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메아리와 마정석 (1)
헬기를 타고 귀환한 정우는 회의실에 참석했다.
주로 편수가 상황을 설명했지만, 정우도 여러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특히나 소환사와 이상 현상.
그리고 돌발적인 행동과 결과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했다.
조금 늦게 회의실에 참석한 협회장이 눈을 빛내며 정우에게 주로 질문을 건넸고.
“알겠네. 다시 한번 탐색팀을 보내도록 하겠네.”
다시 한번 일대를 확인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후우…….”
한숨을 쉬며 회의실을 벗어나자마자.
척.
차가운 커피가 옆에서 등장했다.
“고생했네요.”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은 말총머리였다.
“유 대리님.”
“일이 많아요. 많아.”
은근한 핀잔의 말투였다.
어디서 들었을까.
왜 그런 돌발적인 행동을 했냐는 질문이 떠오르는 눈빛이어서 정우는 허탈하게 웃어 버렸다.
“이리 와요.”
떠넘기듯 커피를 건넨 유 대리가 몸을 돌렸다.
웅성거리는 회의실을 벗어나 그녀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치료실?”
“다친 곳부터 확인해요.”
“크게 없어요.”
“됐고. 얼른 와요!”
우악스럽게 손을 잡아끈 유 대리의 행동에 정우는 입맛을 다시며 치료를 받았다.
그의 말마따나 큰 상처가 없다는 것에 유 대리는 적잖게 안도했다.
“이대로 귀가하면 되나요?”
“모셔드릴게요.”
“혼자 갈게요.”
“…괜찮겠어요?”
일전의 상황을 염두에 둔 유 대리의 물음에 정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정우의 표정을 본 유 대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걱정이 안 되나 보네요. 알았어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 * *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것 말인가요?”
“한정우 플레이어.”
“…….”
유서린은 아버지의 물음에 생각에 잠겼다.
“…일단 그의 말은 사실일 거예요.”
유서린은 광전사의 능력을 지녔지만 성기사의 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언데드의 천적인 성직 계열이란 소리였다.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성장했고, 언데드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다.
성녀, 성자, 성기사.
셋은 S급 중에서도 언데드나 부정한 것에 특출난 능력을 발휘하는 직업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죠.”
“그렇다면… 소환사가 따로 있었다는 게 사실이로구나.”
“하지만… ‘그’는 한국에 없어요.”
“으음. 그렇지.”
네크로맨서의 정점.
그는 이집트에 있었다.
이미 확인한 사실.
“…새로운 네크로맨서일 가능성은?”
“가능성이 없지는 않죠.”
유서린은 ‘뚝’ 끊겼다는 마력의 흐름에 주목했다.
유일한 획득물인 할버드는 약간의 저주만 걸려 있을 뿐, 언데드를 불러내는 현상과는 관계가 없었다.
“마력 흐름이 변했다는 건, 매개체가 달라졌다는 소리예요. 보통 그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려면… 꽤 준비를 했다는 의미가 되고요.”
“그렇구나.”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유서린은 협회장의 눈에 맺힌 감정을 읽었다.
“듀라한… 이죠?”
“음…. D급 던전 보스를 잡았다는 건 이미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기대했었지.”
F급 플레이어가 D급 보스를 혼자 죽였다.
계획서 때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다.
계획서에서 정우의 역할은 혼자 보스와 싸우겠다는 막무가내가 아니었다.
제임스 밀러의 신무기의 테스트와 안전한 공략을 위해 장치 밖에서 정우가 놈들의 시선을 끄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된 것인지 막상 공략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C급 플레이어들이 몬스터를 맡고.
보스를 한정우 플레이어가 맡게 되었다.
“김기태 팀장의 보고서 보셨잖아요.”
“봤네. 봤기에 더… 믿을 수가 없었지.”
김기태는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었다.
협회 적성 테스트에서도 만점 가까이 나온 인물이었고.
그런 그가 정우의 의견에 넘어가서 그를 혼자 보스에게 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었다.
