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2화 (22/293)

22화

-공략의 시작

아라크네는 청년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턱뼈로, 이빨로, 위액으로 삼킨 게 아니었다.

‘마정석.’

마력을 품고 있는 물체의 가치를 알아보았고, 아라크네에게 있어서 마녀는 마정석보다 더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마정석은 마력을 품고 있을 뿐이지만.

캬아아-!

“이… 이게 우리를… 자원으로 쓰려고?”

“대체… 어떻게 우리의 마법을!”

“도망쳐! 삼켜지면 죽을 때까지 마력 공급만 하게 될 거야!”

마녀들은 아라크네의 계획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하지만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너무도 강대하고 독특하여 세계가 나서서 적대했던 마녀의 마법조차.

“아아……. 신이시여!”

아라크네의 거미줄 앞에서는 허무하게 사라지고 흩어지며… 부서졌다.

“이대로는 안 되오!”

마녀의 수장은 반파되는 마을과 사로잡히는 일족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회랑에 접속하겠소. 날… 지켜주시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회랑에 접속하는 수장의 눈알이 빙글 돌아 흰자만 남기고 사라졌다.

몸속의 마력이 빠르고 강하게 공명하기 시작한다.

두둑!

피처럼, 푸른빛의 마력이 몸을 이리저리 휘돌며 박동했다.

수장의 근처에서 각기 다른 마법을 사용하는 마녀는, 일족 가운데에서도 가장 뛰어난 이들이었다.

덕분에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방어할 수 있었지만, 빠른 습득력과 더불어.

“…공격을…… 할 수 없어.”

볼록 솟은 뱃속에 저장되어 버린 일족 때문에 공격이 불가능했다.

“으득! 하필이면… 아이들을 가장 먼저 삼켜 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청년이 되고 처녀가 되었지만, 어른들에게는 아이였다.

그리고 일족의 미래였다.

일족의 미래를 위해 시간의 흐름을 비틀었을 때부터, 탄생은 손에 쥐기 힘든 보물처럼 변해 버렸다.

때문에 공격을 하지 못했고.

때문에 일족은 멸망에 가까운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제발… 방법을 찾아와 줘!”

믿을 건 수장뿐이었다.

마녀의 모든 지식이 기록된 길, 회랑.

그곳에서 지혜를 얻어 오기만을 기대해야 했다.

“끄아악!”

추억이 불타고, 친우가 비명을 지르며 거미줄에 칭칭 감겨 거대한 입속으로 잡아먹힌다.

마치 먹이를 저장하듯, 배 속의 특별한 공간에 집어삼킨 마녀들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그리고 그 속으로부터 천천히 마력을 뽑아낸다.

울컥.

그사이, 아라크네의 덩치는 눈에 띄게 커져 있었다.

유독 도드라져 부푼 배 때문인지, 움직임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그것이 수장과 몇 남지 않은 일족에게는 행운으로 다가왔다.

“……으음.”

침음과 함께 눈을 뜬 수장이 메시지 마법으로 남은 일족에게 말했다.

서로에게 저주를 거시오. 나태와 관련된 모든 저주를 총동원하시오! 놈의 활동을 늦춰야 하오.

수장의 말에 모두는 망설임 없이 서로에게 저주를 걸었다.

저주가 걸리자 방어는 늦어졌고, 거미줄은 그런 일족을 낚아채어 흡수했다.

움찔.

수장은 거미줄을 비롯하여 거미의 움직임이 한 차례 크게 떨리는 것을 목격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통한다.”

촉수처럼 사방으로 퍼져 일족을 낚아채던 거미줄이 허공에서 잠깐 멈추었다.

스스로에게 건 저주를 통해 마력 자체를 오염시켜 버리는 방법.

놈이 일족을 삼켜서 마력원으로 사용하기에 가능한 방법이 다행히도 성공했다.

‘남은 건… 내 몫이다. 서둘러야 해!’

수많은 지식을 열람할 시간은 부족했다.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었고,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남은 일족이 거미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패러사이트.”

스스로에게 감염 효과를 부여한다.

‘이로써 일단 모든 저주가 일족 전체에게 퍼질 거다.’

“더미.”

일족의 더미를 만든다.

형체만 빌린 허상이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거미줄이 마력을 공급하면 어지간한 움직임은 재현할 거다.’

집어삼키는 성질.

수장은 그것만 남길 생각이었다.

