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영혼
“마력은 힘이오.”
다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이지스의 말은 정우에게 큰 울림이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공명처럼.
“그리고 일각에선 마력을, 영혼이라고 보오.”
“…영, 혼?”
“마력의 힘은 각각 다르오. 같은 건 하나도 없고, 비슷할 뿐이오. 그건 영혼의 성질과도 같은 바가 있소. 때문에 마력을 영혼의 힘이라고 보는 이가 있소. 소수의 전문가일 뿐이지만….”
정우는 그 소수에 마녀가 포함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명은 마력의 증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오. 영혼의 울림이며, 힘에 영혼을 깃들게 하는 작업과 비슷하오. 정확하게 설명하기에는… 왕과 우리의 언어가 매우 다르기에 아쉬울 따름이오.”
이지스는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마치 수학 문제의 공식을 설명하듯, 그것에 대한 이해를 바랐다.
그 뒤엔 여러 응용 문제조차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미 그가 영혼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을 때부터.
‘영혼.’
혼자만의 심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모든 플레이어는 적성에 맞는 직업으로 각성한다.
처음 듣는 직업도.
흔해 빠진 직업도 있다.
같은 스킬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능력차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거나.
효율이 다르다.
더불어 비슷한 능력이라 하더라도 스킬의 이름이 다르다.
다르다.
‘다르다…!’
마력이라는 것은 상태창에 수치로 존재한다.
그렇게 따진다면, 마력이라는 보이지 않았던 힘을 특정할 수 있는 무슨 장치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 수치는 무엇일까.
플레이어조차 마력 수치 외의 힘을 인정한다.
마력 효율.
마력 증폭.
마력 컨트롤.
그 외에도 여러 외부적인 요인에 이름을 붙여 인정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근력, 민첩, 체력 따위는 수치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반영된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근력 10끼리는 결국, 의지의 차이일 뿐, 자체만 놓고 보면 유의미한 차이를 찾는 건 어려웠다.
유독.
‘마력에서만 그렇다.’
마력만이 달랐다.
그게 영혼이라면?
‘여러 능력과 시체를 다루는 힘도 등장한 마당에 영혼을 부정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어.’
영혼은 존재한다.
이전까지는 막연하게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대했던 영혼이라는 단어가 훅하고 일상에 젖어 들었다.
녹아들었다.
자연스럽게.
‘인지되었다.’
모든 건 마력이 인지되고 난 이후.
몬스터가 등장하고, 놈들의 천적인 플레이어가 등장한 이후.
영혼이라는 단어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신기루 격인 단어가 아닌, 실존하는 과학과도 같은 존재로 격상해 버렸다.
‘격상? 격하? 모르겠어, 하지만 이건 하나 알겠어.’
플레이어는 모두가 같지 않다.
아니, 모든 마력은 동일한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영혼.
정우는 결국 마력이란 영혼의 힘이라는 이지스의 말에 동의했다.
영혼을 또렷하게 할수록 마력의 힘은 강해진다.
또렷?
정우는 이지스가 왜 ‘단어’를 놓고 아쉬움을 표했는지 이해했다.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더 자세하고 상세하며, 정확한 표현이 있을 것만 같은데도 머릿속에서 헝클어져 아쉽기만 했다.
그럼에도 정리되는 하나의 결론.
‘나의 그릇.’
마력이 영혼의 힘이라면, 이지스가 말하는 그릇이란.
“…영혼. 내 영혼이 찢어진 거다.”
“……!”
정우의 뇌까리는 혼잣말을 들은 이지스의 눈이 커졌다.
‘설마 이해했나? 설마… 수백 년에 걸쳐 증명하고 있는, 그 개념을?’
* * *
하나의 이해.
하지만 그 작은 도약이 세상의 눈높이를 바꾸는 법이었다.
영혼이라는 개념을 이해한 순간.
정우는 한 걸음 내디뎠다.
어디를?
그렇게 묻는다면 정확하게 답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세계는 분명히 확장되었다.
“깨진 그릇이라는 개념보다는 영혼이라는 개념을 먼저 설명하지 그랬어?”
정우의 핀잔에 이지스가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걸 그랬소. 진작. 진작에….”
“방향을 다시 잡아야겠어.”
