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40화 (40/293)

40화

-지원

부글부글.

삼단창에 꿰뚫린 검은 슬라임의 동체가 이리저리 뒤틀렸다.

물리 면역을 발동시키려고 할 때면 정우의 마법이 적중했다.

꽤나 커다랗던 덩치가 점점 잘려 나가는 것처럼 점차 작아져만 갔다.

고작해야 창을 몸속에 꽂은 것으로, 검은 슬라임의 능력 대부분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파앙!

이윽고 마력을 소모한 검은 슬라임이 폭발하듯 터졌다.

볼에 달라붙은 점액질을 닦아낸 정우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은 성장을 재촉하는 동력원이었다.

[ 투명 슬라임의 핵 ]

투명 슬라임의 마력이 응집된 핵이다.

“핵이라고 해서 떼어낸다고 바로 죽진 않는군.”

병을 흔든 정우의 시선이 핵으로 향했다.

“이거만 파괴하면…….”

삼단창에 검기를 불어넣던 정우의 눈에 무언가 반짝이는 게 들어왔다.

검은 슬라임이 죽은 자리였다.

바닥에 퍼져 버린 점액질과는 달리 또렷한 결정체를 이루고 있는 그것.

“…마정석?”

어린아이 주먹 크기만 한 마정석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슬라임 결정체 ]

어디에 사용하는 건지 밝혀진 게 없다.

집어 들자 나타나는 무성의한 문구.

그때.

최근 들어 까맣게 잊고 있던 한 존재가 눈을 빛냈다.

-(ノ・∀・)ノ

“…메아리?”

* * *

콰드드득!

던전의 입구인 게이트가 무너지는 장면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었다.

갑자기 생긴 허공의 싱크홀이 시간을 역행한 것처럼 덩치를 줄여 가며 기어이 하나의 점이 되었다가 소멸한다.

협회 직원은 게이트를 보다가 힐끗, 슬라임의 던전을 홀로 공략하고 나온 이의 등을 보았다.

“F급이라고 해도 솔로잉인데… 왜 지금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넌 또 무슨 헛소리냐?”

“깜짝이야. 아, 놀랐잖아요.”

“농땡이 피고 있었냐? 왜 놀라? 놀라긴.”

선임의 등장에 놀란 직원이 가슴을 쓸었다.

“모든 서류 작성했냐?”

“네. 공략 완료 처리했습니다. 유아영 대리님이 협회 직원이라 시간이 확 줄었어요. 그나저나 슬라임 던전은 D급도 꺼리는 장소인데 대단하네요.”

“얻는 게 없어서 D급이 꺼리는 거지, 그 정도로 어렵지는 않다더라.”

“…그런가요?”

“그래도 저 사람은 좀 애매한 것 같네.”

“누구요? 한정우요?”

“그래. …어라? 너 혹시 저 사람 누군지 모르냐?”

“……누군데요?”

“이 우매한 중생 같으니라고. 너 왕따야? 소식이 왜 이렇게 늦어?”

선임의 말에 직원이 옆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이잖아. 트레이닝 센터 사건.”

“…그… 결계사요?”

“그래.”

“……아. 와아! 완전 루키네요.”

“루키지. 게다가 듣기로는 각성도 하기 전에 빌런을 잡았다는 소문이 있어.”

“…그게 말이 돼……, 어? 혹시 그거 예전에 그 사건 아니에요?”

“아는구나? 맞아. 그거. 아마 저 사람 이야기일걸?”

“와아…. 천재네요.”

“천재라. 그럴 수도 있겠네.”

선임이 담배를 물었다.

뿌연 연기를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 말고도 사건이 많은가 보더라. 알음알음 들리는 소문이 심상치 않아. 요주의 인물이긴 한데… 신기한 건 문제를 직접 만들지는 않는다는 거지. 큰 사건이 따라온다고 해야 할까?”

“코난 같은 인물이군요.”

“푸흐. 그거 말 된다.”

선임이 낄낄댔다.

“협회 높은 분이 콕 집어서 밀어준다는 말도 있는데… 협회 직원이 딱 붙어 있는 거 보니까 맞는 말인 거 같네.”

“누굴까요?”

“내가 아나. 아무튼 트레이닝 센터 사건 때문인지, 그날을 기점으로 잔챙이들이 많아졌으니까 체포조만 바쁘지.”

“으음.”

“그리고 이번에 잡힌 잔챙이들이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

“이상한 말이요?”

“‘누군가’에게 현상금을 걸었다는 거야.”

“…현상금?”

“그래. 근데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저 사람인 거 같아.”

선임의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직원이 실소하듯 웃었다.

“에이, 말이 안 되잖아요.”

F급.

빌런을 잡은 전적도.

