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52화 (52/293)

52화

-첫 벽을 넘다 (2)

[ 마력성장(1) ]

마력의 벽은 저주이자 축복입니다.

벽을 넘으시오.

등급 : E

보상 : 안정화

실패 : 마력 누수(漏水)

“……퀘스트?”

정우의 눈이 커졌다.

퀘스트명.

내용.

보상과 페널티까지.

퀘스트를 몇 번이나 읽은 정우는 침음을 흘렸다.

‘…마력의 벽이라니. 나는 A급도 아닌데….’

모든 플레이어는 S부터 F까지 등급으로 나뉜다.

등급의 기준은 ‘마력’.

대마법사 질 고메즈.

주술사, 모건 스틸러.

뇌신, 알렌 보머.

수많은 영웅이 탄생하며 난립했던 당시에서도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던 이들을 보유한 미국은 마력을 등급의 기준으로 삼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다행히 플레이어의 생각도 동일했다.

괜히 스킬의 위력과 강함의 척도를 마력에 둔 게 아니다.

성장.

초기의 혼란엔 그저 살아남는 것에 목표를 두다 보니 정보가 부족했다.

하지만 조금씩 승기를 잡고 여유를 찾은 이후, 플레이어는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다.

상태창의 모든 능력은 그저 자연스럽게 던전 공략과 더불어 상승하는데.

유독 마력만은 달랐다.

격변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 선두에 선 플레이어를 제외한 후발대 중 몇몇이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재능 넘치는 천재들이 벽을 느끼지 못하고 넘어간 사이, 재능이 떨어지는 이들은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알음알음 마력의 벽이라는 개념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후엔 일정 구간마다 벽을 넘어야 한다는 게 확실시되었다.

정우의 등급은 F급.

테스트에서도, 스스로도 F급이라는 걸 부정한 적은 없었다.

F급에서 E급으로 넘어가는 건, 플레이어 세계에선 그저 걷는 수준이다.

방해물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상황.

길가에 손톱만 한 돌멩이가 있다고 그게 장애물로 느껴지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모든 플레이어는 벽을 느낀다.

하지만 그 벽은 각자의 재능에 따라 달랐다.

누구는 D급에서.

누구는 C급에서.

유서린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남들은 다 느끼고 넘어간 벽을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통곡의 벽이자 절망이라 불리는 S급에서조차.

진짜 재능이 떨어지는 이들만이 C급 이하에서 벽을 느꼈다.

하나같이 마력적 능력이 떨어지는 직업의 사람들.

탱커, 무투사 등.

신체 능력이 마력 능력보다 우선시되는 직업군은 벽을 빨리 느꼈다.

‘튜토리얼에서의 직업은 재능에 따라 분류가 돼.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마법적인 지식과 마력적인 능력이 가장 뛰어나. 그런데… F급에서부터 벽이라.’

정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튜토리얼에서부터 성장의 과정까지.

모든 것이 예상 밖이었다.

조금 답답했던 상황이 연속되다 보니 골치가 아팠지만, 이제는 오히려 정상적인 상황이 오면 당황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우는 생각을 전환했다.

특별하거나 특이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에게 계속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G급 던전에 개입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아버지를 구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소리였다.

특별한 상황을 겪었기에 ‘통로’를 배웠다.

게이트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그것이야말로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방법’이지 않았던가.

‘좋아….’

차라리 웃었다.

생존자가 없다는 제물의 낙인을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것도, 보통의 방법으로는 모조리 실패했었다.

‘…성장도 마찬가지야.’

모든 것은 특별하고 특이해야 했다.

그것이 자신의 길이었으며, 방법이었다.

“좋아…. 인정해야지.”

특이하고 특별한 덕분에 얻은 것이 상당했다.

오랜 시간 동안 던전의 공략은 끊임이 없었다.

몬스터는 언제나 지구를 노렸고.

인류는 항상 놈들에게서 지구를 지켜야 했다.

수많은 경험이 쌓였고, 기록이 쌓였으며, 정보가 누적되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구할 방법은 없었고.

자신의 상황을 타개해 줄 방법을 알려줄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특별하고 특이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나아가야 할 것은….

“나지.”

벽.

