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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4화 (24/293)

24화

-회랑

나무뿌리를 걷어내자 드러난 건 작은 나무 문이었다.

아래로 난, 지하창고.

끼이이익!

오래된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먼지를 뿜어내며 문이 열렸다.

“들어가죠.”

레베카는 태연하게 아래로 향했다.

정우는 잠깐 고민하다 그녀를 뒤따랐다.

그녀의 말마따나 지금은 전투가 불가능했다.

시간의 결계 안에서 강해진 레베카가 아라크네와 단둘이 싸워 이길 게 아니라면 전투에는 참여해야 했다.

정우는 그 사실을 잊지 않았고, 그녀의 말대로 회복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어둡다.’

계단을 더듬어 내려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어둡던 지하가 갑자기 환하게 밝아진다.

“마법은 다루지 못해도 시동어 정도는 아니까요.”

마치 전구를 켠 것처럼 환해지는 지하엔, 핵 공격에 대비한 방공호처럼 여러 물건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언제고 이런 상황을 예견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대적인 준비가 끝난 장소를 보자 정우는 입이 떡 벌어졌다.

“…식량은 없네요. 아쉽게도.”

그녀의 말마따나 식량이라 부를 것은 이미 썩어 풍화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썩은 내는 물론, 존재했던 흔적조차 쉬이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월이 흘러 버렸다.

그럼에도 정우는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눈길을 끄는 것들 대부분이 마력을 머금은 물건.

“아이템….”

최소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너무 오랜만이라 기억이 확실하진 않은데… 도움이 될 물건이 있을 거예요.”

레베카가 더듬거리며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어떤 재질로 만든 것인지 선반은 그 오랜 세월을 견디고서도 견고했다.

때문에 물건을 찾는 데 우왕좌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레베카가 정우에게 다가왔다.

원하는 물건을 찾은 것인지 작은 배낭 하나를 내밀었다.

“마셔요.”

정우는 배낭을 받아들며 그 속에 담긴 것을 꺼냈다.

[ 마력회복포션 ]

즉각적으로 마력을 회복한다.

하루 최대 3회만 섭취하기를 권고한다.

“……!”

푸른색의 작은 병을 본 정우는 화들짝 놀랐다.

모든 물건에는 각각 상이한 가치가 있는 법이다.

정우가 보기에 이 물건의 가치는 엄청났다.

이 물건 하나만 제대로 제조하여 유통할 수 있어도, 플레이어 사회에 큰 이슈를 만들 정도.

무덤덤하게 마력회복포션을 건네준 레베카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물건을 찾으러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정우는 포션을 마셨다.

당장에 욱신거리고 어질거리던 신체가 안정을 되찾는다.

그 즉각적인 효과에 정우는 다시 한번 놀랐다.

이건 플레이어의 현 주소를 월등히 뛰어넘는 물건이었으니까.

마력이 회복되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던 신체 역시 훨씬 나아졌다.

정우는 빈 병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아!

절로 감탄이 일 정도의 물건이 즐비해 있었다.

아티팩트는 되지 못했지만 엄청난 값어치의 물건들.

정우는 입맛을 다셨다.

‘몇 개만 챙겨도 어머니와 정희를 더 안전한 집으로 이사시킬 수 있을 텐데….’

문득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찝찝한 사건 하나가 떠올렸다.

‘그 빌런들이 왜 활개를 치는 거지? 그러고 보면 어떻게 되었을까? 협회에서 놈들을 추격한다고 했었는데….’

그 뒤로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 정우의 마음을 어딘지 모르게 무겁게 만들었다.

“좋아요. 다 챙겼어요.”

다시금 다가온 레베카의 무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가방 몇 개가 그녀의 허리춤에 달려 있었는데, 그녀 역시 포션과 여러 소모품을 위주로 챙긴 듯 보였다.

크게 바뀐 건 보다 길어지고 예리해 보이는 검 한 자루뿐.

“이거라도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네요. 원래 무기는 어른…들이 관리했었거든요.”

레베카의 눈꼬리가 아래로 늘어졌다.

적의를 불태우며 등장과 동시에 무릎을 꿇었던 그녀의 모습과는 달리 꽤 순수해 보였다.

때문에 정우는 뒤늦게 물었다.

