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41화 (41/293)

41화

-유서린

그녀를 칭하는 호칭은 많았다.

천재.

영웅.

일각에서는 성녀라 칭하기도 했으며.

프랑스에서는 뜬금없이 잔다르크의 환생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그만큼 그녀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유서린.”

“다행히 제 이름은 아는 모양이군요.”

다가온 유서린이 악수를 건넸다.

징벌의 처녀.

성기사의 능력을 지닌, 광전사.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능력의 조합은 그녀를 시간을 뛰어넘는 천재로 만들어 주었다.

“모를 리가 있을까요.”

정우는 악수를 받았다.

작은 손.

서늘한 손길에 짧게 악수한 정우가 물었다.

“여긴 무슨 일이신가요?”

유서린이 지그시 그를 주시했다.

잠깐의 침묵.

정우는 그녀의 눈이 자신을 꿰뚫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협회장님께 듣긴 했는데,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요.”

‘태도가 사무적인 건가? 아버지라고 안 하고 협회장이라고 하네.’

“절요?”

“네. ‘미래’가 기대되는 청년이라고 그러시더군요.”

그녀의 말에 정우는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협회장의 고평가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었다.

첫 만남부터 지원까지.

정우는 협회장이 자신을 높게 평가한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다만, 그 평가 중 하나에 ‘아버지’라는 조건이 끼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을 뿐.

“높게 평가해 주시는 거죠.”

“그런가요?”

희미하게 웃는 유서린의 모습에 정우는 살짝 눈길을 피했다.

‘…확실히 예쁘네.’

징벌의 처녀라는 살벌한 코드명과는 달리, 그녀는 전 세계적인 스타였다.

S급 플레이어라는 초월적인 무력.

영웅 중 하나인 한국 협회장의 딸이라는 위치.

더불어 아름다운 외모와 젊은 나이까지.

이슈가 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요?”

정우가 화제를 돌리며 재차 물었다.

“그냥 얼굴을 보러 왔어요.”

“…네?”

예상한 답변이 아니었다.

정우의 눈이 커졌다.

“정우 씨 덕분에 협회장님의 발언권이 조금 세졌거든요.”

그녀의 말을 정우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별 취급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우는 F급 플레이어였다.

알 권한도, 권리도 없는 위치.

“그런 게 있어요.”

유서린은 그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고 말을 돌렸다.

아시아권에서 진행되는 건이 하나 있었다.

이번 테러로 반대 의사를 보내던 일본의 입이 잠시 다물어졌다.

자칫 대혼란으로 치솟을 뻔한 테러였다.

수르트는 그만한 능력도 지니고 있었고 그런 사고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천천히 모든 인원을 죽일 것 같던 그가 발길을 돌린 건, 엄연히 유서린 때문이었다.

공격력도, 치유력도 낮지 않은 그녀라면 자칫 다른 S급이 올 때까지 발이 묶일 수도 있으니까.

그녀가 아니었다면 적어도 회의장에 참석했던 학자들은 모두 전멸했을 터였다.

“세계 유수의 학자들을 모아놓고 S급 플레이어조차 파견하지 않았다고 거센 지탄을 받고 있어요.”

그녀의 뜬금없는 말을 이해한 정우가 침음을 삼켰다.

수르트.

그라면 회의장을 비롯한 일대를 몰살시킬 힘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오싹!

뒤늦게 아찔함을 느낀 정우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요. 그 표정. 잊지 말아요. 그놈들은… 절대 인간이 아니에요.”

정우의 표정을 읽은 유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 역시 동감했다.

싱긋 웃은 유서린이 말을 이었다.

“일본은 그런 덕분에 한국에 부채감을 느끼게 됐어요. 협회장님께선 그 부채감을 적절히 이용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나가고 계시죠.”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군요.”

“그에 따른 보답을 진행했어요.”

보답, 진행?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었던 정우의 머릿속이 밝아졌다.

‘…아, 유 대리님.’

자신이 모든 걸 한 걸로 알고 있던 그녀가 괜스레 불쌍해졌다.

