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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32화 (32/293)

32화

-볼코프 레보스키

“푸하. 이거 골치 아프군.”

아이템 상점에서 친해진 둘은 이내 바에서 술잔을 부딪쳤다.

볼코프 레보스키는 꽤나 유쾌한 인물이었다.

음흉한 속셈만 아니라면 친해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분위기가 가득한 인물.

착각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쾌한 모습이었다.

물론, 처음 보는 자신을 ‘마법사’라고 확신한 것부터.

사삿.

바에 들어오자마자 등장한 날벌레 때문이라도 믿을 순 없었겠지만.

‘날 관찰하기 쉽게 위치를 움직이고 있어.’

웃음을 흘리면서도 정우의 머릿속은 끊임없이 회전했다.

‘뭐 때문일까.’

상대가 수상한 인물이라는 건 확신이 섰다.

하지만 왜 자신을 노리고 관찰하는 건지,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정우는 그것을 캐내기 위해 은근슬쩍 여러 말을 흘렸지만, 볼코프는 넘어오지 않았다.

‘한번 떠볼까?’

“혹시 볼코프.”

“응?”

“패밀리어 스킬에 대해 좀 아나요?”

“……!”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눈동자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다.

“알지. 왜?”

“음….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배울 수야 있겠지. 재능이 있으면.”

“…끄응. 재능이 필요한가요, 그것도?”

정우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젓자 볼코프가 은근히 물었다.

“왜? 패밀리어 스킬에 관심이 있어?”

“음. 아무래도… 제가 지금 F급인데, 공격 스킬이 형편이 없어서… 정찰이라도 하면 팀에 끼기 편할까 싶어서요.”

“그래? 무슨 스킬이 있기에?”

“매직 미사일이요.”

“다른 건?”

“……없어요.”

“뭐?”

볼코프의 눈이 커졌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다룰 수 있는 매직 미사일이 유일한 공격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왜?’

기껏 얻은 휴식기를 반납하고 작전에 투입되어야 했다.

솔직히 그 정도로 경계해야 하나, 의문이 들 정도로 상대는 별 볼 일이 없었다.

제임스 밀러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게 의문이지만, 그 정신병자의 헛짓거리는 유명했다.

그만큼 아이디어도 많고 돈도 많았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면 하지 않을 행동도 잦았다.

때문에 한정우란 한국인에 대한 관심 역시 그런 수준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한데? 뭔가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더니… 매직 미사일이 전부인 마법사라고?’

정우는 제임스 밀러와 던전을 공략한 적이 있다.

더군다나 아라크네의 미궁마저 클리어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제임스 밀러가 함구령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뒤늦게 지시를 받은 이반은 이 사실을 접할 수가 없었다.

훈련 때문에 바쁘기도 했고.

‘이상하군.’

볼코프는 의문을 품었다.

‘뭔가 있는 건가? 조금 더 파고들어 볼까?’

짧은 침묵이 만들어 내는 여러 고민에 정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뭘 해야 먹고 살까. ‘한국’에서 잠깐 파견을 보내주긴 했는데… 운이 좋아서 뽑힌 거니까 오히려 답답해지더라고요.”

정우의 말에 볼코프는 입맛을 다셨다.

“그래. 그거참 골치가 아프지.”

위로의 내색이었지만 음흉한 속내가 슬쩍 입가를 타고 흘렀다.

말이 느려지며 대화 중간에 잠깐의 침묵이 끼어들었다.

‘이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데? 패밀리어로 대화를 나눌 정도면 이건… 상당한 수준이다.’

패밀리어 스킬을 가능하게 해주는 아티팩트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워리어가 속임수고 마법사가 진짜였다.

‘모든 게 다 가짜라는 소리야.’

정우는 새삼 일이 예상 밖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겉으로만 대화를 나누던 둘의 생각이.

우연히도 일치했다.

‘외곽으로 끌어내자.’

볼코프는 정우의 수준에서 자신감을 얻었고.

정우는 상대의 방심을 노림과 동시에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각자의 무기를 가지고 서로의 생각이 일치되자 행동은 빨랐다.

“이것도 인연인데 다음에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 근처에 좋은 여러 장소를 소개해 주지. 아까 본 여자친구와 같이 오면 더 좋을 장소야.”

흐흐, 옆구리를 툭 치는 볼코프의 미소에 정우가 환하게 웃었다.

