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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47화 (47/293)

47화

-메아리?

갸웃거리는 몸체는 작았다.

앙증맞은 크기에 다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의 두피 부분엔 두 개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무언가가 잘린 듯한 모습.

“……메아리?”

튜토리얼에서 보았던, 결박당한 모습과 어느 정도 비슷해 보이는 형태.

매우 작아졌지만 당시를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약간은 남아 있었다.

-본인 (▰˘◡˘▰)

“……어?”

정우의 눈이 커졌다.

이모티콘 외에 단어가 등장했다.

더불어 자신을 가리키며 으쓱해하는 ‘실체’는 얼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성장했다!’

메아리의 모습이 변했다.

아니, 음성만 남았던 모양새가 변화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언어 역시 약간은 회복한 모습.

‘나는?’

그녀의 성장은 자신의 성장을 전제로 삼았다.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메시지는 언제나 자신의 성장을 촉구하며, 그래야만 그녀 역시 성장할 수 있다고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성장한 것일까?

여전한 마력 수치에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의문이 가라앉지 않는다.

-사죄 (((( ;°Д°))))

“……사죄?”

묘한 단어가 떠올라 있어 반문하던 정우의 눈이 커졌다.

퀘스트는 절대적이다.

마력 수치의 상승이란 보상이 걸려있었다면, 퀘스트를 완료하는 순간 마력 수치가 상승해야 했다.

하지만 변화 없는 수치 대신 변한 게 바로 그녀였다.

메아리.

성장과 사죄.

두 개의 단어가 조합되어 하나의 결론을 만든다.

“…마력 수치의 상승을, 내가 아니라 네가 한 거냐?”

-…긍정 (╯•﹏•╰)

왜!

낮게 깔린 정우의 음성이 으르렁거렸다.

* * *

성장에 목이 마른 이는 정우만이 아니었다.

메아리는 지금의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했고.

정우에게 가야 할 보상을 강탈했다.

그것은 분명히 강탈이었다.

“…….”

정우의 눈빛은 차가웠다.

메아리는 엄연히 정우의 튜토리얼 클리어 ‘보상’이었다.

그런 보상이 자신의 것을 탐했다고 생각하니, 숨길 수 없을 정도의 역함이 목구멍을 뜨겁게 물들였다.

분노?

‘…이건 경멸이다.’

기이할 정도로 부정적인 감정이 샘솟았다.

언제고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처럼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았다.

사죄?

당장 죽여 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였다.

메아리는 그런 정우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단어를 내뱉었다.

답답해 보이던 이모티콘과 더불어 온갖 몸짓으로 정우를 이해시켰다.

한참이 지난 후.

정우는 메아리의 말을 납득했다.

왜 그런 짓을 벌인 건지.

이유가 이해는 되었다.

“…너.”

정우의 눈이 매섭게 불타며 메아리의 작은 몸체를 노려보았다.

이해는 되었다.

머릿속으로만.

그녀가 말하는 선후는 분명히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거짓은 아니다.

회랑을 통해 여러 지식을 습득한 정우는 메아리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간파했다.

그러나.

정우의 음성은 더욱 차갑기만 했다.

작은 동체의 메아리가 부르르 떨었다.

그만큼 정우의 열기는 싸늘하다 못해 모든 걸 얼릴 것처럼 매섭기만 했다.

“다음에 이러면…….”

한 자씩 씹어 내뱉었다.

“죽여 버릴 거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진실된 살의를 내뿜는 순간.

메아리의 작은 몸이 정우를 향해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그 모습을 노려보던 정우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배신자들이 ‘널’ 위한 거라고 속삭이지.”

거듭된 경고.

메아리는 진실로 정우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정우에게 구함을 얻은 이후, 메아리는 시스템의 언급대로 그에게 종속되었다.

그의 생명이 곧 자신의 생명이 되는 관계.

정우를 설득시키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된 내용이기도 한 부분을, 그녀는 결코 잊지 않았다.

자신은 배신자가 될 수 없다.

정우는 그 말에 경멸을 애써 지웠다.

“널 지울 방법을 먼저 알아봐야겠군.”

부르르.

