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흑마법사
쿠릉-!
지진이 인 것처럼 지면이 요동쳤다.
갑자기 솟구치는 검은 장막.
‘…손?’
검은 손이 자신을 노리고 움켜쥐기에 정우는 마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매직 미사일.
콰콰콰콰!
전면으로 쇄도하는 마법에 검은 손의 일부가 찢어진다.
그 틈으로 몸을 날리던 정우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튀어 나가며 급격히 중심을 무너트려, 다급히 옆으로 굴렀다.
“…….”
치이익.
바닥의 돌이 살짝 녹아내렸다.
‘이 새끼가…….’
생각 이상이었다.
회랑의 기록에도.
협회의 정보에도.
1%의 확률로 등장하는 마법사의 수준은 결코 이 정도가 아니었다.
원거리의 버프야 그럴 일이 없어서 모른다고 쳐도, 그 정도 대규모 버프라면 C급 버퍼도 버거워야 정상이었다.
근데 벌써 몇 번째인가.
‘D급 던전의 보스가 B급 몬스터를 환각으로 만든 것부터가 문제가 있다.’
버프, 환각, 여러 마법까지.
이미 D급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게다가 검은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들이닥치는 마법은, 가슴이 철렁해지는 기습이었다.
‘마력을 보지 못했다면 당했어.’
그 정도로 일격은 예리했다.
‘예상보다 강하다는 게 좋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군.’
어차피 족장을 잡아야 하는 처지.
강한 놈을 잡아서 얻는 이득은 적었다.
남들과는 달리 성장은 없고, D급에서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의 수준은 빤했다.
마정석 역시 양이 많지 않은 사막 지역.
잠깐 고민하던 정우가 희미하게 웃으며.
가각, 쾅!
다크 애로우를 마력을 담은 창으로 쳐 냈다.
창에 얻어맞은 마법이 그렇지 않아도 반파된 집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다.
‘집. 왕궁. 이 배경은 어디일까.’
새삼스레 이곳의 배경에 관심이 가 주변을 힐끗 본 정우가 고개를 들었다.
아랍의 궁전 형태.
그 위의 뻥 뚫린 첨탑의 한 지점을 주시했다.
“…….”
그에게는 시력을 향상시켜 주는 스킬도 없었고, 먼 거리를 볼 능력도 없었지만.
“어디 한번, 붙어 보자.”
어딘지 모르게 시선이 부딪친 것 같아 놈을 향해 경고했다.
저벅.
더 이상 공격이 날아오지 않았다.
욱신거리는 심장의 통증에 정우는 아공간으로 손을 뻗었다.
잡히는 푸른 병.
마력회복포션.
그것을 꿀꺽 마신 정우는 단숨에 차오르는 마력을 느끼며, 손을 빙글 회전시켰다.
“얻어맞았으니.”
우웅!
허공에 구멍이 뻥 뚫린다.
후우-웅!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정우의 마력이 증폭되었다.
그곳을 노리고 쏘아지는 매직 미사일 다발.
한계까지 쏟아낸 마력에 다시 고갈증상이 나타나자 다시 한번 마력회복물약을 마셨다.
“너도 당해야지.”
* * *
우웅!
사막 고블린 족장의 고개가 비틀리듯 돌아갔다.
전에 없던 손바닥만 한 구멍 하나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케-에?
뜬금없는 그것에 의문을 품고 있을 때.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막대한 마력이 물밀 듯 몰려들었다.
기초 마법이지만 증폭되고 응용된 그것의 위력은 어지간한 중급 마법에 비견할 정도였다.
로브 안쪽으로 보이는 앙상한 눈동자가 불꽃을 튀기며 요란하게 일렁였다.
당혹.
예의 앙상한 손이 매직 미사일을 향해 뻗었으나.
중얼거리는 입술은 마법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다물어졌다.
가각, 가가각!
만약을 위해 둘러놓은 방어막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갈려 나갔다.
자칫 깨어질 위기여서 방어막에 마력을 집중하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타닥.
설상가상으로 계단을 오르는 인간의 기척이 뻥 뚫린 나선 통로를 타고 올라왔다.
사막 고블린 족장은 뾰족한 이빨을 부러져라 갈며 힐끗, 자신의 왼손에 들린 물건을 보았다.
이것으로 인해 자신은 강해졌지만.
이건 자신의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기물이었다.
아니, 저주받은 물건.
그럼에도 족장은 이것을 버릴 수가 없었다.
힘이 주는 마약에 취해 버렸기에.
