, 기다렸다는 듯 회랑의 풍경이 흐려졌다.

퍼뜩!

정신을 차리자마자 정우는 태블릿에 그림을 그렸다.

서적에 있는 내용.

모든 것을 기록한 정우를 보던 메아리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기억은 나지 않아도, 정우의 기록이 미완성 마정석에 꼭 필요한 마법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탓이었다.

내용을 확인한 정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방을 나섰다.

A 섹터에 있는 아이템 상점으로 향해 마력판과 ‘A급 마정석’을 블랙 카드로 구매한 정우는.

“……90억?”

손이 벌벌 떨렸지만 애써 대담한 척 얼굴을 굳혔다.

계란이라도 품에 안은 것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빌런의 습격은 없었다.

아들의 등장에 환하게 밝아지는 어머니의 미소에 잠시 무심하게 반응하고서는 방으로 향했다.

마정석을 꺼내어 탁자 위에 올린 정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부터 이걸.

“…90억을 재료로 사용해야 한다는 소리네.”

이상할 정도로 쉽게 돈을 벌고 있지만 90억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모든 마법진엔 마력이 필요하다.

기계에 전기나 연료가 필요한 것처럼, 마법진의 연료는 마력이었다.

하지만 정우의 마력은 형편이 없었고, 지속적인 마력 소모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반영구적인 에너지원인 마정석이었기에, 마법진의 가동에 매우 적합했다.

인챈트는 마력 소모가 극심했다.

“세 가지 마법진을 새겨야 하는데… 가능하겠지?”

제임스 밀러에게 부탁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고민은 짧았다.

성장하기로 한 그를 방해하기 싫은 까닭도 있었지만.

“이걸 알릴 수는 없지.”

어쩌면 자신의 무기가 될지도 모를 방법이었다.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묘한 확신.

막연하게 나는 성공할 거야, 확신하는 어린아이의 희망처럼.

정우는 실패할 것 같지 않았다.

기본과 효율을 극대화한 두 권의 책과 더불어 비기에 가까운 한 권의 책.

새로이 구매한 조각칼을 꺼내 든 정우의 얼굴이 신중해졌다.

지금은 조각이 필요한 단계였다.

머릿속으로 구상이 떠올랐다.

밑그림도 없이 쓱쓱 걸작을 그리는 화가처럼.

도안도 없이 뚝딱 멋들어진 조형물을 완성시키는 조각가처럼.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차분하게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정석의 형태에 걸맞은 선이 하나씩 그려지고.

이윽고 완성되는 순간.

가가각!

오러를 머금은 단검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요란한 소음이 발생했다.

단검의 끝이 약간씩 흔들려서 정우는 손끝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멜론 크기의 마정석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선 하나가 조각되는 순간부터 정우의 손끝은 훨씬 더 자연스러워졌다.

제 입을 가리고 숨을 참는 모양새로 정우의 행동을 보던 메아리의 눈이 커졌다.

반쯤 효율을 내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녀가 만들어야 하는 마정석은 투명 슬라임의 그것이 아니었다.

보다 훌륭하고 대단하며.

얻기 어려운 물건.

때문에 이건 시험작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정우의 손길을 보니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집중하는 정우와 천천히 새겨지는 마정석의 그림을 번갈아 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휘어졌다.

정우는 메아리가 자신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집중하고 있었다.

속성으로 배웠지만 확실하게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증폭’이.

증폭을 더욱 확실하게 잡아줄 ‘안정화’가.

어느새 정우의 머릿속에서 자리 잡아 기존의 형태를 재구성하며 더욱 발전하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 정우의 손이 더욱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간에 마력이 부족해서 마력회복물약을 마시느라 흐름이 끊겼지만, 손을 대자마자 정우는 다시 자연스럽게 마정석을 원하는 대로 깎아 내고 있었다.

수많은 문양이 기형학적으로 얽히기 시작했다.

정우의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을 때에야.

스슥!

마지막 선을 그은 정우가 단검을 내려놓았다.

[ 스킬 ‘마법진’을 생성하였습니다. ]

“……뭐 하냐?”

정우는 자신의 얼굴 근처를 날아다니는 메아리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눈가를 좁혔다.

-땀. 닦음 ∑(;°Д°)

피식.

귀신처럼 물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메아리였지만, 그 마음이 가상해 괜히 웃음이 흘러나왔다.

정우는 메아리의 얼굴을 툭 치는 시늉을 하곤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웅- 웅-.

그러고선 천천히 공명하는 마정석을 보았다.

“……이거.”

이리저리 조각된 마정석은 하나의 예술품 같았다.

조각된 블랙 다이아몬드처럼.

“원래 재료로 사용하려고 한 건데….”

정우가 침음을 흘렸다.

마정석을 산 이유는, 마법진의 연료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마법진을 그리고, 그 축에 건전지를 끼우듯 마정석을 장착할 생각이었다.

때문에 ‘마력판’에 새길 생각이었다.

정우는 아공간 안에 넣은 마력판을 떠올리다가 멈칫했다.

“…마정석도 아공간에 넣어서 왔으면 됐었네? 하하.”

금액에 당황해서 멍청한 짓을 해버렸다.

스스로의 행동에 허탈하게 웃은 정우는 다시금 마정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본의 아니게 몇 단계나 뛰어넘어 마법진을 새겼다.

뭐에 홀린 듯 움직이긴 했지만, 다시 봐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최고. 감탄 ヘ(゚∀゚*)ノ

공명하기 시작한 마정석 주변을 날아다니고 툭툭 건드리는 시늉을 하며, 메아리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우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한 거지? 아주 자연스럽게 패턴이 떠오르고, 완성시켰는데?’

의문이 뒤따랐지만 정우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출렁!

마법진이 새겨진 마정석으로부터 마력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정우는 다급히 마정석의 위쪽에 ‘미완성 마정석’을 올렸다.

“된다!”

마정석의 마력이 미완성 마정석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보며.

정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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