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55화 (55/293)

55화

-던전 브레이크 (3)

둔탁하게 생긴 외형과는 달리 빠르게 움직인 골렘의 두꺼운 팔이 지면을 훑는다.

와르르!

부웅!

가벼운 해골답게 날아가거나 뒤로 밀려 서로 엉키는 수가 많았다.

“부술 것 아니면 전황이나 헝클어트리지 마!”

사내의 지시에 여마법사가 입을 내밀었다.

“보고대로다. 예상보다 적긴 한데… 확실히 몰려들어.”

사내의 말대로였다.

정우의 얼굴이 굳은 이후.

언데드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바뀌었다.

목표가 정해졌다고 봐야 옳았다.

그리고 그 목표는 당연히 정우였고.

“이거 꽤 유용한데? 팀에 잘만 녹아들면 양학용으로는 최고겠어!”

여마법사는 몰려드는 언데드들을 보고는 정우를 비꼬듯 평가했다.

마치 사람을 아이템처럼 여기는 행태엔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간 만나온 사람들이 예의가 바른 거였지 원래 플레이어들은 어느 정도 자아도취에 빠진 부류였다.

거기다 정우가 반응을 하지 않으니 여마법사로서는 불쾌하면서도 조금 흥이 식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전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선발대와 인근 길드들이 모여 전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위치가 좋지 않았다.

마치 한국전쟁 때, 북한군과 엎치락뒤치락하던 때처럼 백마고지를 중심으로 양 병력이 죽 늘어져 있는 상황이었는데.

‘…병력의 질이나 수가 떨어져. 아무래도 강원도니까….’

E급 던전 브레이크만 돼도 군대의 지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D급부터는 개인 화기에는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고, 중화기에 죽는 개체도 많지 않았다.

군대가 빠르게 약화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이제는 자위대나 다름이 없는 현실.

때문에 과거 군대의 주된 영역이었던 강원도조차 지원받을 수 있는 병력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때문에 선발대와 후발대가 모인 전황은 처참할 정도로 뒤로 밀리고 있었다.

C급과 D급.

도중엔 E급까지 동원되었던 탓에 피해도 상당했다.

그런 상황에.

“…뒤로 물러나!”

협회에서 보낸 지원팀은 적은 수였지만 상당한 전력이었다.

산발적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이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정우를 향해 몰려드는 언데드 때문에 약간의 여유를 찾은 덕분이기도 했다.

마법사와 사제 조합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에 발작하듯 만류하는 인원들이 있었지만, 또 다른 언데드 무리에 시달리다 보니 합류는 자연스러웠다.

사내는 그런 플레이어들을 보며 눈살만 찌푸렸을 뿐, 빠르게 지시를 내려 전황을 정리했다.

자신을 유명길드의 공략팀장이라고 밝힌 한 사내로부터 보고를 받는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죽은 자들의 부활.

이곳은 어느새 죽음의 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통신 장비가 이상하단다.”

유명 길드의 공략팀장은 비타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길드와 협회에 지원 요청을 보냈고, 지원을 바라며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니까요. 박 주임이 당황한 거 보셨어요? 예상보다 진행도 빨라요. 아티팩트라도 있지 않을까요? 언데드의 능력이나 수를 증가시키는 종류의.”

던전 브레이크는 던전과 모든 것이 똑같았다.

존재하는 몬스터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제외한다면, 몬스터의 능력과 수 그리고 보상으로 주어질 아티팩트 따위의 여부도 변함이 없었다.

그 말에 모두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 정도 능력의 아티팩트라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인원수대로 나눠도 자신에게 맞는 장비를 풀 세팅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분은 요청할 수 있겠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도 곧장 비타로 지원 요청과 상황 설명을 했는데, 전송이 안 된다.”

“어? 오빠도 그래? 나만 이상한 줄 알았네.”

여마법사가 호들갑을 떨었다.

훌쩍 뛰어내린 뒤여서, 혼자가 된 골렘은 전방에서 언데드를 상대로 분전하고 있었다.

둔한 움직임이지만 확실히 눈길이 가는 장벽처럼 보였다.

“박 주임이 연락했겠지. 그거 아니더라도 곧 길드들이 지원을 올 거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전격을 뿌렸다.

마치 번개 장벽이 연상될 정도로 긴 번개가 일정 거리를 사수하며 파지직댔다.

갈색 머리의 힐러가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이거… 예전에 그거랑 비슷한 거 아닌가요?”

사라진 주어.

