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53화 (53/293)

53화

-던전 브레이크 (1)

허공의 구멍의 검은 일렁임이 더욱 짙게 물든다.

보다 선명해지는 일렁임은 불길하기 짝이 없는 느낌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직원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실패….”

황급히 고개를 돌려 장치를 본 직원이 비명처럼 외쳤다.

“던전 브레이크다!”

네 번째 도전.

상당한 재원을 투입하여 진행한 던전 공략이 실패로 돌아갔다.

협회 직원은 다급히 장치의 빨간 버튼을 눌렀다.

버튼이 붉은색으로 번쩍이자 곧장 차에 올라타 엑셀을 밟았다.

요란한 배기음과 함께 출발하는 차가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급가속했다.

부아앙!

도망치는 건 직원뿐이 아니다.

던전 브레이크의 초동 대응은 대피.

도주하는 직원의 전화가 울렸다.

“무등 길드가 실패했다고? 거기… B급 플레이어만 둘이었는데?”

성공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 때문에 협회는 해당 게이트에 한 명의 직원만을 파견한 상태였다.

무등 길드 직원도 함께 대기 중이었지만, 해당 직원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던전 공략에 실패해 버렸다.

마지막이라고 예상했기에 과한 인력을 투입했다.

무등 길드에서 한 명.

협회에서 한 명.

C급 던전에 투입된 B급 플레이어만 두 명이었다.

실패할 리 없는 전력.

“젠장! 곧장 파견하지.”

던전 브레이크는 조급한 놈들이었다.

천천히 달아오른 열감을 당장에 토해 내는 것처럼, 마력의 폭증은 여유를 두고 벌어지지만 몬스터의 등장은 순식간이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확정된 이상, 시간이 없었다.

번쩍!

“……!”

갑자기 등 뒤로 하늘이 밝아지자, 직원이 사이드 미러를 통해 뒤편을 힐끗 보았다.

“벌써? 대체… 얼마나 마력이 쌓여있었던 거야?”

직원의 표정에 경악이 어렸다.

던전 브레이크 증상이 발생한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 말은 공략에 실패한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전멸.

누구 하나 살아오지 못한 전투의 결과가, 기어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잠깐!”

그의 시선이 다시 사이드 미러로 향한다.

어두운 언덕길.

조금 전의 발광을 제외하고는 빛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밤의 산.

오싹!

그럼에도 직원은 뒤편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푸드득!

무언가의 날갯짓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럴, 리가 없지.”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파악된 정보를 다시 떠올렸다.

‘망자의 성당…. 기껏해야 해골이나 좀비가 아니었었나? …정보가 없으니까 답답하네. C급이니까 구울까지는 나오려나?’

살아 온 인원이 없다 보니 얻은 정보가 없었다.

던전 브레이크의 반경은 던전 내 마력의 양과 비례한다.

고위 던전일수록 던전 브레이크의 반경이 넓어진다.

몬스터의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는 소리였다.

해당 던전은 C급.

그것의 반경은 넓어야 반경 20km에 불과했다.

도심과 거리가 먼 산골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놈들이 던전 브레이크의 반경에서 벗어나는 건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근처의 민가를 울리는 사이렌과 군인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협회의 대응은 빠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이닥칠 플레이어를 떠올리며 안도했던 직원은, 그럼에도 불안감을 느껴 사이드 미러를 힐끗거리며 운전에 집중했다.

그런 그의 차 지붕 위에 내려앉은 작은 어둠을 확인하지 못한 채로.

* * *

긴 숨을 들이쉰다.

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순간인지.

질 낮은 공기마저도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모여라.”

나지막한 음성에 사위가 변한다.

긴 터널을 벗어나자마자 영역을 확보했던 이들이 그 나직한 말에 반응했다.

푸드득!

나뭇잎이 흔들리고.

밤이 몰려들었다.

달빛마저도 힘을 잃고 밤에 집어삼켜졌다.

하늘을 가득 채우던 검은 물결이 이윽고 땅에 내려앉는다.

작던 크기가 변하며 일제히 부복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타락한 별빛이 일제히 붉게 번쩍였다.

“오래… 기다렸다.”