다시 퀘스트의 내용을 떠올린 정우가 피식 웃으며 마력을 전환한다.

이상하리만큼 퀘스트의 내용이 쉽게 느껴졌다.

페널티의 무게는 솜사탕 같을 뿐이었다.

빠르게 활용되는 마력.

한 올의 한 올까지 움직인 마력이 스스스, 정우의 전신을 누볐을 때.

[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메시지가 떠올랐다.

* * *

승급은 간단했다.

퀘스트를 완료하자마자 정우는 스스로가 E급의 플레이어가 되었음을 자각했다.

마력의 흐름이 달라졌다.

휘이잉!

전신을 스치듯 누비는 마력의 움직임이 매우 자연스러워졌다.

“안정화….”

수치가 상승했을 때와는 또 달랐다.

이제야 맞춤옷을 입는 느낌이었다.

순간적인 변화에 정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토록 기꺼운 변화는 오랜만이었다.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 메아리의 성장이 끝났습니다. ]

퀘스트가 완료되자마자 메아리에 대한 문구가 떠올랐다.

자신의 퀘스트 완료 이후 그녀의 성장이 끝났다는 메시지가 떠오른 것도 마음에 들었다.

선후가 확실히 잡혀 있으니까.

은신을 해제하듯 나타난 메아리의 표정은 밝았다.

여전히 인형 같은 작은 크기.

앙증맞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오밀조밀한 외형.

가뜩이나 소악마였던 형태가 작아지니, 귀엽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변해 버렸다.

조금은 어색했던 이미지가 확실히 잡혔다.

아무래도 성장에 따라 외형도 변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메아리는 자신의 성장을 자축하며 정우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했다.

-매우. 감사 ୧( “̮ )୨✧

“……어?”

떠오른 문구에 정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 비슷하게 놀랐던 것 같은 기시감이 정우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단어가 늘었어?”

하나씩 늘어 가는 단어는 아이가 언어를 배울 때를 연상시켰다.

단어 하나가 늘었을 뿐이지만 메아리의 언어구사력은 확실히 뛰어나졌다.

더불어.

‘…이해하기가 쉽다.’

자신에게 반감을 살 것을 알면서도 성장을 하려 했던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메아리와 짧은 대화는 나눈 정우는 순간적으로 만족해 버렸다.

메아리의 성장과 자신의 성장.

두 개의 성장이 주는 달콤함이 ‘성장’에 대한 성과를 만족스럽게 만들어줬다.

그래서 더욱.

‘더 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궁금해졌다.

‘내 성장이… 마녀 일족에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정우는 열쇠를 꺼냈다.

끼릭.

예의 문구에 동의하자 세계가 변한다.

순백의 공간.

앞뒤로 쭉 뻗어 있는 긴 복도가 정우를 맞이했다.

‘뭐지? 왜 이렇게 경직된 느낌이 들지?’

무엇이 바뀐 것인지 주변을 둘러보던 정우의 눈이 커졌다.

“……!”

평소의 회랑은 거의 도서관과 비슷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거나, 주로 책을 읽고 있었다.

자신들의 현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는 이지스의 말마따나 일족 전체가 기록 열람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지금.

“…뭐야? 이지스?”

의자에 앉은 이지스는 눈을 감고 있었다.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상태로, 고개가 기울어 있었다.

희끗한 수염을 기른, 노년을 바라보는 중년의 모습으로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충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치 죽은 듯이 미동도 없는 상황.

비단 이지스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원이 바닥에 쓰러져 있거나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정우는 달리듯 이지스에게 다가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숨을 쉬지 않아!’

충격에 말문이 막혔다가 아차 했다.

회랑은 실제처럼 보이나 가상의 공간이었다.

숨을 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정우는 반사적으로 마력의 흐름에 집중했다.

‘마력은 느껴져.’

희미하지만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간 회랑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마력의 흐름 따위는 없는 것처럼, 정우도 그것을 느껴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느껴졌다.

마력 수치가 성장했기 때문인지, 보상으로 얻은 안정화 때문인지.

‘미약하긴 하지만 분명히 흐르고 있어.’

생각해 보면 회랑은 아공간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장소.

그런 공간이.

“…마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리가 없지.”

