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62화 (62/293)

62화

-메아리와 마정석 (4)

셀레잉 늪지의 지하에는 고대의 유적이 있었다.

“거기까지는 무리.”

던전의 반경이 거길 허용할지 미지수인데다, 자신의 능력으로 그곳의 공략은 불가했다.

정우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지금 필요한 건 유적의 물건이 아니라, 이것이었으니까.

[ 그레이 골렘의 핵 ]

“생각보다 빠르게 얻었다.”

정우는 넝쿨을 자르고 발로 차서 나무 밑으로 굴려 버렸다.

파스스.

달빛을 받지 못하자 빠르게 말라가는 넝쿨.

다가가 손으로 넝쿨을 마저 뜯어낸 정우가 씨앗을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정우가 마력을 드러낸 순간부터 화들짝 놀라서 도망친 동물들 탓에 주변은 조용했다.

정우는 하늘을 보았다.

어둑해졌던 하늘에 다시 은은한 빛이 살짝 떠오르고 있었다.

새벽.

“…이제 보스를 잡으러 가볼까?”

놀 ‘돌격대장’의 습성을 떠올린 정우의 손가락이 연이어 꿈틀거렸다.

* * *

사락.

기척을 숨기지 않은 탓에, 나무를 돌자마자 플레이어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맞이해야 했다.

정우는 양손을 들며 어깨를 으쓱했다.

“도착했습니다.”

“아, 한정우 씨.”

상대를 확인한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내렸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일이 잘 풀렸어요.”

“다행이네요.”

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사이의 꼬치를 본 정우가 피식 웃었다.

“낭만이 있는 시간이었겠군요.”

“크. 그렇죠. 이거, 우리만 즐겨서 미안하네요.”

“별말씀을.”

예상 밖으로 일이 잘 풀린 건 사실이었다.

원래 황금 원숭이는 황금만큼이나 찾기가 어려웠다.

무엇을 먹는 것인지 은은한 빛이 감도는 똥을 싸기 때문에, 그것으로 놈들의 활동 범위를 파악할 뿐이었지만.

‘우연찮게도 한 방에 놈들을 발견했지.’

심지어 무리의 우두머리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 놈들이었지만, 터전을 발견했기 때문인지 어렵지 않게 씨앗을 빼앗을 수 있었다.

그게 목적이었기에 죽이지는 않았지만, 씨앗을 보물처럼 여기는 놈들이었기에 타격이 없는 건 아닐 터였다.

기록상 중급 늪지인 셀레잉을 기준으로 황금 원숭이의 개체 수는 불과 스무 마리 정도.

드넓은 반경을 떠올리면 찾는 게 더 어려울 지경인 셈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무를 반쯤 타고 올라가면 원래 도망치기 시작하는데….’

“한잔할 건가요?”

“괜찮아요. 따로 챙겨왔습니다.”

정우는 허리춤을 툭툭 두드렸다.

이들과 떨어졌을 때는 착용하지 않던 작업 가방이 허리에 매여 있었다.

보여주기식이었지만 꽤나 편한 물건이었다.

정우는 작은 물병을 꺼내 목을 축였다.

“조금만 쉬고 출발하죠.”

“생각보다 빨리 끝나게 생겼네. 흐흐.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하지?”

“괜찮아요.”

따뜻한 불을 쬐며 정우는 에너지 바를 꺼내 먹었다.

“뭘 찾으러 간 거예요?”

그런 정우에게 한 여자가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야, 질문 안 하기로 했잖아.”

“아니. 그냥 궁금해서….”

“하하. 한정우 씨. 그냥 호기심이 생겼나 봅니다.”

일행은 정우에게 친절했다.

정우의 비율 조정으로 얻은 수익만 해도 인당 오백만 원가량.

이미 대화를 나누며 수익 계산을 끝낸 이들은 이런 시간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한 번 빡세게 전투하고, 휴식 시간까지 가지는 것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냥, 이것저것이요?”

정우는 말을 돌렸다.

다행히 여자는 더 묻지 않았다.

잠깐 휴식을 끝마친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리 준비한 흙을 뿌린 일행이 정우를 따라 전투를 준비했다.

“이쪽으로.”

정우는 지시를 따라 움직였다.

지원 병력인 이상, 어지간한 지시에는 따르는 게 원칙이었다.

‘유능하기도 하고.’

전투 능력이 괜찮았다.

