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던전 브레이크 (6)
진화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스킬 ‘오러’의 효용은 상당했다.
내딛는 발에 마력이 모여든다.
비틀리는 허리를 축으로, 쏘아지는 창의 일격이 반쯤 썩은 방탄조끼를 입은 해골의 갈비뼈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 힘껏 찌르기가 각인되었습니다. ]
스킬화.
거의 그것에 준하는 결과물들이 속속 튀어나왔다.
‘마력 각인과 내 합이 너무 좋다.’
심지어 자신의 흐름조차 관찰할 수 있게 되니, 실시간으로 강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 왔어.’
언데드들이 자신을 무조건 노리지 않는다는 건 신비한 경험이었다.
물론, 놈들의 움직임을 전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움직였다간.
‘큰일이지.’
자칫 이 흐름이 깨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안쪽까지 들어갔는데 다시 이전의 현상이 발생한다면…….’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B급 몬스터는 정우가 잡은 사막 고블린 족장과는 궤를 달리한다.
놈을 노리는 것은 당연히 무리.
언데드들이 처음처럼 자신을 노린다면, 죽은 목숨이었다.
그럼에도 정우는 모험을 강행했다.
본능에 의거한 행동.
스스로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과감한 결단.
‘보석….’
이 현상을 유지하는 보석.
아티팩트.
‘아니, 마정석!’
꿀꺽.
휑한 공간을 목전에 둔 정우의 목울대가 크게 요동쳤다.
넘실거리는 마력의 탁한 색깔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탁해질 대로 탁해져 갑옷의 색과 동화되다시피 한 마정석도 보였다.
왼쪽 가슴.
심장의 위치였다.
회수와 방출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지점.
‘…실수하지 마라. 한정우.’
-……!
입을 틀어막은 모습으로 최대한 정우에게서 떨어지는 메아리의 모습이.
부웅!
“……큭!”
듀라한의 할버드에 겹쳐 보였다.
* * *
‘뚜껑’을 보는 사내의 목은 가늘었다.
높게 치솟은 목의 핏줄을 보는 순간 오스카는 본능적인 충동이 들었다.
탐하고 쥐고, 꺾는다.
왕과 명령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이 희미해질 무렵.
오스카의 고민은 한층 더 짙어졌다.
무릎을 꿇었다.
이 모멸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일까? 죽일까!
생각마저 비운 본능에 의거한 행동은….
힐끗.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뚜껑을 주시하던 눈동자가 회전해서 자신을 향하는 것으로, 너무도 쉽게 저지되었다.
“…….”
“음…. 위의 분과는 다르군요. 백작. 인내를 모르는 자치고 제대로 된 이가 없다는 걸 모르나요?”
차가운 눈동자.
전신에서 느껴지는 여유.
오스카의 본능이 싸늘하게 식었다.
인내? 말할 수 없는 시간을 기다린 자신이었다.
“좋아요. 백작.”
싱긋 웃은 사내의 시선이 다시 위로 향했다.
“……참 아름답지 않나요?”
뜬금없는 말.
희미한 웃음기엔 호감이 가득했다.
“잠깐이면 죽겠죠. 백작의 마력을 살짝만 푸는 것으로, 저분은 죽을 거예요.”
누구를 말하는 걸까.
오스카의 핏빛 시선이 슬쩍 위로 향했다.
캄캄했다.
‘…….’
차원을 넘는 건 커다란 리스크를 안겨 주었다.
상당한 마력의 소실.
회복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는 이 사실을 이미 예상했고, 그에 따른 준비를 끝마쳤다.
죽은 자들의 영토를 만들기로.
어차피 부족한 건 시간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힘을 되찾을 터였고, 그 시간을 단축시켜 줄 한 조각을 한 인간에게 붙여둔 상태였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인간 따위에게 위기를 겪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인간은.
‘……지금의 날 압도한다.’
지우고 있던 생각이 떠오른 순간,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 생각을 안다는 듯.
그렇게 자신의 주제를 알라는 듯.
숨길 수 없는 적대감을 읽으면서도 사내는 개의치 않았다.
오스카는 그게 더 치욕스러웠다.
지상의 감각이 사라졌다.
본능을 자극하던 ‘그것’의 기척도 사라졌다.
눈앞의 사내가 범인이라는 건 너무도 쉬운 추리였다.