“그거 잘됐네요. 안 그래도 가이드를 구해야 하나 했는데. 덕분에 점수 좀 따겠네요.”

* * *

외진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정우는 기다렸다는 듯, 발이 걸린 것처럼 비틀거리다가 날벌레를 손으로 잡았다.

순식간에 끊기는 연결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볼코프는 그런 정우의 비틀거림에 설마하니 패밀리어의 연결이 끊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정우를 얕잡아보고 있었으니까.

볼코프는 허술한 모습에 침음을 삼켰다.

‘이대로 공격할까?’

어차피 이 신원은 가짜였다.

플레이어증도, 얼굴도.

‘빼앗은’ 것에 불과했다.

언제든 죽일 수 있음에도, 그가 망설이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중간에 끼어든 탓에 제대로 된 상황을 아직도 모른다는 것.

이반은 패밀리어 스킬을 갈고 닦은 훌륭한 인재였지만, 기본 능력이 아쉬웠다.

때문에 패밀리어를 운용할 수 있는 거리가 다른 마법사보다도 두 배가량 넓으면서도, 대화엔 제약이 있었다.

차라리 가용 범위가 좁으면서 패밀리어를 통한 대화가 자유로운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임스 밀러 근처에 있기엔 거리가 중요하다는 게 윗선의 판단이었다.

벌써 오래된 잠입.

그걸 이렇게 허무하게 쓰기는 싫었을 터였다.

‘그랬으니까 제대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겠지. 서브도 정하지 않고….’

협회는 유능하다.

항상 A안과 B안을 정해두고, 만약을 대비한 C안까지 예비해 둔다.

그게 돌발적인 상황만 아니라면, 언제든 협회는 차선의 차선까지 생각해 두는 유능한 집단이었다.

그런 협회에서.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건… 골치가 아픈 일이었군.’

차라리 죽이거나 납치하라면 일이 참 쉬울 것 같았다.

이반에게 들은 내용은 고작해야 그게 전부였다.

‘날 대신해서 놈에 대해서 알아봐 줘.’

여러 신변잡기는 성공했지만, 답답함은 배가 되었다.

‘빌어먹을 동양인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니, 속이 썩어가는 느낌인데… 젠장.’

차라리 죽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정우의 목을 비틀었을 터였다.

제임스 밀러란 거물의 곁에 있는 것과 도살자의 말이 이런 우연을 낳았다.

도살자는 자신의 권한을 사용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한 번은 도움을 준다, 는 협회에서 준 권한.

일의 실패보다 권한의 소실이 더 중요했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목숨줄 하나를 사용했다.

그의 처지를 알았기 때문인지 협회는 의외로 관용을 베풀었다.

이 일의 시작점이 되는 한정우를 죽여주겠다는 것.

하지만 도살자는 거부했다.

대신 요청을 변경했다.

협회에서 지원을 해주면 일은 무조건 성공한다.

그럼.

‘일이 끝난 뒤에 내가 직접 놈을 잡아 죽일 수 있도록, 놈의 위치만 파악해 놔라.’

도살자의 요청은 간단했고, 협회에선 그에게 빚을 지울 겸 나름의 판단을 내렸다.

한정우에 대해서 파악하자.

널 이렇게 신경 쓰고 있다, 는 생색을 내기 위한 결정.

엄연히 ‘한국’ 지부장의 독자적인 결정이었지만, 여러 사안이 겹쳐.

우웅!

정우에겐 상당한 기회가 되었다.

볼코프의 고민은 틈이 되었고, 틈은 곧 결정이 되었다.

‘치자!’

순식간에 마법이 전개된다.

갑자기 느껴지는 마력에 고민에 빠졌던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볼코프의 움직임은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빨랐다.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고양이 같은 그 움직임은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당황을 머금은 가운데에서도 여유로웠다.

파앙!

“……!”

큭, 한 대 얻어맞기 전까지는.

튀어 올랐던 몸이 허공에서 생겨난 매직 미사일에 얻어맞고는 아래로 추락했다.

은신은 해제되었고, 갑작스러운 통증에 일그러진 표정이 매섭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빙글 회전해 두 다리와 한 손으로 바닥을 짚은 그의 얼굴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너…… 이게 갑자기 뭔 짓이냐!”

볼코프의 양손엔 언제 쥔 것인지 단검이 들려 있었다.

아이템 상점에서 같이 구매한 물건이었다.

