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던전 브레이크(2)
회랑을 벗어나서 눈을 뜬 정우를 기다린 것은, 어딘지 모르게 다급한 표정의 유 대리였다.
“…하아! 일어났네요?”
몇 번이나 흔들었는지 모른다.
미약하지만 확실한 호흡이 아니었다면,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외부의 자극에 반응이 없었다.
유 대리는 정우의 뺨을 한 대 후려쳤던 기억을 조금 밀어두었다.
“…무슨 일이죠?”
자신의 양어깨를 깊게 누르고 있는 유 대리의 앙상한 손목을 밀어내며, 정우는 상체를 일으켰다.
“파견 요청이에요.”
“…파견이요?”
정우의 눈이 커졌다.
유 대리는 정우의 얼굴에 태블릿을 들이밀었다.
간략한 명령서와 함께 나타난 영상에 정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음 소거를 해놓은 것인지, 아니면 영상 자체가 이상한 것인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정우는 어쩐지 고함과 욕설이 난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면은 거칠었고, 직접 찍힌 영상을 전송받은 듯 정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상황의 긴박함이 배가 되었다.
“……브레이크.”
“강원도 철원이에요. 보다시피 언데드고요. 시간이 없어요. 일단 움직이죠.”
정우는 그 말에 대충 옷을 걸친 후 달리듯 움직였다.
“어디로 가나요?”
“이쪽으로….”
빠른 속도 때문에 빨개진 낯빛으로 거칠어진 숨을 내뱉으면서도, 유 대리는 오히려 걸음을 재촉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소리.
“한정우 씨는 지원팀으로 분류될 거예요. 협회에 소속된 플레이어나 ‘대우’를 받는 플레이어는 유사시 동원될 의무가 있어요. 한정우 씨도 당연하고요.”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전투는 다른 분들이 하실 거예요. 한정우 씨는 뒤편에서 최대한 조심하면 돼요. 저도 정확한 상황은 몰라요. 급하게 영상과 명령서를 받았을 뿐이에요.”
유 대리가 숨을 몰아쉬며 설명한 후, 태블릿을 건넸다.
간단한 내용이 적혀 있는 태블릿에는 본인의 역할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차라리 성장을 시험해 봐도 되겠는데?’
정우는 천천히 마력을 회전했다.
벽까지 넘은 상황.
‘E급인가 이제.’
따지고 보면 만전에 가까웠다.
곧장 이동한 유 대리가 한 문을 벌컥 열었다.
“여긴…?”
정우가 낯익은 장소에 눈을 치떴다.
“다시 만나는군요. 상황이 바쁘니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박 주임이 눈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그리 크지 않은 방엔 총 여섯의 인원이 있었다.
“철원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습니다.”
“C급이라며?”
“B급으로 상향조정됐습니다. B급 듀라한이 나왔거든요.”
“……으음. 생각보다 피해가 있겠는데?”
“그래서 지원 요청이…….”
한 사내가 다른 이들을 대표해서 박 주임에게 여러 질문을 건넸다.
정우는 슬그머니 물러서는 유 대리와 눈을 마주쳤다.
‘…제발 이번엔 다치지 마요!’
왠지 그런 음성이 들리는 듯한 눈빛을 보낸 유 대리가 사라지는 사이, 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힐러 셋은 당연히 성직 계열일 거고….”
성직 계열은 언데드에 특화된 능력을 지녔다.
고위 성직자의 손에서 펼쳐지는 턴 언데드는 B급 몬스터인 벤시조차 한 방에 죽일 정도로 강력했다.
“나머지 셋은 마법사고.”
사내의 눈이 사방을 훑었다.
이미 안면이 있는지 마법사들끼리는 서로의 능력을 아는 듯해 보였다.
“맞습니다.”
박 주임이 긍정했다.
“근데… 저 사람은 뭐지?”
사내의 눈길이 정우에게로 향했다.
“한정우 플레이어 역시 지원팀에 참여할 겁니다.”
“음…. 내가 잘못 봤나? 아무리 봐도 F급 정도로 보이는데?”
순간적으로 푸른빛을 띠던 사내의 눈이 원상 복구 되었다.
각진 얼굴의 눈에 불만이 생겼다.
“맞습니다. F급.”
“…B급 던전 브레이크에 F급을 투입한다고?”