탄탄하던 육체는 바람 빠진 허파처럼 쪼글쪼글해졌고, 두 눈은 침침해져 마력으로 모든 걸 느껴야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잘만 느껴졌다.
지팡이로부터 흘러나오는 마력은 이것으로 끝이 아님을.
자신의 수준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자신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파앙!
기어이 매직 미사일이 방어막을 뚫었다.
다발의 매직 미사일이 사라지고 한 가닥의 매직 미사일만이 남아 닿았지만.
족장의 심장은 치욕으로 벌렁거렸다.
어느 날, 왕궁의 지하 창고에서 발견한 지팡이.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치미는 마력은 족장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네 적을 기다려라. 그리고 죽여라!’
조용하지만 강압적이고, 나지막하지만 거역하기 힘든 지시가 내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몬스터는 힘의 논리로 사는 존재.
더욱 강해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이 없었다.
지팡이의 힘으로 수천의 일족을 제물로 삼아 흑마법을 배웠고.
수백의 친위대를 만들어 ‘적’을 준비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머릿속을 강렬하게 울리는 음성.
죽여라!
족장이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수하들은 전부 사막으로 뛰쳐나가 적과 마주친 상황이었고, 자신은 심각한 탈력감에 헐떡이고 있었다.
버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용한 마법.
족장은 이 지팡이가 자신을 갉아먹으리란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적’을 죽이는 순간, 이 지팡이의 힘을 온전히 취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족장의 눈이 점점 더 붉어진다.
욕망을 이기지 못한 족장의 앙상한 손아귀가, 곧게 뻗은 지팡이를 틀어쥔 채로 불뚝 솟았다.
놓을 수 없다는 집념에 반응하듯 지팡이의 마력이 넘실거리며 족장을 자극했다.
하나의 입구.
일부러 자리 잡은 첨탑의 입구를 주시하며 천천히 들어 올린 족장의 손가락이 이윽고 교차한다.
그 순간, 입구에서 적이 화살처럼 튀어 나왔다.
화르르!
뒤늦게 입구를 가득 채우는 불꽃.
그럼에도 족장은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고, 흉흉한 안광을 더욱 빛낼 뿐이었다.
입구를 막은 것이 아니다.
출구를 막았을 뿐이다.
죽이든가 죽든가.
꽈악!
그런 족장의 결정에 찬성하듯 지팡이가 잘게 울었다.
* * *
등 뒤로 생기는 불길은 검고 차가웠다.
전혀 열감이 느껴지지 않는 불길.
‘닿으면 안 돼.’
그것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정우였지만 본능적으로 그런 판단을 내렸다.
의외로 촘촘하게 이어진 불꽃의 마력이 그의 뇌리에 경종을 울려댔다.
본능은 주효했고, 공격은 실패했다.
삼단창이 막히자마자 정우는 반탄력을 디딤대 삼아 몸을 빙글 회전시켰다.
더불어 한 차례 마력을 증폭시킨다.
정우는 사막 고블린 족장을 잡기 위해 여러 계획을 세웠다.
정보, 장치, 팀원, 공략.
하지만 정우가 가장 공을 들인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콰르르르-!
굉음이 첨탑을 장악했다.
먹구름이 강림한 것처럼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만하게 웃고 있던 족장이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어떻게 여기까지 도달한 건지.
어떻게 종전과 같은 마법을 사용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존재감이 적었던 적의 마력이 한순간에 자신과 비등해졌다.
죽여라.
머릿속에서 떠도는 명령은 방법을 막론하고 상대를 죽이라고 다그쳤지만, 족장은 끝끝내 공격 마법 대신 방어 마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건, 본인의 생명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고블린의 특성이었다.
명령을 이긴 본능.
하지만 이 순간 그 본능은 놈에게 있어서는 씻을 수 없는 패착이 되었다.
쿠웅!
무거워진다.
세상이.
공기가.
컥!
절로 숨이 막힐 정도의 압박감이 자신을 짓눌렀다.
개미를 누르는 손처럼.
방어막은 통하지 않았다.
검은 구는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다.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듯 일대를 장악하고는 아래로 짓누른다.
“그래비티(Gravity).”
비효율의 극치라 극구 말리던 이지스조차 나중엔 감탄을 금치 못하며 승리를 예견했을 정도로 변화된 마법.
몇 배나 강력해진 중력이 족장의 전신을 짓이겼다.
마법을 막기 위해 외부로 돌린 마력은 허무하리만큼 아무 쓸모가 없었다.
무릎이, 팔이, 머리가.