사납게 일그러진 표정 가운데에서도 눈빛은 약간 흔들렸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우의 공격을 본 순간 그는 결정을 내렸다.

죽인다.

이미 선제공격을 당했다.

이반의 증언이 있다면 충분히 살해의 이유가 된다.

도살자가 한 차례 지랄을 하겠지만, 자신에게도 나름의 윗선이 있었다.

골치가 아프겠지만, 이건 정당방위였다.

‘이반! 네 증언이 필요하다. 이 새끼. 죽일 거야!’

볼코프가 이반에게 생각을 전했다.

짧은 침묵.

볼코프는 이반이 당황했다고 여겼지만, 이윽고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침묵이 너무 길었으니까.

‘…이반?’

“들릴 리가 없지. 패밀리어가 죽었으니까.”

“……뭐?”

정우의 말에 볼코프가 불신의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정우는 친절히 대답하기보다.

우웅!

재차 마법을 사용한다.

“……아공간?”

어느새 꺼내 든 삼단창까지 손에 쥔 그의 모습은 어수룩해 보이던 종전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노련해 보일 정도였다.

“……하. 날, 속였다? 언제부터 알았지?”

“쇼핑센터.”

“처음부터…라. 이반 이 멍청한 새끼도 들켰겠군.”

허탈한 웃음.

볼코프는 어이가 없었다.

이반이 잠입한 게 몇 년인가.

그 오랜 세월 동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던 걸 고작 F급 따위에게 들켜 버렸다.

“F급 따위가…….”

고작해야!

볼코프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눈가를 좁힌 그가 마법을 피해 냈다.

조금 전과는 다른 아주 가벼운 몸놀림.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에 정우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간다.

‘이거… 생각보다 좋은 훈련이 되겠는데?’

마침 계획하던 게 있었다.

그릇의 수복을 계획하는 정우에게 있어서, 가장 확실한 방법.

사막 고블린 족장.

놈을 잡기 전, 우연찮게 검증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싸늘하게 굳은 정우의 창이.

“……빠르군.”

한순간에 점이 되어 볼코프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마력.

“매직 미사일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군.”

볼코프는 조소를 남기며 ‘스피드 어택’을 사용했다.

공격을 위한 빠른 움직임.

헤이스트를 사용한 것처럼 빨라진 몸놀림으로 정우를 향해 달려들던 그의 복부에 갑자기 검은 점 하나가 생겨난다.

그와 동시에.

“……컥?”

묵직한 충격이 복부를 강타했다.

더군다나 ‘어택’의 실패로 경직 증상이 몸을 휘감았다.

그 변화를 노련하게 눈치챈 정우가 달려든다.

‘…이, 건 한두 번 싸워본 실력이 아닌…….’

볼코프가 경악하는 사이, 정우의 창이 그의 종아리를 찌르고 회전했다.

경직이 풀린 볼코프가 단검을 휘저으며 공격 스킬을 사용했지만.

후웅!

뒤로 물러선 정우가 어느새 창을 놓고 양손을 빙글 회전했다.

생겨나는 두 개의….

“……구멍?”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형태의 그것이.

순식간에 생겨난 매직 미사일을 집어삼키고.

“……이, 이게……!”

집어삼켜진 매직 미사일이 돌연 자신의 뒷목을 강타하자 볼코프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익숙해 보였던 구멍.

‘……게, …게이트?’

수없이 드나들던 그곳과 비슷해 보였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치부했지만, 어느새 위치를 바꾼 게이트 너머로 마법이 쏘아진다.

충격에 비틀거리면서도 연신 몸을 비틀어 급소를 피하던 그의 몸이 덜컥, 고정되어 파르르 떤다.

“쿨…럭.”

뜨거운 핏물이 솟구쳤다.

막대한 통증이 등과 가슴을 관통했다.

창.

어느새 손에 놓아두었던 그것이, 게이트를 통해 자신의 가슴을 관통해 있었다.

“이…게?”

진짜 F급이라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경악하는 그를 향해, 조금 지친 표정의 정우가 비타에 대고 말했다.

“데려가요.”

어딜?

의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저 멀리서부터 기척이 느껴졌다.

잡힌다고?

지금의 순간을 부정하며 최악의 순간을 모면하려던 그의 눈앞에, 손바닥이 드리워진다.

콰직!

“수 쓰지 마라. 지금, 피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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