모르는 게 약일지도 몰랐다.

“B 섹터. 대출은 이번 일에 대한 보답이에요.”

그나마 두 건은 온전히 그녀의 힘이었기에 좀 나으려나.

“아, 그리고 사막 고블린 족장에 대한 건도 힘을 좀 썼다고 들었어요. 다만… 확실한 공략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할 거예요.”

한 건이라…….

“A급 대우가 정확하게 말하면 A급 플레이어의 대우에는 조금 부족해, 대여 물품도 A급 플레이어에 준하게 대여해 줬어요.”

“…….”

유서린의 말에 정우는 입을 다물었다.

이 일을 유 대리가 알면 어떨까, 의문이 들었지만.

‘묻자.’

그냥 이 일을 그녀의 공으로 돌리기로 했다.

* * *

진실을 밝히는 것을 끝으로 유서린은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정우는 그제야 문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눴다는 걸 깨달았다.

징벌의 처녀, 유서린.

그녀가 주는 무게감은 결코 유지석 협회장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언제고 나도 저 위치에…….’

현재로서는 까마득한 위치.

하지만 정우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를 구하고, 대출도 갚고…. 가족과 평온하게 살고 싶다.’

그런 희망을 떠올렸을 때.

불현듯 다시금 머릿속을 장악한 건 붉고 불길한 안광이었다.

‘수르트. 그리고 그 눈….’

둘을 없애지 않고서는 그토록 원하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메아리.’

-(*ᴗ͈ˬᴗ͈)ꕤ*.゚

‘…그새 이모티콘이 좀 더 다양해졌네.’

-ヾ(◍’౪`◍)ノ゙♡

정우는 메아리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을 떠올렸다.

속이 터지고 답답해서 머리가 어질거리던 순간.

‘내가 성장해야지만 너도 성장하는 거냐?’

정우는 그녀를 얻을 당시의 문구를 떠올렸다.

자신의 성장을 독촉하며, 자신이 성장해야지만 그녀 역시 본연의 힘을 되찾아간다는 말이 선명했다.

-٩( °ꇴ °)۶

‘좋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무수한 목격자’라는 칭호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메시지는 분명히 그녀가 도움이 될 거라고 설명했다.

정우는 그녀에 대해 상당히 고민을 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다름 아닌 메아리 본인이었다.

얼마 전, 답답한 대화를 끝으로 회랑에 접속하겠다던 정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그녀.

무수한 목격자.

‘목격자’라는 단어의 의미를 떠올린다면.

‘지식. 지식뿐이지.’

그녀가 자신에게 도움을 줄 건 지식이었다.

메아리와 마녀.

‘우연인가. 이상할 정도로 둘의 공통점이 많아.’

멸족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점.

힘을 잃었거나 힘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

지식의 보고를 가지고 있다는 점까지.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대화가 통하면 편할 것 같긴 한데….’

정우는 메아리에 대해 아쉬움과 더불어 애매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최근의 지식은 전부 회랑에서 충당하고 있었다.

그녀의 역할이 애매해진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우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튜토리얼의 숨겨진 선택지에서 발견한 후 느꼈던 그 기이한 감정에 대해서.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고.

어색하면서도 그리운….

“투명 슬라임의 핵과 마정석을 어떻게 쓸 건지 설명이 듣고 싶긴 한데…….”

-(;☉_☉)

“……그래.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이모티콘의 땀을 보자 정우는 어딘지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대학생의 지식을 초등학생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제한된 단어와 제한된 조건으로 그녀 역시 진땀을 빼고 있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그게 네게 도움이 된다는 소리는, 네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걸 의미하겠지.”

-(*●⁰ꈊ⁰●)ノ

“사용할 방법은 확실히 아는 거겠지?”

-(*●⁰ꈊ⁰●)ノ

“설명은 복잡하고.”

-(*●⁰ꈊ⁰●)ノ

“네가 성장하면 설명은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나? 아니면 계속 이모니콘만 사용해야 하나?”