물론, 그에 따른 여러 이유는 명확했다.
한정우 플레이어의 준비성.
보스가 한정우 플레이어의 이상 특성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도주할 수 있다는 가능성.
모든 몬스터를 가두기 때문에 오히려 도주엔 여유로울 거란 판단.
길고 상세히 쓰여 있는 내용은 ‘이 정도면….’ 하는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정우가 홀로 보스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쉽게 믿기 어려웠다.
정우가 이중 던전을 클리어하고, 4개의 관문을 클리어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유지석도 이 사안을 쉽게 믿기 어려웠을 터였다.
적어도 수많은 검사를 진행했겠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지.”
“알고 있어요.”
“이 정도 성장이 가능한 사람은 전무후무했네.”
“그것 또한 알고 있어요.”
성장률이라는 지표로 놓고 보면, 전 세계에서도 유서린만큼 가파른 성장률을 보인 인물이 전무했다.
5년 만에 S급 플레이어가 된 천재.
수많은 던전이 쏟아지고, 핵과 퀘스트가 난무했던 격변의 시대와는 달리.
안정권으로 접어든 이후의 속도라 한동안 논란이 상당했었다.
중국의 한 S급 플레이어가 그런 그녀를 두고 거품이라느니, 만들어진 S급이라느니 입을 털다가 그녀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건 엄청난 이슈였다.
그런 유서린조차.
“한정우 플레이어가 각성한 게 1년이 채 안 됐죠?”
“아직 6개월도 안 됐네.”
“……말도 안 돼요.”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협회장님.”
유서린의 가라앉은 눈이 식은 찻잔으로 향했다.
“이중 던전이란 게 정확하게 뭔가요?”
그녀의 물음에 유지석은 슬쩍 눈을 돌렸다.
싸늘한 겨울의 풍경이 더욱 삭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중 던전.
그것을 무어라 설명해야 하는지, 유지석은 아직도 가늠이 서질 않았다.
대마법사는 ‘보너스 스테이지’라고 평가했고.
뇌신은 ‘책임(responsibility)’라고 말했었다.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함.
그나마 비슷한 것이라면.
“……‘호의(好意)’.”
“네?”
생각지도 않았던 말에 유서린이 되물었다.
유지석은 언제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왜 G급 던전만이 법칙이 다른가.
일반인만이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이며, 해당 던전을 통하지 않고서는 각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살의로 이루어졌던 여타 던전과는 달리 G급 던전은 순서가 있었다.
당황하거나 욕심을 부리거나, 그릇된 판단을 내리지만 않으면 누구나 다 각성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는 코스.
때문에 G급 던전을 튜토리얼이라고 부른다.
물론, 안전한 건 아니었다.
죽는 수가 없는 건 아니니까.
“이중 던전은 호의가 가득한 장소라고 할 수 있네. 일반적인 G급 던전에선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모아놓은… 장소. 하하. 말하고 보니 질의 생각과 가장 비슷하구나.”
“…호의가 가득한 장소?”
유서린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녀가 느끼기로 던전은 호의란 것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정의하자니 어렵구나.”
“그렇군요.”
유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중 던전을 클리어한다고 해서 이런 성장이 가능한 건 아니란 소리죠?”
“그렇지.”
이중 던전이라고 모두 이런 성장이 가능했다면, 공략불가판정을 받은 던전이 존재하지 않지 않을까.
“그럼 한정우 플레이어가 특별하다고 봐야겠군요.”
“음…….”
특별하다?
이중 던전을 클리어한 사람치고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나같이 S급에서도 최상급에 놓인 강함.
혹은 남들은 지니지 못한 스킬을 지니고 있는, 특별함.
같은 직업군이라고 하더라도 격이 다른 능력을 지닌 이들이 바로 이중 던전을 클리어한 자들이었다.
바람의 마법사라고 모두 자신과 같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그 중에도 한정우 플레이어는 특별했다.
성장하지 않는 마력과 몬스터의 모든 적의를 한 몸에 받는 성질까지.