더미를 집어삼키기 위해 거미줄을 뿜어낼 것이고, 더미는 그것에 당해 흡수당할 것이다.

“리와인드.”

마법을 반복한다.

시간의 흐름을 비트는 건, 마녀의 전유물이자 권능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거미가 뽑아낸 마력으로 더미를 만들고 다시 흡수당해, 그 마력으로 다시 해당 상황을 반복한다.

사용과 회수의 반복.

‘도중에 손실이 생기면 다행이지만… 의미는 없겠지. 나태의 저주라면 결계를 넘어서 강자들을 건드리는 헛된 일은 하지 않을 거고….’

최소한의 기틀을 만든 수장이 으득, 이를 갈며 마지막 마법을 전개한다.

일족의 터전에 쳐졌던 결계가 순식간에 변화하기 시작한다.

결계가 변화하여 완성되기 직전.

“…마, 맙소사!”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또렷한 음성이 수장의 귀에 들렸다.

“……레, 베카?”

일족의 마법을 보유하지 않은 유일한 아이.

“아아…….”

찰나 하나의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족의 미래를 ‘가정’ 하나에 맡겨야 했으나, 수장은 이전보다 더 완성된 계획의 결과를 느꼈다.

망설임은 없다.

챙강!

검까지 놓친 채 충격에 빠져 허물어지는 레베카를 향해, 수장이 마법을 사용했다.

더미를 형성하고, 리와인드를 걸고, 시간의 흐름을 비튼다.

그리고 레베카의 흐름에 자신들의 흐름을 연결했다.

자신들의 보고, 회랑을 통해.

과한 부담감에 온몸이 떨리고, 눈과 입가에서 피가 흘렀으나 수장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끼릭, 끼리릭!

톱니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마법이 완성되었을 때.

시간의 결계가 완성되어, 하나의 열쇠가 허공에 빛을 뿌리며 생겨났다.

갇힌 레베카의 눈이 마지막으로 싱긋 웃는 수장과 부딪쳤다.

“부디… ‘그’가 우리를 구원해주기를 바래야겠구나.”

레베카의 눈이 크게 떨리며 입이 한껏 벌어져 비명과 같은 고함을 질렀으나, 그 어떤 소음도 외부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런 레베카를 보며 수장이 마지막 시동어를 읊었다.

“……오픈.”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 * *

파앗!

세계가 변했다.

파괴되던 아라크네의 시대가 아닌, 미로처럼 변해 버린 기이한 형태의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그와 더불어 시선이 느껴졌다.

푸른빛의 피부, 동공이 없는 흰자.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그것이 확장되어 다가왔다.

“……후욱!”

짧게 숨을 내뱉은 정우가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날렸다.

‘마녀’들은 정우를 향해 입술을 달싹거리던 자세 그대로 멈춰 있었다.

끼릭,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움찔거리긴 했지만 큰 움직임은 없었다.

웅웅!

반응은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

갑자기 진동이 손아귀에서 시작되었다.

손을 펴자 ‘열쇠’가 잡혔다.

[ 열쇠 사용 ]

한때 강대함으로 이름을 날렸던 일족, ‘마녀’의 유예된 멸족을 ‘열람’하였습니다. 열쇠의 사용법을 알아내십시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등급 : (미정)

보상 : 열쇠의 진정한 사용법

실패 : 영원한 마녀의 미궁

-기다…… 렸….

-우, 리… 를……!

끊어질 듯 희미한 음성이 머릿속에 들려왔다.

정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조금 전까지 본 환각이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눈앞의 이들이 과거.

정우는 순간적으로 또렷해진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고는 침음을 삼켰다.

제임스 밀러가 왜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게이트였어!’

오픈이라는 시동어.

그로부터 나타난 현상은, 게이트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었다.

‘열쇠라면 그 레베카라는 여자에게 사용하는 걸 테고….’

정우는 마녀를 보았다.

수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라는 게 누구지? 아군이라도 있었던 건가?’

궁금증이 쌓여만 갔다.

움찔거리는 마녀의 머리 위로, 실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환상 속에서 보았던 그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아라크네의 거미줄.’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마녀들이 활동을 개시했다.

스스스스!

음산한 소음과 함께 잿빛의 안개가 정우를 감싸듯 다가왔다.

저주였다.

안개의 정체를 모르는 정우였지만 그 효과가 이롭지 않을 것이란 건 짐작이 가능했다.