하지만 사내는 힐러의 말을 이해하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미 시작된 거 같은데? …죽음의 땅이.”

“말도 안 돼.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벌써 죽음의 땅이라니….”

“나도 믿기진 않은데….”

이걸 보면 믿을 수밖에 없잖아, 몰려드는 언데드를 죽이며 사내가 말했다.

일행은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되었다.

“후우. 아무래도 우리도 ‘성역 선포’를 해야 할 거 같은데요?”

“후유증이 상당한데…….”

“아무래도 그거 믿고 우리 먼저 보낸 거 같아요.”

“이건… 추가 수당을 받아야겠군요.”

힐러 셋이 긴 한숨을 내쉬더니 성호를 그었다.

일제히 증폭되는 마력의 양이 심상치가 않았다.

“나머지! 힐러 보호해!”

사내의 지시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힐러 근처에서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몇 시간.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플레이어의 반수가 죽었고, 남은 인원의 무장은 형편없이 파괴되었다.

사투의 흔적.

그럼에도 포기한 인원이 없고 도망친 인원이 없었다.

‘법으로 묶여 있기도 하겠지만… 이건 좀 괜찮네.’

정우는 그들을 높게 평가했다.

성역 선포는 성직 계열의 힐러가 사용할 수 있는 고위급 스킬이었다.

아군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치유력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언데드의 능력을 크게 반감시키는 B급 스킬.’

사내부터 힐러까지.

협회에서 지원한 모든 인원이 B급이었다.

“쓸어버린다.”

스킬이 완성되자마자 사내가 단호히 말했다.

쿠르릉!

대기가 요동치기 시작하며, 피부가 저릿할 정도의 전격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마법사 역시 수정구를 손에 쥐고 스킬을 사용했다.

“라이트닝 스톰!”

“워터 레인!”

전격의 폭풍과 스콜(Squall)과 같은 폭우가 합쳐지자 막대한 위력이 펼쳐졌다.

“우와!”

“…어? 저 사람, 편수다! 편수!”

“미친! 워터 레인이었어? 이거… 김근환의 전매특허잖아?”

둘을 알아본 플레이어들이 언데드의 진격을 막으면서 소리쳤다.

‘아, 저들이었구나.’

그들의 외침에 정우도 상대를 알아봤다.

꽤 유명한 플레이어들.

그렇다면 이름을 밝히지 않은 힐러들과 여마법사도 나름 유명한 인물일 터였다.

부서지고, 타들어 가는 수가 점점 확산되었다.

달그락대는 뼈마디를 휘저으며 정우를 노리던 이들의 텅 빈 안광이 희미하게 꺼지기 시작했다.

“…….”

정우는 그런 해골들을 보다가 눈길을 돌렸다.

‘아무도… 모르는 건가?’

정우의 시선은 허공으로 향해 있었다.

전격과 폭우가 가득 찬 허공.

아주 흐릿한 실 무더기가 안개처럼 허공에 가득 차 있었다.

‘아라크네. 놈과 비슷한데?’

아라크네가 더미 마녀를 조종했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 많았다.

그렇다는 말은 하나였다.

‘언데드를 조종하는 놈들이 있다.’

정우의 시선이 사방을 훑었다.

‘…밀리고 있어. B급 플레이어가 여섯인데도….’

하물며 아직 듀라한 따위와는 조우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길을 뚫을 필요가 있었다.

‘일단… 움직여볼까?’

정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뒤쪽이 아니라 앞쪽으로.

“야! 도발! 뭐 하는 거야?”

여마법사의 뾰족한 고함이 들려왔다.

그럼에도 정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을 따라 이동하는 두개골과 썩은 머리의 움직임을 보며.

‘공명.’

E급으로 올라선 정우의 마력이 처음으로 공명했다.

후우-웅!

고작해야 두 배.

수치 9의 마력은 4 때와는 달랐다.

‘세포 하나하나, 느껴진다.’

느낌 자체가 달랐다.

증폭된 마력이 한 차례 몸을 휘감는다.

구석구석.

온몸을 매개체 삼아 진동하고 또 진동하여 증폭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불만스럽게 쳐다보던 여마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작스럽게 증가하는 존재감.

뭉친 일행의 앞쪽에서 회전하며 생겨나는 마법들.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의문과 동시에 발동된 마법이 비와 전격을 가르며 전면으로 쇄도했다.

뭉쳐서 회전하는 형상이 꼭 드릴과 같았고, 힘을 잃기 전에 휘어지는 공격은 채찍과 같았다.