빌런과 싸운 전적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플레이어 세계의 등급은 쉽게 뛰어넘기 어려운 높은 허들이었다.

장대라도 들고 있지 않은 이상, 아무렇지 않게 등급을 넘어서는 능력을 보이는 이들은 없다.

만약 그런 장대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F급에서 빌빌거릴 리가 없었다.

“솔로잉이 대단하긴 한데…… 애매하네.”

선임이 담배를 물며 혀를 찼다.

“왜요?”

“야. 아무리 여러 사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F급 플레이어에게 현상금이 붙는 게 말이 되냐?”

“……안 되죠?”

직원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현상금이라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자에게 붙는 것이다.

F급 플레이어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본인들에게 해가 될 정도로 대단하지 않을 터.

애당초 현상금이라는 말 자체가 오히려 의아할 정도였다.

“근데 붙었어. 아마 우리가 모르는 사건이 더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음…….”

그 즈음해서 직원도 흥미로운 눈치를 보였다.

“그리고 일본에서 뭔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거, 간만에 되게 궁금하네.”

“일본이라…… 아, 그러고 보면 저 일본 협회에 사카모토라고 아는 사람이 있거든요. 한번 연락해 볼까요?”

“그래? 아, 씨. 궁금한데 한 번 질러봐?”

선임이 그렇게 턱을 쓸며 고민에 빠졌을 때.

돌연 직원의 눈이 커졌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거 안 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

생각에 잠겼던 선임의 눈이 커지며 고개가 획 돌아갔다.

“…하, 한정우?”

“일본 협회에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

‘뭔 일이 있긴 있다!’

선임은 정우의 말에서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열지 못했다.

던전 관리부에서 근무하며 본 플레이어의 수만 해도 어지간한 소도시의 인원에 준할 정도였다.

던전은 많았고, 공략은 쉴 틈 없이 돌아갔으니까.

F급부터 A급까지.

선임이 본 인원은 많았다.

개중에는 사인을 받고 싶을 정도로 유명한 이들도 있었고, 능력을 인정받아 유명 길드에 스카우트되어 이슈가 된 이들도 있었다.

능력만 놓고 보면 눈앞의 정우보다도 더 뛰어난 이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게 F급이라고?’

존재감이 달랐다.

무덤덤한 표정.

충분히 예의를 지키는 움직임에도 어딘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휘휘.

고개를 살짝 저은 선임이 정우의 뒤편에서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유 대리와 눈을 마주치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폭탄이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 선임은 고개를 저었다.

“마, 말… 안 할, 겁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정우의 말에 고개를 주억인 선임과 직원이 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어차피 시간문제 아니었어요?”

표정을 풀며 유 대리가 물었다.

정우의 장단에 맞춰주긴 했지만 이유를 모르겠다는 투였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문제겠죠. 딱히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언제고 일본의 테러는 만천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미 수르트가 일본의 테러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만 정우는 사사키의 말을 믿는 것이다.

“그가 잡음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말을 했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모르겠지만, 굳이 파겠다는 걸 권장할 순 없죠.”

“오히려 그 태도가 한정우 씨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할지도 모르는데요?”

유 대리의 질문은 당연했다.

방금의 모습은 한정우 답지 않았으니까.

“유 대리님.”

“네.”

“저에 대해 직원들이 관심을 가지는 걸 막아주세요.”

“……왜죠?”

얼핏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유 대리에게 정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어조엔 조금의 미소도 감돌지 않았다.

“위험해질 것 같으니까요. 저들이.”

“……아!”

* * *

수르트와 붐의 관계는 유명했다.

적어도 각국의 협회와 길드의 고위층에게는 흔한 이야기였다.

재능 있는 이를 잡아먹은 전적이 있는 수르트.

각 길드와 협회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우던 인재를 빼앗긴 적이 있기 때문에, 고위층에게 있어서 수르트는 생사대적이나 다를 바가 없는 존재였다.

제임스 밀러도 수르트에 대해 원한이 있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 하나가 놈의 아가리에 뜯겨 죽었기 때문이다.

당시를 떠올린 제임스 밀러의 표정은 평소의 유머러스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유 대리에게서 받은 간략한 자료에는 당시의 개략적인 상황과 빌어먹을 낙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몬스터의 피로 목욕을 하고, 갑작스러운 힘에 도취된 어리석은 인간과 싸우고.

지친 낯빛의 육신을 이끌고 모인 바에서 투박한 잔을 부딪치며 술을 마실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친구.

“…….”

이제는 흐릿한 친구의 얼굴 위로 정우의 얼굴이 덧씌워졌다.

‘젠장…….’

제임스 밀러는 상당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의 질문에 닥터 브라운을 소개해 준 것도.

