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메아리와 마정석 (6)
이건 예상 밖인데.
문득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정우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타닥. 까득.
이를 부딪치는 소리와 앙다무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베테랑들이 상대의 수준을 모를 리가 없다.
진다.
죽는다.
이길 수…….
“있어요.”
“……!”
정우의 단언에 모두의 상체가 살짝 기울었다.
“어떻게?”
뒷말만 내뱉었음에도 모두의 생각이 일치한 탓인지 대화엔 지장이 없었다.
그만큼 모두의 생각은 패배감으로 통일되고 있다는 소리.
정우의 시선이 ‘검사’에게로 향했다.
복부를 찔린, 검사에게로.
“이대로라면 죽겠는데?”
차가운 말투.
“뭐, 뭔 소리야?”
갑작스러운 정우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는 이들과는 달리, 정우는 태연했다.
리자드맨이라는 적들을 앞에 두고 몸까지 돌려 검사를 노려보았다.
배를 움켜쥔 검사도 당황한 낯빛으로 인상을 구겼다.
“뭔 소리죠?”
“당신. 연기는 그만하는 게 어때?”
“연기?”
“자, 잠깐만요. 한정우 플레이어. 지금 무슨 소리죠?”
무투사는 정우의 어깨를 툭 칠 정도였다.
모두 리자드맨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지만, 시선이 분산된 것만은 확실했다.
그럼에도.
“왜 리자드맨이 달려들지 않는지 아나요?”
리자드맨들은 일행을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
무언가를 준비하듯, 움찔거렸다가 다시 움츠려드는 마력의 흐름을 놓고 보면.
‘확실한 타이밍을 못 잡은 거야.’
아예 겁을 먹은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우위를 점하고도 공격을 꺼리는 것이다.
존재감도, 마력도 전부 감춘 검사 때문에.
“이 사람 때문이죠.”
마른침을 삼킨 플레이어들이 정우와 리자드맨을 번갈아 보았다.
확실히 이상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정우를 노리던 놀을 상대했던 이들이다.
하지만 리자드맨들은 정우보다는 일행을 골고루 노렸다.
‘마치 누군가가 지시를 내리는 것처럼.’
팀장은 그렇게 생각이 들자 정우의 말에 관심이 생겼다.
“……원승아. 이게 뭔 말이냐?”
무투사가 인상을 한껏 구긴 채 물었다.
검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정우를 주시했다.
묘한 기류.
희미하게 올라가는 입술은 대답이나 다름이 없었다.
“왜 그렇게 확신했지?”
“알거든.”
“뭘?”
“네가 마신 거. 그 비슷한 걸… 알 거든.”
마력억제제.
정우의 말을 들은 검사의 입꼬리가 한껏 비틀렸다.
벌어진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이가 없다는 듯.
또는 즐겁다는 듯.
“확실히… 그분이 사람을 잘 봤네. 재미있어.”
“……그분?”
정우의 반문에 대답하지 않은 검사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일행을 보며 웃었다.
씨익.
언제 꺼낸 것인지 보지도 못한 물약을 말릴 새 없이 입에 털어 넣었다.
“……!”
정우의 눈이 커진다.
‘…마력이……!’
회복된다.
아니, 상승한다.
원래의 수준으로 빠르게 복구된다.
“자, 잠깐?”
팀장인 탱커의 입술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1년을 함께 해 온 동료였다.
버릇도, 능력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동료.
하지만 저 미소 띤 표정은 너무도 어색했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스스스!
검사의 존재감에 대항이라도 하듯 고위 주술사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스윽!
검사의 칼질에 기를 쓰지 못하고 다시 위축되어 버렸다.
리자드맨들이 고위 주술사를 지키기 위해 뭉쳤다.
덜덜!
여검사는 충격에 몸을 떨어댔다.
한껏 경계한 정우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설마 마력을 아예 회복할 줄이야.
‘이런 게… 가능한 거야?’
“쩝. 재미있긴 한데, 2분밖에 여유가 없어.”
검사는 그렇게 씨익 웃은 후, 앞으로 걸어갔다.
“이놈만 아니었으면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잔뜩 묻은 음성이.
“너 때문이니까, 네가 책임져야지.”
가벼운 말투가.
“죽어.”
순식간에 차가워진다.
고위 주술사가 발작처럼 입을 쩍 벌렸다.
넘실거리는 연기.
두 눈이 시뻘게져서 달려드는 리자드맨의 모습을 본 검사의 검이.
스윽!
가볍게 움직인다.