싸늘해진 머리가 오스카를 냉정하게 만들었다.
왕의 명령에 따른다, 는 결론으로 자신의 감정을 죽였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도전하네요. 질 게 뻔한 싸움인데… 뭘 본 걸까요? 저분은.”
사내의 눈에 호기심이 맺혔다.
수르트의 재능 감별은 백중백발이었다.
그가 택한 이들은 하나같이 천재성을 띠고 있었고, 시간만 주어진다면 언제고 본인과 같은 반열에 오를 이들이었다.
S급 플레이어의 재능.
최근 잠잠하던 그가 다시 목표를 정했다는 사실은 여러 이들의 관심을 샀다.
사내 역시 마찬가지.
“…죽일 수도 없고, 죽어서도 안 되고. 이거… 밑지는 장사네요.”
한껏 치켜들었던 고개를 바로 한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차라리 도와주죠!”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내린 결론.
오스카의 의견 따위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은 일방적인 결론에.
위의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 * *
삐걱.
“……!”
처음은 우연인 줄 알았다.
상체를 비튼 정우의 창이 할버드와 부딪쳤다가 허망하게 튕겨 나왔다.
애당초 힘과 마력 모든 게 뒤떨어진다고 여긴 정우가 듀라한의 공격을 버티며 뒤로 밀려났다.
주르륵!
욱신!
긴 고랑을 만들어 내며 밀려난 정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팔에서 느껴지는 상당한 통증.
‘…순간적으로 마력을 부여했음에도 버겁다.’
냉정하게 따지지 않아도 열세였다.
B급 보스는 B급 플레이어 파티도 실패할 확률이 높은 보스가 아닌가.
이제야 E급으로 상승한 정우가 상대하기엔, 처참할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
그럼에도 상대가 가능한 건.
삐걱!
기름칠이 안 된 기계처럼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리어 타이밍을 못 잡겠다.’
마정석을 낚아챌 타이밍.
그 타이밍이 보이지 않았다.
마력의 흐름을 보고 읽고 느끼기에 할 수 있는 기예가 도리어 발목을 잡았다.
순간적으로 달라지는 ‘마력’ 때문에 타이밍이 계속 엇나가기만 했다.
욱신.
심장이 아파 오자 정우는 다급히 마력회복물약을 마셨다.
쨍그랑.
빈 병을 거칠게 듀라한에게 던진 정우가 달려들었다.
그 순간.
웅웅!
할버드에 상당한 마력이 맺혔다.
‘……위험하다!’
마력이 맺히는 것만으로도 충격파가 생길 정도였다.
정우는 입술을 깨물며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다.
공명하듯 생겨나는 매직 미사일이 이리저리 꼬이며 하나의 형태가 되었다.
[ 다중 매직 미사일이 각인되었습니다. ]
마력의 흐름이 보다 자연스러워진다.
스킬의 적용은 즉각적이었다.
각인된 스킬은 보다 효율적이고 위력적으로 변해 간다.
다중 매직 미사일과 할버드가 부딪치며.
가각, 쾅, 가가가각!
요란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밀린다!’
정우는 결과를 직감했다.
자신의 모든 마력은 듀라한에 미치지 못했다.
꿀꺽.
하지만 매직 미사일을 발동한 정우의 손은 어느새 빈 병을 놓고 있었다.
[ 즉각적인 마력 회복이 각인되었습니다. ]
메시지에 반응할 여유는 없었다.
다만.
‘통로!’
정우의 손으로부터 생겨난 통로가 힘을 주어 공격을 하고 있는 듀라한의 가슴을 노릴 뿐이었다.
파직!
손을 집어넣자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다.
“큭……!”
마법과 무기를 이동시킬 때와는 달랐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손목까지, 수많은 칼날이 베고 지나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손을 빼서 확인할 뻔한 정우였지만.
“……으득!”
이를 갈며 손을 더 집어넣는다.
삐걱.
그 순간.
예의 삐걱거림에 듀라한의 공격은 잠시 멈추었고, 한풀 꺾인 매직 미사일의 위력에도 살짝 밀려 틈이 벌어졌다.
톡.
통로를 빠져나온 정우의 손이 마정석에 닿는다.
당연히 갑옷에 박힌 마정석을 떼어 낼 힘은 없었지만.