때문에 땅을 박차 오히려 놈들에게 다가간다.

사람을 닮은 외형과는 달리 마녀들의 정체가 ‘더미’라는 것을 인지한 정우의 손속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파악!

단번에 목을 꿰뚫고, 다른 마녀를 향해 입술을 달싹거린다.

전면에 생겨난 매직 미사일 하나가 회전하며 마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퍼석!

탁한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머리가 연기처럼 변해 사라졌다.

파스스스!

마녀 둘이 검은 연기로 화해 사라지는 사이, 정우는 다른 마녀 하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희끗한 불덩이가 생기기 이전, 정우의 삼단창이 마녀의 팔을 쳐 내고선 목을 그어, 잘라 냈다.

파아-!

피 대신 쏟아지는 검은 연기가 이내 전신을 잠식하여 흩어진다.

‘더미.’

환상으로 보았던 것들이 정확하게 재현되었다.

두근!

정우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게이트.

그것을 인위적으로 오픈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어떻게 심장이 뛰지 않을 수 있을까.

정우는 지도를 펼쳤다.

집중하여 지도를 머릿속에 담았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퀘스트의 말미에 등장한 첨언을 되뇌며, 달리기 시작한 정우의 마력이 빠르게 회전한다.

긴 미로처럼 굽어진 길을 내달리면서, 정우의 감각은 점점 더 예민해져만 갔다.

스스스스!

잿빛의 안개가 반응하기도 이전에 정우의 손이 까딱거린다.

퍼엉!

단번에 터져 나가는 머리.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지는 마녀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정우는 빠르게 내달렸다.

당장 흰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 것 같은 마녀들이었지만 막상 정우를 마주하고서는 짧게 움찔거려댔다.

그 틈은 정우에게 매우 유용했다.

파앙!

매직 미사일을 날릴 필요도 없었다.

달려들어 후려치고, 그간 손에 익은 삼단창을 휘둘러 목을 찌르고 지나가는 모양새가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튜토리얼 때의 허수아비를 처단하듯, 잠깐의 틈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한 정우의 움직임엔 조금의 제약도 없었다.

셋, 넷.

정우를 노리며 다가오는 적의 수가 제한적인 것도 그에게는 호재였다.

공략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여러 플레이어의 목숨을 앗아 간 던전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허망할 정도.

나아가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 지도와 기억을 대조하는 게 더 시간이 걸릴 정도로 움직이던 그가 처음으로 발을 멈추었다.

“……?”

막다른 길.

제임스 밀러가 준비해 준 지도의 목적지와는 정반대의 막다른 길 하나가 정우의 이목을 끌었다.

여태껏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온 나무와 넝쿨 따위의 엉킴으로 만들어진 벽과 전혀 차이를 보이지 않는 그곳을 멈춰 주시하던 정우가 걸음을 옮겼다.

관심을 끌었던 막다른 길이었다.

틈새가 보이지 않은 그곳에 선 정우가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뭐지?’

하지만 그런 자연스러움과는 달리 정우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몇 번이고 지도를 머릿속에 그렸다.

레베카가 갇혀 있는 시간의 결계의 위치와 전달받은 지도상 퀘스트의 진행 위치가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뭔가가 미심쩍었다.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정우의 감각을 지속적으로 자극했다.

마치 찝찝한 거머리가 들러붙은 것처럼, 한번 든 기이한 감각은 애매하게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퀘스트의 내용이 전혀 다른데도 위치가 비슷해. 하지만… 똑같지는 않아.’

다른 플레이어들과 퀘스트가 다르지 않았다면.

아니, 환각을 보지 못했다면.

던전의 원형을 눈에 담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이질감이 정우의 정신을 사로잡았고.

“……!”

이윽고 간질거리는 단서 하나를 잡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오밀조밀하게 들어섰던 마녀들의 집.

대로와 소로.

굽어진 골목과 그 경계를 이루는 울타리.

스쳐 지나간, 레베카가 훈련하던 뒷산까지.

마지막 순간, 마을 전역을 가두고 옭아매던 거미줄이 그 위에 덧씌워진다.

펼친 그물을 거둬들이는 것처럼, 거미줄이 마을의 모든 것을 비틀어 끌어당겼다고 생각한다면.

번쩍!

묘한 확신을 가지고 막다른 벽을 짚은 정우의 손이.

“……!”

아공간에 닿은 것처럼 벽 너머로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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