모든 플레이어가 그러하듯 한정우 플레이어도 숨기는 게 있을 터였다.
자신도 이중 던전에서 얻은 능력을 비밀에 부치는 것처럼.
“조금 더 지켜보자꾸나.”
매일 칼같이 보고되는 유 대리의 보고서를 힐끗 본 유지석이 그렇게 판단했다.
듀라한을 잡은 건 사실이다.
죽음의 땅에 준하는 장소에서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특이한 흐름을 잡아낸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목적이 있는 한, 한정우는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유지석은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유서린은 잠시 망설였다.
이 말이 꼭 필요한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협회장님.”
“말하게.”
“던전 브레이크에서부터 시작된 이상 징후는… 자연적인 게 아니겠죠?”
“던전에 자연스러운 게 있겠나.”
“그래도 어느 정도 정형화된 패턴은 있죠.”
어딘지 날이 선 딸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유지석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판단이었다.
이런 사건에 배후로 지목될 만한 집단은 하나뿐이었으니까.
라스베이거스에서부터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빌런들.
“음……. 서린아.”
“…아버지. 제가 맡게 해주세요.”
공적인 관계가 사적인 관계로 전환된 순간, 유서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둘의 머릿속에 선명한 그날이 떠올랐다.
시간이 흘렀다지만 결코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다시 떠올렸다.
유지석은 침음을 삼켰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딸이 S급 플레이어가 되었을 때 경탄과 축하. 그리고 질시와 힐난이라는 감정을 드러냈지만.
그만큼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맡고 있는 일은 어떻게 하고?”
“이미 인수인계 준비는 끝났어요.”
“……허, 참.”
유지석은 딸의 결정에 허탈하게 웃었다.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유서린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었다.
S급 플레이어인 데다 자체적으로 치유가 가능한 만큼 위기에 대처하기도 좋았다.
그뿐인가.
공격력은 같은 S급 중에서도 상위에 놓였다.
체력을 소모하는 버서커와.
체력을 보충하는 성기사.
상반된 두 종류의 직업이 만나 초유의 존재가 탄생했다.
‘…….’
능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지휘력도 상당했다.
B급일 때부터 팀장으로 활약하며 크고 작은 던전을 공략했고.
여러 나라를 돌면서 수많은 전투를 겪었다.
능력, 경험, 판단력까지.
여러모로 적임자였다.
그럼에도 망설여지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네가 맡았던 일이 결코 가벼운 건 아닌데… 그 모든 것에 인수인계가 준비되었다면…… 족히 1년은 준비했겠구나.”
그녀가 맡은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S급에다가 전투 능력과 치유력을 동시에 지닌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상당수였다.
그 모든 것들을 처리했다면, 어지간한 준비로는 턱도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이 아비는 네가 분노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칫 눈이 돌아가 위험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유지석은 그녀가 ‘버서커’란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를, 분노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서린은 그런 유지석을 조용히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 * *
달그락.
집으로 돌아온 정우는 자신의 방에서 마정석 두 개를 꺼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메아리와는 달리, 정우는 이것들의 사용처가 점점 궁금해져만 갔다.
“이게 정화가 된 건 아닐 텐데….”
듀라한의 갑옷에 박혀 있던 마정석에서는 더 이상 언데드의 마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사기(死氣)라 불리는 그것 말이다.
오히려 사기(邪氣)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요사스럽고 애매하게 변해 버렸다.
메아리는 그 또한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방방 날아다녔다.
“이거, 완성은 못 시키는 거냐?”
정우의 물음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메아리가 정우의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 메아리의 몸 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불. 가능 (⌯˃̶᷄ ﹏ ˂̶᷄⌯)゚
즉답이었다.
“내가 부족한 거냐,. 아니면 재료가 부족한 거냐?”
-재료. 부족 (;☉_☉)
“재료 부족?”
정우의 눈이 커졌다.
능력 부족과 재료 부족은 엄연히 달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