“…저게, 매직 미사일이라고?”

경악에 가까운 평가.

다발만으로도 놀라운데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듯 반응하고 있었다.

여마법사의 커다래진 눈동자가 연신 정우의 뒷모습을 맴돌았다.

라이트닝 스톰과 워터 레인이 만든 공간을 강타한 매직 미사일은, 바리스타와 같았다.

뻥 뚫린 전면.

고된 전투에 지쳐 있던 플레이어들이 그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다.

“개새끼들아! 또 뒈져 버리라고!”

“와아! 죽여라!”

기세가 등등해서 각자 무기로 언데드를 밀어내는 플레이어와는 달리.

“……음?”

편수라 불린 사내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저거…….”

“가까이 있네. 형님. 여기만 밀면 바로 소환사 족칠 수 있겠는데요?”

김근환의 말에 편수가 동의했다.

“저 사람도 생각보다 세네. 모든 마력을 다 끌어 올렸겠지만, 충분해.”

몬스터를 꾀는 향수 정도로 생각했던 편수는 생각 이상의 능력을 보인 정우를 힐끗 보다가 멈칫했다.

‘지친 표정이 아닌데?’

간혹 그런 스킬이 있다.

본래의 능력보다 뛰어난 위력을 자랑하는 스킬.

당연하게도 마력 소모가 심각했다.

정우와 함께 온 마법사들은 정우의 스킬을 그런 종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유가 남아 있는 모습을 보자 멈칫하게 되었다.

실제로 정우는 여유가 있었다.

‘…안정화라더니… 효율이 몇 배나 상승했다.’

F급의 마력 수치 4일 때도 이 정도론 지치지 않았었다.

마녀들이 항상 말하는 그릇이라는 게 커졌다는 것이 실감되는 상황.

정우는 소멸한 언데드 위쪽에서 흐르는 마력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것은 편수 등의 마법사들이 본 것과 동일하면서도 달랐다.

‘소환사… 저쪽이 아니야.’

마법사들이 본 것은 중계기에 지나지 않았다.

매우 은밀하면서도 희미한 것이 그 뒤에 숨어 있었다.

두근!

그 마력의 흐름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던전으로 따지면 보스.

숨은 놈의 흔적을 느낀 정우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거… 이대로라면 위험하겠는데? 움직여… 볼까?’

* * *

처음 죽음의 땅이 생겨난 건, 중국이었다.

란저우 서쪽에 생겨난 던전 브레이크는 플레이어의 눈을 피해 덩치를 키워 나갔고.

대지에 퍼진 상당량의 마력은 시체를 다시 일으키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망자가 부활하고, 산자가 망자가 되는 고리.

죽음이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적의 수를 늘려주는 악수가 되는, 최악의 상황.

말 그대로 죽음이 넘쳐나는 땅이 된 것이다.

당시 중국은 핵까지 사용해서 죽음의 땅을 없애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언데드가 아니었다면 효과가 있었을 것을, 언데드는 죽음을 딛고 다시 일어나 움직였다.

근 10년이 흐른 상황.

죽음의 땅은 수많은 자본을 투입하여 억제할 뿐인, 공략 불가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모두는 죽음의 땅이라는 단어를 내뱉었지만, 그건 모두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일환일 따름이었다.

중국에서 죽음의 땅이 선포된 건,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지 무려 한 달이나 지나서였다.

현재 시각은 던전 브레이크 발생 후 5시간째.

놈들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우를 제외하고는.

“저, 저… 야! 이 미친 새끼야!”

여마법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연신 정우를 힐끗거렸기에 오히려 반응이 빨랐다.

하지만 작정하고 움직인 정우를 막기엔 무리였다.

모종의 스킬로 낚아채기도 전에, 전선으로 뛰어든 정우 때문에 두 마법사가 기겁을 하며 스킬을 해제했다.

상당량의 마력이 허공에 흩어진 상황.

한국인답게 튀어나오려는 욕설보다 먼저, 정우가 소리쳤다.

“그쪽이 아니에요! 이쪽으로!”

후웅!

소리친 정우의 전신에서 농밀한 마력이 회전했다.

그와 더불어 생겨나는 매직 미사일 다발.

“……!”

일행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 뭐야?”

“어떻게 해?”

“…일단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야?”

“저길… 다시 들어간다고?”

뜻밖의 상황에 말문이 막힌 고위 플레이어들 사이로 우왕좌왕하는 혼란이 커질 때.

“뭐 해요! 잘못하면 늦어!”

정우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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