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61화 (61/293)

61화

-메아리와 마정석 (3)

콰직, 콰지지직!

나무에 손가락을 박아 넣어 속도를 줄인 정우는 반쯤 부서진 나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마력을 제대로 다루면 이 정도 높이는 그냥 뛰어내려도 충분할 텐데.”

여러모로 아쉬웠다.

-재료. 환호 ٩( °ꇴ °)۶

메아리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환호했다.

“이것으로 네 개째.”

운이 나쁘게도 한 던전에선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획득한 물건이 네 개였다.

정우는 아공간이 씨앗을 넣었다.

하늘을 보니 슬슬 노을이 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후우.”

끊임없는 전투에 이어 수색까지 마치고 나니 조금 지치는 감이 들어 정우는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아공간에서 에너지 바를 꺼내 씹었다.

파르르.

찌륵.

나무에 등을 대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주변의 소란이 귀를 자극했다.

날벌레들이 날아다니고, 발목까지 고인 물 안쪽으로 모기 유충 같은 여러 벌레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거미줄을 친 거미와.

스르르, 조용히 움직이는 뱀까지.

“…이걸 어떻게 한 거지?”

던전의 게이트는 그렇다 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게이트니까. 영화처럼 출입구를 여는 건 가능하다고 치자.”

하지만 그 뒤로는 다른 문제였다.

퀘스트를 부여하고, 이를 클리어하면 게이트가 등장하거나.

보스나 핵을 처리하면 게이트가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아직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방어나 수호는 더 이상해.”

무슨 목적인 걸까.

“…퀘스트는 뭘까.”

상념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아버지를 구할 방법만을 기대하던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다.

플레이어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루트가 한정적이었다.

이진수가 아니었다면 정확히 일반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누구보다 빠르게 던전에 적응했으며 알아가고 있었고.

심지어 이제는 비밀까지 손에 쥐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체계는.

“회랑엔 없어.”

회랑을 만든 마녀조차 알지 못하는 체계였다.

회랑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이제는 가늠이 서는 정우였다.

하지만 이 게이트와 던전의 법칙은.

“도무지 가늠조차 가질 않아.”

대체 어떻게 이런 방법이 가능한 건지 새삼스럽게 궁금해졌다.

“이계……라.”

던전 내의 환경이 이계라는 사실은 충분히 신빙성 있는 이론이었고 이제는 정설로 굳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Tutelary’라는 건 모르겠지.”

이유는 모른다.

회랑의 수많은 책은 한국어로 자동번역이 되었지만, 몇 단어는 영어를 기조로 읽혔다.

“침략자가 아니라 수호자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지구를 침공 중인 이계는 수호자란 뜻을 지닌 Tutelary로 번역이 되었다.

정우는 그게 의아했다.

지구 같은 행성의 이름도 아니고.

심지어 여타 소설에 등장하는 것처럼 통일 제국의 이름도 아닌.

수호자라는 이름.

그게 이 대륙에 붙어 있었다.

“당분간은 계속 이계라고 불러야겠네.”

-명칭. 중요 (*´Д`)=з

메아리가 핀잔 섞인 투로 볼을 부풀렸지만, 정우는 손을 휘저었다.

“엄연한 침략 세계를 보고 수호자라고 부르라고? 불가능해.”

메아리가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여러 문구와 이모티콘이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달라고 칭얼댔지만.

“그만.”

정우의 말 한마디에 침몰되었다.

조금 어깨가 축 늘어진 메아리는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다.

‘이것도 이유를 알 수 없던가….’

메아리의 기억은 힘과 비례한다.

때문에 힘을 되찾으면 기억을 되찾는 셈이었고, 대부분의 힘을 잃은 지금의 기억은 구멍이 뻥뻥 뚫린 치즈처럼 무른 면이 있었다.

하지만 가끔.

‘나한테 말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 아무래도 이것 같지만.’

입을 다무는 지점이 있었다.

제약이라도 걸린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계의 명칭이 중요하다는 이유를 들면 충분히 납득이라도 하겠지만.

‘떼쓰는 아이 같단 말이야.’

메아리는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할 뿐, 설명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

불만이라는 건 원인을 알아야지만 드는 감정이었다.

메아리는 명칭의 중요성에 대한 이유를 알지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란 소리였다.

그렇다면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었다.

“움직이자.”

잠깐 휴식을 취한 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1차로 마정석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여섯 개의 물품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걸릴 것 같던 물건을 찾을 순간이 왔다.

