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57화 (57/293)

57화

-던전 브레이크 (5)

* * *

초조한 낯빛으로 빠르게 이동하던 정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움찔.

‘……흐름이, 사라졌다?’

은밀히 연결되어 있던 마력이 사라졌다.

정우의 고개가 다급히 흔들렸다.

“왜 그래?”

편수의 물음에 정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막무가내로 움직이자고 했던 게 무색해지는 상황.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순순히 자신을 따라 움직인 이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격이었다.

하지만 고민이 길어질 수는 없었다.

몰려드는 언데드의 악취 가득한 공격을 제자리에서 받아 내는 건 자살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성역 선포가 아니었으면 돌진 자체가 무리였을 상황이다.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흐름이… 바뀌었어요.”

결국, 정우는 편수에게 선두를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보스를 공략하죠.”

“뭐야? 뭐 아는 것처럼 다급하게 굴어서 이동했더니, 다시 보스를 공략하자고?”

여마법사의 핀잔에 정우는 입술만 깨물었다.

‘…내 힘으로는 무리야.’

숨은 소환사를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

“소환사가 몸을 숨겼어요. 제 힘으로는 못 찾겠어요….”

“음. 소환사가 따로 있는 건 확실해?”

편수의 물음에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데드가 발생하는 경우는 크게 셋이었다.

하나는 핵을 중심으로 언데드가 생겨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아티팩트’를 중심으로 언데드가 생겨나는 경우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네크로맨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종류였다.

처음과 두 번째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핵을 부수거나 아티팩트의 발동만 멈추면 언데드는 소멸한다.

부서져도 부활하고, 고통을 모르기에 악착같이 달려드는 것이 귀찮지만, 오히려 목표가 정해져 있어서 편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의 손에서 부활한 언데드는 골치가 아팠다.

무엇보다 네크로맨서의 지시를 받기에, 군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움직임이 남달랐다.

그렇기에.

“…이런 움직임이라면 핵이야. 저거 봐, 듀라한도 움직이지 않잖아.”

여마법사의 말에 편수도 동의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모두의 눈엔 당당히 서 있는 듀라한의 모습이 각인처럼 박혀 있었다.

이만한 언데드를 부리면서 듀라한까지 다룰 줄 아는 네크로맨서라면.

“S급이어야 하는 거 알지?”

네크로맨서로서 S급 플레이어는 한 명뿐이었다.

“…알아요.”

“근데도 소환사가 확실한 거냐?”

번개를 떨치며 묻는 편수에게 고개를 끄덕인 정우가 창을 내질러 두개골 하나를 부수었다.

쿠르르!

“으음…. 뭐가 됐든 간에 빨리 선택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침음을 삼키는 힐러의 말에 편수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거. 내가 왜 계속 고민하고 있는 거지?’

협회장의 지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정우는 VIP나 A급 이상의 고위 플레이어가 아니다.

오히려 뒤에서 지시를 받아야 하는 입장.

편수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정우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에 적잖게 놀랐다.

“마력은 어때?”

편수의 물음에 힐러들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잖아요. 성역 선포를 유지하면서 이동하는 건, 마력 소모가 더 심하다고요.”

여유가 없다는 소리였다.

“뒤로 물러나자.”

잠깐 고민하던 편수의 결론에 정우의 눈이 커졌다.

“잠깐…. 안 보이나요?”

“뭐가? 또 뭔 소리를 하려는 건데? 나도 힘들어, 이제.”

뾰족한 음성에 동의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정우는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한 차례 지원이 이루어졌다.

‘아니. 벌써 두 차례야. 심지어 B급 마법사 셋과 성직 계열 셋이 붙었다고!’

그런데도 승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승기가 아니라 돌파 자체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A급 던전 브레이크였다면 S급 플레이어가 지원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B급 던전 브레이크에 B급 여섯과 C급 이하의 플레이어 수십이 달라붙었는데도 공략이 어렵다는 건, 문제가 있었다.

‘왜 그걸 모르는 거지?’

각각의 언데드와 연결되어 있는 마력은 듀라한을 향해 집중적으로 흘렀다.

‘…정확히 말하면, 저 보석이다.’

먼 거리만큼이나 특색이 없어서 보이지 않는, 갑옷에 박힌 보석이 언데드를 유지하고 있는 매개체였다.