목을, 팔을, 가슴을, 상체를, 허리를, 다리를!
‘……못 봤어.’
모든 걸 베어 낸다.
단 한 번의 검격이 만들어 낸 참상에 모두는 얼이 빠졌다.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A급… 그것도 끝자락이야.’
기회만 있으면 벽을 넘어설 수준.
‘대비를 해야 해.’
힘을 숨긴 것을 추궁해서 앞장서서 싸우게 만들 속셈이었다.
고위 주술사를 죽이는 순간, 기습을 해서 무력화부터 시킬 요량이었다.
하지만 고위 주술사의 마법을 피하고 자르는 모습은.
‘못 이겨….’
고위 주술사를 볼 때와는 다른 암담함을 선사해 주었다.
다크 애로우가 반으로 갈려 일행을 덮쳤다.
탱커가 다급히 마법을 막으며 뒤로 밀려났다.
그 정도의 위력.
하지만 검사는 웃으며 마법을 베어내고, 저주를 이겨 내며.
발악하며 포효하는 고위 주술사의 목을 베어 낸다.
서걱!
목이 잘리는 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다.
‘지금!’
정우의 마법이 폭사한다.
수많은 매직 미사일이 통로를 넘어 불시의 일격을 만들어 냈다.
순간적으로 안색이 변한 검사의 몸이 과하게 반응했다.
처음으로 일그러진 표정.
하지만 그 검에 맺힌 ‘오러’는 유려하고 아름답게 매직 미사일을 파훼하기 시작했다.
정우는 다급히 마력회복물약을 마시기 위해 병을 꺼냈지만.
콰쾅!
검사의 검이 매직 미사일을 부수는 게 먼저였다.
검사의 눈이 정우에게로 향했다.
움찔.
움직이면 벤다, 그런 의지가 느껴져 정우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런 정우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눈웃음을 지은 검사가 잘린 고위 주술사의 목을 들어 보며 으윽, 과한 표정을 짓더니.
휘익.
정우를 향해 던졌다.
툭, 데구르르.
자신의 발치에서 구르는 고위 주술사의 머리에는 시선도 두지 않은 정우가 검사를 주시했다.
마력의 흐름은 읽힌다.
하지만 대응할 수는 없다.
절대로.
꿀꺽.
아직도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일행들이 입도 열지 못한 채 긴장하고 있었다.
검사는 정우를 향해 씨익 웃으며.
톡톡.
손목을 두드렸다.
아무것도 없는 손목.
정우는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버럭 소리쳤다.
“피해!”
“……뭐?”
반문하던 무투사의 음성이 뚝 끊겼다.
반사적으로 틀어쥔 탱커의 방패가 반으로 쪼개어졌다.
여검사의 남은 팔이 가슴과 함께 쩍 벌어지고.
궁수의 상하체가 일자로.
잘려 버린다.
“……!”
“어…… 어어?”
스르르, 철퍽.
무투사의 얼굴이 반으로 갈려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아악, 아악!
힐러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정우의 뒤에 서 있었기에 목숨을 건진 힐러를 힐끗 본 검사가 아쉬운 투로 중얼거렸다.
“운이 좋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시시덕거리던 이들을 죽인 이치고는 너무도 가벼운 모습.
힐러를 본 검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검을 거뒀다.
“이런 한 수를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진짜 놀랐어.”
검사는 진심으로 정우의 한 수를 높게 평가했다.
그의 수준이 조금만 높았어도, 자신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검사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당장에 죽이고 싶다.
저 모습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느끼고 싶다, 만지고 싶다!
살의가 점점 커져 가던 검사의 정신이 다시 돌아온 건, 해야 할 말 때문이었다.
“한정우.”
“……왜.”
“그분이 원하는 수준에 얼른 도달해야 할 거야. 아, 그게 좋은 건 아닌가? 푸흐.”
“…그분이 누구지?”
“불의 왕.”
“……수르트!”
때마침 검사의 마력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순간적으로 어두워진 낯빛이 물약의 반발력을 짐작게 했지만.
검사의 살기는 마력의 소실과는 상관없이 더욱 짙어졌다.
절로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먹이 주제에.
정우의 이빨이 요란하게 부딪쳤다.
제물의 인이 어떤 효과를 내는 건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먹이라고 평가하니 강렬한 반발심이 올라왔다.
‘공격해?’
마력이 C급 플레이어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승산은 충분했다.
하지만 정우의 본능은 연신 경고하고 있었다.
쉽게 달려들지 말라고.