“생각보다 빨리 완성시킬 수 있겠어.”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 * *

늪지의 중앙.

그곳을 찾는 건 어려웠다.

“…다 비슷해 보여.”

네 그루의 나무와 세 개의 돌이 교차를 이루는 곳.

그곳이 셀레잉 늪지의 중앙이었지만 빼곡한 나무와 크고 작은 돌이 널려 있다 보니 중앙을 찾는 건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정보가 아예 없었으면 못 찾을 뻔했다.”

벌써 날이 어둑해졌다.

밤의 늪은 낮의 늪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했다.

늪의 깊숙한 곳에 살고 있는 놈들이 고개를 들고 활동하거나, 야행성 몬스터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위험하지 않았다.

이 던전에 남은 건 보스 하나뿐.

밤이 되더라도 딱히 위험할 건 없었다.

“시야 확보가 가장 어려웠다.”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피리링.

-피곤. 치짐 ( •́દ•̩̥̀ )

메아리가 휘적거리며 힘 빠진 파리처럼 어깨에 내려앉았다.

“지침이겠지. …마찬가지다.”

정우 역시 어깨가 뻐근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마음이 조급해져서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갔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하지만 성과가 있었다.

늪지의 중앙.

네 개의 나무와 세계의 돌의 휑한 중간.

그곳을 발견한 것이다.

정우는 그 앞에 서서 숨을 골랐다.

마력회복물약을 꺼내어 마셔 만전을 준비했다.

체력의 소모가 아쉽지만, 마력의 회복은 필수였다.

‘그러고 보면 안정화가 된 이후 마력회복물약의 페널티도 약해졌어.’

회복 장치에서 회복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저 30분 정도 가만히 휴식을 취하면 안정을 되찾았다.

한계치를 넘겨본 적은 없었지만, 과거에 한 번 넘겨서 먹어본 적이 있으니 휴식 시간이 약간 증가할 것 같다는 게 예상이었다.

휘잉.

창을 꺼내 빙글 돌린 정우가 이제는 익숙해진 창대의 감촉에 차분히 숨을 가라앉혔다.

약간 몰아쉬던 숨소리마저 안정을 찾아간다.

천천히 고개를 든 정우의 눈이 빼곡한 나뭇잎 사이를 주시했다.

지구의 것과는 다른, 꽤나 밝은 달빛이 이리저리 깨어져 비치고 있었다.

정우는 황금 원숭이에게서 빼앗은 씨앗 하나를 꺼냈다.

“일타이피네.”

늪지의 중앙은 늪이 아니었다.

육안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표면을 살짝만 걷어 내면 갈색의 토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때문에 씨앗을 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혼잣말을 내뱉으며 씨앗을 심자.

반짝.

달빛이 씨앗을 심은 토양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확실히 운이 좋았다.

달빛을 모으는 역할을 하는 물건은 세 종류가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황금 원숭이의 씨앗.

마정석을 완성시키는 데 쓰이기도 하지만, 셀레잉 늪지의 숨겨진 보상의 열쇠가 되기도 하는.

“달맞이 넝쿨.”

뿌득.

정우의 중얼거림에 반응이라도 하듯 흙의 표면이 살짝 밀려난다.

빠른 반응.

살짝 뒤로 물러선 정우가 주변을 경계하며 마력을 감췄다.

[ ‘마력 은폐’를 각성하였습니다. ]

뿌득, 뿌드득!

새로운 스킬의 시작을 맞이하는 사이, 달맞이 넝쿨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달맞이 넝쿨의 영양분은 오로지 달빛.

달이 떴을 때엔 급속히 자라서 활동을 하지만, 달이 질 때엔 빠르게 시들어 버리고선 다시 열매 형태로 돌아가는 특이한 식물.

넝쿨이 이리저리 휘청거리더니 멈칫한다.

그러고는.

뿌드득! 콰드득!

넝쿨이라고 하기엔 조금 빠른 속도로 땅을 헤집기 시작했다.

자라나는 대로 끊임없이 지하를 공략한다.

“됐다.”

이제부터는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그리고.

크르-.

쫑긋?

달맞이 넝쿨을 노리는 수많은 동물들 사이에서, 넝쿨을 지켜야 했다.

어둑한 늪지 사이사이에 노란 점 같은 것들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늪지에 원래 늑대가 있나?”

뿐만 아니다.

보다 낮은 시야에도 사이가 먼 노란빛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악어.