닥터 브라운을 만나도록 도와준 것도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맥없이 당하지 않아.”

당시의 수르트는 지금처럼 범접 불가의 능력을 지니지 않았었다.

그저 남들보다 반 발짝 앞섰을 뿐.

작은 땅의 거인, 유지석과 마찬가지로 선두에 선 이에 불과했었다.

언제고 손만 뻗으면 잡아 끌어당길 수 있는 위치.

그럼에도 제임스 밀러는 친구를 잃었다.

제임스 밀러는 거대 기업의 수장이 되었고, 전 세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A급 플레이어로서 준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당시보다 더한 격차가 생겨 있었다.

수르트, 레오나르도와 비교하자면.

그럼에도 제임스 밀러는 정우를 놓칠 수 없었다.

던전의 법칙.

그것을 넘보는 건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다각도로 연구했고 나름의 성과도 얻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올랐지만, 그럴수록 갈증은 심해졌다.

그러던 찰나, 나타난 이가 바로 정우였다.

성장하는 육체와 달리 성장하지 않는 마력.

그간의 법칙을 송두리째 무너트리는, 몬스터를 끌어당기는 능력.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오갔음에도 발견하지 못한 특이한 장소를 발견하는 운까지.

‘꽤 괜찮은 친구이기도 하고.’

제임스 밀러는 정우가 마음에 들었다.

연구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꽤나 괜찮은 상대라는 판단이 들었다.

때문에 그는, 계약보다 더한 지원을 결심했다.

그에게 걸린 정체불명의 제약을 풀고.

“놈의 목을 자를 단두대로 만들어주지.”

그렇게 제임스 밀러가 전의를 불태우는 순간에.

정우의 전의는 빠르게 식어 가고 있었다.

“…때려치우자.”

* * *

여러 고민 끝에 정우는 이렇게 말했다.

“아쉽게도 투명 슬라임은 없더군요.”

닥터 브라운은 그런 정우에게 여러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렇군. 하기야 보통의 방법으로는 조우도 어려운 몬스터이니, 한 번에 만났다면 복권이라도 긁어 보라고 했을 거네.”

농담 섞인 투로 다음을 기약할 뿐이었다.

통화를 끝낸 정우에게 메아리가 말을 건넸다.

-( ง ᵒ̌ ∽ᵒ̌)ง⁼³₌₃

“…널 믿어도 되는 거냐?”

-ᕕ(ꐦ°᷄д°᷅)ᕗ

“그래. 믿어보지.”

오래된 이모티콘 설명집까지 구매하여 준비를 끝낸 정우는, 메아리와 대화를 시도했다.

슬라임의 던전에서 얻은 건 두 가지였다.

투명 슬라임의 핵.

슬라임의 결정체.

처음 건 객체가 정해져 있었고, 다음 건 종족 전체를 통틀어 명시하고 있었다.

딱 봐도 후자가 더 귀중해 보였다.

결정체는 엄연히 정우에게 소유권이 있었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좋은 습득물.

특히나 아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정우에게, 습득물 보고는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에 불과했다.

닥터 브라운에게 핵을 건네어 연구를 맡기고 본인은 결정체에 대해 연구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메아리는 핵을 넘기는 걸 반대했다.

소유권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저 유예에 가깝다는 게 다를 뿐, 어쨌든 당장의 진행은 만류하는 투였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사정을 들어야 하는 순간.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해도, 메아리의 말을 이해하는 건 어려웠다.

애당초 이모티콘은 기분을 여러 문자로 조합해서 나타내는 수준에 불과했다.

정확한 문자를 표현하기엔,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있었다.

특히나 설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라리 듣고 반응하는 게 메아리였으면 좋았을, 반대의 상황에 정우는 속이 터져 나갔다.

“차라리 회랑에 가서 이지스에게 묻는 게 빠르겠다.”

-٩(ˊᗜˋ*)و

“…그러라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한 소리가 그간의 설명 중 하나라는 것에 정우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넌 나와 시야를 공유하는 건가? 아니면… 어떤 체계인 거지? 회랑을 아는 걸 보면 일단 다 아는 것 같은데.”

새삼스럽게 메아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지만, 답답한 반응에 정우는 항복했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후일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정우는 결정체를 만지작거렸다.

당장 회랑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할 게 많았다.

간만의 한국은 여전히 바빴으며, 세계에서 가장 바쁜 민족답게 할 일이 넘쳐났다.

정우 역시 짧은 휴식을 쪼개어 메아리와 대화를 나눴을 뿐.

일본에서의 일 때문에 나눌 말이 많았다.

딸깍.

문을 열고 들어온 이의 얼굴을 본 정우의 표정이 애매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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