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낚시
그때부터 정우의 행보는 유 대리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상대의 진의를 알지 못하니, 확실한 순간이 아니면 회랑에조차 입장하지 않았다.
물론 하루에 한 번,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회랑의 정보와 교육을 놓치지 않았지만.
‘…머리가 아프군.’
여러 생각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던 정우는 골머리가 아팠다.
그릇의 수복에 대해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번에는 새인가?’
패밀리어를 사용하는 마법사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상황에 맞게 여러 곤충과 동물이 등장하며 정우의 곁에 자연스럽게 머물렀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섣불리 다가서지도 않았다.
푸드득, 날아온 새를 본 정우가 무덤덤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반….’
마력의 실이 연결되어 있다 보니 상대를 알아내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이반 드라고.
러시아 플레이어로 무려 4년 전에 영입된, 이 회사에선 베테랑이었다.
거친 농담을 즐기며 인간관계가 훌륭한, 상남자의 표본.
거기까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의 직업이었다.
‘회사는 놈이 패밀리어 마법사라는 걸 모른다.’
패밀리어 마법에 이토록 능수능란하다는 소리는, 마법적 성장이 결코 적지 않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그의 공식적인 직업은, ‘워리어’였다.
마법사의 대척점에 위치한 직업.
마법사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인물이었다.
‘이거… 뭔가 있다.’
바닥에 앉은 정우는 땀을 닦으며 그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빠르고 강렬하다.
적어도 신체 능력만 놓고 보면 이진수와 비등할 지경이었다.
C급의 플레이어.
각성 6년 차라는 걸 보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성장이었지만, 움직임만큼은 재능이 넘쳐 보였다.
‘제임스 밀러와 이야기를 할까?’
그라면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 같았다.
당신의 회사에 수상한 인물이 잠입해 있다, 과연 제임스 밀러가 시큰둥하게 대할까.
‘결코 아니지. 그는 능력과 인재에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니까….’
오히려 자신보다 더한 호기심으로 상대를 파고들지도 몰랐다.
그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탐구심이니까.
하지만 정우는 머뭇거렸다.
제임스 밀러에게 알리는 것보다 자신이 이 일을 파고드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니, 그건 본능이었다.
놈은 자신을 노린다.
자신도 놈을 노린다.
정우는 이 순간을 하나의 시험과 연구의 시간으로 여겼다.
‘패밀리어 마법은 원래 문제가 많은 마법이야. 시전자에게 마력 역류를 거는 방법도 많고…. 근데 그게 스킬이 되면서 여러 페널티가 사라졌어.’
마법을 배우는 입장이 되자 정우는 스킬이란 체계가 매우 신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정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스킬과 마법의 차이점을 파악하며 놈의 근처를 맴돌았다.
시야 확보가 안 되기에 패밀리어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안 될, 애매한 거리에서.
쿨럭.
훈련 도중 휘청거리며 기침을 하는 이반을 향해 동료들이 걱정의 눈으로 물었다.
껄껄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지만, 이반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는 중이었다.
‘젠장! 이 빌어먹을 새끼가…. 아무래도 이상해…!’
도무지 가만히 있질 않았다.
패밀리어를 사용해 관찰하다 보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평소에도 이동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유독 이동이 잦았다.
들키지 않을 정도의 크기를 선별하느라 이동 속도가 늦은 게 흠이었다.
이동 도중 일이 생길까 봐 다급히 스킬을 해제하고 다른 벌레를 정해서 재차 스킬을 사용해야 했다.
마력의 고갈은 심해졌고.
훈련까지 겹치니 죽을 맛이었다.
그럼에도 호쾌하게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 했다.
그게 이반 드라고의 설정이었으니까.
‘젠장, 죽일 거다!’
정우에 대해 적의를 불태우면서도 패밀리어의 조종을 관둘 수가 없었다.
‘오늘은 외부로 나가는 날이다.’
그나마 보고할 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널 죽이는 날, 저 여자를 품에 안고 조롱해주겠다. 이 빌어먹을 한국인.’
새의 눈으로 보는 시야에, 유 대리와 정우가 들어왔다.
“오늘은 가실 거죠?”
“네. 가야죠.”
정우의 말에 유 대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간단한 일도 다 보고를 올리나 보죠?”
“그게 제 일이니까요. 아무래도 일정이 변하면 그에 따른 보고서도 써야 하거든요.”
