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39화 (39/293)

39화

-슬라임 던전

“1인 던전이요?”

1인 던전의 위험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재차 진입했던 아라크네의 미궁과 같은 변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혼자서 다수의 능력을 발휘해야 했기에 난이도가 상승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공략 인원을 찾고 있대요.”

특히나 슬라임의 경우.

“마법적 능력과 물리적인 능력까지 겸비해야 하는데… 흔치 않겠군요.”

“맞아요. 그래서 아이템이나 아티팩트가 있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F급 던전에서 그런 아이템을 들고 가는 건 리스크가 있죠.”

슬라임의 특성 때문이다.

모든 걸 흡수하거나 녹이는 그 성질은 아이템에도 통용된다.

때문에 슬라임을 잡아 쓰레기를 처리하자는 안건이 언제고 활발했던 때가 있었지만, 막상 잡아 온 슬라임은 ‘마력’이 가미되어 있지 않은 물건엔 관심이 없었다.

“죽기라도 하면 아이템만 잃어버리는 셈이군요.”

“맞아요. 얻는 것보다 귀찮은 게 많으니까 나름대로 우대를 해줘도 플레이어가 관심이 없어요.”

“협회 직원도요?”

“협회 소속 플레이어라고 해서 성장에 무덤덤한 건 아니니까요. 때문에 지금 던전 브레이크 직전까지 도달했나 봐요.”

“그래도 다행이군요. 제 목적이 1인 던전이라서.”

“…이번엔 넘기는 게 어때요?”

모든 던전은 던전 브레이크 직전이 가장 위험하다.

폭발 직전까지 다다른 마력.

그것에 영향을 받은 몬스터의 전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하지만 정우는 오히려 반가웠다.

마력이 폭증했다면, 이변이 생겼을 확률이 높았다.

투명 슬라임.

‘놈을 찾을 확률이 높겠군.’

“에휴. 할 수 없죠. 그럼 협회 보관실부터 가실 거죠?”

“통과됐나요?”

붐에게 당한 이후 잃었던 정신을 차린 정우는 성장을 다짐하며 유 대리에게 여러 가지를 부탁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협회의 물품 보관실에서 여러 물건을 대여하는 거였다.

협회장이 부여한 A급 대우.

그 여러 혜택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협회에서 수집해 놓은 여러 물품을 일정 기간 동안 대여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유 대리는 정우의 요청에 따라 보관실의 물품 대여를 요청했고, 간당간당하게 혜택의 한계점까지 대여에 성공했다.

“신성력이 깃든 펜던트. 성처녀의 반지. 성기사의 부츠. 간당간당했어요.”

저주저항력이 붙어 있는 물건들.

제물의 낙인을 신경 쓴 정우는 자신의 괴상한 성장이 혹여나 그것에 영향을 줄까 봐 저주 저항부터 신경을 썼다.

“다른 건요?”

“…이건 더 힘들었는데.”

“네. 잘했어요.”

“…기분이 나쁜 건 기분 탓인가요?”

“네.”

“에휴. 마음이 넓은 제가 이해하고 넘어가야죠. 아무튼 그것도 통과됐어요.”

“…통과됐어요?”

“왜 한정우 씨가 더 놀라는 건데요?”

“그야.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니까요.”

“가능하더라고요. 제임스 밀러의 계약을 담보로 잡아 대출을 최대한 당겼어요. 이삿날도 잡았고, 인테리어는 크게 손 볼 일이 없을 것 같아 하자 보수만 신경 썼어요. 협회와 주로 협력하는 업체에 요청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예요. 이제 남은 건 한정우 씨 문제뿐이죠.”

다다다 이어지는 유 대리의 말에 정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설마 추가 대출이 나올 줄이야.

이미 한껏 나온 대출을 제대로 갚지도 못했는데, 추가 대출이 나왔다.

“연락드려야겠군요.”

“이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사하냐고 타박이나 안 당하면 좋겠네요.”

“B 섹터로 가는 건데… 나쁠 건 전혀 없죠.”

과거 종로에 위치한 B 섹터를 떠올린 정우의 표정에 감격이 어렸다.

아버지가 계신 G-00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지만, 어머니와 정희는 한국에서 제일 안전해질 터였다.

아래로는 나이트 길드가.

위로는 또 다른 3대 길드 중 하나인 ‘화랑’ 길드가.

좌우로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중소 길드의 본사가 무더기로 뭉쳐 있었다.

