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환영
까르르르.
어디선가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었다.
-(((( ;°Д°))))
간만에 메아리의 이모티콘이 떠올랐다.
하지만 정우는 대꾸하지 못했다.
환각은 진실처럼.
진실은 아련한 추억처럼.
조금씩 변화하여 정우의 머릿속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꺄르르.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보다 선명해져만 갔다.
이 환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되뇌면서도 정우의 정신은 아이의 웃음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우가 환각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화아아악!
어느새 눈앞의 광경이 바뀌었다.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 * *
“꺄르르르.”
짹짹, 새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진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새소리보다도 더 청량했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고, 아이들은 그 아래에서 술래잡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
아이들은 그 시간을 보낸 후, 각자의 집으로 귀가했다.
잠시 벗어두었던 고깔모자를 쓰고.
“꺼지지 않을 불꽃이여,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어라.”
낭랑한 영창과 함께 마법의 발현에 성공한 아이들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환호했다.
어른들 역시 그런 아이들의 성취에 기쁜 웃음을 지었다.
마법의 발현에 성공한 아이들은, 그토록 기다리던 박달나무 지팡이를 선물로 받았다.
지팡이를 든 아이들은 오래전, 동화에서 들은 것처럼 탁, 지팡이 끝을 바닥에 찍으며 있지도 않은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어른들이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장면이 바뀐다.
“…너무 깊은 거 아니야?”
한 여자아이가 불안한 음성으로 물었다.
선두에 선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마법도 배웠잖아. 이 정돈 탐험이야.”
“맞아. 우리도 언제까지 아이들은 아니라고.”
몇몇 아이가 동조하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던 아이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랐다.
“초입까지 만이야.”
“알았어. 걱정 마.”
“넌 벌써 늑대도 잡았잖아. 근데 겁이 왜 이렇게 많아?”
“늑대를 잡은 것과 조심성은 다른 거야.”
“으휴. 어차피 결계를 잠깐 넘어가는 것뿐인데… 별일 없을 거야. 칼 아저씨도 주기적으로 통행하잖아.”
“그건 칼 아저씨니까….”
“그만. 일단은 조금만 갔다 오자. 궁금하잖아.”
“…궁금은… 하지.”
“어른들이 너무 겁을 줘서 그래. 우리 마법이면 몬스터도 한 방에 없앨 수 있을 거야.”
“히히. 그래. 분명히 그럴 거야.”
친구들의 웃음을 보며 애써 불안감을 억누른 여자아이는, 지팡이 대신에 손에 든 검을 만지작거렸다.
검을 만지니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다행히 치기 어린 탐험을 벌이는 동안 별일은 없었다.
뛰노는 여러 동물만을 발견했을 뿐, 우려하던 몬스터는 털끝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심 아쉽다는 마음이 들어 여자아이는 흠칫 놀랐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스스로도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입맛이 썼다.
“이거 봐. 색이 이상한 거미야.”
선두에 섰던 남자아이가 소리쳤다.
보이지 않는 몬스터에 모험은 그저 탐험 놀이로 변해 버렸고,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냥 거미잖아.”
“아니야. 잘 봐봐.”
남자아이가 씨익 웃으며 마력을 풀었다.
거미줄에 매달려 있던 거미가 아이의 마력에 반응하여 이리저리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마력을 잡기라도 하겠다는 듯.
“…마력을 보는 건가?”
“말도 안 돼. 그냥 거미잖아.”
“설마 몬스터일까?”
아이들이 분분한 의견을 내놓았다.
“마력을 주면 어떨까?”
남자아이가 대뜸 그렇게 말하며 거미에게 마력을 주입했다.
“어? 어? 그러다가 터지는 거 아니야?”
볼록.
금방 배가 볼록해진 거미는 마치 터질 것처럼 빵빵해졌다.
“에? 몸집이 약간 커진 것 같은데?”
“우와! 진짜 신기하다!”
“데려가서 어른들에게 보여주자!”
“그래, 그러자. 어른들이라면 이 거미에 대해서도 잘 알 거고, 또 신기한 걸 발견했다고 칭찬해주실 거야.”
“나, 난 칭찬이 좋아!”
“대단해!”
아이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남자아이는 아직은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거미를 잡아 옷으로 잘 감쌌다.
