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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8화 (28/293)

28화

-마녀

마지막은 직접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

‘그’를 염두에 둔 순간부터 수장은 패배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자신들의 터전을 찾음과 동시에 죽어 버릴 거미.

자신들의 비기 ‘공명’을 비롯하여 수천 년간 내려온 자신들의 진정한 보물인 회랑의 권한까지 넘길 각오로, 그를 불러들였다.

평소 공명에 관심이 많았던 그라면, 열쇠의 진위를 금방 파악하고는 자신들을 구원해줄 테니까.

그래서 열쇠를 통로를 통해 보내 버릴 때, 그를 왕으로 섬기겠다고 결정을 해버렸다.

어차피 그가 아니라면 멸족해 버릴 운명.

그를 피해 온 세월이 무색해질 테지만, 죽음 앞에선 모든 게 의미가 없는 법이었다.

때문에 그가 아닌 다른 자가 등장했을 때, 수장은 아라크네의 기감을 통해 느끼면서도 적잖게 당황했었다.

그럼에도 ‘열쇠’가 반응했다는 것에 레베카를 안심시켰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는.

“죽지 않을 거요.”

스스로 무리하면서까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구해주십시오.

그렇게 부탁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그는 훌륭했다.

그에게 위협을 느끼면 레베카를 봐서라도 자신을 토해 내리란 걸 알고 있었다.

휘둘려 죽어 버릴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그라면 어렵지 않게 진위를 깨닫고, 거미의 특성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탈바꿈시켜줄 것이라 믿었다.

‘방법은 다르지만… 결과는 똑같구려.’

희미한 숨을 몰아쉬는 정우를 본 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미를 깨달은 레베카가 울음을 참으며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휘익!

수장은 저주를 통해 아라크네를 감염시켰다.

패러사이트를 통해 저주를 강화시켰다.

그것은 생존에 의한 목적.

그리고 최후의 수단.

“예상치 않게 득을 보는군.”

마을 전역에 퍼진 독을 막기엔 무리지만.

“동굴 입구 정도라면… 독이 씻겨 나갈 때까지 버틸 수 있다. 일족의 마력을 한 번에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웅웅, 거리며 요란하게 빛나는 수장의 양손에서 마법이 펼쳐졌다.

열쇠를 보낼 때와 같은.

거대한 게이트가, 동굴 입구를 가득 채웠다.

* * *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네?”

직접 봤음에도 제임스 밀러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게이트의 색이 변하고 있다.

희미해지는 일렁임은 금방이라도 소멸할 것처럼 불안정하게 변했다.

“클리어? 직접 단서를 찾으라고 보냈더니 무슨 짓을 한 거지? 미스터 한!”

추궁이 아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

그런 그를 보며 유 대리 역시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에 침을 바르고 있었다.

‘도대체 소란이 끊이질 않아.’

그에 따라 협회에선 상당한 인센티브를 주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슴이 철렁거리는 건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죠?”

막상 던전을 클리어한 정우는 코빼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례적인 일.

아니.

‘생각지 않은 가정. 설마?’

퀘스트를 클리어해 게이트를 연결했음에도, 마지막 순간 죽어 버리는.

공멸.

유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여태껏 없던 일을 해놓고 죽었으리라고.”

유 대리를 본 제임스 밀러가 수더분하게 말했다.

“그렇겠죠?”

“하! 미스 유에게는 말 안 했지만, 여기 미스 유도 다녀갔던 곳이야.”

“미스 유?”

“서린.”

“……!”

유 대리는 자신과 성만 같은 한 여성을 떠올렸다.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S급 플레이어.

그중에서도 유일한, 부녀가 나란히 S급인 케이스.

한국 협회장 유지석의 딸, 유서린.

“미스 유도 협회 직원이면 잘 알겠지? 서린이 얼마나 대단한지.”

유 대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최고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나이는 아직 이십 대 초반이었다.

불과 6년 만에 S급 플레이어가 된 재능.

아버지의 덕을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A급을 넘어 S급이 되는 건 엄연히 재능의 영역이었다.

벽.

무수한 플레이어가 그 벽을 앞두고 좌절해야 했고, 절망해야 했다.

