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63화 (63/293)

63화

-메아리와 마정석 (5)

“막아!”

“으라야!”

우락부락한 사내가 리자드맨의 양팔을 부여잡고는 들어 올려 메쳤다.

“아하하! 계속 와라!”

“미친 고릴라! 그만해!”

서걱!

쓰러진 리자드맨의 목을 베어 낸 여검사가 욕설을 내뱉었다.

투덜거리는 것치고는 둘의 합은 괜찮았다.

‘둘뿐만이 아니야.’

여섯의 합은 상당히 좋았다.

무투사 하나, 검사 둘, 탱커 하나, 궁수 하나, 힐러 하나까지.

‘역시 전술 교본 같아.’

협회에서 진행한 교육의 발전 형태를 보는 느낌이었다.

피융!

“한 놈만 남기고 전부 다 죽여!”

“야야, 나 맞을 뻔했다고!”

“입 털 여유가 있으면 더 움직여라!”

수다스러운 전투가 이어졌다.

“…이번엔 덜 날아다니네요?”

여검사의 말에 정우는 창을 휘두르며 고개를 돌렸다.

“저번에 무리를 해서요.”

“아! 하긴. 유독 시간이 짧기는 했어요.”

“그래서 우리도 한 명 보충했잖아요. 크으…. 때문에 수익이 줄었어요.”

“내 탓이란 거냐? 확 네 머리에 화살을 꽂아 버린다?”

“아니! 그게 아니라…….”

쩔쩔매는 탱커의 말에 웃음기가 흘렀다.

초반의 기습 때만 해도 ‘과연 이게 리자드맨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화려하게 창을 휘두르던 놈들은.

“아래로 내려오니까 실력이 줄었다. 역시 ‘버프’야!”

거리가 멀어지니 실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버프.

사막 고블린 족장이 떠오르는 정우였다.

“이거, 계속 아래만 있을 수는 없는데?”

“그러게. 이거 점점 발 디딜 곳이 없어지는데?”

“이 지형 뭐야? 돌 언덕 바로 아래 늪이라니.”

“무릎까지 바로 빠져. 깊어!”

“또 늪이야. 냄새가 아직 빠지지도 않았는데….”

원래라면 버프를 받지 않는 언덕 아래에서 리자드맨을 상대해야 옳았지만.

언덕 아래의 지형은 온통 늪이었다.

그것도 가장자리부터 깊은 수렁.

일행은 간당간당하게 버프의 경계에 걸쳐서 전투를 이어 나갔다.

“근데… 안 내려오네?”

궁수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자신들과 전투를 벌이는 놈들 외에도 수십에 달하는 놈들이 위쪽에서 자신들을 내려보며 경계를 하고 있었다.

“약발 끝인가요, 한정우 플레이어?”

“…그런가요.”

“하하. 차라리 이게 나을걸요? 다 몰려왔으면 늪에 빠졌을 가능성이 훨씬 커요.”

“맞아! 늪은… 으으. 싫다. 싫어.”

창을 차분하게 쳐 낸 여검사가 리자드맨의 가슴에 검을 꽂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 차분히 공략해 보죠.”

모든 리자드맨을 쓰러트린 팀장이 천천히 전진했다.

정우 역시 창을 틀어쥐며 앞으로 나아갔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자신들을 노려보던 리자드맨들은 거리가 가까워지자 조용한 포효와 함께 달려들었다.

“큭! 버프 사정거리인가 보다.”

“제대로 막아!”

“움직임이… 완전 다르잖아!”

위력과 민첩 자체가 상승했다.

“이번엔 핵… 파괴잖아.”

“보스도 아닐 텐데 이 정도 능력이라면….”

“돈은 많이 벌겠네.”

“졸라 빡세겠지. …미친 고릴라야!”

“으라챠!”

리자드맨 한 놈을 엎어치기 한 무투사가 팔꿈치로 놈의 목을 가격했다.

쓰러진 채로 발버둥 치는 놈의 처리는 여검사의 몫이었다.

정우는 리자드맨의 창술을 유심히 보았다.

‘저거…….’

조악한 형태.

하지만 회랑에서 본 여러 창술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형태.

‘제국 창술.’

제국의 창병이 쓰는 기본 창술이지만.

‘…리자드맨이 다룰 정도로 녹록한 건 아니었는데.’

기본적으로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만들어진 창술인 만큼 아예 기본적인 건 아니었다.

‘이계 인간이 만든 창술을 사용한다? 몬스터가?’

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시끄럽던 일행의 입이 다물어졌다.

진중한 태도로 조금씩 이동하며 둘러싸이는 것을 경계.

하나씩 잘라먹는 일행의 실력이 꽤 훌륭했다.