지면에 닿는 부위가 점점 넓어졌다.
부들부들 떠는 족장의 모습이 검은 구 너머로 정우의 눈에 들어왔다.
꿀꺽.
마지막 남은 마력회복물약을 마신 정우의 오른손이 반원을 그렸다.
묵직한 통증이 가슴을 강타했지만 정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넘어간다.’
마력방어막.
말 그대로 마력을 방어하는 하나의 벽을, 정우는 통로를 통해 넘어갈 생각이었다.
방어막을 뚫는 건 지난한 일이었다.
굵은 땀방울이 싸늘하게 뚝 떨어질 정도로 심력 소모가 상당했다.
찌잉!
한 차례 두통이 일었지만 정우는 웃었다.
놈의 머리 위에 생기는 검은 구멍을 보며.
“매직 미사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시동어를 내뱉었다.
통로를 타고 넘어가는 마력 다발.
케-에- 르!
여전히 알 수 없는 의미의 고함을 내뱉는 족장의 머리가 바닥으로 꽂힌다.
첫 발.
콰쾅!
해머처럼 내리치는 매직 미사일의 향연에 족장의 머리가 사정없이 요동쳤다.
스르르.
툭, 데구르르.
검은 구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끝끝내 놓지 않았던 지팡이가 힘 풀린 손아귀에서 벗어나 바닥에 굴렀다.
그 모습을 보니 정우는 불문율인 줄 알면서도 머릿속의 생각을 뇌까릴 수밖에 없었다.
“…해치웠나?”
삼단창을 들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던 정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드넓은 황금빛의 모래사막.
그곳의 마력이 일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리어.”
이 변화를 알고 있는 정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활의 주문이 실패했다.
피식.
쓸데없는 생각에 헛웃음을 켠 정우가 머리를 휘휘 저었다.
“힘들긴 하네….”
제임스 밀러의 마력회복장치가 떠오를 정도로 입이 바짝 말라 있었다.
정우가 아래를 보았다.
처음 족장을 보았을 때, 정우의 시선은 줄곧 지팡이에 꽂혀 있었다.
전투를 해야 하니 주변을 읽었지만.
“…넌 뭔데 이렇게 강력한 존재감을 내뿜는 거냐.”
아이템 상점에서도 이런 물건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아티팩트(Artifacts).’
설마하니 아티팩트를 들고 있을 줄 몰랐던 정우는 눈가를 좁혔다.
흑마법사의 지팡이.
‘저주받은 물건이란 소리인데….’
정우는 머리가 깨져 죽으면서 드러난 족장의 신체를 보았다.
해골이 아닌 게 신기할 정도로 앙상한 몸체.
생명력까지 끌어 마력으로 사용했다는 증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건부터 대여하는 건데….’
협회에 신청해 둔 물건의 대여를 미룬 게 아쉬웠다.
하나같이 저주 계열 저항력이 붙어 있는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후욱.”
정우는 긴 숨을 내뱉었다.
지팡이의 상태를 보고 싶었지만, 느껴지는 마력 자체가 자신의 수준을 완연히 넘어선 물건이었다.
만지면 위험하다.
검은 불꽃을 보았을 때처럼, 정우는 그런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때문에 한 가지 방법을 궁리했다.
지팡이에 손을 뻗으며, 손에 검기를 둘러 마력으로 보호하고.
툭!
재빨리 손으로 건드리며 아공간을 열어 밀어 넣었다.
다행히 지팡이는 아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욱신!
기껏해야 1초.
왼손에 느껴지는 상당한 통증에 이를 부딪치며 앓았다.
손끝이 하나같이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욕설과 함께 왼손을 감싸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첨탑엔 아무것도 없었다.
죽은 족장을 뒤로 한 채 도시를 벗어난 정우는 곧장 일행에게로 달려갔다.
사막이 끝나가는 지점.
갈색의 돌무덤보다 먼저 보이는 번개의 향연은 꽤나 멋있는 장면이었다.
번개 장벽은 대단했다.
자신을 노리느라 혈안이 되어 있던 몬스터를 하나도 흘리지 않았다.
그리고 일행 역시.
유일한 입구로 간 정우의 눈에, 분투하고 있는 일행이 보였다.
씨익.
그 모습을 보던 정우의 눈동자가 그제야 빙글 회전했다.
풀썩 쓰러진 정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혀 있었다.
‘낙인에다 저주라…. 그나마 저주는 금방 해결되겠지?’
이진수의 호들갑을 떠올리며, 정우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