그 말에 정우는 유 대리에게 미안해졌다.
‘아무래도 선물이라도 하나 해줘야겠네.’
“혹시 지금 이동해도 되나요?”
“벌써요? 음. 안 될 건 없는데… 지금 가면 예약 시간보다 일러서 근처에서 대기해야 할 거예요.”
“상관없어요. 쇼핑센터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죠.”
“오. 그런 거라면야….”
유 대리가 간만의 쇼핑에 반색했다.
‘안 됐군. 패밀리어 마법을 사용한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또 사용해야 해서.’
남들의 눈엔 보이지 않았지만, 우연을 가장하여 근처를 지나가며 본 이반의 마력은 생각보다 타격이 컸다.
지속적인 스킬의 사용과 해제.
페널티는 적었지만 마력 소모만큼은 확실했다.
‘마력 소모가 심해지면 두 가지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어.’
하나는 모종의 방법으로 마력을 회복하는 것.
연금술사의 기업인만큼 마력회복물약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용 여부를 기재해야 했다.
지속적인 사용은 어려울 테니, 외부에서 구매를 해야 할 터였다.
다른 하나는 더 중요했다.
‘다른 사람을 배정하는 거지.’
한계를 느끼고 외부에 연락하며, 외부에서 자신에게 새로운 인물을 배정하는 순간.
정우가 노리는 건 그 순간이었다.
‘궁금해졌거든. 상대의 정체가….’
자신을 왜 이토록 집요하게 관찰하는 건지, 이유가 궁금해졌다.
정우와 유 대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아이템 상점으로 향했다.
아이템 상점은 총 15층으로 이루어진 빌딩에 위치했다.
1층부터 3층까지는 여러 편의 시설이 입점해 있었고, 4층부터 7층까지는 쇼핑센터가 입점해 있었다.
한 건물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기에, 정우와 유 대리는 마음 편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북적북적.
아이템 상점은 랜드마크나 다름이 없다.
각국의 플레이어가 항상 드나드는 곳이며, 플레이어의 주머니는 일반인보다도 크면서도 가벼웠기에 거래가 활발했다.
“사람이 많네요.”
정우의 말에 유 대리도 약간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바로 올라갈까요?”
“구매하실 거 있어요?”
“어머니와 정희 선물도 한번 보려고요.”
“좋은 생각이에요.”
유 대리가 반색했다.
“그리고 유 대리님 것도요.”
“……에? 저요?”
“네.”
“저는… 필요 없어요. 한정우 씨 덕분에 돈도 많이 벌어서 제가 구매하면 돼요.”
“그냥 신경 써주시는 게 고마워서 그러니까, 마음 쓰지 마시고 받아요.”
“…음. 그럼 그럴까요?”
유 대리의 반응에 정우가 간만에 즐겁게 웃었다.
여러 인파 사이로 즐겁게 쇼핑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감각은 주변을 훑는다.
‘무엇으로 따라올 거냐.’
쇼핑센터에 들어오기 전까지 따라온 새를 확인했었다.
아무래도 새가 건물 안까지 들어오기는 힘들 터.
다른 패밀리어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외부와 접촉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지.’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해 정우는 상점 방문일을 며칠이나 뒤로 미루었다.
‘자! 결정해라. 네가 오든가… 아니면 다른 놈을 보내든가….’
C급?
여차하면 위로 올라가면 그만이었다.
아이템 상점엔 C급 플레이어가 무더기로 있었으니까.
가방을 고르며 밝게 웃는 유 대리를 보며, 정우는 눈가를 좁혔다.
* * *
‘다른 놈이다….’
쇼핑을 끝마쳤을 무렵.
정우는 새로운 놈을 발견했다.
패밀리어 마법이 아니었다.
‘그래. 직접 와야겠지.’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 패밀리어를 운용하는 건 보통의 수고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트레이닝 센터와는 달리 아이템 상점은 여러 ‘감지’ 마법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패밀리어를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게 정우에게는 최선으로 작용했다.
낚시.
‘부디 대어를 낚았으면 좋겠군.’
“올라갈까요?”
만족스러운 선물과 쇼핑을 끝마친 유 대리가 밝은 낯빛으로 말했다.
“그러죠.”
정우는 유 대리와 함께 8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중, 정우의 마력이 빠르게 회전하며 증폭했다.
