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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6화 (26/293)

26화

-장치 발동

그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작동되는 물의 장치를 본 정우의 손이 다시 한번 회전한다.

이윽고 드러나는 작은 구멍.

고작해야 사과 하나의 크기였지만, 구멍을 본 정우의 심장은 사정없이 두근거렸다.

‘…사용했어!’

마력회복물약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우는 자신의 마력을 잘 알고 있었다.

효율은 그 누구보다도 높지만, 수치 자체가 처참할 정도로 적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한 치의 누수도 발생해선 안 됐다.

‘실수는 안 돼.’

격동과 우려가 뒤엉켜 정우의 머릿속을 차갑게 만들었다.

어이가 없게도 정우는 자신의 성향을 이제야 깨달았다.

혼란 가운데에서 오히려 냉정을 찾아 가는 성향.

‘하긴. 아버지 때도 가장 먼저 했던 게…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는 거였으니까.’

슬픔에 겨워 이를 갈면서도 계획을 세웠던 자신이 떠올랐다.

‘뭐든 좋다. 성공만 한다면….’

갑자기 마녀 일족과 운명 공동체가 되어 버렸지만, 정우로서는 다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회랑이 주는 달콤함에.

켜켜이 쌓인 이세계의 지식에 뇌리를 장악당해 버렸으니까.

더군다나 그 지식의 결과가 ‘게이트’라는 사실은 정우에게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던 사막의 실종자와 같은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놓칠 수 없다.

정우는 아공간에 넣어둔 열쇠를 떠올렸다.

회랑에 접속하고서야 드러난 숨겨진 조건.

임시권한 : 2회

그 방대한 지식을 고작해야 2회 만에 손에 넣을 자신이, 정우에게는 없었다.

“…왜 반만 작동시키는 거죠?”

레베카가 의심을 담아 물었다.

각 장치는 당연하지만 정해진 범위 내에서 작동했다.

최후의 보루인 독은 마을 전역에.

불은 결계의 범위. 즉, 울타리 밖에.

하지만 물과 바람. 그리고 땅은 장치 자체에서부터 시작되어 작동을 멈출 때까지 범위를 넓혀 간다.

“자, 잠깐! 그거…… ‘통로’ 아니에요?”

한 발 크게 물러서서 정우를 보고 있던 레베카가 뒤늦게 구멍을 발견했다.

화들짝 놀란 그녀의 눈이 경악과 의심. 그리고 부정을 담고는 정우와 구멍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더불어, 반만 작동되어 형편없는 물만 뿜어내기 시작한 장치를 보았다.

“세상에…. 토, 통로라니! 대체 물을 어디로 보내는 거예요?”

정우가 말했다.

“절 안고 이동해요.”

“……예?”

“안든, 엎든, 아니면 메든. 놈의 근거지로 달려요! 얼른!”

“자, 잠깐만… 후우!”

혼란스러워하던 레베카가 긴 한숨과 함께 정우를 어깨에 메쳤다.

마법을.

그것도 일족의 궁극이라 칭해지는 통로를 작게나마 생성한 자를.

‘들고 뛰다니. 내가 처음일 거야. 마법이 유지는 되는 거야?’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할 때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마법은 총 세 단계로 변화한다.

집중, 변형, 발현.

아무리 스킬이어도 이 방법은 동일했다.

때문에 스킬이 격렬한 순간에 실패하곤 하는 것이다.

집중이든 변형이든.

결국 발화시키는 데 실패한 라이터처럼 부싯돌만 부딪치고 끝나는 셈이다.

집중과 변형은 안정이 가장 중요했다.

“미…… 미쳤어!”

레베카는 힐끔 뒤를 돌아보고는 경악해 입을 쩍 벌렸다.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물의 장치와 멀어지고 있음에도, 통로는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 견고히 존재했다.

꿀꺽!

그 와중에 정우는 고갈된 마력을 채우기 위해 마력회복물약까지 하나 더 마시는 행동을 취했다.

말도 안 되는 마력 컨트롤에 레베카는 놀라워하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자신을 결계에서 해방시킨 자가 ‘그’가 아니라는 사실에 꿇었던 무릎이 너무도 가볍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족의 ‘결말’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자이기에 일말의 존중과 예의를 차렸다.

은인.

기어이 내뱉어야지만 인정할 수 있는 관계를 부정할 수도 있었다.

