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성장의 방법
모든 길드가 던전을 독식하는 건 아니다.
여러 이유로 길드에 선택받지 못한 이들은 나름대로 ‘프리랜서’ 형태로 던전 공략에 나선다.
원래라면 거의 모든 던전은 길드에서 독식해야만 옳았다.
원래 대한민국의 구조가 승자독식의 구조였으니까.
하지만 유지석 협회장은 협회나 길드 소속이 아닌 플레이어도 결국 몬스터를 줄이고 던전을 클리어하는 재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때문에 모든 던전의 6%는 프리랜서 플레이어에게 할당되었다.
길드보다 공략 계획서가 자세하고 신뢰성이 있어야 했지만, 이 법률이 계정된 이후 벌써 8년이나 지났다.
프리랜서 사이에서도 나름의 형태로 무리가 생겼고, 6%의 던전을 50% 이상 독식하는 집단이 생겨났다.
말이 프리랜서이지 또 다른 길드의 형태였다.
스스로를 ‘이리’라고 부르는 집단이 바로 그들이었다.
전체 던전의 6%는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많은 것도 아니었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던전이지만, 전세계 마정석의 60%는 B급 이상 던전에서 충당이 되었기 때문에, 등급이 낮으면 낮을수록 벌 수 있는 돈은 줄어든다.
마정석의 질과 양이 형편없으며, 수익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D급 던전의 총 수익이 보통 15억.
던전의 환경에 따라 10억에서 20억까지 차이가 나긴 했지만 평균적으로 15억이었다.
힘이 없는 모든 세력이 그러하듯 이들은 길드와는 달리 온전한 수익금을 얻기 어려웠다.
수거에 필요한 물품을 대여하는 데 필요한 대여비.
마정석을 판매하며 내는 수수료.
그리고 6%의 파이를 나눠 먹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낸 입찰금.
그리고 수익에 대한 세금까지.
15억의 수익은 단숨에 7억으로 줄어들고, D급 던전의 공략팀이 가져가는 수익금은 또 4억가량으로 줄어든다.
그걸 인원수대로 나누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금액이긴 했지만, 매번 던전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더불어 던전 공략에 필요한 여러 아이템을 구하고, 저주 혹은 여러 부정적인 효과를 제거하기 위한 비용까지 감안하다 보면.
던전 하나를 공략해서 얻을 수 있는 금액은 불과 1,0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 또한 보수적으로 계산한 것.
때문에 하위 등급 프리랜서 플레이어는 항상 돈이 궁했다.
중소 길드의 같은 등급만 하더라도 수입이 적게는 2배, 많게는 6배까지 차이 났기에 불만도 상당했다.
자연스럽게 번외 수입으로 눈독을 들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현상금’이었다.
일반인에게 있어서 플레이어는 프리랜서든 길드 소속이든 협회 소속이든 할 것 없이 초인이었다.
자신들보다 강력한 힘을 보유한 초인들.
심지어 힘만 센 게 아니라 상상만으로 존재했던 여러 능력을 보유한 초능력자가 아닌가.
음지에서 활약하던 청부업이 부활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협회에서 단속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원래부터 범죄란 건 소멸이 불가능한 종류였으니까.
“지금쯤 사로잡았을 겁니다.”
이리의 수장 반갑수는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그래?”
“그렇죠. 아무리 그래도 F급 아닙니까.”
그 말에 정지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결계사도 놓친 거 몰라?”
“에이. 그거야 듣기로는 트레이닝 센터 앞에서 그 짓을 해서 그렇고요. 솔직히 결계사가 그렇게 강한 건 아니잖습니까? 능력이야 특별해도.”
“훗. 그렇기야 하지.”
정지하가 웃었다.
결계사가 협회에서도 인정받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을 특별하게 탈바꿈시킨 재능.
그 재능이 몇 개의 조건만 맞으면 상당히 범용성이 높다는 점.
그 때문에 이번 작전에서도 그의 능력이 필요했다.
실질적인 무력만 놓고 보면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는 둘이었다.
“꼭 잡아야 할 거야.”
“걱정 마십시오. E급과 D급이 스물이고, C급이 셋입니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아시다시피 ‘그쪽’에서도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그래. 설마 실패하진 않겠지.”
정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스물셋에 달하는 수를 감당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 들지 않았다.