이 순간을 위해 배운 마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시(直視)의 눈.’
사막 지하 유적의 그것이 생각나는 마법이었다.
정해진 위치에 설치해두면 감시카메라처럼 원하는 장소를 볼 수 있는 마법이었다.
이동도 불가능하고, 마력 소모도 상당했지만 이 마법의 장점은 분명했다.
‘감지 마법에 들키지 않아.’
몇 번을 확인했다.
아이템 상점의 감지 마법은 대단했지만, 직시의 눈을 감지할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궤를 달리하는 마법이었다.
‘지금은 더 없이 유용한 마법이지.’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기에는 훌륭했다.
마치 패밀리어 마법처럼, 시야가 하나 확장된다.
듀얼 모니터가 된 것 같은 장면이 한쪽 눈을 장악하여 펼쳐졌다.
서로 다른 시야를 공유함에도, 패밀리어와는 달리 별다른 제약이 없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우는 이반의 정체가 더 궁금했다.
‘훈련하면서 패밀리어 스킬까지 사용할 정도라면… 상당한 실력자일 테니까.’
아이템 상점은 쇼핑센터와는 달리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치 명품관에 들어선 것처럼, 하나하나가 다 유리관에 들어 있거나 독립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오…….”
“위로 올라갈수록 아이템 등급이 상승해요. 당연히 가격은 더 비싸지죠.”
유 대리가 설명했다.
“참고로 이 아이템 상점의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사람이 밀러 씨예요.”
“대단하네요.”
몇 가지 아이템을 보고 있을 때였다.
아이템 상점엔 입구가 하나밖에 없었다.
‘왔다.’
감시자 역시 해당 입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증을 내밀고, 간단한 조사를 거친 후 입장한다.
‘볼코프 레보스키. 같은 러시아 사람이다.’
러시아에서 왜?
그런 의문이 들었다.
정우는 마법을 해제했다.
천천히 아이템을 구경하고, 심지어 구매하면서 이동하는 놈과의 거리가 가까워져만 갔다.
힐끗.
자신의 상황을 살펴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정우는 볼코프와 시선을 마주쳤다.
꾸벅.
태연하게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러시아인의 모습에 답례하면서 정우는 조금씩 볼코프의 옆으로 다가갔다.
이윽고 진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만났다.
은근한 긴장감이 부딪쳤다.
점원이라도 된 것처럼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가던 유 대리의 음성조차 뚝뚝 끊길 정도로.
‘패턴이…….’
정우의 시선은 물건으로 향했지만, 감각만큼은 상대를 읽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이유는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상대의 정체 파악.
마력 패턴이란 게 있다.
모든 플레이어는 마력을 사용하지만, 각자의 성향에 따라 패턴이 조금씩 달랐다.
이건 스킬이 아니라 마법적인 역량이 필요한 기예.
스킬로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정우만의 독자적인 능력이나 다름이 없었다.
‘수준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다른 점이 보여.’
비록 배운 게 얼마 되지 않아 패턴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 무리였지만, 약간의 특이점을 발견했다.
정우는 이를 토대로 상대의 배후를 파악해 볼 요량이었다.
‘원하는 건 얻었는데….’
남은 건 하나.
‘이놈을 처리해야겠지.’
적어도 먼저 달려들지 않는 이상, 선제공격은 불가능했다.
‘그럼…….’
정우는 볼코프가 고르는 물건을 주시했다.
“오, 이거 괜찮네요. 혹시 더 있나요?”
그리고 그가 고른 물건을 고르며 옆에서 끼어들었다.
“이거라면 아직 더 남아 있어요.”
직원이 반색하며 물건을 꺼내러 간 사이.
“암살 계열이신가요?”
정우는 볼코프에게 말을 건넸다.
“음. 나 말이오?”
“그냥 같은 걸 골라서 물어봤어요.”
정우의 말에 볼코프가 웃으며 말했다.
“맞소. 암살 계열.”
“이거 만일을 대비해서 사려고 하는데 괜찮죠?”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해 보이는 정우의 물음에 볼코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마법사가 다루기엔 조금 불편한 면이 있소. 음. 제대로 된 걸 추천해줄 테니 한번 같이 돌아보겠소?”
그 말에 정우가 씨익 웃었다.
“그러면 고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