-(*●⁰ꈊ⁰●)ノ

“단답형은 참 대화하기가 편하군.”

-(*●⁰ꈊ⁰●)ノ

“…좋아. 그럼 네가 볼 때 내가 해야 할 건 뭐지?”

정우는 메아리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제임스 밀러를 통해 입장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마녀들과는 달리.

그녀는 엄연히 튜토리얼에서 얻었다.

각성하자마자 생긴 아공간처럼.

게임 같은 현실과 비교하자면.

보상.

‘내게 도움이 될 만한 보상처럼 보이지.’

정우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메아리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기껏해야 감정 표시가 전부인 그것으로.

대체 무엇을? 어떻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성장이 필요했다.

그의 성장은 곧 자신의 성장.

하지만 메아리는 고민했다.

과연 그것으로 좋은가.

이 답답한 사태를 끝낼 생각을 품으면 안 되는 것인가.

정우는 그녀가 더 이상 대답이 없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뭐지?”

훈련은 빼먹지 않았다.

하지만 한계가 느껴졌다.

마력이 성장하지 않는 이상, 지금의 방법은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적은 마력으로도 남들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효율을 보였지만 그뿐이다.

정우의 목적은 언제까지나 하나.

생성시킨 통로를 ‘고정’시키고, 자신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게이트의 생성이 그의 목표이자 목적이었다.

‘일단은 수르트를 이기는 것까지 합쳐서….’

-(ʃ⌣́,⌣́ƪ)

메아리는 진지했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고는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답답한 사태를 끝내기 위해서.

그리고 원론으로 돌아가 정우가 해야 할 것.

-‾͟͟͞(((ꎤˋ⁻̫ˊ)—̳͟͞͞o

어렵지 않은 이모티콘에 정우가 물었다.

“전투?”

-(*●⁰ꈊ⁰●)ノ

‘누구와?’라고 물으려던 정우가 멈칫했다.

어차피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메아리가 원하는 게 성장이라면.

그녀도 알고 자신도 아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사막 고블린 족장.”

-(*●⁰ꈊ⁰●)ノ

“그래. 놈을 잡아야겠군.”

마력 수치.

그것을 상승시켜주는 확실한 방법.

정우는 유 대리에게 전화했다.

“유 대리님.”

“사막 고블린 족장의 던전.”

“무조건 들어갈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준비는.”

“무조건 끝낼 테니까.”

“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나이트 길드 소속의 이진수를 불러줘요. 네. 친구죠.”

“확실해지면… 보고서 쓰는 거 어렵지 않을 거예요.”

“전, 제임스에게 연락하죠.”

전화를 끊은 정우가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제임스 밀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요청대로 진행한다면.

‘막대한 손해를 입겠지. 그럼에도 그는 해줄 거다.’

정우는 그의 손해에 잠시 망설였지만,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제임스 밀러의 목소리는 피곤으로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아직도 연구 중인가요?”

-젠장. 빌어먹게도.

“…천천히 해요.”

-응? 뭐, 부탁이 있는 모양인데?

기가 막히게도 알아차리는 제임스 밀러의 말에 정우는 헛기침을 반복했다.

“제임스.”

-말해.

“꽤 흥미가 돋을 만한 연구가 있는데… 한번 해보실래요?”

-푸흐……. 낚시인 걸 알면서도 낚여야 하나?

“낚여주면 고맙고요.”

-얼마나 재미있는 낚시인지가 중요하지.

그의 말에 정우는 자신의 생각을 풀었다.

나지막한 감탄사.

조금 커진 음성의 질문.

보이지 않는 통화 너머로 그의 리액션이 보이는 듯해 정우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때요? 해보시겠어요?”

-도발까지. 풉. 한번 제대로 낚여주지.

“고마워요. 꼭 이 빚은 갚을게요.”

-덧씌우기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청구는 나중에 하지.

흔쾌히 승낙하며 전화를 끊는 제임스 밀러.

정우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제 진실로.

성장의 기로에 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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