하지만 유서린은 아니다.

그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략에 나섰고, 마치 튜토리얼에서 각성이라도 하듯 무덤덤하게 벽을 뛰어넘었다.

“그 뛰어난 미스 유조차 이 던전에선 ‘무언가’를 느낀 게 전부였어. 와우! 진짜, 기대가 엄청되는군!”

제임스 밀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유서린과 한정우가 무슨 연관인지는 몰라도, 그 유서린조차 죽지 않고 돌아온 던전에서 한정우가 죽을 리 없다고 판단한 것처럼 여겨져 유 대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한정우 씨를 더 높게 평가하는 건가? 아니면… 뭔가 있는 건가?’

자신이 관리하는 플레이어가 특별하다는 건, 유 대리에게도 천운이었다.

금전부터 위신까지.

모든 게 달라지니까.

그럼에도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궁금해! 궁금해 미치겠네.”

제임스 밀러가 입술에 침을 바르며 재촉하고 있을 때.

스스.

점차 게이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

그 순간엔 제임스 밀러조차 당황해 버렸다.

공략에 성공한 줄 알았더니 공멸했다고?

같이 죽어 버렸다고?

이중 던전을 클리어한 자가?

소란이 게이트의 앞을 가득 채웠다.

부산한 움직임.

그것을 보며 유 대리는 서류에서 본 튜토리얼을 떠올렸다.

성공적으로 클리어하고 나온 9명의 인원과는 달리 닫혀 버린 게이트.

다른 게이트에서 나온 한정우.

유 대리는 새삼스럽게 정우에게 불안과 관심을 가졌다.

대체 무슨 힘이 그에게 작용하고 있기에, 계속해 특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지.

꿀꺽.

마른침을 삼킨 유 대리가 제임스 밀러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좀 해봐요, 그런 의미를 담은 눈빛을 그는 보지 못했다.

제임스 밀러의 눈은 게이트에 꽂혀 있었으니까.

검은 일렁임이 회색으로 변하고, 회색이 이내 투명하게 변해 갔다.

누군가 무덤덤하게 포기를 염두에 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

“……!”

제임스 밀러의 눈이 커졌다.

나오고 있다.

“빨리 나와!”

제임스 밀러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렸다.

아무리 연금술사라고 하더라도 A급 플레이어.

그의 고함에 유 대리는 인상을 와락 구기며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벼락처럼 들린 그의 외침만큼은 똑똑히 뇌리에 남았다.

‘성공했어! 사람 간 떨어지게 하기는….’

유 대리의 눈에, 사라지는 게이트와 반대로 등장한 한 명이 담겼다.

한정우였다.

* * *

손톱을 씹는 제임스 밀러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저, 제임스? 정신 사나운데요?”

“오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제임스 밀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소파에 푹 앉았다.

유 대리는 그런 제임스 밀러를 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다국적기업의 수장이라고 여길는지.

“아무래도 테스트 기계를 손봐야겠어.”

“…이것조차 협회 거보다 현저히 빠른데요?”

“부족해!”

던전을 빠져나온 정우는 온전한 외형과는 달리 대화를 나눌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중독 증세는 물론, 정신 착란까지 보이고 있었다.

손수 걸어 나온 게 신기할 정도.

때문에 제임스 밀러는 비명을 내지르며 정우를 부축하여 직접 이동시켰다.

자신의 회사로.

수많은 의료진과 힐러가 붙어 정우를 치료했고, 정우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게 묻는 제임스 밀러에게 정우는 테스트를 먼저 진행해 달라고 말했다.

1시간이 걸리는 테스트.

던전 안에서의 내용을 듣고 싶어 안달이 난 제임스 밀러를 보고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던 유 대리는 문득 자신의 입술이 지속적으로 바른 침 때문에 따갑다는 느낌이 들어 실소했다.

‘이게 다 한정우 씨 때문이야.’

괜히 심술이 생겨나 유 대리는 입맛을 다셨다.

그런 유 대리의 머릿속에, 정우가 눈을 뜰 때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딸깍.

그때, 테스트실의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 나듯 돌아갔다.

무덤덤하게 나오는 정우의 모습을 보자 가라앉던 유 대리의 심술이 울컥 덩치를 키웠다.