“…왜 제게 무릎을 꿇은 거죠?”

“은인이니까요.”

“그럼 고마움의 표시인가요?”

“그런 것도 있고…….”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대신 정우의 눈을 똑바로 주시했다.

“정확한 건 …거미를 죽인 뒤에 알게 되실 거예요.”

그런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옆을 천천히 주시하는 것 같아 정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슬쩍 돌렸다.

빈 공간.

‘열쇠로군.’

정우는 어렵지 않게 그녀의 시선이 머물던 자리를 알아보았다.

열쇠를 넣었던, 아공간.

그녀는 열쇠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퀘스트도 갱신이 되었어. 어차피… 나 역시 이대로 물러설 순 없지.’

열쇠의 사용법을 알아내어 레베카를 결계에서 꺼내는 것으로 퀘스트는 완료되었다.

그리고 바뀐 퀘스트는 딱히 놀랍지 않은 수순이었다.

아라크네 퇴치.

정확히는 마녀 일족의 구원이라는 이름의 퀘스트는 정우로 하여금 레베카를 도와 아라크네를 물리치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래도 들은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성질이란 건 변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수장의 마법도 있었고요.”

나태를 비롯한 무기력의 저주들이 이 순간 빛을 발했다.

레베카는 청년에게서 많은 것들을 들었다.

레베카는 청년을 응원했고, 청년은 그런 레베카에게 자신의 연구를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얻은 것은 확실히 지금 이 순간 큰 도움이 되었다.

“불이 필요하겠군요.”

거미줄은 불에 약하다.

그 당연한 사실은 아라크네에게도 통용이 되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장치’ 하나를 가동해야 해요. 문제는 그거죠. 제가… 장치를 가동할 수가 없다는 것.”

마녀들은 모종의 이유로 오지에 결계를 치고 자신들만의 마을을 만들어 숨어 살았다.

때문에 외부의 침입을 우려하여 여러 방어 형태의 마법진을 설치해 두었다.

‘불의 결계’ 역시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진.

마녀 특유의 마법으로 발현되는 것이라 아라크네의 ‘마력실’을 녹일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결계 안에서 저는 회랑과 연결이 되어 있었어요. 제 능력…이 너무 부족해서 연결이 자주 끊겼지만, 당시에 얻은 것들이 있어요. 아마 수장의 정신이 온전히 유지만 되었다면 여러 장치의 활용법에 대해 들었겠지만 아쉽게도….”

주먹 쥔 레베카의 손이 잘게 떨렸다.

마녀이지만 마법을 배울 수 없었던 아이.

자신의 능력 부족을 얼마나 한탄했을지, 정우는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자신 역시 아버지를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원망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이야기를 꺼낸 걸 보면 장치의 작동법을 알아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마법사가 아니에요. 검사죠. 마녀의 방법을 이어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레베카의 시선을 마주친 정우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제가요? 전 마녀의 마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가능하실 거예요. 수장의 계획대로 ‘그’가 이곳을 찾았다면 장치 따위는 필요도 없었겠지만… 은인께서 배우시면 돼요. 다행히, 마법사니까요.”

“그가 누구죠?”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니까요. 다만 수장께선 그라면 너무도 간단하게 거미와 일족을 분리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셨어요.”

“…대마법사라도 되는 건가요?”

“대마법사? 아니요. 제가 그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요. 그는 마법사가 아니라 마도사라 불렸고, 나아가 ‘대마도사’라 불렸다는 걸….”

“……!”

마도사.

자신의 직업이 등장하자 정우의 눈이 커졌다.

정우가 다시 물으려고 할 때, 레베카가 다급히 재촉했다.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 교활한 거미가 다른 수를 쓰기 전에… 저희의 마법을 습득하셨으면 좋겠어요.”

입을 열려던 정우가 침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목적이 같은 이상 후일에 물어도 되는 법이니까.

“어떻게 하면 되죠?”

정우의 물음에 레베카가 말했다.

“회랑에 접속해주세요.”

* * *

열쇠는 레베카를 구출하는 감옥 열쇠 따위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회랑의 열쇠.

회랑과 연결된 결계를, 정우가 열쇠로 열어 버린 것이 정확한 과정이자 결과였었다.

시간의 결계를 열 때처럼, 허공에 꽂은 열쇠가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끼릭.