그릇의 수복 방법을 찾으려 고민하던 정우였다.
그 역시 맞는 말이었지만, 정우는 영혼의 수복이라는 단어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영혼이라면.
‘플레이어들에게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으니까.’
“이지스.”
“…말하시오.”
“영혼에 관련된 지식을 얻고 싶어.”
“당연히 봐야 하지 않겠소? 이리 오시오.”
길게 뻗은 복도.
정우는 그곳을 천천히 걸었다.
정우의 걸음에 따라 책장이 생겨나고, 책이 꽂히더니.
등 뒤로 사라진다.
정우는 그것이 아쉬워 언제고 이 모든 지식을 탐닉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지스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정우는 눈앞에 있는 것이 영혼과 관련된 지식이 가득한 책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지스가 걸음을 멈춘다.
목표로 한 장소.
천천히 돌아보는 이지스의 얼굴이 일순간 흐려진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구려. 왕의 세계에서 정보를 얻을 것 아니오. 몇 번이나 왕에 대해 언급했소만….”
이지스의 흐려지는 음성을 끝으로 정우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번엔 진정으로 궁금하오.”
아련한 느낌의 말을 되뇐 정우가 중얼거렸다.
“나 역시!”
* * *
“유 대리님.”
“무슨 일이에요? 그, 그건 알아본다니까요? …아니면 또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호들갑스럽게 고개를 쭉 내밀어 자신을 살피는 유 대리를 보며 정우가 말했다.
“영혼과 관련된 직업. 능력. 알 수 있을까요?”
“영혼이요?”
“네. 영혼.”
정우의 표정을 다시 본 유 대리가 안도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건 없죠.”
빌런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는 제 능력을 협회에 보고한다.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듯, 지속적으로 협회에 본인의 능력을 갱신한다.
각자 숨긴 능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난데없이 뜬금없는 능력을 손에 쥐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G급 던전을 각 국가의 플레이어 협회에서 전담한 이후.
플레이어의 능력은 각성 직후 협회에 등록된 상황이었다.
마치 지문처럼.
“직업은 얼마 안 되네요?”
때문에 유 대리는 태블릿을 몇 번 조작한 것으로 해당 자료를 찾아냈다.
“부두술사, 드루이드, 네크로맨서. 에? 연금술사도 영혼과 관련된 직업이라네요? 왜지?”
유 대리가 뜬금없는 직업을 언급했다.
“연금술사요?”
“네. 잠깐만요?”
유 대리가 세세한 자료를 검색했다.
하지만 나오는 자료는 없다.
방대한 협회의 자료에서도, 연금술사와 영혼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안 나오네.”
미간을 찌푸리며 태블릿을 노려보는 유 대리를 향해 정우가 물었다.
“능력은요?”
“그건 꽤 많아요. 토템부터 시작해서 사자소생까지. 한정우 씨도 대충 알고 있는 내용들일 걸요?”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업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대표적인 능력들이 있었으니까.
그전부터 예상했던 직업도 있었고.
“약속, 잡아드려요?”
“네.”
정우는 유 대리의 유능함에 반색했다.
연금술사라면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이가 바로 옆에 있었다.
제임스 밀러.
안 그래도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기업 총수와의 독대를 가볍게 요청했다.
“휘유. 죽겠어. 미스 유! 나 좀 도와주면 안 돼?”
만나자마자 하는 앓는 소리에 유 대리가 헛웃음을 흘렸다.
“외부인이 손대도 좋을 업무들인가요?”
“미스 유가 외부인은 아니지만… 아니. 젠장! 그래서 미치겠어!”
제임스 밀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했다.
잠입자와 덧씌우기에 대해 알게 된 이후, 그는 스스로 고난을 자처했다.
여느 과학자보다도 더 과학자 같은 마음으로 진리를 파고드는 그의 집념은.
“알다시피 일이 쌓였어. 그래서 시간을 내기 힘들어. 무슨 일이야?”
그에게 엄청난 일거리를 안겨주었다.
“연금술사가 영혼과 무슨 관련이 있죠?”
정우는 본론을 꺼냈다.
“에? 뜬금없이?”
제임스 밀러는 그렇게 반문했지만, 왠지 모르게 두 눈을 반짝였다.