정우가 본 건 저기서 다시 흐르는 마력의 흐름.

하지만 그 흐름이 사라졌고.

“…언데드에서 듀라한으로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 이상해요.”

“그만해! 진짜 이 새끼 이상한 놈이네.”

여마법사의 외침과 함께 분위기가 바뀌었다.

힐난의 눈초리.

욕설이 가득 담겨 있는 눈빛은 정우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위험한데.’

정우가 느끼기엔 흐름이 이상했다.

천천히.

아주 조용히 보석으로 향하는 마력의 흐름은.

‘……확실히, 불안해.’

정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찌르기.’

후위로 쫓겨난 정우의 움직임은 단조로워졌다.

아군이 곁에 있으니 반경이 넓은 창을 휘두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창병이 찌르기를 위주로 사용하는지 알 수 있었다.

‘…공간이 없다.’

물러서는 진형을 보며 정우의 속은 답답해져만 갔다.

물론, 편수 등도 이 상황이 정상적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다만 정우와 그들의 판단이 다른 이유는 하나였다.

시간.

그들은 시간적 여유가 남았다고 판단했고, 정우는 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애당초 지원 자체가 놈들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잠깐?’

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빠르게 진형을 살폈다.

각자 제 앞의 언데드를 상대하고 있었다.

언데드의 움직임 역시 제 앞의 인간을 노리고 있었다.

‘……!’

자신을 노리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달은 정우의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분명히 날 노리고 있었는데?’

여느 때와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놈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소환사가 사라진 직후!’

마력의 흐름이 바뀌었을 때부터, 언데드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그 사실을 깨달은 정우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메아리.’

-응원. 응원 (〜 ̄▽ ̄)〜

‘고맙지만 하나만 물어보자.’

-대기. 집중 (」゜ロ゜)」

정우의 눈이 번들거렸다.

‘네 ‘기억’에 내가 회랑에 입장하면 시간이 얼마나 흐르지?’

* * *

끼릭.

입장하자마자 정우의 고개는 이지스를 좇았다.

여전한 풍경.

변한 건 없었다.

고요한 회랑의 모습이 신경 쓰였지만,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대략적인 흐름만 알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다.’

메아리는 의외로 정확한 시간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지켜주겠지만, 5분을 넘기는 건… 너무 위험해.”

일행은 언데드를 밀어내고 외곽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돌파도 아니고 퇴각이었으니 어려울 게 없었다.

슬쩍 안으로 파고든 후 지친 듯 창을 지팡이 삼아 살짝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두에서 싸웠던 모습 때문인지, 힐난의 눈초리가 가득했음에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순간적인 여유.

정우는 열쇠를 사용했다.

현실에서 5분은 회랑에서 1시간 30분이었다.

상당한 차이.

그럼에도 정보를 찾아야 하니, 시간은 부족하기만 했다.

“아티팩트.”

빠르게 달려 책장을 찾은 정우의 고개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듀라한.”

듀라한을 불러낼 정도의 플레이어가 S급이라면.

‘아티팩트도 마찬가지야.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빠르게 책을 훑는 정우의 손길은 거칠었다.

‘빨리 찾아야 해.’

비슷한 능력.

혹은 사건이라도 기록되어 있기를 바랐다.

듀라한의 갑옷에 붙어 있는 보석.

그것을 강탈하기 위해서.

“…이거다!”

정신없이 기록을 읽던 정우가 환호성을 질렀다.

“…세크나트의 목걸이? 목걸이는 아니었는데….”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려웠지만 목걸이는 절대 아니었다.

“어쩌면 보석만 갑옷에 박은 걸지도 모르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정우가 빠르게 목걸이에 대해 읽었다.

“…이 정도면 S급 이상인데?”

듀라한에게 붙어 있기엔 터무니없는 아티팩트였다.

실망감이 앞섰다.

같은 물건일 줄 알았더니 전혀 다른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의 능력이 천차만별이듯, 아티팩트의 능력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끄응…….”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른 서적을 찾으면 그만이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럼에도 정우의 손은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열화판이라면 오히려 도움이 될까 싶어서.

“……!”

사라졌던 기대감이 심장의 두근거림과 함께 부활했다.

