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괜찮은 방법인 걸까?
빌런의 습격.
모든 빌런 사살.
B 섹터에서 발생한 사건에 협회의 인원은 물론, 여러 길드도 눈에 불을 켜고 집중했다.
특히나 마력감지시스템을 무력화했다는 것에 모두의 뇌리에 경종이 울렸다.
고작해야 F급 플레이어를 잡기 위해서 그런 비밀이 밝혀졌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모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쨌든 간에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이번 기회에 대대적인 점검을 하기 위해 앞을 다투며 B 섹터의 시스템을 확충해 나가느라 여러 곳에서 공사가 이루어졌다.
그 모든 일이 벌어진 건 불과 이틀 사이.
발 빠른 길드의 움직임에 협회 직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 B 섹터, B 섹터 하나 보네.”
“그래도 이번 사건은 꽤 크잖아.”
“하긴. B 섹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
“이번에도 그 사람이지?”
“한정우? 그러니까. 마가 끼었나.”
“신기한 사람이네.”
협회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일 때마다 정우를 입에 올렸다.
그리고 그런 정우는 협회의 한 장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마력 9
마력 수치가 변했다.
그토록 바라던 성장.
하지만 그 성장이 타인의 목숨을 대가로 한다는 것이 굉장히 기이하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모두 죽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암살자를 죽인 이후 정우와 눈을 마주친 놈들은 하나같이 비명과도 같은 고함과 함께 우르르 달려들었다.
총공격.
팔이 부러지고 온몸이 찢겼지만, 승리는 정우의 몫으로 남았다.
가까스로 비타를 통해 유 대리에게 연락을 취한 뒤에 겨우 버티던 그는 유 대리와 함께 달려오는 협회 직원을 보자마자 다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진행된 심문과 같은 사건 청취는 무미건조한 분위기에서 진행이 되었다.
집단 ‘이리’.
놈들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협회에서는 대대적인 감찰에 나서기로 했으며, B 섹터에 가족이 살고 있던 길드는 이리를 비롯한 프리랜서들에 대해 적의를 품게 되었다.
그리고 협회의 일부는 이 모든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습격이 얼마 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리 박사.
북한의 천재 연구자이자 ‘리’의 신임을 받는 인재.
자칫하면 납치당할 뻔했던 그녀를 떠올리면 절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라스베이거스.
오사카.
서울.
연이어 발생한 테러와 습격에 각국의 협회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때문에 이번 습격은 작았지만, 단서만큼은 커다랬다.
정우는 반갑수를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반갑수가 잡혀 들어왔으니까.
습격자들의 수장격인 반갑수가 취조를 받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반갑수를 통해 협회는 ‘정지하’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빌런 협회의 암약에 대해 단서를 잡게 된 이상, 협회의 반응은 빨랐다.
도살자의 목표가 리 박사였다는 게 뒤늦게 밝혀져 곤란에 처했었던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직원들은 이를 갈며 빌런 척살에 뛰어들었다.
그 시발점이 된 정우의 표정은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정우도 빌런은 싫다.
사람을 죽였다는 무거운 마음은 있지만, 어차피 가만히 있었으면 자신을 죽였을 사람들이다.
살인의 촉감에 몸을 떨며 웅크리기엔.
‘…이상할 정도로 죄책감이 없다.’
딱히 마음이 요동치지 않았다.
다만 정우의 마음을 무겁게 한 건, 때 아닌 성장이었다.
마력 상승.
그토록 바라며 바라던 마력의 상승이.
‘왜…… 몬스터가 아닌, 사람에게서 얻어진 건지 모르겠어.’
그게 정우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정상이 아닌 성장.
[ 메아리가 성장합니다. ]
심지어 전투 도중에 나타난 메시지와 함께 메아리의 모습이 흐려지며 사라지자, 정우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아무리 메아리를 불러도 대답이 없다.
모습조차 감춘 채 반응도 하지 않는 메아리 역시 정우에겐 약간의 혼란이었다.
‘퀘스트가 말하는 내 성장이 메아리의 성장이라는 말이 이거였군.’