“빌런… 이었군.”
“아쉽게 됐어. 꽤 정이 들었었거든.”
검사의 눈이 싸늘하게 죽어 버린 팀원에게 향했다.
벌벌 떨고 있는 힐러의 새하얗게 질린 표정에 미소를 지었다.
배신당할 때의 극적인 표정을 보고 싶었다.
충격과 공포로 얼룩진 표정을 보기 위해, 잠입에 충실했다.
리자드맨 주술사가 일행의 수준을 뛰어넘지만 않았다면.
아니.
“이들을 죽인 건 너야. 한정우. 내가 왜 칼을 맞았는데? 관심을 벗어난 뒤에 천천히 이놈들을 잡으려고 일부러 칼을 맞았는데… 너 때문에 그르쳤잖아.”
궤변.
하지만 정우는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마력을 회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제임스 밀러는 마력억제제를 먹고 던전 공략 후 회복에 전념했다.
반발력을 최소화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검사는 그런 것 따위는 관심이 없다는 듯, 단번에 마력을 회복했다.
2분 동안.
리자드맨 주술사를 죽인 후, 손목을 두드린 것도 남은 시간을 가르쳐준 것이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죽이고 보겠다고.
미리 준비해야 했다.
리자드맨 주술사와 부딪쳤을 때, 일행과 함께 공격했어야 했다.
어떻게든!
“푸흐. 좋은 표정이야.”
검사는 정우의 표정 변화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왕께 간청할 게 하나 생겼어!’
무너지는 표정을 보고 싶다.
취하기 전에 잠시 여흥을 주시라고.
할짝!
검사는 입술을 핥았다.
“어? 생각해 보니 진성일 남긴 건 잘했네. 진성아. 한정우 플레이어가 괜히 조사 때문에 귀찮아지지 않게, 잘 설명해.”
검사가 밝게 웃으며 힐러에게 말했다.
덜덜 떠는 힐러의 탁한 눈이 검사에게 닿았다.
화들짝.
과하게 놀라는 모습.
“…제대로 설명해. 떨지 말고. 안 그러면 널 찾아갈 테니까.”
그 말에 힐러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가자고. 아, 내가 먼저 나갈 테니까 조금 있다가 나와. 한 5분 정도? 마음 좀 추스르고. 바로 따라와서 헛소리를 할 거면…….”
검사가 검을 휘익 돌렸다.
주륵.
뒤늦게 구멍 뚫린 배에서 피가 흘렀다.
“밖에 놈들은 다 죽을 거야. 귀찮게 C급 흉내 낼 필요가 없으니까.”
“…….”
둘을 본 검사가 히죽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쩍 갈라진 핵이 소멸하고.
게이트가 생겨났다.
검사가 손을 흔들며 게이트로 들어갔다.
“……으, 으으.”
검사가 사라지자 힐러가 무너져 내렸다.
동료의 시체.
웃고 떠들던 이들의 싸늘한 죽음에 충격을 입은 힐러만큼이나.
“…….”
충격에 빠진 정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너 때문에 죽은 거다, 란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 *
빌런의 잠입.
마루 길드의 건은 협회에 보고되었고, 회의가 이루어질 정도로 중요하게 다뤄졌다.
모든 길드엔 공문이 새롭게 내려왔고.
가뜩이나 빌런에 대한 경계 태세가 높아지던 길드는, 잠입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성과는 없대요.”
딱히 빌런이라고 드러나는 것들이 없었기에, 성과는 없었다.
유 대리는 정우의 눈치를 보았다.
제물의 낙인.
‘……골치 아파.’
유 대리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 느낌이었다.
조금은 지친다랄까.
왜 자꾸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 집단이 정우를 습격했을 때에도, 내심 신경이 엄청 쓰였었다.
혹시나 자신도 노리지 않을까 싶어서.
그 이후로 계속 협회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까? 모르겠지.’
유 대리가 보기엔 한정우란 사람은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구하고, 가족을 위한다는 목적만 뚜렷할 뿐.
고민이 많고 생각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건 이해가 가지만….’
조금은 냉정하면 어떨까.
그래서 자신에게 조금만 더 안도감을 주면….
‘후우. 플레이어 비서라고 편안한 건 아니네.’
뒤로 미뤘던 평가가 툭 튀어나왔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명백한 축객령.
유 대리는 입맛을 다시며 문밖으로 나갔다.
콰앙!
등 뒤로 들려오는 거센 굉음에 화들짝 놀랐다가.
손잡이로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둬들인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