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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46화 (46/293)

46화

-변화

득이 많은지 실이 많은지 도무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거, 상당히 위험해요.”

힐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족장이 걸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강력한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D급 보스의 저주가 아니었다.

적어도 B급.

혹은 A급 던전에서나 나올 법한 저주.

자신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전문적인 해주사가 필요해요.”

힐러의 말에 이진수는 곧장 자신의 길드로 연락했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가.

자신의 친구가 뒤쪽에서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을 때, 이진수는 정말로 조급해 미칠 지경이었다.

꺼지라고!

평정을 잃은 탓에 위험한 순간이 많았지만 유능한 동료 덕분에 안전히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버겁다고 했지만 연신 구슬땀을 흘리며 상태 이상 해제 스킬을 사용하는 힐러를 본 이진수가 주먹을 쥐었다.

파르르.

“이 팀장.”

김기태는 이진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협회에도 연락했어.”

“아…… 고마워.”

“이거,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문제가 터져서 골치가 아프네.”

저주에 걸릴 줄 알았다면 저주해제 스킬을 가진 사람을 대기시켰을 것이다.

막상 A급 저주를 해제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나았겠지. 이게… 뭔 일인지.’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는 이진수의 표정을 본 김기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진수만큼은 아니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협회장님한테 직접 까이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는 분이라는 걸 잘 알지만,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졌다.

* * *

3년 만에 본 물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크기는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 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본국의 지도국에서 사용하는 마정석에 뒤처지지 않는 수준.

오 박사와의 만족스러운 회의를 끝마친 후 복귀를 위해 복도를 걷던 리 박사가 코트에 양손을 푹 찔러 넣으며 입맛을 다셨다.

“가공하지 않은 게 이 정도라는 게 너무 대단하지 않나.”

“…….”

“나도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동무는 참 입이 무거워.”

곁에 서 있는 군복을 입은 사내는 그저 정면만 바라보며 리 박사 곁에서 걸을 뿐이었다.

“오 박사를 데려갈 순 없겠나?”

“…그럼 전쟁입니다.”

“알아. 아쉬워서 한 말이야.”

오 박사의 연구는 훌륭했다.

남조선에 머물게 하기엔, 너무도 탐이 났다.

위대한 원수(元首)의 결정으로 조국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폐쇄성은 여전했지만 지도부만 살아남는 착취는 사라졌다.

일하라, 그러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할 것 같던 전 수령의 목을 베며 한 말은 모두의 마음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

실제로 ‘리’는 모든 약속을 지켰다.

배 곯는 일이 없어졌고, 노력 여하에 따라 더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민주주의.

누구 하나 언급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민주주의의 길을 걸었다.

그즈음부터 그토록 동경하던 남조선의 문물이 확 퍼졌다.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망설이지 않았다.

수십 년을 사용한 언어를 바꾸고 들어온 말을 배우고 썼다.

강박적으로.

부지불식간에 ‘옛 언어’가 튀어나왔지만, 점점 생각해야 하는 단어가 늘어났다.

리 박사 역시 그때의 시절을 겪은 인물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격변의 시대를 겪었고 승리했으며 성장하여 지금의 자리를 쟁취했다.

그런 그녀였기에 지금의 임무를 맡았다.

3년 전.

휴전선에서 발견된 하나의 물질은 가뜩이나 의미가 없어지던 교전을 강행시켰다.

언론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죽은 이만 수십이었다.

일반인이 아닌.

플레이어가.

남조선에선 협회장 유지석이란 거물이.

조국에선 자신이 임무를 맡아 회의를 진행해서 중재하지 않았다면, 세계 최초로 플레이어 전쟁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쉽긴 하군. 그랬으면 오 박사는 내 휘하가 되었을 텐데.”

“피해가 막심했을 겁니다.”

둘은 누구 하나 조국의 패배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리.

남조선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경배하게 만드는 그와 같은 이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오 박사와 제대로 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을 거다.”

“…….”

호위의 눈동자가 빠르게 리 박사를 보고는 다시 전면으로 향했다.

“영도한 지도자의 명령이 아니었으면 무조건 저걸 가져왔을 거다.”

“압니다.”

“그만큼… 저건 탐이 나.”

리 박사가 입술을 핥았다.

길게 뻗은 혀가 아쉽게 아랫입술을 스쳐 갔다.

안경을 고쳐 쓴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누가 알까.

저 안에 있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피식.

“……나도 모르는걸.”

무려 3년이었다.

3년 동안 남조선의 천재와 자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연구하고 검사한 물건이다.

그럼에도 저 정체불명의 물건은 여전히 자신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3년을 투자하여 알게 된 것이.

마정석보다 더 많은 마력을 품었으며.

‘뿔로 의심된다는 게 전부라는 게 웃긴 일이다. 의심. 그래. 의심….’

확신조차 없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나마 이번에 미국에서 드레이크 사냥에 성공하며 부산물로 심장과 피막, 뿔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대조군조차 만들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이번 방문은 중요했다.

향후 저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기로에 서 있다고나 해야 할까…?

멈칫.

그녀는 생각을 멈췄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호위 역시 걸음을 멈춘 상태였다.

어느새 빼어 든 것인지 검게 칠해진 단검이 두 손에 들려 있었다.

전면을 노려보는 눈이 매섭기 그지없었다.

“…이거, 우리가 너무 쉽게 보였나?”

양손조차 빼지 않는다.

무심한 눈동자로 입가를 비틀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기세가 한층 예리해졌다.

“……정보가 잘못되었군.”

복도의 끝에서 침묵을 뚫고 굵은 음성이 들렸다.

거대한 덩치의 흑인.

등 뒤의 자루를 본 리 박사가 눈을 빛냈다.