쿵!

그의 말에 모두는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조금의 차이도 없이, 일제히.

“‘왕’의 명령을 기억하라.”

쿵!

그의 말에 모두는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를 떠올리며.

“너희는 모르나, 나는 느껴진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천천히 돌아가는 고개가 이내 한 방향으로 고정된다.

달콤한 혈향.

그 어느 곳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농밀한 그것이 그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취하고, 탐하라!

탐하고, 취하라!

너희의 것은 아니나, 이번엔 기회를 주노니.

그것의 심장에 이를 박아 넣어라.

쿵!

왕의 명령이 다시금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오랜 기다림이었다.

그는 다시금 숨을 들이켰다.

“그것이….”

한껏 부풀었던 가슴이 가라앉으며, 묵직한 음성이 결론이 되어 흘렀다.

“여기에 있다.”

쿵!

왕의 말엔 머리를.

그의 말엔 가슴을.

절제된 행동은 섬뜩하리만큼 일치되어, 고요한 산속을 가득 채웠다.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왕의 명령을 떠올리며 희열의 순간을 떠올렸다.

죽이고, 또 죽여라.

왕의 명령을 비집고 들어오는 속삭임엔 반감이 일지 않았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은 눈앞의 먹잇감을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자신들은 언제나 침략자였다.

사나운 맹수이자, 모든 것들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였다.

“왕의 명령을 기억하라.”

쿵!

그는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이들 중 하나를 가리켰다.

다른 이들과는 다른 의복과 외형의 한 명이 그 손길에 반응하여 일어났다.

“이것의 등장을 기억하라.”

쿵!

“당장의 계략에 분노하지 마라.”

쿵!

“우리를 숨기고….”

쿵!

“때를 기다려라.”

쿵!

“그곳에서처럼….”

쿵!

“이곳을 우리의 전초 기지로 삼는다.”

쿵!

“앞으로는 나의 말에 일제히 하는 대답을 삼가니, 너희는 그 불충에 감사하라.”

두드림은 없다.

그저 고개만 살짝 숙일 뿐이다.

조금의 소란도.

약간의 소음도 없는 절제된 움직임.

그의 입가가 만족으로 얼룩져 올라갔다.

“자, 시작하자.”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의 곁으로 내려앉은 어둠이 이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몸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극도로 절제된 마력.

그것에 반응한 대지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뼈와 뼈로 이루어진 군대의 등장에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강원도 철원의 한 야산이 다시금 전투를 준비했다.

그는 시체를 불러낸 뒤 지하로 모습을 숨기는 수하들을 보았다.

일제히 모습을 숨기는 광경은, 마치 검은 불길이 땅으로 꺼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모두가 그런 와중에.

그의 앞엔 불러낸 수하 하나가 서 있었다.

“성대가 다시 생겨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다.”

그는 수하의 얼굴을 쓸었다.

새하얗고, 창백한 낯빛이 상관의 손길에 감격하여 부르르 떨어댔다.

“너의 임무가 중요하다.”

수하가 묵례했다.

“나에게 이 세계의 모든 지식을 전하라.”

고개를 든 수하의 얼굴은, 꽤 유명한 플레이어를 닮아 있었다.

얼마 전.

바로 이곳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무등 길드의 간판 플레이어, 김영훈.

카아-.

그가 잘린 성대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본 그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렸다.

짙은 혈향.

당장이라도 달려가 목을 탐하고 심장을 뽑아 그 피를 전신에 뿌리고 싶을 정도로 달콤한 향의 주인을 그려보았다.

할짝.

한층 붉어진 입술을 핥은 그가, 본 적 없고 들릴 리 없는 ‘먹잇감’을 향해 중얼거렸다.

“나, 백작의 위(位)를 가진 ‘에녹 콘라드 오스카’가 곧 너의 심장을 취하러 갈 것이다.”

붉은 안광이 번쩍이자.

검은 연기가 다시 한번 그를 감쌌다.

고요히 폭발한 마력이 반응한다.

철모를 쓴 시체 하나가 지면을 밀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철모를 쓴 머리를 손에 든 시체가.

듀라한(Dullahan).