격변의 시대에 파괴된 고층 빌딩 지대 대신 각 길드의 가족들이 모여 살기 시작해 완성된 B 섹터는, 협회에서 만든 A 섹터보다도 더 안전한 공간이었다.

그런 B 섹터에 가족을 둔다.

정우는 그것만으로도 모든 걸 이룬 것처럼 만족감이 들었다.

“나머지 하나도… 성공했어요.”

“……!”

만족감에 들떠 있던 정우의 눈이 부릅떠진다.

“어떻게요?”

“잘요.”

유 대리가 헤실 웃었다.

“사막 고블린 족장이 나오는 던전. 맞죠?”

“맞아요!”

정우가 반색하며 외쳤다.

“구했어요. 슬라임 던전 뒤에 바로 입장할 수 있도록, 대기까지 착실하게 걸어두었단 말씀!”

“……유 대리님!”

“그렇게 감격한 표정 지을 필요 없어요. 공략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오지 않으면, 예약은 취소될 테니까요.”

“걱정 마세요.”

정우의 표정을 본 유 대리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그 일 이후 굉장히 분위기가 무거워졌었는데, 원래 표정을 되찾아서 다행이에요.”

“…….”

그녀의 말에 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졌다.

좋은 소식이 이어진다.

무거운 사실과 마음은, 언제고 달고 살 수만은 없는 법.

피식 웃은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그럼… 얼른 자요. 내일 바로 보관실부터 가죠.”

유 대리가 손을 흔들며 방을 벗어났다.

일 처리를 보니 내일 곧장 한국으로 떠날 수 있도록 모든 처리가 끝난 게 분명해 보였다.

새삼스레 유 대리의 능력이 대단해 보였다.

평소처럼 회랑에 접속하여 슬라임에 대한 기록을 열람한 정우가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을 때.

“던전 브레이크 직전입니다. 조금 더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

정우는 슬라임의 던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 * *

‘염동(念動).’

정우의 손짓에 공처럼 쏘아지던 회색 슬라임의 방향이 뒤틀렸다.

‘쓸 만해.’

능력의 수준이 낮은 건 흠이었지만, 그런 걸 차치하더라도 괜찮은 건 사실이었다.

파앙!

튜토리얼의 관문이 생각날 정도로, 슬라임의 전투는 체계적이었다.

수일은 굶주린 들개처럼 막무가내로 달려들던 여타 몬스터들과는 다른 행보였다.

몸을 비틀며 파란색 슬라임 하나를 삼단창으로 후려진 정우의 양손에서 우웅, 진동하며 생겨난 화살 두 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퍼펑, 퍼퍼펑!

폭죽이 터지듯 형형색색의 슬라임이 폭발하며 소멸한다.

색색의 점액질이 바닥에 질퍽 남은 것만이 놈들의 유일한 흔적이었다.

부르르!

회색 슬라임이 몸을 떨며 다시 쏘아진다.

‘물리 면역’의 능력을 지닌 회색 슬라임은 물리적인 공격엔 조금의 해도 입지 않았다.

그에 반해 파란색 슬라임은 ‘마법 면역’이어서, 마법적인 능력에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서로 상반된 성질을 가진 놈들이 방어를 담당하고, 각양각색의 슬라임들이 색에 따른 마법을 사용하니 꽤나 골치가 아팠다.

원래라면 그래야 했다.

‘염동의 효과가 좋다.’

여러 골치 아픈 면모가 있는 슬라임이지만 이동 속도만큼은 처참할 정도로 떨어졌다.

덕분에 정우는 차분히 슬라임들을 공략할 수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를 앞둔 던전인 만큼 입구에 몰려든 슬라임 때문에 곤욕스러운 순간이 있었지만, 정신없이 사냥한 끝에 정우는 여유를 되찾았다.

“예상한 대로군.”

회랑은 마치 답안지와 같았다.

특히나 몬스터의 습성과 공략법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자료보다도 더 정확했다.

덕분에 정우는 슬라임의 공략법을 고민했고, 지닌 능력을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염동으로.

“확실히 염동을 성장시킬 필요도 있어.”

정우는 땀을 닦으며 아공간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잠깐의 휴식.

동굴 바닥에 앉은 정우는 움직임을 최소화한 채 최대한 마력 회복에 집중했다.

필요에 따라 잠시 물러나며 공략에 집중한 결과.

“보스라…….”

정우는 갑작스럽게 마력이 증폭되는 공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슬라임의 던전은 핵이 존재하는 던전이었다.

그 증거로 여태껏 등장했던 퀘스트가 없었다.