사내가 박 주임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사내의 말에 동조하듯 다른 플레이어들의 얼굴에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봐. 박 주임.”
“지금은 공적인 자리입니다.”
“그래. 박 주임님.”
“말씀하세요.”
“시간이 없어. 이런 소모적인 일로 시간을 버리는 건 당신에게나 우리에게나 좋을 게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근데 왜 F급을 데리고 가야 하는 거지? 요?”
조롱하듯 붙인 존대에도 박 주임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명령서, 보시겠습니까?”
다만 천천히 명령서를 내밀 뿐이다.
그것을 낚아채듯 보던 사내의 표정이 묘해졌다.
미간이 일그러졌다.
명령서와 박 주임. 그리고 정우를 번갈아 보던 사내가 쯧, 혀를 찼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군?”
“맞습니다.”
“뭐, 소문대로라면 썩 도움은 되겠네. 그리고 왜 그 비싼 공간이동마법진을 발동하면서 급히 보내는 건지도 이해가 됐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 주임이 그렇게 말하고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러분의 임무는 여기 있는 한정우 플레이어를 보호, 몰려들 언데드를 일거에 쓸어버리시면 됩니다.”
“…보호? 일거에?”
한 여성이 뾰족한 음성으로 물었다.
“솔아. 급하다. 그냥 얼른 가자.”
사내가 끼어들었다.
마법사인 여성이 사내를 힐끗 본 후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왜 날 째려보는 거지?’
-늙은, 처녀 ᕕ(ꐦ°᷄д°᷅)ᕗ
풉.
한층 째려보는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노처녀 히스테리라면 썩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지만, 상황만큼은 적절하네.’
메아리의 단어 선택에 갑자기 빵 터졌던 정우였지만, 악착같이 참아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박 주임이 사내와 눈을 마주친 후, 장치를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상당한 양의 마력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우는 이전과는 다른 눈높이로, 공간이동마법진의 발동을 보다가 문득 시선을 돌렸다.
사내가 여마법사의 귀에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마법인가?’
크지 않은 방임에도 전혀 사내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솔이라고 불린 여마법사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툭 하니 내뱉는다.
“이를테면 천연 도발이네?”
“…….”
정우의 표정이 굳자 턱짓으로 뭐? 하는 몸짓을 보였다.
정우는 관심을 끊었다.
정우가 고개를 돌리자 여마법사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른 플레이어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던전 브레이크라…….’
영토가 넓은 나라의 경우 왕왕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긴 했다.
모든 던전을 공략하기엔 플레이어의 수가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한국은 플레이어 강국이기도 하고, 땅이 워낙 좁았다.
던전 브레이크는 정말 운이 나쁠 때나 발생하는, 보편적이지 않은 사건이었다.
천연 도발.
상대를 눈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은 정확했다.
정우는 던전 브레이크의 몬스터에게도 자신의 그 이상한 체질이 통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명령서도 그 사실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었으니, 서로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순간이기도 했다.
웅웅!
어느새 몰려든 마력이 기묘한 파장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역시… 패턴이….’
재차 느낀 공간이동마법진에 대한 정우의 평가는 박했다.
비효율적이었다.
보다 세밀하게 조정하면 효율이 몇 배나 상승될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만 아직까지는.
‘정확히 뭘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럼에도 정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마녀들의 지식을 조금만 더 습득한다면.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겠어.’
그사이.
“이동하겠습니다.”
준비를 끝마친 박 주임의 말과 함께 마력이 폭증한다.
그 기묘한 흐름을 느끼며 정우가 번쩍이는 발광에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땐.
“……!”
매캐한 내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나무.
그리고 나무를 태우며 일렁이는 불길까지.
“……벌써 여기까지 밀렸다고?”
박 주임이 전황을 보고는 경악했다.
상황 설명과 모집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
그사이에 후방의 좌표까지 전선이 밀려 있었다.
“애 보는 취미는 없으니까 알아서 잘 따라와.”
여마법사가 정우에게 툭 내뱉고는 대뜸 입술을 달싹거린다.
‘주문?’
콰, 콰득!
지면이 치솟아 뭉쳐지는 그것이 정우의 눈을 사로잡았다.
“골렘?”