톱니 소리가 메아리치듯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메아리가 잠잠한데?’

아무리 머릿속으로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정우는 메아리에 대한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정신을 집중했다.

환하게 바뀌는 세상.

신이 머무는 세계를 환상으로 그릴 때마다 등장하는 순백의 공간이 일순간 펼쳐지더니.

이윽고 하나의 복도가 등장한다.

회랑.

마녀의 지식이 켜켜이 쌓여 이뤄진, 그들의 보고.

팔랑.

책장 넘기는 소리가 연이어 은은하게 들려왔다.

정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주변을 훑었다.

‘……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모든 장면이 급속도로 변했다.

순백의 공간에 대로 같은 커다란 복도가 등장했고, 양 벽에 끝을 모르고 세워져 있는 거대한 책장이 등장했다.

그러고는 책장 빼곡히 책이 들어찬다.

어디선가 날아와 꽂히는 책들은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신비해 보일 지경이었다.

고개를 치켜세운 채로 빙글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그 장면을 목격하는 정우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그 신비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안착한 책은 형형색색으로 은은하게 빛났고, 마치 잘 정리된 도서관을 보는 듯 색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때문에 정우는 어렵지 않게 색이 책의 분류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정우는 가장 가까운 책장으로 손을 뻗어 책을 집었다.

은은한 붉은색의 책이었다.

[ 보르미아 전쟁 ]

대륙력 1701~1733

두근!

역사서.

정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인류는 언제나 우주와 차원에 관심이 많았다.

우주 너머의 지성체.

그리고 차원 너머의 지성체.

존재 자체가 의문인 존재에 대한 호기심은 강렬했다.

때문에 여러 소설, 만화, 영화 등 판타지가 만연했다.

이세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던전이 발생하고 몬스터가 등장하자 여러 과학자들은 이세계를 증명하고 싶어 했다.

실제로 지성이 있는 몬스터와 지구와는 확연히 다른 문화가 던전 내부에서 발견되자 던전이 다른 차원의 어떠한 장소라는 설은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었다.

대화가 통하는 지성체.

적이긴 하지만 대화를 시도하게끔 만드는 존재의 등장에 인류는 두려워하면서도 진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모든 몬스터가 그러하듯, 등장한 지성체는 인류의 말살에만 목적을 두고 플레이어를 상대로 격렬한 살의를 불태웠다.

그 후로 대화보단 제압. 제압보다는 사살을 목적으로 움직였다지만 다른 차원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단지, 관심을 충족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

“…이게, 다 역사서라고?”

제국과 전쟁.

인간 혹은 그에 준하거나 보다 뛰어난 지성체만이 가능한 단어들로 조합된 책을 살피던 정우가 기함했다.

유구한 역사.

결코 지구에 뒤떨어지지 않는 역사 서사가 엄청난 수의 책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차원이라는 이세계의 진정한 정체를 엿본 느낌에 정우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을 다시 원래대로 꽂은 정우가 걸음을 옮겨 각양각색의 책을 하나씩 뽑아 펼쳤다.

마법, 검, 창, 무투, 몬스터 도감, 지형지물, 약초 등.

수많은 지식이 차곡차곡 쌓인 회랑의 방대함에 정우는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음……. 전혀 다른 분이 오셨지만, 그래도 제대로 진행된 모양이오.

“……!”

탐독하고 있던 정우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두둥실 떠 있는 작은 불덩이 하나.

“도깨비불?”

-정신만 조금 남긴 것이오. 큰 도움이 안 될 테니… 인사는 나중으로 미루길 바라오.

도깨비불의 말에 정우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수장?”

-날 아시오? 아니, 음……. 그렇군. 열쇠를 제대로 활용하긴 한 모양이오. 이거… 신기하구려. 어떻게 ‘그’가 아닌 사람이 회랑에 발을 들인 건지….

훅 다가와 반짝거리는 모양새가 마치 신물질의 발견을 마주한 과학자 같은 투라 정우는 저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런. 이럴 게 아니오. ‘그’라면 1초도 채 걸리지 않아 우리의 밑천이 탈탈 털렸겠지만… 우리는 그대를 모르니 여유는 뒤로 미루겠소. 이리 따라오시오. ‘공명’을 가르쳐드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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