영혼.
그걸 누구에게 말했더라?
제임스 밀러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최근 들어 대화한 한 내용이 떠올랐다.
“대마법사.”
“네?”
“아니, 혼잣말이었어.”
제임스 밀러가 손사래를 쳤다.
“갑자기 연금술사와 쏘- 울이라는 단어가 왜 궁금해졌는지 의문이지만, 나도 급해서 하나만 말해줄게.”
제임스 밀러는 짓궂은 장난을 하는 사람처럼 즐겁게 웃었다.
“중세 시대의 연금술사에게는 물질변환이 주요 관심사였어.”
철을 금으로, 구리를 금으로, 돌을 금으로.
금이라는 결과물에 도달하기 위한 연구.
연금술.
과학의 발전에는 관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해 버린 학문.
“하지만 능력적으로 보면, 연금술사는 전혀 다른 존재지.”
“어떻게요?”
“플레이어로서의 연금술사는 제약회사 취급이지만, 만약 이런 능력을 ‘처음’부터 발전시켜온 ‘존재’들이 있다면?”
그들이 중세의 연금술처럼 연구하고 고민하고 정의를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면?
그들은 무엇을 목표로 삼았을까.
“영혼.”
제임스 밀러는 단언하듯 말했다.
“내가 만약 그런 연금술사였다면, 난 내 모든 힘으로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아.”
꿀꺽.
유 대리가 그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정우는 그를 향해 확답을 받듯 물었다.
“영혼의 완성?”
“나의 추론.”
씨익 웃는 제임스 밀러와는 달리, 정우는 묘한 확신을 얻었다.
이세계의 연금술사는.
영혼의 완성을 위해 걷는 자들이다.
마력을 회복시키는 포션을 만들 수 있는 것 역시.
‘손상된 영혼의 힘을 회복시키는 능력이라고 보면!’
연금술사는 영혼을 수복하는 방법을 알지도 몰랐다.
그렇게 물은 정우의 질문에 제임스 밀러는 아쉽게도 고개를 저었다.
“확신은 하지만 증거가 없어. 찰나의 번뜩인 개념이고, 몇 번 검증하다 보니 이해하게 된 개념이지만.”
스킬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부족한 게 많지, 그래서 머리 아프게 공부하고 있잖아.
정우는 앓는 소리를 하는 제임스 밀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영혼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와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과 대화하는 게 나을걸?”
“누구인가요?”
제임스 밀러가 이제 나가라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닥터 브라운.”
“……네?”
* * *
돌고 돈다는 느낌이 무슨 말인지 이해한 정우와 유 대리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닥터 브라운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네요.”
“그가 플레이어였어요?”
“플레이어긴 했어요. 초창기에 각성은 했는데, F급에 머무르고 있어서 다들 그냥 일반인 취급할 뿐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그게 그냥 굳어진 거고요.”
초창기의 그 격변 시대를 겪으면서도 F급이라는 소리에 정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높고 커다래서 선택받은 소수만이 넘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S급의 관문을 제외하고.
격변의 시대라 불리는 초창기의 플레이어는 하나같이 A급 이상의 실력을 지니게 된 강자였다.
공략하면 강해지는 던전의 법칙.
그에 필요한 건, 시간과 횟수였으니까.
살기 위해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그들의 시간과 경험을 뛰어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제임스 밀러를 소개해 주었던 이가 다시 소개되었다.
“아쉽네요.”
“왜요?”
뜬금없는 말에 정우가 물었다.
유 대리는 대답하는 대신 태블릿을 몇 번 클릭하여 하나의 기사를 띄웠다.
“꽤 오랫동안 진행하는 학회예요. 마침 오늘 시작했고, 두 달 동안 진행돼요. 그러니까 아쉬울 수밖에 없죠.”
정우의 태도가 평소와는 달리 급해 보였기에, 유 대리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하지만 정우의 갈증은 더욱 강렬했다.
“가죠.”
“어딜요? 설마, 여길요?”
“네.”
정우는 몸을 돌려 제임스 밀러의 집무실을 노크했다.
문을 열자마자 날아오는 종이 한 장을 낚아챈 정우를 향해 그가 말했다.
“난 무지 바쁘니까 미스터 한이 대신 가.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