B급 던전의 보스로 분류되는 놈의 안광이 폭사했다.

* * *

“듀라한?”

선발대의 보고를 들은 플레이어는 눈을 치켜떴다.

“C급이라며?”

플레이어들이 기를 쓰고 던전 공략에 나서는 건 비단 돈 때문만이 아니었다.

고상한 인류애로 무장된 정신 때문도 아니고, 성장에 목이 말랐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던전 브레이크는 말 그대로 던전의 내용물이 밖으로 쏟아지는 것이었다.

비닐봉지에 든 내용물이 변화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다만, 그것이 바닥에 쏟아지면 치우기 골치 아프고 더럽고 귀찮고, 때로는 난해한 문제로 돌변하기 때문에 미리 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던전 브레이크를 막으면, 던전을 공략한 것과 동일한 보상이 주어졌다.

더불어 협회의 보상금까지도.

때문에 나름의 보너스를 떠올리며 참여한 길드원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B급 보스가 왜 C급 던전에 있어?”

“잘못 본 거 아니야?”

B급 플레이어 둘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C급이 참여된. 그리고 C급으로만 이루어진 공략팀의 실패도 전해 들었다.

그 이유가 밝혀진 셈이었다.

B급 보스.

B급 플레이어 둘로는 승산이 없는 적.

“맙소사…….”

이건 고위급 던전 브레이크였다.

“협회에서는 뭐래?”

유명 길드의 공략팀장이 물었다.

“다른 길드에 협조 요청을 내렸답니다.”

“…일 처리가 빠르긴 한데…….”

공략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거리가 문제였다.

그리고 위치도.

“생각 이상으로 언데드의 수가 많다잖아. 그것도 문제지.”

“힐러는?”

“보강되겠지.”

“젠장! 하필이면 백마고지라고? 거기에 시체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멍청한 무등 길드장. X발. 그러니까 공략에 직접 참여하지는….”

“원래 C급이었다잖아.”

“…후우.”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의 야산, 일명 백마고지.

한국 전쟁 때 수없이 많은 병력이 죽어 나간 장소가 하필이면 던전 브레이크의 위치였다.

그리고 출현한 몬스터 역시 언데드였다.

“빨리 처리해야 해. 언데드는 오래되면 죽음의 땅이 선포된다고!”

“누가 그걸 몰라? …듀라한이면 우리끼리는 무리라서 하는 소리지.”

“후우.”

유명 길드 공략팀장이 한숨을 내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소길드의 플레이어들.

D급으로 이루어진 인원은 선발대와 더불어 시간을 끄는 역할이었다.

뭉쳐서 놈들의 수를 줄이는 것에 집중하고, 후발대가 오기 전까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

“주목.”

때문에 C급의 공략팀장은 이 무리의 공략팀장이 되었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공략팀장을 보았다.

“최대한 외곽만 돈다. 언데드의 수를 줄이는 것에만 집중하여 공략한다.”

언데드는 언데드를 불러낸다.

죽음의 땅이 선포되면, 해당 지역의 모든 시체가 부활하게 된다.

하필이면 철원 지역.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에서 죽음의 땅이 선포되면, 그것은 재앙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래가 아니라 포크레인이 와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막아야지….’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듀라한이라는 존재가 파악된 이상, 협회에서도 이 이상의 주문은 하지 않을 터.

버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곧 도착합니다.”

운전석에서 들리는 음성에 모두는 장비를 점검했다.

도착과 동시에 전투에 뛰어들어야 했다.

트럭이 거칠게 휘청이며 멈춰 섰다.

모두는 군인이 된 것마냥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X발.”

욕을 내뱉었다.

어둠 속에서도 형형히 빛나는 붉고 푸른 안광들의 수가.

파직!

분전하며 여러 스킬을 사용하는 아군의 수를.

“이게… 진짜 C급이었어?”

압도하고 있었다.

“뭐 해? 아군 다 죽는다! 지원 나가! 버티기만 하면 이기는 거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 공략팀장이 검을 들고 달려 나가자, 그제야 정신이 든 플레이어들이 뒤를 따랐다.

함성과 함께 나아가는 그들의 눈동자가 힘없이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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