답답한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하던 정우의 손에 열쇠가 들렸다.
‘부디… 이유를 찾았으면 좋겠네.’
끼릭.
[ 열쇠를 사용하시겠습니까? ]
세계가 일변했다.
* * *
정우에게서 상황을 들은 이지스는 생각에 잠겼다.
스킬이라는 틀 안에서 마력이 운영되는 지구와는 달리, 이계의 경우 수많은 지식이 존재했다.
마력의 정의에서부터 운용법까지.
그 안엔 당연히 성장법도 있었다.
마력이 그릇이라는 당연한 명제에서 살짝 벗어난 후, 정우와 이지스는 마력을 영혼이라고 보았다.
영혼의 수복.
마력 수치 자체를 영혼의 총량이라고 보면, 정우는 지금.
“…타인의 영혼을 흡수한 셈이 되는 건가?”
“그것과는 좀 다르지 않소?”
이지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영혼의 흡수는 흑마법의 정수이오. 왕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소.”
“…그렇다면 마력이 영혼이라는 대전제가 틀린 게 아닌가?”
“음. 그렇구려. 이걸 좀 정리해 봐야 할 필요가 있겠소.”
이지스의 확언에 정우는 적잖게 안도했다.
그의 말이 진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보다는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일단 정리부터 하시오.”
“정리?”
이지스는 정우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을 꺼냈다.
그릇이 깨어진 정우는 언제고 한 차례 그릇을 수복한 일이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뒤적여도 그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렇군. …오한우였어.”
이진수를 노리고 자신을 습격했던 빌런.
의외로 놈으로부터 시작되는 사건이 많았다.
“그렇구려.”
이지스는 정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생각하던 이지스가 말을 이었다.
“일단 메아리란 자는 왕과 영혼이 연결된 것이 확실하오.”
“그런 것 같더군.”
일단 배신은 불가능하다.
정우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왕이여.”
메아리에 대해 정리한 이지스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왕은 플레이어로 각성하기 전부터 마력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 맞소?”
“…맞아.”
“그럼 그때부터 마력이 어느 정도 활성화되었다고 봐야 옳소.”
“그럴 수 있나?”
“왕의 세계의 체계는 정확히 모르오. 하지만 우리의 세계에선, 탄생부터 마력과 함께하는 이들이 간혹 있소.”
“그런가?”
“그렇소. 마력을 각성하는 튜토리얼이란 곳에서 보상으로 아공간을 얻었고, 또한 우리와 연관이 있는 열쇠를 얻었소.”
“그래.”
“그리고 메아리란 이도 얻었소.”
“그렇지.”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스럽게 튜토리얼에서 얻은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는 ‘안배’라 보면 좋겠구려.”
“…안배?”
정우가 반문했다.
“일단 이것부터 보시겠소?”
이지스가 책을 하나 펼쳤다.
“영혼, 성장, 마력, 그릇.”
정우에게 있었던 일들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기록을 열람하다 보니 알게 된 책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것이오.”
< 마력을 심는 방법 >
“마력을 심는 방법?”
이지스는 책을 건넸다.
정우는 그 책의 내용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런 정우를 향해 이지스가 말을 건넸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왕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소?”
이지스의 물음에 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게 아니었다.
“…이건…….”
말문이 막힌 정우의 눈이 기록된 내용을 읽는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객체에게 마력을 심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
죽음의 위기에서 강제적으로 각성시키는 방법이 주로 효과를 보았으며….
‘마법사의 돌’을 사용하여 환경을 만들어 주면, 마력을 느낄 확률이 상승하며…….
단번에 떠오르는 건 ‘튜토리얼’이었다.
마력을 처음 느끼게 만드는 장소.
적절한 죽음의 위기와 마력이 깃든 장소에서 몬스터와 싸우거나 함정을 돌파하며 마력을 각성해야만 하는 공간.
“이게 어디서 나온 거지?”
정우의 놀란 표정에 이지스는 입맛을 다셨다.
“불행히도 저자와 시기가 적혀 있지 않소.”
“그럴 수도 있나?”