정우의 창이 리자드맨의 목을 꿰뚫었다.

“진짜 E급 아닌 거 같아요.”

슬쩍 말을 건 여검사가 다시 멀어졌다.

빙글 돌린 창이 일행의 옆구리를 노리자, 다급히 정우가 창을 뻗어 막아 냈다.

혀를 날름거린 리자드맨의 노란 눈알이 정우를 노려보았다.

시선을 교차한 정우의 어깨가 흔들거렸다.

파앗!

힘껏 찌르기.

퍼엉, 터진 머리가 분수처럼 녹색의 피를 뿜어댔다.

쌕, 쌔액!

동족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놈들이 날카로운 숨소리와 함께 달려들었다.

“…도발은 제 몫인데요!”

탱커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창날을 쳐 내고 빙글 회전시켜 다시 찌르는 정우의 정신은 한껏 집중하고 있었다.

흐름.

튜토리얼에서 습득한 마력의 흐름이 새삼스럽게 각인되는 듯한 느낌.

함정을 파훼할 때도.

늑대인간을 상대할 때도 도움을 받았던 그것이, 새로이 각성하듯 정우의 신경을 자극했다.

‘…설마, 나도 버프의 효과를 받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몸놀림이 가벼운데?’

언덕 아래에서와 느낌이 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순간적으로 든 생각을 일축한 정우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했다.

회전력을 머금은 창이 일직선으로 쭉 뻗어.

깡! 우직!

리자드맨의 창과 부딪쳐 놈의 창을 부서트렸다.

그 틈을 노린 궁수의 화살이 리자드맨의 눈알에 꽂혔다.

캬아-!

비명을 지르는 리자드맨의 목을 잘라낸 건, 정우의 창이었다.

서걱!

“휘유!”

수가 줄자 다시 여유를 되찾은 일행이 휘파람을 불었다.

감탄하는 모습.

정우의 움직임이 그만큼 인상적이었다는 소리였다.

“조금 대기한 뒤 올라가죠.”

* * *

두 번째였다.

‘몬스터가 날 노리지 않는 게 이렇게 편한 일이었나?’

언데드 때는 정신이 없었다.

세크나트의 목걸이와 똑같은 패턴.

자신을 노리지 않는다는 것을 거의 확신했음에도 여유를 누릴 환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C급의 플레이어들이 든든하게 받쳐주니 갑자기 난이도가 급하락해 버렸다.

물론, 그런 것치고 상황이 아예 낙관적인 건 아니었지만.

언덕을 오르는 건 꽤 힘이 든 일이었다.

때때로 달려드는 리자드맨의 기습은 갈수록 은밀해졌다.

“…이놈들이 원래 이랬나?”

C급 정도 되면 모두 베테랑이라 불린다.

C급 플레이어들이 대게 팀장을 맡는 것도 그런 연유였다.

족히 백여 회가 넘는 공략.

수많은 케이스를 어지간하면 다 겪은 수준이 C급인 것이다.

그렇기에.

탱커의 말마따나 리자드맨의 움직임은 이전의 예상을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카멜레온 그게 뭐지?”

“위장, 바보야.”

“아, 위장…. 그거랑 비슷하잖아. 색이 바위 색이야. 구분이 안 가.”

리자드맨의 위장은 언덕을 오르면 오를수록 뛰어나졌다.

나중엔 정말 코앞에서 바위가 벌어지는 탓에 화들짝 놀라 기함을 했었다.

정우의 반격이 빠르지 않았다면, 누구 하나 중상을 입었을 정도의 수준.

자연스럽게 긴장이 팽배하고, 진행 속도가 더뎌졌다.

불과 네 마리가 기습 공격을 했지만.

“후욱, 아…… 지친다.”

일행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정도로 심력 소모가 상당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야.’

정우의 눈이 양옆을 훑었다.

언덕을 오르면 오를수록 짙어지는 안개.

‘이게 가장 수상하다.’

안개에 점점 마력이 깃들어 있다는 게 눈에 밟혔다.

경계를 하며 도착한 언덕 위엔 축구 운동장 크기의 분지가 존재했다.

“…뭔 안개가 이렇게 짙어?”

한 치 앞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뿌연 안개가 가득 찬 공간.

일렁.

그 중간에서 일렁이는 은은한 붉은빛에 정우의 눈길이 향했다.

하지만 경계를 끌어 올린 일행은 정우와는 달리 붉은빛을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마력이란 소린데….’

어딘지 모르게 불길해 보이는 마력.

‘안개에 묻어 있는 마력도 저기서 생긴 거군.’

“일단 도발로 끌어 보자.”

탱커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전신에 힘을 주었다.