몬스터들의 식량이 되면서도 공고히 자신들의 터전을 유지하고 있는 동물들이 달맞이 넝쿨을 노리고 있었다.

부웅.

끽.

매우 자연스럽게 꺼내 휘두른 창날에 두 주먹 크기의 쥐가 잘려 죽었다.

“귀찮게 됐네.”

마력의 사용은 불가능하다.

달맞이 넝쿨은 마력을 탐색하는 데 특출 난 능력을 지녔고, 마력원을 찾으면 그것을 옭아매 가지고 와 씨앗에 녹여낸다.

지금 마력을 사용하면 넝쿨의 방향이 흔들릴 터.

“…4시간은 조금 긴 거 아닌가?”

지하에 묻힌 마력원을 붙잡고 꺼내어 올리는 시간이 그 정도 걸렸다.

달맞이 넝쿨을 노리는 동물들이 적이 된 순간.

정우는 희미하게 웃으며 창을 돌렸다.

“뭐, 몬스터보다 쉽겠지.”

의미를 알아챈 것인지, 바닥에 깔린 노란빛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다리를 빼며 점프한 정우가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며 창을 아래로 찍었다.

몸통이 꿰뚫린 악어가 몸을 비틀며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악어의 주둥이는 여전히 빈 공간만을 물 뿐이다.

창대를 축으로 다시 몸을 반전시킨 탓이다.

콰직!

그 틈을 노린 작은 동물들을, 연이은 찌르기로 꿰어 버린 정우가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몇 시간째지?’

가볍게 생각했다.

동물과 싸우는 게 몬스터와 싸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쉬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노련해.’

놀이라는 포식자가 사는 지역에서 각자의 영역을 꾸리며 살고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대단하군.’

새삼스럽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다른 종이 이토록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니.

정우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놈들은 노련하게 각자의 무기를 가지고 정우를 쉴 틈 없이 괴롭혔다.

그저 달려들 뿐이던 처음과는 달리, 시선을 끈 뒤 몰래 접근하기도 하고.

달려들 듯하고선 몸을 뒤로 빼 정우의 체력 소모를 유도하기도 하며.

‘…귀찮다.’

정우를 괴롭혀댔다.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다 보니 운동을 한 것보다 몇 배나 체력 소모가 심했다.

장소를 찾는 이정표처럼 쓰였던 나무와 돌이 장애물이 되어 정우를 방해했다.

점프를 해야 했고.

굳이 돌아가야 했으니까.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 넝쿨의 움직임이 반대로 흐르고 있었다.

지하로 향하는 게 아니라 지상으로 향한다는 소리.

쭉, 뻗었던 팔을 접는 것처럼.

넝쿨은 마력원을 낚아챈 채 위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건 정우만이 아니었다.

아우-우!

동생들을 부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하울링.

“…동생이 참 많기도 하네.”

저렴한 농담을 내뱉은 정우가 창을 회전시켰다.

“뒤에서 몸을 빼더니, 이제야 몰려드는 거냐?”

정우의 눈이 가장 멀리 있는 노란 시선과 부딪쳤다.

우두머리.

간간이 수하 한 마리씩을 보내던 놈이 기회를 포착했다.

단번에 치솟는 살기가 나름 날카로웠다.

그 감각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정우가 창을 아공간에 돌려보냈다.

잠깐의 정적.

하지만 상대에게서 무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한 늑대들이 노련하게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총력전.

“미안.”

정우는 우두머리를 향해 중얼거렸다.

“총력전은 이제 나도 가능하거든.”

우웅!

벌떼가 일제히 날갯짓을 하는 것 같은 요란한 울림이 정우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크, 크릉?

당황하는 늑대들이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며 꼬리를 말았다.

느껴지는 상당한 마력.

우두머리는 깨갱,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정우가 만들어 낸 매직 미사일은.

늑대를 노린 게 아니었다.

뒤편.

쿠득! 꾸그그극!

괴이한 소리와 함께 들썩거리는 지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 넓지 않은 중앙.

달맞이 넝쿨에 이끌려 등장해 오랜 기다림 끝에 활동을 개시한 놈의 안광이 번쩍였으나.

콰쾅, 콰콰콰콰콰쾅!

끊임없는 폭격에 이리저리 얻어맞고 부서지던 놈이 뚝 하니 움직임을 멈췄다.

어느새 다가선 그의 손엔.

주먹만 한 핵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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