결계가 끊어지기 전.

즉, 회랑과의 미약한 연결이 끊어지기 전, 수장이 했던 말만 아니라면 말이다.

-레베카야. 누가 되었든 간에 열쇠가 발동되었다. 곧, 넌 우리의 마지막을 담당하게 될 테지. 실패와 성공은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났단다. 나는 가장 성공률이 높은 방법을 택했고, ‘그’의 등장은 성공률 자체를 뒤엎을 만한 거대한 일이기에… 나조차 자신할 수 없구나.

-다만. 열쇠가 사용되었다는 말은… 그가 최소한의 자격을 갖췄다는 말이다. 내가 택한 방법을 실행할 최소한의 방법. 그가 만약 노력한다면… 죽더라도 우리는 은인으로 모셔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 또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스러져 버리겠지만…….

수장의 말이다.

무려 수천 년간 일족을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자의 말.

‘믿어… 보자.’

거미의 태동 이후 잊어버린 단어를 떠올린 그녀의 얼굴에 한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보.’

이 일의 원흉이 되어 버린 청년을 떠올린 그녀의 낯빛이 딱딱해졌다.

그런 것치고는 그녀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시간의 결계 안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수장이 언급해주는 미약한 정보를 토대로 계획을 수립하고 또 정리하던 게 무색할 만큼 상황이 달라졌지만.

파앙!

콰드드득!

일족을 집어삼킨 거미를 베어 없애겠다는 결정만큼은 변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나아가는 기세가 점점 더 흉흉해져만 갔다.

뚝.

그래서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새 안개처럼 퍼져 버린 독이 목구멍을 약간 자극한다 싶을 때부터.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물? 비가 오는 거야?’

레베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우중충한 하늘은 거미가 마을을 장악하던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탁하고 또 불길해 보였다.

투둑.

비다.

고개를 든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점차 수를 불려 나갔다.

‘하필이면….’

전투를 앞두고 변수가 발생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간을 찌푸리던 그녀는 이내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벽을 하나 부수고 돌진하던 그녀의 앞에 비가 내렸다.

‘왜… 앞에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자신의 경로 외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마치 비구름이 자신의 앞을 인도하는 것처럼.

“……!”

무언가 깨달은 그녀의 고개가 자신의 어깨로 향했다.

‘…이건…… 괴물이잖아?’

물의 장치.

거기서 발생하는 물이 통로를 타고 어디로 향하는가 했더니.

‘내 머리 위였어?’

무려 움직이는 대상에 따라 경로를 바꿔가며 통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그녀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어쩌면….’

수장의 계획은 성공이 아닐까.

자신은 자신의 몫만 다하면 되는 게 아닐까.

그런 희망적인 가정.

물론,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정우는.

‘……죽겠군.’

당장 죽을 맛이었다.

* * *

계획은 간단했다.

독을 사용한다.

감당이 불가능한 적이 등장했을 때 공멸을 각오로 만든 독의 장치는 피아를 막론하고 중독시켜 죽이는 무서운 무기였다.

‘생화학무기. 마법적인 능력보다는 천연적인 극독에 가까워 어지간한 저항력도 의미가 없어.’

여러 저주에 휩싸여 활동을 최대한 억제한 아라크네 역시 독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미는 아마… 놈의 앞에 도착하는 순간 다 죽었겠지.’

그 순간, 거미는 자신도 모르는 또 다른 저주에 휩싸이게 된다.

리와인드.

수장이 걸어놓은, 일족의 생명을 유예시키는 방법.

‘다시 마력을 사용해 더미를 만들려고 할 거야.’

정우는 이 던전에 대해 설명을 받을 때를 떠올렸다.

열흘에 한 번.

플레이어가 되고서야 안 사실이지만 재공략이 가능한 던전은 다시 입장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던전의 재정비 시간.

이를테면 몬스터가 다시 생겨나는 시간이 필요한 셈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퀘스트도 던전의 소멸을 언급하기보다는 지속적인 토벌만을 요구할 뿐이라 그저 지속형 던전이라 판단할 뿐이다.

하지만 이 던전은 달랐다.

‘더미로 던전이 유지돼. 아라크네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스템이 그렇게 강요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를 이용하면, 아라크네의 마력이 열흘 치는 줄어든단 소리야.’

때문에 정우는 독을 택했다.