오히려 정우의 손은 마정석을 밀고 들어갔다.
아공간.
자신의 손에서만 펼쳐지는 그것이, 정우의 손가락 끝에 생겨나 마정석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거친 저항이 느껴졌지만.
“으아아!”
고함까지 내지른 정우의 손은.
뚝!
끝내 마정석을 아공간에 담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멈추는 듀라한.
그리고 언데드 군단.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스스스.
천천히 부서져 뼛가루로 변해 휘날렸다.
모든 것이 사라진 풍경.
그곳에 우뚝 서 있는 정우의 모습에.
오싹!
일행은 소름이 끼쳤다.
* * *
전후 처리는 빨랐다.
공략이 끝나자마자 요란한 소음과 함께 등장한 헬기에선 꽤 유명한 플레이어들이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이트 길드.
한발 늦은 지원 부대의 도착이었다.
한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그들은 이런 일에 능숙했다.
애당초 공략과 동시에 지역의 정화까지 생각했었는지, 정화 관련 스킬 플레이어를 여럿 대동한 나이트 길드의 지시는 효율적이었고 신속했다.
체력이 남아 있는 플레이어들이 동참한 정화 작업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이거, 생각보다 보상이 적지 않아?”
“나 체력 1 올랐어. 겨우.”
“끄응. 아티팩트는 있을 줄 알았는데… 듀라한도 거지가 있나?”
“할버드 얻었잖아. 그거 판매 금액의 일부를 준다니까… 만족해야지.”
의문과 아쉬움이 남는 전투였다.
그러나 협회에서 적절한 보상안을 내놓자 아쉬움은 빠르게 사라졌다.
아이템.
사망자에 대한 보상도 타당했다.
모두는 협회의 대처에 만족하며 생존을 자축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정우는 갑자기 들리는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한 사내가 싱그러운 미소로 말을 걸고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친근한 미소에 정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가요?”
“살았잖아요.”
사내의 말에 정우는 피식 웃었다.
살았다.
이제야 그 말이 체감되었다.
“…그렇네요. 살았군요.”
“뭔 생각이었어요?”
사내가 다가왔다.
“……?”
“혼자서 달려들었을 때요. 전 그쪽이 자살하려고 하는 줄 알았거든요.”
“아아…….”
정우가 입맛을 다셨다.
자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가, 자신 역시 그에 준하는 도박이었음을 깨달았다.
세크나트의 목걸이와 같은 마력의 흐름.
같은 방법으로 언데드를 조종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에 벌인 도박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구멍투성이인 공략이었지만.
‘…결론이 중요하지.’
살아 있음에 만족했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다행히… 성공했으니까요.”
“운이 좋았군요.”
“운이… 좋았죠.”
정우의 말에 사내가 예의 싱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하더라도 언데드로 가득 차 있던 언덕.
사내는 허리를 굽혀 언덕의 흙을 만졌다.
정화 작업이 끝난 흙은 평범한 색으로 돌아가 있었다.
“운이… 좋았다라.”
싱긋 웃은 사내의 눈동자가 정우를 바라보았다.
“……?”
정우는 그 시선에 눈가를 좁혔다.
이상한 감각.
메아리가 정우의 근처를 날아다니며 사내의 위아래를 살폈다.
그녀 역시 뭔가를 느낀 것인가.
그런 질문을 건네기도 전에 사내가 말을 건넸다.
“이거… 계속 운이 좋기 힘드니까 빨리 강해져야겠는데요?”
묘한 말이었다.
정우는 사내를 눈에 담았다.
갈색 머리, 갈색 눈.
새하얀 피부와 훤칠하지만 마른 몸매.
양산품 방어구를 걸친, 특별할 게 없는 모습.
하지만 뭘까.
‘이… 감각은?’
정우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인지 사내가 다시 한번 싱긋 웃었다.
정우는 사내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강해져야죠.”
“제가 보기엔 충분히 강해지실 것 같아요.”
“고마워요….”
사내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정우가 다른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협회로 돌아갈 건데, 같이 갈 거야?”
편수였다.
“가야죠.”
같이 이동했으니 함께 돌아가는 편이 좋았다.
저 멀리 다른 다섯 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박 주임의 모습도 보였다.
“이만 돌아가야겠네요.”
정우의 인사를 받은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답례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