다섯 번의 공략을 전부 놓고 보면 이들이 가장 뛰어나다고 봐야 했다.

놀의 수가 많았음에도 차분히 전투를 진행했고, 지형지물을 제대로 활용하여 상대했다.

이런 팀이라면 몇 번 더 공략을 같이 진행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준비.”

한마디.

‘…확실히 괜찮아.’

그 한마디에 가벼운 기세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예리함만이 남는다.

차분히 자리를 잡고 전진하는 진형은 지극히 교본적이었지만.

우지끈!

조악한 나무 움막을 부수며 등장하는.

크라-아!

양팔을 벌리며 크게 포효하는 놀 돌격대장.

놈을 상대하는 움직임은 딱히 군더더기가 붙어 있지 않은, 효율적인 형태였다.

막고, 치고, 시선을 끌고.

푹, 끄르륵!

꿰뚫린 목을 부여잡은 채 손을 휘젓던 돌격대장의 몸체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휘유. 낙승이구만!”

어깨에 척, 검을 올린 사내가 몸을 돌리며 씨익 웃었다.

“쩝. 아이템은 없네요.”

돌격대장의 시체에 접근한 여자가 주변을 살피고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스스스, 게이트가 생겨났다.

“얼른 귀환해서 술이나 한잔하자!”

“으으. 누가 홀아비 아니랄까 봐. 아침부터 술판을 벌이려고 하다니….”

친구 같은 모습에 미소를 지은 정우가 인사했다.

“저 먼저 나가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오오. 수고했어요.”

“다음에 또 불러줘요!”

“야, 우리가 불렀거든.”

“그런가? 히힛.”

“원하는 던전이 있으면 담당자에게 말해 봐요. 조건 맞으면 또 뛰게.”

“알았어요.”

유쾌한 분위기.

정우는 먼저 게이트를 벗어났다.

“자아. 우리도 슬슬 나가볼까?”

사내의 말에 일행은 꽤나 유쾌하게 떠들었다.

그중 한 명의 눈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반짝였다.

* * *

“또 잡아요?”

“담당자와는 말이 잘 끝났어요.”

“누구요? 마루 길드 담당자요?”

“네.”

이번 공략 담당 길드였던 마루 길드는.

“거기 담당자 꽤 말 많던데요.”

“그래요? 유쾌하니 괜찮던데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유쾌했다.

“그런가요? 으. 전 말 많은 사람은 질색이에요.”

유 대리가 질색했다.

“…이번엔 어딘데요?”

“리자드맨이요.”

“거기도 C급이네요?”

유 대리의 말에 정우가 미소를 지었다.

“곧 계약서 넘어올 거예요.”

“알았어요. 처리해 놓을게요.”

유 대리에게 일을 맡긴 정우는 곧장 휴식을 취했다.

거의 하루를 쉬고 난 후.

회랑에 접속해 리자드맨에 대한 공부를 마친 정우는 집에서 그동안 모은 물건을 꺼냈다.

핵. 씨앗, 진액, 풀, 깃털.

도대체 어떤 조합을 이루어서 투명 슬라임의 마정석을 완성시킨다는 건지, 정우로서는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도… 하나만 남았네.”

-기대. 만빵 〜(^∇^〜)

자신이 바라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메아리의 기분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워 보였다.

“나도 기대된다.”

진심이었다.

이 정도로 요란을 떤 보람이 있기를 바랐다.

“이거 완성시키면… 빌런을 좀 잡아보자.”

여름에 매미를 잡자는 투로 결정을 내뱉은 정우의 표정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린 정우는 불도저와 같았다.

그런 성향이었기에 5년이란 시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과 훈련을 병행할 수 있었다.

성장을 우선시하기로 결정한 상황.

정우는 이번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빌런을 찾기로 했다.

‘제임스 쪽도 연락을 하긴 해야 하는데….’

“일단은 이것부터 완성해야지.”

이틀 뒤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정우는 여전히 부산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메아리를 향해 손을 휘저은 뒤 재료를 챙겼다.

“얼른 마녀들이 정신을 차리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제는 정우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마녀들이 회랑에서 정신을 잃었다는 소리는.

“그래도 육체가 제대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리니까, 다행이지.”

일전에 했던 예상대로였다.

이전에는 반반의 예상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확신이었다.

그만큼 정우는 회랑에 익숙해지고 있으며, 그 체계를 이해해 가고 있었다.