“기록이 아니오. 누군가가 남기면 그것이 기록이오. 따로 남기지 않으면… 우리 역시 누가 남긴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소.”
그나마 우리 일족이라는 것만은 확실하오, 이지스가 당연한 말을 첨언했다.
“……후우.”
정우는 한숨을 내뱉었다.
갑자기 이렇게 한꺼번에 모든 게 훅 다가오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시구려.”
이지스가 천천히 걸으며 눈을 마주쳤다.
“왕의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마력을 각성한 자요.”
정우는 천천히 걷는 이지스를 따라 이동했다.
“마력을 심는 방법. 그 방법의 온전한 내용은 아쉽게도 없소. 단편적이며 끊긴 내용이 참 많기 때문이오. 다만 한 가지 단서가 있소.”
“단서?”
“이 기록은 일부러 누락된 것이라는 소리요.”
누락.
무언가를 숨겼다는 소리에 정우는 침음을 삼켰다.
뭔가 자꾸만 커져 가는 느낌이어서.
“마지막 장을 보면, 그 단서가 적혀 있소. 혹여나 지식에 목마른 이들이 헛된 판단을 할까 염려스러워, 기록의 일부를….”
“…나누어 기록한다?”
정우의 눈이 번쩍였다.
어쩌면.
‘플레이어가 지구에 등장한 이유를 알게 될지도 모르겠어.’
정우의 변하는 눈빛을 본 이지스가 고개를 주억였다.
“아무래도 이걸 찾아야 하지 않겠소?”
잠시 고민에 빠졌던 정우도 동감했다.
“하지만 어디에 나누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군.”
“나머지 기록을 찾는 방법을 모색하겠소.”
“부탁하지.”
정우는 이지스에게 책을 건넸다.
“이건 또 이렇게 정리하면 되겠구려.”
자신의 이상 현상을 규정하는 건, 마력을 심는 방법이라는 괴이한 책의 기록을 수집하면 될 일이었다.
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보다 나았다.
‘그릇의 수복이 영혼이라는 명제로 바뀌었고, 영혼의 회복이… 다른 플레이어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었어. 이걸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골치가 아파질 거야.’
정우의 생각을 읽은 이지스가 말했다.
“우리의 세계엔 ‘헌터’가 있었소. 일전에 왕을 몬스터 헌터의 길을 간다고 불렀지만, 헌터 역시 다를 건 없소. 고작해야 다른 건 대상이 인간이냐, 몬스터냐의 차이일 뿐이니 말이오.”
“헌터?”
“왕이 이번에 당한 건 말이오. 현상금 사냥꾼.”
“…….”
정우는 이지스의 말을 이해했다.
범죄를 저지르고 현상금이 걸린 이들이 있었다.
지구에도 빌런을 적대시하는 길드가 있다.
하지만 빌런만 전문적으로 잡는 이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플레이어는 오직 던전을 통해서만 강해지니까.
“왕은 범죄자들을 통해 강해질 수 있소.”
“…하지만.”
“같은 인간? 우리 역시 억압당해 보았고, 전쟁을 벌여 보았소. 이해관계의 차이이오.”
“이해관계라고 하기에는 복잡해.”
“어려울 게 뭐가 있소? 왕의 말마따나 그들은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고, 왕은 몬스터를 잡는 것처럼 범죄자들을 잡으면 그만이오.”
정우가 멈칫하며 이지스의 눈을 보았다.
‘확실히…….’
달랐다.
야만의 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세의 그것을 닮은 이계는 몬스터와 전쟁이 빈번한 세계관이었다.
죽음이 익숙했고.
살인이 당연한.
이지스는 정우의 망설임을 딱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지만 다음의 말에 정우는 과연 이게 괜찮은 방법인 걸까 고민하면서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왕은 그들과 적대 관계 아니오. 제물의 낙인은 말 그대로 왕을 잡아먹겠다는 소리이니… 우리나 그녀나.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소.”
맞는 말이었다.
“강해지지 않고서는 지킬 수 없지….”
“선후를 정하시오. 왕이여. 그것이 내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인 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