흙과 자갈, 돌 따위로 이루어진 골렘은 무려 3m를 넘기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며 여마법사의 옆에 몸을 웅크렸다.
익숙하게 골렘의 어깨에 올라탄 여마법사가 정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뒤에 딱 붙어 있어라.”
한껏 깔보는 시선.
정우는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깟 골렘.
회랑의 서적엔 널리고 널렸으리라.
정우의 반응이 예상보다 시큰둥하자 여마법사가 눈을 치떴으나.
“간다.”
어느새 스태프를 꺼내 든 사내의 말에 집중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각자의 성호를 그리며 ‘성물’이라 이름을 붙인 아이템 혹은 아티팩트에 마력을 주입하는 힐러 셋의 모습도 정우의 눈길을 끌었다.
그들의 뒤를 따르며 정우는 전황을 둘러보았다.
콰르릉!
파팡!
죽여, 밀리지 마, 아악, X발 개뼉다귀 새끼들아!
폭음과 욕설, 고함과 소란이 난무하고 있었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황만큼은 여러 형상으로 전면을 가득 채웠다.
“다치지 마십시오!”
박 주임이 손을 모아 소리쳤다.
사내는 그런 박 주임을 향해 한 손을 들어 흔든 뒤, 명령했다.
“한정우 플레이어.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마라.”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가각-!
턱뼈를 달그락대는 누런 빛깔의 해골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내는 힐끗 정우를 다시 보았다.
“과연 소문이 사실인지 증명이 되겠군.”
묘한 눈빛은 과학자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어지간히도 무시하는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린 정우는 그들의 말마따나 천천히 주변을 관람하며 생각에 잠겼다.
‘언데드. 생각보다 별 볼 일이 없어.’
사내의 마법은 대단했다.
스스로를 밝히지 않아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스태프에서 펼쳐지는 전격 마법은 가히 경천동지의 위력을 떨쳤다.
그럼에도 정우의 눈은 짜게 식었다.
‘멍청한 건가, 계열 자체가 한계인 건가. 언데드에게 전격이라니….’
사내의 마법에 얻어맞은 언데드들은 하나같이 숯처럼 변해 타들어 갔지만, 전부가 그런 건 아니었다.
마력의 밀집도가 높은 장소만 그럴 뿐, 외부의 전격엔 잠깐 멈칫하는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전격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스킬 자체가 그쪽에 특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데드는 죽은 자들이다.
때문에 전격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광휘의 선포.”
기묘한 스킬명과 함께 일순간 일대가 환하게 밝아졌다.
스스스!
카, 카아-!
“오…….”
정우가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달려들던 언데드가 광휘에 휩싸이며 파스스, 부서지기 시작했다.
광휘의 선포라는 스킬의 반경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가히 언데드의 천적이라 불릴 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내가 힐러를 향해 웃음을 흘렸다.
“역시 성직 계열이 최고군.”
정우를 제외한 여섯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협회에서도 대우를 받는 인원인 만큼 실력은 상당한 듯 보였다.
전격 마법사조차 비효율적이기는 하나 위력이 뛰어나다 보니 끊임없이 언데드를 소멸시키기도 했다.
“…그렇군.”
정우의 시선이 검붉은 지면과 언데드로 향했다.
왜 비효율적인 전격 마법사를 호출했나 싶었는데, 인원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전격 마법 자체가 어느 정도 성직자와 비슷했다.
타버린 대지에선 언데드가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말이 다르지.’
이동하다 보니 드러난 전황은 참혹했다.
불타 버린 나무.
야산의 일부가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파여 있었고, 남은 나무조차 불에 타서 매캐한 연기와 화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많다.”
시야가 높은 여마법사를 필두로 모두는 생각보다 많은 언데드의 수에 깜짝 놀랐다.
“전달받은 것보다 더 많아. 이런….”
사내 역시 표정을 굳혔다.
“다른 길드는 뭐 하는 거야?”
“야, 저거… 스파토이 아니냐?”
“어… 어? 맞는… 것 같은데요?”
다른 마법사의 말에 힐러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완전한 B급인데? 어쩌면… A급이 될지도 모르겠어.”
C급에서 B급으로.
다시 A급을 넘보는 던전 브레이크.
사상 초유의 상황에 모두의 얼굴에 긴장이 감돌았다.
그리고 정우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