하지만 독은 너무도 강력했고, 단순히 적보다 조금 더 연명할 수 있게 해주는 해독제로는 부족했다.

때문에 물의 장치를 사용한 것이다.

회랑에서 얻은.

‘공간 마법’을 믿고.

‘비구름처럼 따라다닐 필요는 없어. 나중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정우는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떠올렸다.

마을 전역에 펼쳐진 돔 형태의 결계를 집어삼키며 완성시킨 자신만의 둥지.

정우는 둥지의 한 점과 공간을 연결했다.

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계산을 해야 했지만, 돔 형태의 천장은 어렵지 않게 목적지까지 흘렀다.

아라크네를 향해.

비처럼 떨어지는 그것을 맞으며 정우는 신음을 삼켰다.

‘마력 소모가 상당해.’

배우기만 했던 마법의 성공에 벅찼던 것은 잠깐이다.

수장조차 놀랄 기예를 펼쳤음에도 정우에겐 여유가 없었다.

마법 ‘통로’의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까.

빠득!

저도 모르게 이를 갈자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정우는 아찔거리는 정신을 다잡으며 조금 더 집중했다.

그리고 그사이.

까득!

무자비하게 돌진하던 레베카의 전신에 힘이 들어갔다.

이 가는 소리가 당연하다는 듯 뒤따랐다.

연기처럼 화해 사라지는 일족의 모습을 보자 레베카로서는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애써 억눌렀던 분노가 폭발하고.

휘익.

정우를 내던지듯 내려놓은 그녀가 검을 틀어쥔 채 돌격한다.

캬아-!

절로 소름이 끼치는 울음과 함께 흑요석 같은 거대한 눈알을 번들거리며 거대한 대가리를 내미는.

“거미-!”

아라크네를 향해.

정우는 그 모습을 보며 숨을 골랐다.

‘비가 독을 감소시켜주기는 하겠지만… 길지 않을 거야.’

그때까지 결착을 봐야 했다.

마을 전역에 독이 가득 차, 자신을 죽이기 전까지.

꿀꺽.

마지막 마력회복물약을 마신 정우의 눈이 번들거리며 전투를 시작한 둘을 주시했다.

‘일단… 밖으로 끌어내야 해.’

* * *

타란튤라를 닮은 그것은 달려드는 레베카를 향해 압도적인 크기의 턱을 벌렸다.

콰직!

순식간에 다가와 닫히는 집게 턱은 감히 피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큭!”

하지만 레베카는 어느새 자리를 벗어나 바닥을 굴러 자세를 잡았다.

다시금 쇄도하는 신형.

빙글 돌아 레베카를 노리는 아라크네의 눈알을 본 정우가 마법을 사용한 건, 그녀의 검이 은은한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것과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마력검.

정우에게도 있는 검기 스킬의 진화형.

흉흉하게 불타기 시작한 검의 기세가 사뭇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마력검을 보면서도 아라크네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귀찮은 벌레 하나의 발악 정도로 보는 모양새.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선을 고정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삼단창을 들고 있는 정우가 결코 근접 계열의 딜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레베카에게 시선을 잠깐 빼앗긴 지금.

아라크네의 머리 위에서 빠르게 생성된 매직 미사일 다발이 철사처럼 꼬아지며 회전한다.

드릴의 형태를 띤 그것은 어느새 아라크네의 번들거리는 눈알을 노리고 하강했다.

케에-!

눈알을 얻어맞은 아라크네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쳐들었다.

“와이번의 바람!”

레베카의 검이 회전하며 치켜든 아라크네의 턱 밑을 그어댔다.

사삿! 사사삭!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쳤을 때, 정우는 끝내 베어지며 아래로 툭 떨어지는 아라크네의 거대한 집게 턱을 볼 수 있었다.

시작이 좋았다.

단단하기 그지없던 아라크네의 배갑이 어딘지 모르게 흐물흐물해 보였다.

‘독이 효과가 있다.’

전신이 어느새 흠뻑 젖어 조금 거추장스러워졌지만, 계획이 먹혀들어 간다는 생각에 정우는 레베카를 엄호했다.

다리 하나를 추가로 베어 냈을 때, 정우는 어딘지 모르게 ‘너무 쉬운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쉬-이-!

그런 정우의 귓가로.

‘…바람 소리?’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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