일회성 던전.

핵을 공략하면 파괴되어 버리는 그런 종류의 던전이었다.

“제일 흔한 던전을 이제야 경험하네.”

어딘지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 정우가 한 차례 몸을 풀었다.

자신을 공격하던 슬라임의 체계적인 움직임을 떠올렸다.

딱히 객체 구분이 없는 슬라임의 경우 색에 따라 능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나의 모체에서 분열된 존재라 봐야 옳다.

특히나 폐쇄지역에서의 슬라임은 특이한 능력을 개화하는데, 바로 기억 전달. 혹은 경험 전달이라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모체’는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여 점점 적절한 대응을 하게 된다. 이러한 능력을 인위적으로 연구한 청탑의…….

보스.

“모체라. 재미있는 성질이야.”

정우는 흥미가 생겼다.

확실히 놈들은 자신에게 대응하듯 보다 체계적인 움직임으로 공격을 일삼았다.

하지만 놈들의 대응보다도 정우의 성장이 더욱 빨랐다.

‘낙인의 효과인가?’

능력치의 변화는 없었지만 움직임이 달랐다.

육체의 능력을 한계까지 뽑아내듯 한껏 나아진 움직임으로, 정우는 놈들의 공격을 훈련 삼아 성장했다.

스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직 미사일과 검기도 보다 자연스러워졌으며.

염동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방향과 강도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력만 받쳐준다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능력이었다.

“후우.”

욱신거렸던 심장 어름의 통증이 가라앉자 정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름대로 준비를 끝냈다.

‘투명 슬라임을 발견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마력을 보는 눈으로도 감지하지 못했다면, 투명 슬라임은 없는 것이었다.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동굴의 울퉁불퉁한 표면이 일순간 석공이 다듬은 듯 반듯해진다.

슬라임의 체액이 돌을 녹이고 평평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무언가가.

천장에서부터 지면까지, 나선형으로 뻗어 내려오는, 검고 긴 기둥 사이로 보이는 은은한 발광체를 지키고 있었다.

‘보스가 투명 슬라임이라니!’

정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마력’으로 감지될 뿐.

마력 감지 능력이 없다면 보지 못했을 정도로, 투명 슬라임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제자리에서 우물거리는 듯한 모양새만이 정우의 눈에 잡혔다.

그와 동시에 정우의 손이 움직인다.

아공간에서 작은 병을 꺼내어 손에 쥔 채로 손바닥을 빙글 돌렸다.

손바닥 사이로 드러나는 작은 구멍.

‘지금!’

정우의 눈이 반짝였다.

통로를 타고 넘어간 작은 병이 투명 슬라임의 마력이 밀집된 구간에 안착한다.

울컥!

미약한 마력의 이동이 느껴지는 순간.

바닥에 창을 꽂은 정우의 반대 손이 통로로 향했다.

아공간의 물건을 거머쥘 때처럼.

통로를 넘어간 손이 투명한 마력을 머금은 병을 틀어쥐었다.

뿌드득!

그와 동시에 들리는 섬뜩한 소음.

투명한 물에 검은 잉크를 한 방울 떨어트린 것처럼.

투명한 그것에 울퉁불퉁한 테두리가 검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파앗!

테두리의 검은 부분이 투명한 몸을 가득 채운 건, 정우가 손을 빼낸 바로 직후였다.

“……검은 슬라임.”

마법 면역.

물리 면역.

“양쪽 다 면역에 가까운… 공략 불가의 몬스터.”

투명한 몸체를 버린 검은 슬라임은 기척이 없던 때와는 달랐다.

흉흉할 정도의 존재감을 내뿜으며, 상대를 말살하려는 의지를 여과 없이 내비쳤다.

가히 보스 몬스터에 어울리는 위용.

쩌억 벌어지는 틈새가 마치 포효하는 입처럼 보여, 정우는 눈가를 좁혔다.

여러 색이 한 곳에 섞이면 검은색이 되는 것처럼, 검은 슬라임은 여태껏 만난 모든 슬라임의 능력을 다룰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위험했지만.

‘공략법은 있다.’

당연하게도 무적은 아니었다.

놈의 능력은 일종의 스위치 형태였다.

물리 공격을 받았을 땐 물리 면역을.

마법 공격을 받았을 땐 마법 면역을.

즉, 스위치 하기 전에 공격을 이을 수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공략이 가능했다.

아니면 압도적인 위력으로 압살하든가.

다행히 정우는 첫 번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마녀의 비기.

통로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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