“도살자.”

“……!”

리 박사는 놀랍게도 상대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네가 남조선에 있다는 건 이미 보고를 들었다. 날 노릴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리 박사가 천천히 도끼를 양손에 쥐는 도살자를 보았다.

딱.

천장에 닿은 혀가 튕기며 경쾌한 소리가 났다.

쏴아-아!

“판을 깔아줬다. 잡아 와.”

“알겠습니다.”

스프링클러가 터진 것처럼 갑자기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로.

호위가 양손을 늘어트리며 천천히 걸어 나갔다.

마주 다가오는 도살자를 향해.

리 박사는 둘의 모습을 보고는 지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고정도 실제 능력이면 니는 바로 지금 생명이 끊어지는 기야!”

그러며 주머니에서 뺀 손이 뱀처럼 휘어 허공을 붙잡는다.

“……커.”

은신하던 적의 목을 붙잡은 리 박사의 작은 손에서부터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얼굴 전체를 감싸는 물줄기에, 자신만만해하며 접근했던 암살자가 허물어진다.

부러진 팔.

쨍그랑, 소리 나며 나뒹구는 단검.

그 와중에도 공방이 오갔었지만, 리 박사의 눈빛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둘. 아니…… 셋? 안 올 건가? 간나 새끼들. 우리 동무를 다 죽였나?”

외부 경계를 서는 인원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았다.

비밀 유지 때문에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이보다 더 안쪽.

지하 10층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 소란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올라올 거라 생각했다.

오른손이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딱.

손가락을 튕긴다.

천장으로부터 뿜어지던 물이 여럿의 형태로 뭉쳐진다.

“…이 정도면 B급이잖아. 연구원 아니었어?”

도살자에 준하는 덩치의 동남아계열 남성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전면에 나섰다.

이윽고 왜소한 여자가 풍선껌을 불며 등 뒤에서 나타난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

“어떻게, 발견했지?”

결계를 풀며 결계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최근 들어 자신의 능력이 굉장히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정우를 놓쳤을 때부터 눈치를 봐야 하는 이 현실이 그에게는 불만이었다.

때문에 정우에 대한 적의는 나날이 커 가고 있었다.

리 박사가 전투를 시작한 호위와 도살자를 힐끗 본 후 말했다.

“결계군. 이상하네. 네 실력으로는 이 정도의 대규모 결계를 칠 수는 없을 건데….”

리 박사가 결계사를 훑어보았다.

‘도움이 어려울 수 있겠어. 이거… 이런 때라면 안쪽에 고용 간첩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굳이 이 순간을 노렸다면 목표는 명확했다.

‘안쪽을 모를 가능성이 높다. 어느 종간나 새끼가 날 판 거지?’

기분이 역겨웠다.

그래서 안경을 벗은 그녀의 표정은 무덤덤을 넘어 싸늘하게만 식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노리고.

“팔다리 정도만 부숴주지.”

상투적인 협박과 함께 적들이 달려들었다.

* * *

쨍그랑.

머릿속에서 울리는 날카로운 유리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정우는 눈을 떴다.

하얀색 천장.

익숙한 전등에 정우는 쓴웃음을 베어 물었다.

“VIP가 되겠어요.”

“…전담 간호사는 유 대리님이 해주시면 되겠네요.”

“제가요? 싫어요. 여자친구라도 만드세요.”

전 비서라고요, 입을 삐죽인 유 대리가 벨을 눌렀다.

“4일 만에 일어난 것치고는 꽤나 목소리가 밝네요.”

“…4일이요?”

“네.”

유 대리가 대답했을 때였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쾅!

힘을 못 이겨 부서진 문이 옆으로 찌그러져 나뒹굴었다.

그럼에도 문을 연 사람은 개의치 않는다.

“…한, 정우.”

이진수의 음성이 가라앉아 있었다.

“고맙다.”

상황을 짐작한 정우가 인사했다.

“이 미친 새끼가….”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이진수의 얼굴은 밝았다.

협회는 인재 풀이 얕았다.

길드의 대우가 더 좋았기에 길드로 넘어가는 인재가 많았을 뿐더러, 운영자금 대부분을 이직료로 충당하는 시스템 때문에 딱 협회만 놓고 보면 고위급 플레이어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협회에는 모든 길드에 관여할 권리가 있었다.

각성한 모든 플레이어의 이직을 담당하기에 권한도 막강했다.

어느 능력을 가진 사람이 어느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모든 길드가 탐을 내는 대외비였다.

덕분에 협회에선 해주가 가능한 플레이어를 빠른 시간 내에 섭외할 수가 있었다.

저주는 풀렸다.

생각보다 빨리 풀린 저주에 후유증 없이 당장 일어날 것 같았던 정우는 의외로 긴 잠에 빠졌다.

모든 소견엔 이상이 없었다.

“…그랬냐? 고생했네.”

그간의 일을 설명 들으며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대화.

검사를 위해 이동했던 정우가 다시 돌아와 병실 침대에 누웠을 때.

‘마력!’

정우는 잊고 있던 중요한 내용을 뒤늦게 떠올렸다.

급하게 상태창을 열어 성장의 순간을 맛보…….

“…어?”

정우의 음성이 떨렸다.

부랴부랴 기억을 더듬었다.

족장을 죽이는 순간,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력 1.

가뭄의 단비나 다름이 없는 그것을 예상하며 본 상태창 수치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마력 4

“…….”

정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제는 분노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왜….”

짓이기듯 내뱉는 음성이 떨렸다.

왜!

차마 지르지 못한 고함이 속에서 문드러져 나왔다.

좌절감에 무너질 것만 같았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갸웃.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주 작은 외형만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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