“어? 벌써 해가 지려고 해.”
“얼른 돌아가자!”
“보물이다. 히히.”
“거미가 보물이야?”
“특별한 건 다 보물이래. 우리 엄마가 그랬어.”
아이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귀가했다.
* * *
‘……환각이, 맞는 건가?’
눈앞의 장면을 보던 정우가 의아함을 품었다.
영화를 상영하는 것처럼 막무가내로 전개된 장면은 화면과 음성까지 선명하기만 했다.
기억이 모호한 건 아니었다.
인간의 외형을 닮은 마녀의 저주에 당한 것까지 정확하게 기억이 났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건, 그 어떠한 자료에도 적혀져 있지 않았다.
특별한 내용.
정우는 자신을 제삼자로 둔 채, 빠르게 흘러가는 영상에 집중했다.
‘무엇을 원하는 거냐.’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정우는 우려를 애써 억눌렀다.
* * *
“이게 뭘까?”
“신기하군. 처음 보는 거야.”
“거미…가 맞는 건가?”
어른들 역시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컸다.
마력에 반응하는 거미.
수천 년 동안 유지된 숲에서도 처음 보는 존재였다.
“제가 돌 볼 거예요.”
소년의 단호한 말에 난색을 표하던 어른들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주기적인 관찰만 허락한다면, 거미는 네게 맡기마.”
“당연하죠! 저도 이 거미가 신기해 죽겠는걸요.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요!”
호기심.
숨어 지내던 이들에게 다가온 작은 거미 하나는 일족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박달나무 지팡이를 손에 쥐던 때보다도 더한 열감으로, 소년은 거미를 돌보았다.
“어머? 생각보다 많이 자랐는데?”
어느새 손바닥만 하게 자란 거미를 본 여자아이가 깜짝 놀랐다.
“그렇지? 마력을 좋아한다니까?”
“꼭 몬스터 같아.”
“근데 몬스터는 아닐걸? 그런 특유의 성질이 없어.”
“음. 이지스 님은 뭐라고 하셔?”
“조금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셔.”
“그렇구나.”
여자아이가 콧소리를 내며 흥미롭게 거미를 둘러보았다.
“검술 훈련하고 오는 거야?”
“…응.”
“네 검은 단단해. 충분히 자랑할 만한 거야.”
“고마워.”
“고맙기는. 언제고 네 검이 우리 일족에게 큰 힘이 될지도 몰라.”
“그랬으면 좋겠어. ‘공명’을 다루지 못하는 마녀란 필요가 없으니까.”
“아냐. 그렇지 않아. 공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래. 그러면 좋겠네. 그러면….”
소년은 소녀의 씁쓸한 미소에 입을 다물었다.
공명은 마녀의 모든 것.
시작이자 근원.
그것을 다루지 못하는 유일한 인물인 소녀는,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박달나무 지팡이가 아닌 검을 들었다.
소년은 그런 소녀가 멋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소녀의 마음엔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소년은 더욱, 거미에게 관심을 쏟았다.
마력을 볼 수 있으며, 마력을 흡수해서 성장하는 거미.
그런 성질을 조금 더 연구하고 알아보다 보면, 마력의 근원에 닿을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품었다.
‘그때가 되면… 네가 마력의 공명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지 몰라.’
소년은 여러 고민은 안은 채 거미를 성장시켰다.
“더 이상 커지질 않네?”
아무리 마력을 먹여도, 거미의 외형엔 변화가 없었다.
비단 외형뿐만 아니라 마력을 흡수하는 것 자체에 제동이 걸렸다.
소년의 고민은 길어졌다.
연구에 몰두하고 고민하는 동안 세월이 흘렀다.
소년은 이제 소년이 아닌 청년이 되었고, 제 몸만 한 검을 든 소녀는 어느덧 자라 어지간한 몬스터도 우습게 여길 여전사로 자랐다.
거미에 대한 호기심이 다소 시들해졌을 무렵.
청년의 손엔 붉고 작은 보석이 들려 있었다.
“이거면… 성장할 수 있겠지?”
* * *
‘마정석!’
익숙한 물건이었다.
격변의 시대를 겪으며 인간의 과학은 이능과 결합하였다.