냉정한 정우의 모습에 메아리가 더욱 몸을 말았다.

끼릭.

당장에 열쇠를 꽂아 돌린다.

치떴던 눈이 감기며, 세상이 변했다.

“이지스.”

“…말씀하시오. 왕이여.”

정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지스가 차분히 대꾸했다.

며칠만의 접속.

묻고 싶은 게 한가득이었지만, 그는 입을 다물고 대기했다.

자신을 보는 눈초리에 ‘관찰’이 담겨 있다는 것에 더욱 입을 다물었다.

“내게 종속된 놈이 하나 있다.”

처음으로 밝히는 내용.

이지스는 정우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자신들 역시 엄연히 정우에게 종속된 존재들이기에.

정우는 메아리에 대해 언급했다.

마녀의 존재는 알지만 입장할 수는 없는지 메아리는 회랑에서 볼 수가 없었다.

이지스는 튜토리얼의 보상이라는 부분에서 눈을 빛냈으며, 정우의 성장이 그녀의 성장과 맞물려 있음에 침음을 흘렸다.

“…고대의 계약이오.”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까지 언급했을 때, 이지스는 하나의 책을 꺼내 펼쳤다.

“왕께서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고 있소.”

기생충.

자신에게 와야 할 영양분을 빼앗아 먹는 존재가 되지는 않을지.

경고를 했다지만 또 이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지 염려가 된 것이었다.

이지스가 본 정우는 의지와 능력이 출중했다.

비록 그릇이 깨어졌다는 단점이 있지만 천천히 수복할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일단 메아리라 이름을 붙인 이의 특성은 딱히 기억이 나지 않소.”

마녀의 숲에서 아라크네에게 사로잡힌 후, 이지스는 회랑을 통해 여러 정보를 찾았다.

특히나 종족에 관한 건, 아라크네에게 벗어날 기회를 노리던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종족과 특성.

성질과 능력.

기록을 통해 자력으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기록을 읽었음에도 이지스는 아라크네에 대해 알지 못했다.

비슷한 성질.

비슷한 기록.

그 어떤 것도 찾지 못한 채, 사로잡히기 전의 안배만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지스는 단언할 수 있었다.

메아리의 종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노라고.

“왕의 세계에 존재했던 이인지, 아니면 그 법칙에 의한 존재인지는 잘 모르겠소.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그녀에 대해서는 모르나 왕과 그녀가 맺은 계약에 대해서는 잘 아오.”

고대의 계약은 절대적이었다.

자신의 마력을 거는 계약.

깰 수도, 깨서도 안 되는 절대의 계약.

“고대의 계약의 시초는 간단하오.”

“무엇이지?”

은근히 뜸을 들이기에 정우가 재촉하듯 물었다.

이지스는 눈을 빛냈다.

“‘용’들의 서약. 자신의 심장에 대고 하는 맹세. 그것이 바로 고대의 계약의 시초이오.”

더불어 덧붙였다.

“그렇기에 그 계약은 절대적이오. 용의 심장은… 곧 마력 그 자체이니.”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영혼.”

“맞소. 왕과 나눈 개념으로 보면 그것은 영혼의 서약이나 다름이 없소.”

영혼을 걸고 하는 맹세.

용의 맹세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기에 왕께서 염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소. 그것의 맹세는 절대적이기에.”

이지스는 그렇게 말하며 정우를 주시했다.

현자와 같은 맑은 눈동자가 정우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그건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오.”

* * *

구원의 맹세.

이지스는 ‘그’를 떠올리며 열쇠를 넘겼지만, 막상 열쇠는 정우의 아공간에 있었다.

아라크네의 힘에 의해 결계가 뒤틀리고 마력이 불안전하여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통로가 온전하게 작동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이지스의 바람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가 아니라 정우로 인해.

이지스는 종족의 구원을 바라며 종속의 계약을 맺었다.

형태도 내용도 다르지만.

“결론은 똑같다 이건가?”

“맞소. 다만… 우리와는 달리 그녀의 맹세가 더욱 강력하오.”

“강력해?”