책의 말미에 쓰인 기록.

그것이 정우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 * *

‘차분하게….’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좀비의 목을 꿰뚫은 정우의 움직임이 간결해졌다.

마력의 흐름에 보다 집중했다.

차분히 움직인 마력이 외부의 흐름에 닿았다.

‘끈적거린다….’

보이는 건 비슷했다.

하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물과 같은 마력에 기이한 불순물이 껴있었다.

‘오염된 물 같아.’

오랫동안 고여 끈적거리는 물.

‘역겹다…….’

마력 자체가 이토록 달라질 수 있을까.

정우는 당장이라도 토악질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네크로맨서란 직업은 흔치는 않지만, 아예 정보가 없을 정도로 희귀한 건 아니었다.

‘이런 느낌이란 소리는 없었어.’

네크로맨서는 직업일 뿐이다.

골렘을 다루나 시체를 다루나, 다를 건 없었다.

다만 시체라는 존재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다를 건 없다는 소리야. 몬스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역겨운 감각에도 신경을 집중한 정우의 눈이 마력 흐름을 파악했다.

반가운 소식.

정우의 눈이 번쩍였다.

고민은 없었다.

즉각적인 움직임.

아군의 사이의 틈을 본 정우는 망설임 없이 달렸다.

“……어?”

“뭐, 뭐야? 왜?”

[ 스킬 ‘마력 관찰’을 얻었습니다. ]

[ 스킬 ‘마력 감지’가 ‘마력 관찰’에 통합됩니다. ]

[ 언데드의 마력이 각인됩니다. ]

[ 마력 관찰 ]

등급 : B

마력의 흐름을 볼 수 있다.

흐름의 관찰은 모든 것의 기본이 된다.

‘언데드의 마력이 각인된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의문을 품은 정우에게.

-각인. 사용 (ノ◕ヮ◕)ノ*✲゚*。⋆

메아리가 설명했다.

‘사용? …언데드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동의. 동의 ヾ(´ε`*)ゝ

“……!”

휘어지는 녹슨 검을 피하며, 정우의 상체가 레슬링의 태클을 연상하듯 낮아졌다.

휘익, 콰직!

짧게 잡은 창날이 해골의 발목을 쳐냈다.

빙글 회전하며 쓰러진 놈의 두개골을 찌른 정우가 부웅, 공중으로 뛰었다.

“매직 미사일!”

착지 지점을 향해 마법을 사용하자 정우를 노리던 언데드들이 얻어맞고 나뒹굴었다.

빈 공간.

안전하게 착지한 정우의 신형이 곧장 앞으로 튕겨 나갔다.

앞을 막아서는 놈들의 수가 기이할 정도로 적었다.

처음만 하더라도 ‘바글바글’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지만.

‘좀 더 빠르게 움직이면…….’

지금의 놈들은 전혀 정우의 경로를 막지 못하고 있었다.

반응이 느린 놈들 몇 마리가 우연찮게 경로를 틀어막고 있는 것이 전부.

그 정도쯤은.

쑤우욱!

빠각!

가벼운 창질로 무너트릴 수 있는 종이 벽에 지나지 않았다.

‘빨라….’

언데드로부터 퍼지는 마력은 소용돌이와 같았다.

바깥에서부터 안쪽까지.

천천히 회전하는 나선형이, 서로 교차되어 안으로 밖으로 흐르고 있었다.

안쪽으로 흐르는 소용돌이.

바깥쪽으로 흐르는 소용돌이.

두 개가 편도 1차선처럼 교묘하게 맞닿아 있었다.

‘마력을 회수하는 건 안쪽으로 흐르는 소용돌이고, 명령을 내리는 건 바깥쪽의 소용돌이다.’

끊임없는 마력의 흐름.

그것이 이 언데드 군단의 비밀이었다.

소용돌이 안쪽으로 진입하면 진입할수록 반경이 좁아지기 때문인지 흐름이 더욱 빨라졌다.

‘확실히 세크나트의 목걸이였으면 어떻게 해볼 엄두도 못 냈겠어. 열화판. 아니, 모조품처럼 조악해서… 다행이다!’

세크나트의 목걸이에 대해 언급한 내용과는 현저히 차이를 보였다.

다행히도.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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