던전 내의 부산물은 여러 이능을 거쳐 가공되었고, 세계 전역으로 팔려나가 연구되어 전혀 다른 체계를 구축했다.
그중에서도 마정석은 특별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훌륭한 부산물이 바로 마정석이었기 때문이다.
아티팩트.
특별한 몬스터의 외피나 뼈.
마정석.
이렇게 셋은 플레이어의 주 소득원이었다.
그중에서도 마정석은 전기나 핵에너지를 대체할 최신 에너지로 가공되어 사용되었다.
제임스 밀러의 전용 헬기도 마정석을 이용하여 급유가 필요 없는, 반영구적인 물건이었다.
마정석은 인간에게 유례없는 편리함을 주었지만, 그것의 본질은 몬스터 체내에 존재하던 마력의 결정체.
인간을 부정하며 파괴를 일삼던 그것의 결정체가 온전히 인간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었다.
때문에 마정석은 주기적으로 정화 시스템을 거쳐야 했고, 정화 능력을 지닌 이들은 상당한 재화를 벌어들이며 안전하게 활동했다.
그렇게 사회는 또다시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정우의 시선이 다시 한번 마정석으로 향했다.
인간에게 이롭지만은 않다는 것.
마정석의 본질을 떠올리자 정우는 청년의 행동이 불러올 참사가 어렴풋이 연상되었다.
몬스터의 결정체.
그것을 섭취한 거미.
변화가 시작되었다.
* * *
무럭무럭 자란 거미는 어느새 청년의 크기만큼 커졌다.
그때부터 청년은 거미와 함께 살 수가 없었다.
청년은 거미를 마을 뒷산으로 옮겼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동굴에 두고, 자신이 관리하겠노라 어른들에게 말했다.
어른들은 고민을 했지만, 여태껏 해온 청년의 연구와 노력을 믿고 그의 말에 따랐다.
“조금만 더 연구하면… 뭔가 실마리를 잡을 것 같아.”
청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치이이.
그리고 거미도 그렇게 생각했다.
청년의 마력으로 성장했고, 청년의 연구를 곁에서 계속 경험했으며.
스스스.
마정석을 섭취하며 지성을 가지게 된 거미는,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
성장하고 싶다.
더욱더 커지고 싶다.
작고 나약한 거미가 아닌,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것은 본능이었고, 변질된 욕망이었으나 거미에게는 너무도 어울리는 것이었다.
거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거미줄을 치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숨어 살고 있던 일족의 결계 내부를 보이지 않는 마력의 실로 가득 채웠다.
그것으로 모자라 천천히 결계를 뚫고 외부로 향했다.
청년의 마력은 일족의 패턴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 마력으로 성장한 거미는, 자연스럽게 마녀 일족의 마력 패턴을 흡수했다.
때문에 결계를 비집고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인근의 몬스터를 죽이고.
마정석을 흡수하고.
부득, 부드득!
영리해진 지능을 바탕으로 거미 역시 마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처럼 마정석을 품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마력의 실로 마정석을 칭칭 감아 청년의 눈조차 속였다.
그렇게 수년이 지났을 때.
거미의 거미줄은 마을의 전역을 비롯하여 결계 너머의 지역까지 연결해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구축하고 있었다.
청년은 몰랐고.
어른들은 안일했으며.
거미는 영악했다.
“……!”
“겨, 결계의 일부가 부서졌소! 얼른 수복해야 하오!”
결계의 일부가 부서졌다.
외부와의 단절을 철칙으로 여기고 있던 마녀들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을 때.
스스로에게 ‘아라크네’라 이름 붙인 거미가 계획을 실행했다.
자신의 어미이자 보호자였던 청년을 집어삼키는 것을 시작으로.
“꺄아아악!”
“몸이 움직이지 않아요!”
“…이, 이건 마치… 거미줄 같잖아!”
위대한 마법의 소유자들도 하나같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묘한 울림을 고스란히 따라 하는 마력의 실은 너무도 가볍게 마녀의 마법을 뚫고 그들을 억압했다.
마녀의 마력 패턴.
그것을 습득한 아라크네의 적수는 없었다.
“아아아악!”
비명이 난무한다.
가족의 비명.
친구의 비명.
동족의… 비명.
아라크네의 안에서 그것들을 듣고 눈에 담은 청년은 피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