“생각해 보시오. 그녀나 우리나 소멸의 위기를 앞두고 있었던 것은 동일하오.”

“그래서?”

“나는 우리를 구원하는 자를 왕으로 섬기기로 결정했소. 이 맹세는 실제로 적용되어 열쇠의 온전한 소유권이 넘어갔으며 일족의 비기를 조건 없이 알려주었소.”

“…….”

“우리의 본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것 하나만은 분명하오. 왕이 우리를 거미에게서 구해준 순간, 우리의 육신은 이미 구함을 얻었소.”

“정확히 무슨 말이지?”

“왕의 생사 여부는 우리의 생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소리이오.”

“……!”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등장한 이유를 알기에 정우의 눈이 커졌다.

“맞소. 그녀는 다르오. 왕의 성장이 그녀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는 소리는,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왕의 손아귀에 맡겼다는 소리이오. 아시겠소? 그녀는 왕의 생사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소. 왕이 살면 자신도 살고, 왕이 죽으면 자신도 죽소. 당연히 우리의 계약보다 더 윗줄이 아니겠소?”

메시지가 언급할 땐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대의 계약.

그 계약의 진위를 알게 되자 정우는 메아리의 존재가 새롭게 느껴졌다.

단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몸을 의탁한 것인가?

‘……아니. 아니야.’

심각한 상처를 입고 결박당해 있던 그녀를 보았을 때의 욱신거림을 기억했다.

그녀를 구한 건 엄연히 본인의 의지였다.

보상처럼 등장했지만 구하지 않았을 때의 보상도 만만치 않았다.

적립된 보상이라고 해봐야….

‘그러고 보면 메아리는 번외가 아니었나? ……적립된 보상은 뭐였지?’

선택지에서 정우는 통로로 내려가는 걸 선택했다.

적립된 보상을 받고 클리어하는 것보다 더 나은 보상을 받기로 결정했다.

번외의 보상으로 그녀를 얻었다.

그렇다면 그녀를 선택하지 않았을 때의 보상은 무엇이었을까.

‘아공간인가?’

딱히 생각나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공간이 원래의 보상이라면, 마녀 일족을 구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무엇을 보고?

그렇게 따지면 마녀의 일족이 위기를 겪고 있던 던전은 미국에 있었다.

어떻게 갈 줄 알고?

‘……모르겠군.’

갑자기 혼란이 훅 하고 밀려온 느낌이 들어 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배신할 수 없다?”

“용이 왜 멸족한지 아시오?”

용 혹은 드래곤이라고 불리는 그 종족은 지구의 설정대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였다.

무한한 마력.

무한에 가까운 체력.

감히 인간이 따를 수 없을 정도의 지고한 지능까지.

하지만 용은 멸족했다.

배신에 대한 대답 대신 질문이 돌아왔지만, 그의 질문은 대답이나 마찬가지였다.

“배신해서.”

“그 말이 맞소. 용의 심장은 마력의 원천이오. 우리의 기록에 따르면 용은 맹세를 어겼소. 심장은 깨어졌고, 강대함을 잃었소.”

“잠깐. 혹시 심장이 깨어졌다는 말은….”

“왕의 예상대로요. 그릇의 깨어짐. 왕의 현상과 비슷하오.”

“……!”

메아리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새로운 정보.

용.

그리고 자신.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

“용과 왕은 아무런 관계가 없소.”

정우의 생각을 읽듯 이지스가 말했다.

“어떻게 알지?”

“용의 마력은 특별하오. 왕의 그것 또한 대단하지만, 왕은 엄연히 인간이오. 용과 같은 마력 성질을 가지지 않았소.”

“확신하나?”

“확신하오.”

이지스는 책을 펼쳤다.

용의 맹세가 기록되어 있었다.

“…비슷하지 않소?”

“비슷하군.”

“하지만 다르오.”

이지스는 단언했다.

“왕의 언급대로라면 그녀는 용의 맹세보다 더 윗줄의 맹세를 하였소. 성장을 맡겼다는 말은, 마력의 회복을 맡겼다는 말과 같소. 그 말인즉슨…….”

정우가 말을 끊었다.

“영혼을 맡겼다. 그 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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