여차하면 자신이 나서도 되는 일이었고.
정지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들어가실 겁니까?”
“그래. 잡으면 한번 보러 오지. 연락 남겨라.”
“알겠습니다.”
반갑수가 직각으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했다.
정지하가 나가자 반갑수가 상체를 일으키며 셔츠의 제일 상단 단추를 풀었다.
“…에이. 새끼. 졸라 거들먹거려요.”
문밖을 보는 그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본래 자신의 자리에 앉아 발을 꼬고는 손톱을 불었다.
“옛날엔 눈도 못 마주쳤던 새끼가 플레이어 먼저 됐다고 거들먹거리는 게 꼴사납네.”
카악, 퉤.
재떨이에 침을 뱉은 반갑수가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전국구로 활동하던 때가 떠올랐다.
형님, 인사하며 자신을 뒤따르던 이들이 얼마였던가.
“X발.”
반갑수는 지금의 상황이 못마땅했다.
정지하와 자신은 인연이 있었다.
인연?
“꼴은. 아, 내가 관리하던 나이트 삐끼가 이젠 날 관리한다? 후우. 건수만 잡아봐라. 확 담가 버리고, 내가 니 자리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반갑수는 내친김에 담배까지 피웠다.
플레이어가 생겨난 후 건달은 망했다.
법도, 경찰도 잡지 못한 이들을 잡은 건 인간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들 때문에 망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간택되어 성공한 게 아이러니한 상황.
하지만 반갑수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지하의 의뢰를 받았다.
빌런 협회.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 새끼들이 아무리 또라이라고 하더라도, 나도 만만치 않은 또라이란 말이야.”
피식 웃은 반갑수가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수신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야, 끝났냐? 왜 보고가 없어?”
전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이 새끼가. 어떻게 됐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반갑수의 귀에 갑자기 낯선 음성이 들렸다.
“네 바람대로 된 것 같지는 않은데?”
낮은 음성.
적의를 담은 조롱이 전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반갑수의 얼굴이 굳었다.
“…실패, 했다고?”
“아니. 성공했어.”
“그게 뭔 개소리야. 너… 네가 한정우냐?”
“그래. 네가 지시한 게 맞나 보군.”
“하! 이거… 나참. 네가 우리 애들 다 잡았냐? 아니, 어떻게 잡았냐? F급이?”
반갑수의 말에 전화기 너머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이 들렸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웃음.
반갑수의 얼굴이 얼떨떨해졌다.
“…뭔, 짓이냐?”
“나도 모르겠다.”
“뭔 병신 같은 소리야?”
“이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소리야.”
“……?”
반갑수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어.”
웃음기가 사라진 한정우의 음성은 단호했다.
“이게 내 나름의 방법이라는 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이라 당황스럽긴 한데…… 앞으로 검증해 보면 되겠지.”
내가 미친 건지, 아니면 미치지 않은 건지.
“뭔 개소리냐!”
반갑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음엔 내가 널 찾아갈 거야.”
그때, 웃음기라고는 일절 묻어 있지 않은 메마른 음성이 반갑수의 귓가를 장악했다.
오싹.
싸늘한 경고가 반갑수의 심장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주먹 하나로 성장해서 전국구 건달이 되었던 반갑수다.
상대의 저 음성이 절대 허언으로 들리지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F급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과한 인원을 투자했는데…….
뚝, 끊긴 전화기를 멍하니 보던 반갑수의 눈에 불꽃이 피었다.
“날, 찾아온다고? 이 반갑수를? 와라. 이 새끼야. 네 모가지를 따버릴 테니까.”
콰직!
반갑수의 손에서 던져진 전화기가 박살이 나버렸다.
* * *
달려든 정우의 창이 휘어지듯 근접 딜러의 팔을 쳐올렸다.
파앙!
비틀거리는 근접 딜러를 무시한 채, 정우는 몸을 띄워 겨우 반응하기 시작한 탱커의 방패를 밟고 허공으로 뛰었다.
부웅, 허공에서 정우의 마법이 아래로 쏘아졌다.
쿠르르릉!
연이은 마법이 천둥처럼 탱커의 등에 부딪혀 터져 나갔다.
그 반동력을 이용하여 허공에서 몸을 돌린 정우의 창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마법사의 어깨를 꿰뚫었다.