놈들의 공격을 예상하고 충격에 대비하던 게 무색할 정도로.

조용.

“……뭐냐. 없어?”

고요한 상황에 탱커가 당황하는 음성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리에 힘을 푸는 탱커의 모습을 보며 정우가 다급히 외쳤다.

“방어!”

“…뭐?”

콰앙!

“…큭!”

“어, …어?”

“미, 밀렸다!”

“공격! 공격해!”

탱커의 힘이 빠졌을 때.

그때를 노린 공격에 탱커가 허무하게 나뒹굴며 진형이 무너졌다.

푸욱.

“아……!”

검사의 복부가 창에 꿰뚫렸다.

서걱!

“아아아악!”

여검사의 팔이 잘렸다.

“X발! 이게……!”

하얀 안개가 붉게 물들었다.

여검사의 팔을 자른 리자드맨은 정우의 손에 심장이 꿰뚫려 죽었고.

무투사가 검사의 복부를 찌른 리자드맨의 전신을 사정없이 두드렸지만.

다른 놈들은 유유히 뒤로 물러났다.

“하, 하악, 하악!”

베테랑인 만큼 그 와중에도 공격을 해서 추가 피해를 막았지만.

“힐!”

파앗!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리 준비하던 스킬이 생겨나 검사와 여검사를 감쌌다.

“…진근아. 팔 챙겨라.”

“으득!”

무투사가 이를 갈며 여검사의 팔을 챙겼다.

“보존.”

잘린 팔의 양쪽 단면에 은은한 빛이 맴돌았다.

울컥, 피를 뿜던 단면이 지혈되었다.

“후욱. 미치겠네.”

탱커가 거칠게 발을 구르며 말했다.

언제 다시 기습이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경계를 늦출 수도 없었다.

“이, 이게 뭐야….”

여검사가 파르르 떨었다.

검을 잡는 오른팔이 잘린 게 그녀의 평정을 앗아갔다.

탱커는 눈동자가 흔들리는 여검사의 어깨를 꽉 끌어안으며 희망적인 말을 건넸다.

“괜찮아. 빨리 공략하고 치유하면 돼. 팔 확보도 잘했어.”

“아… 알았어요.”

여검사도 C급 플레이어인 만큼 충격에서 벗어나는 건 빨랐다.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팔 한 짝이 날아간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패닉이었지만.

정신을 차린 그녀의 표정엔 분노가 가득했다.

부르르 떨리는 주먹의 손뼈가 도드라졌다.

“놈들의 움직임이 예상을 뛰어넘어. 차라리 B급 던전에 입장했다고 생각하고 움직이자.”

탱커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계심을 끌어 올렸다.

순간의 방심은 위험했다.

나아가는 속도가 더욱 느려졌다.

자욱한 안개 속.

언제고 몬스터가 기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일행의 정신력을 빠르게 갉아먹었다.

일행의 뒷모습조차 흐려질 정도의 짙은 안개에 정우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바람 마법을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이번 공략엔 마법사가 없어서 아쉬웠다.

‘이지스가 깨어나면 다른 마법을 배우겠다고 해야겠어.’

그사이.

더 이상의 기습은 없어, 느리지만 천천히 이동한 일행은.

‘이제… 앞이다.’

“마력의 흐름이 바로 앞에서 느껴집니다.”

“…흐름? 딱히 안 느껴지는데…?”

정우의 속삭임에 궁수가 눈을 반개하며 전면을 노려보았지만.

“이 안개 때문이야. 내 주시 스킬이 안 통해.”

궁수의 눈에 긴장이 어렸다.

자신의 스킬이 이렇게 철저하게 막힌 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걷는 일행의 눈에.

“……!”

“적! 적이다. 전투 준비.”

속삭이듯 소리치는 탱커의 지시만큼이나 선명한 얼룩이 안개를 뚫고 ‘서’ 있었다.

각자 스킬을 준비하고 몇 발짝을 움직였을까.

화악!

거짓말처럼 안개가 사라졌다.

힐끗.

등 뒤로는 여전한 풍경에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태풍의 눈.

그런 느낌이어서.

“……하.”

과연 태풍의 눈이라는 표현이 옳았다.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수.

그럼에도 느껴지는 존재감은 이전보다 강해졌다.

찰랑.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소리가 놈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여러 쇠고리가 걸린 나무 지팡이.

‘여섯…… 개?’

쇠고리의 숫자를 센 정우의 눈이 커졌다.

리자드맨 주술사의 능력은 쇠고리의 숫자로 결정되었으니까.

여섯 개면.

‘대주술사 바로 아래잖아!’

고위 주술사.

트롤과 같은 등급으로 놓이는 괴물이, 일행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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