접속하는 족족 자신을 반기던 이지스가 이상한 거였다.

회랑은 실존하는 장소가 아니다.

엄연히 마법으로 만들어진 장소이며, 해당 장소에 접속하는 건 본체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정우는 꿈을 통해 접속하는 셈이었다.

마녀들 역시 그렇게 따지면 간단했다.

꿈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였으니까.

“확실히… 정신을 차린 셈이니까. 어떻게든 대응하고 있을 거야.”

반대로 말하자면 어떤 이유로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다시 접속할 만큼의 여력이 안 된다는 소리일 가능성이 컸다.

자신의 성장과 연관이 있기는 했지만.

오히려 독이 된 상황이랄까.

“거기까지는 너무 간 게 아닐까.”

막연한 불안감이 꼬리를 물고 커져서 그런 결론을 만들어 냈지만,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비웠다.

그리고 불안감을 지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으면 이지스가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하겠지.”

이지스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먼 후일을 보고 계획을 세운 것부터.

자신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능력을 펼치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솜털이 솟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정우는 회랑의 마법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더불어.

‘마녀들은 전쟁을 겪었지. 즉, 인간을 상대로 효율적인 공격 방법을 안다는 소리야.’

빌런을 상대하기로 결정한 이상, 능력의 개발은 필수였다.

‘매직 미사일과 창술로 상대하기엔, 버거운 놈들이 너무 많다.’

정우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아직 도살자와 현상금에 대한 부분도 남았고.’

정우는 유서린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좋아. 이게 내 성장과 관계가 있다고 하니, 빨리 마무리 짓자.”

-완성. 완성 ( *ฅ́˘ฅ̀*)

“아주 신이 났네.”

정우는 메아리의 행동에 더욱 기대감을 품었다.

그리고 준비를 끝내고 공략일이 되었다.

“금방 또 만났네요. 하하.”

“오오. 오늘도 서비스만 하면 되는 거예요?”

여전히 유쾌한 분위기.

유 대리가 옆에서 깐깐하게 서류를 다시 검토하며 대신 사인했다.

“여전히 하루의 시간은 동일하고. 엥? 이번엔 텐트도 치네? 포획도 있고?”

팀장이 서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번엔 리자드맨 자체를 해부해 보겠다?”

“와. 나도 구경할래.”

“신기하네요.”

“수선 떨지 말고 계약이나 잘 이행해.”

“라져!”

“지형에 따른 패턴을 제대로 반영해야 해. 전략팀 삼 일을 야근했으니까.”

“아, 잔소리 좀 그만해! 귀찮아 죽겠어.”

“끄응……. 넌 실수하면 보자.”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눈 플레이어들이 마지막으로 무장을 점검했다.

‘……응?’

정우의 눈동자가 움직였다가 돌아왔다.

‘뭐 마시는 거지?’

“…한정우 플레이어?”

“……네.”

“준비 다 끝났는데 같이 진행하겠습니다.”

“아, 네. 진행하시죠.”

“이미 한 번 경험이 있으니까, 입장해선 빠르게 지휘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정우의 동의를 받은 7명의 플레이어가 게이트에 입장했다.

[ 리자드맨의 무덤에 입장하였습니다. ]

‘리자드맨의 무덤?’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전에.

“전투 준비!”

전투를 알리는 고함이 울려 퍼졌다.

가시거리가 길지 않은 안개가 낀 풍경.

돌로 이루어진 작은 동산의 중턱에 선 일행은 각자 무기를 들고 사방을 경계했다.

툭.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작게 들리자.

휘익!

일행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위다!”

안개를 틈타 접근하던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턱, 부웅!

발각되자마자 높게 뛰어 창을 휘두르는 리자드맨의 움직임은 이전의 몬스터들과는 달랐다.

“…윽! 뭐야? 이거… 리자드맨 맞아?”

낙엽처럼 떨어져 일행을 덮치는 리자드맨의 공격을 막던 팀장이 지시했다.

“아래로! 일단 아래로 내려가!”

다들 반응이 빨랐다.

정우는 이들을 따라 언덕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따라올 게 분명한 리자드맨의 움직임은 말할 수 없이 조용했다.

‘마력 감지가 있으니까.’

펄쩍펄쩍 뛰어 내려오는 놈들의 기척을 느끼며.

정우는 창을 틀어쥐었다.

그런 정우의 눈이.

누군가의 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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