“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이, 새끼가!”
근접 딜러가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정면내려베기.
한껏 솟았던 검이 빠르게 일직선으로 정우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졌다.
치익!
발이 끌리듯 회전한 정우의 등허리를 스치고 칼이 바닥을 내리찍는다.
“…….”
빙글, 회전한 정우의 팔꿈치가 근접 딜러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신음을 흘리며 다급히 뒤로 물러나는 근접 딜러의 발목에서 서걱,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촤악!
순간적으로 창대를 멀리 잡은 정우의 창날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검기까지 머금은 데다 효율이 높아진 창날은 가볍게 근접 딜러의 발목을 반쯤 절단했다.
아아악!
비명과 함께 나뒹구는 근접 딜러를 본 정우의 눈이 더욱 가라앉았다.
몸을 돌려 본 탱커는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웅크리고 있었다.
절로 한심한 모습.
“……고작.”
정우는 아공간에 창을 다시 넣었다.
주먹을 들고 스텝을 밟으며 접근한다.
방패 뒤에 웅크리고 있던 탱커는 전혀 정우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다.
옆으로 돌며 치는 주먹과 발이 탱커의 전신을 두드렸다.
“이 정도로….”
정우의 모습에 간부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던 이들이 얼어붙었다.
도, 도망쳐!
포식자에서 피식자로 전락한 그들은 무력했다.
쓰러진 동료를 둔 채, 앞을 다투며 나아가는 놈들을 향해 정우는 쿵, 발을 굴렀다.
공기가 무거워진다.
갑자기 중력이 전신을 짓누르자 도망치느라 중심이 무너졌던 놈들은 아주 가볍게 허물어졌다.
그 틈을 타 단검 하나를 꺼내어 탱커의 갈비뼈 부근에 박아 넣고는 훌쩍 몸을 날렸다.
심장이 뻐근해졌지만 정우는 개의치 않았다.
스물이 넘는 인원이 신음과 울음을 터트리며 무기력하게 무너진 모습은, 정우의 목구멍을 뜨겁게 만들었다.
욕설이 치민다.
“현상금이 목적인가?”
정우의 말에 근처에 있던 놈이 눈을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는 고개를 돌렸다.
처음 자신을 감시했다가 걸린 놈의 마력이 잡혔다.
천천히 걸어간 정우가 물었다.
“언제부터 날 미행했지?”
“……협회, 에서부터.”
그 말에 정우는 적잖게 안도했다.
적어도 어머니와 동생을 감시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력탐지기능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
콰직.
“아, 아악! 아아악!”
발목이 짓밟히자 비명을 지르는 사내.
얼마 전이었으면 과했다고 생각했을 손속이었지만, 몇 번의 습격과 함께 일본에서의 참상을 목격한 이후 빌런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가만히 둘 수 없다.
오한우 때부터 시작된 악연은 이미 낙인과 함께 공고해졌다.
수르트와 붐.
죽여야 산다.
그런 관계가 되어 버렸다.
더불어.
‘…놈들은 놔둘 수가 없어.’
현재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르트와 다시 만난다면 발악조차 하지 못한 채 눈앞의 빌런들보다 더 무력한 모습을 보일 터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손이 닿는 한… 놈들을 없애고 싶다.’
정우는 그런 생각을 품었다.
일본에서의 참상이 너무도 참혹했고, 사람의 머리를 으깨며 미소를 짓던 수르트의 모습에 화가 났다.
그렇기에 그와 비슷한 놈들에 대한 적의가 샘솟았다.
“…위, 위에서…….”
고통에 찬 동료를 본 이가 정우의 날카로운 시선에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던 찰나였다.
[ 마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
“……?”
정우의 눈이 커졌다.
뜬금없는 메시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등장한 메시지는 정우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당황하여 멍하니 전면을 바라보자 그 틈을 노린 암살 계열 하나가 빠르게 접근해 단검을 휘둘렀다.
그 와중에도 허리를 굽혀 피한 정우의 손이 반사적으로 아공간에서 단검을 꺼내 놈의 목을 갈랐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고.
목을 감싼 암살자가 추락하더니 나뒹군다.
부들부들.
이윽고 놈의 움직임이 멎었을 때.
눈을 의심하게 만들던 메시지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 마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