이동하면 등장하는 책장.

원하는 책은 허공을 날아와 안착하는 시스템.

그런 것들이 마법이 아니고서야 가능할 리가 없었다.

“공간이동마법진!”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튜토리얼을 위해 던전으로 이동하기 위해 협회에서는 공간이동마법진을 사용했다.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공간이동마법진을 파악했고, 그 방법이 조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판단했었다.

매우 자연스럽게.

지금도 마찬가지다.

회랑의 마법은 정우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것이었다.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고차원적인 마법의 결정체였다.

그럼에도.

흐름이 느껴진다.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뚝뚝 끊기고 선의 개수가 많지 않았지만, 분명히 보이는 그것들은 회랑의 마법 구조물이었다.

건물의 기본이 되는 철근처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며 정우의 감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때와 비슷해. …왜지?”

왜, 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다 보니 이유를 계속해서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성장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회랑의 마력 흐름이 느껴졌다는 것은 호재였다.

언제고 이 흐름을 전부 이해할 수 있다면 회랑과 같은 공간을 구상할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이상하게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성장에 영향을 받아 어휘 구사력이 늘고 얼굴 표정이 조금 더 선명해진 메아리처럼.

잠들어 있는 마녀들 역시 성장의 순간을 맛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체가 아닌 회랑에서 죽음에 빠진 것처럼 숨을 쉬지 않는다는 건.

“…그렇군! 던전. 마녀의 던전이 활성화가 된 거야!”

본체가 활동한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안심이 된 정우가 차분히 회랑을 둘러보았다.

생각하자 나타나는 책장은 여전했다.

회랑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한다.

정우는 마정석을 떠올렸다.

어차피 접속한 것, 이들이 다시 회랑에서 활동할 때까지 기록을 열람할 셈이었다.

메아리가 완성시킨다는 마정석이 궁금해졌다.

투명 슬라임의 마정석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그렇다면.

‘메아리는 누군가가 투명 슬라임의 마정석을 완성시킨 것을 본 건가?’

그런 의문이 생겨났다.

다시 한번 튜토리얼 속의 메아리를 떠올렸다.

상처 입은 채로 결박당해 있던 모습.

관문의 퀘스트와는 달리 처음 입장해서 나타났던 퀘스트는 분명히 그녀의 구출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대전제.

‘음……. 그때 퀘스트명이 뭐였지?’

기억을 더듬어 보자 떠오르는 문구.

“선택의… 기로.”

???로 도배가 되었던 퀘스트.

그 끝에 나타난 메아리를 염두에 보자면, 튜토리얼 자체가 그녀의 구출을 위해 존재하는 셈이었다.

4개의 관문이 등장했고, 하나씩 클리어하며 새로운 능력을 각성했다.

신체 능력이 향상하고.

마력을 보는 눈이 발전하고.

마력을 다루며.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습득했다.

“그러고 보면 그때부터 ‘패턴’을 습득했어야 했어.”

쇠사슬을 끊는 패턴은 간단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패턴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

그 시간을 고스란히 투자했어야 가능할 정도로, 난이도가 상당했다.

“E급 마법 정도는 됐어.”

그런 마법이 튜토리얼에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건.

“내가 그걸 너무 쉽게 해냈다는 거야.”

자신의 수준을 파악한 것처럼 조금 난해한 난이도가 주어졌다.

마력을 봤기 때문에.

‘패턴에 익숙해졌다?’

“고민해봐야 할 문제네….”

정우는 주변을 훑었다.

고요한 풍경은 여전히 어색하기만 했다.

책을 펼쳐 보고는 있지만 머리는 계속 생각을 이어 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탁.

정우는 책을 소리 나게 덮었다.

“쇠사슬…. 진짜로 결박이었나?”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다.

패턴이 전부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결계사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는 결론은 선택의 기로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였지만.

“안배… 정도로 생각하면 되려나?”

결국 그녀를 구하기를 바라며 안배해놓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당시의 튜토리얼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마정석을… 완성시킨 자와 동일인일까?”

궁금해지긴 했지만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메아리가 더 성장해서 기억을 되찾으면… 알게 되겠지.”

정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창술 서적을 찾았다.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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