“대체, 던전 공략 때마다 기절할 생각이에요?”

뾰족한 그녀의 물음에 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엔 정말로 죽을 뻔했었으니까.

기절?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정우는 자신의 운을 절감했다.

간당간당한 계획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그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요. 유 대리님이 지금처럼 도와주시면 되죠.”

“…하! 말이나 못 하면….”

“이제 말해줘!”

제임스 밀러가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렸다.

“잠깐만요. 간단히 설명해드릴 테니까 좀 앉죠?”

그렇게 말한 정우가 먼저 소파에 앉았다.

‘또. 또 뭔가 바뀐 거 같은데?’

유 대리는 그런 정우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예전에도 언젠가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리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내용이 흘러나왔다.

“지성?”

“대화가 통했다고! 대화가! 대화! 고작해야 E급 던전에서? 왜 나는 못 했지? 왜 우리는 대화를 못 한 거냐고!”

중간중간 포효하듯 놀라고 억울해하는 제임스 밀러의 말을 추임새 삼아 정우는 모든 대화를 마쳤다.

“왜 아라크네의 미궁인지, 이제야 알겠군.”

그리고 한참 반응하던 제임스 밀러가 뚝하니 그렇게 말했다.

아라크네라 불릴 만한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아 의아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 제임스 밀러가 문득 유서린의 말을 떠올렸다.

-무언가 있어요. 하지만… 제 능력으로는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군요.

‘그러고 보면 그 말이 시발점이 되었지. 계속 관찰하고 듣고 하다 보니, 게이트에 관심을 두게 된 거였고…….’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는 몬스터.

어쩌면 지금의 현실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손에 쥘 것만 같아 제임스 밀러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좋아! 내가 뒤를 제대로 봐주지! 미스터 한! 나랑 계약하자. 슈퍼 대단한 서비스를 할 테니까.”

순전히 감이었다.

하지만 그 감이, 정우와 함께한다면 본 적 없고 들은 적 없는 여러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속삭이고 있었다.

돈?

그까짓 건 숨만 쉬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쌓이고 있었다.

전용기에 원하는 던전까지 구매해서라도 자신을 서포트하겠다고 다짐하는 그를 향해,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제임스 밀러에게 설명한 이유가 거기에 있으니까.

마녀와 회랑.

열쇠나 이세계의 지식 따위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아라크네를 죽이면서 해당 던전은 소멸해 버렸고, 모든 인원이 죽었다고 설명했음에도.

정우는 그의 후원을 자신했다.

자고로 과학자란 새로운 진실에 목숨을 거는 법이고, 연금술사는 그런 과학자보다 더한 천재성과 과감한 열의가 있어야 가능한 직업이었으니까.

“좋아요.”

정우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자 유 대리가 당황해 끼어들었다.

“자, 잠깐만요. 한정우 씨. 저희 협회와의 계약은 어떻게 하시고….”

“그게 문제가 돼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미스 유. 융통성이 없으면 안 돼.”

제임스 밀러가 훈계하듯 말하자 유 대리가 한숨을 내며 머리를 쓸었다.

“직장인의 비애예요. 물어는 봐야죠. 뭐, 협회장님께 보고는 에둘러서 드릴 테니, 부르면 알아서 설명해줘요.”

“에이. 그럴 필요가 있어? 내가 말하지.”

제임스 밀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비타를 조작했다.

“뭔 일인가?”

“오우. 오랜만이에요. 미스터 유.”

“간만인데 벌써부터 정신이 사나워지는군. 한정우 플레이어 때문인가?”

“지원할게요.”

“하게.”

“오우! 땡큐. 다음에 식사나 하죠.”

“자네가 와야 하네. 아무래도 바쁘다 보니….”

“미스터 한과 같이 넘어가죠.”

“좋네. 나중에 보세.”

“…….”

대화를 듣던 유 대리가 입을 다물었다.

어깨를 으쓱하는 제임스 밀러와 시선을 마주친 그녀가 마찬가지로 어깨를 으쓱했다.

“제 급여도 챙겨주시는 거죠? 전, 한정우 씨의 하.나.뿐.인 비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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