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0화 (20/293)

20화

-새로운 단서.

“…후욱!”

뜨거운 열기가 숨과 함께 배출된다.

그럼에도 은은한 아지랑이가 눈앞을 어지럽혔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열감을, 정우는 창을 지팡이 삼아 버텼다.

“휘유!”

이마의 땀을 닦은 제임스 밀러가 휘파람을 불었다.

우웩!

경호원 중 하나가 토악질을 해댔다.

마력 고갈이 심한, 마법사였다.

“이런, 귀환을 해야겠네.”

애당초 퀘스트는 완료가 됐다.

이곳 어딘가에 출구가 나타났을 터였다.

제임스 밀러조차 욕설을 내뱉었을 정도로 전투는 꽤 힘들었다.

무지막지한 돌진.

도마뱀들이 싫어하는 불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놈들의 돌진은 멈출 줄을 몰랐다.

생사대적.

아니,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천적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들고 또 들이닥쳤다.

바로 정우를 향해서.

제임스 밀러는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후유증이 심하긴 하겠지만 긴 유급 휴가를 줄 테니까 마셔.”

경호원들은 제임스 밀러가 내미는 약물을 마시고는 약간의 평정을 되찾았다.

“스태미너 포션인데 아마 삼 일은 앓아누울걸?”

피식 웃는 제임스 밀러를 보며 정우가 휘청거렸다.

“미스터 한은 아니야. 먹으면 안 돼. 귀환하면 회복 기계가 있으니까, 거기서 회복하고 또 가야지.”

그의 말에 정우의 눈가가 크게 떨렸다.

* * *

던전의 영역은 의외로 좁았다.

입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습지 도마뱀들이 달려든 이유가 있었다.

때문에 게이트는 어렵지 않게 찾았고, 모두는 던전에서 귀환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작업반과 교대하며, 헬기를 탄 정우는 유 대리의 근심 가득한 표정을 보며 잠에 빠졌다.

비단 정우뿐만이 아니라 제임스 밀러도 마찬가지로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그렇게 제임스 밀러의 연구실이자 회사인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정우는 정체불명의 물이 담긴 기계 안에 들어갔다.

“드래곤볼에서 영감을 받았지. 이거 효과가 엄청 좋다고? 흐으. 이거 없었으면 아무리 나라도 마력억제제를 먹는 미친 짓은 못 했을걸?”

호흡기까지 달고 물속에 들어가는 건 아니었지만, 턱밑까지 찬 물이 묘하게 거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친 육신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놀람으로 커진 정우의 눈에 잡힌 건, 육체의 회복 경과에 비례하여 속도를 높인 마력 회복이었다.

바닥을 드러냈던 우물에 빠르게 물이 차오르듯, 마력이 솟구친다.

가뜩이나 적은 양의 마력의 회복에 걸린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결국, 정우는 3시간 만에 회복 기계를 탈출할 수 있었다.

“젊어서 그런가? 회복이 엄청 빠르네.”

제임스 밀러의 농담에 정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제임스 밀러 씨.”

“응?”

“그 게이트 생성 장치… 어느 정도 완성된 건지 물어도 됩니까?”

정우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던 제임스 밀러가 입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혀를 찼다.

“멀었어.”

“…….”

“관심이 많겠지?”

“보고서에 있는 모양이죠?”

“이거, 모르는군. 나도 한국에 갔다 온 적이 있어. G-00 때문에.”

“……!”

“연금술사는 현대로 따지면 과학자야. 여러 직업 중에서도 학구열과 호기심이 가장 왕성한 사람들이라고.”

“…방법이 없을까요?”

“음. 미안하지만 아직까진….”

제임스 밀러가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아, 그럼 이건 어떨까?”

기계 속에서 제임스 밀러가 눈을 빛냈다.

“음…. 어차피 테스트를 한 번 더 하려고 했는데, 거기가 좋겠네. 그래! 어쩌면….”

제임스 밀러는 보고서 속의 내용을 떠올렸다.

나이트 길드에서의 일.

몇 년이나 무난하게 공략하던 장소에서 특별하게 등장했던 지하.

‘한정우에게 반응했다고 봐야 옳겠지?’

제임스 밀러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렇다면 이 던전도 꽤나 좋은 추천이 되리라.

“아라크네의 미궁이라는 곳이 있어.”

“아라크네의… 미궁?”

정우는 그 말을 곱씹었다.

“내 생각엔 거기에 숨겨진 장소가 있을 것 같거든.”

“…숨겨진 장소요?”

“이미 경험해 봤지? 검증은 못 했어도….”

정우는 나이트 길드를 떠올렸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임스 밀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시해둘 테니 가봐. 그리고 검증해. 던전의 법칙을 뒤흔들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는 걸. 만약 그걸 검증하면 내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인위적인 게이트 생성장치를 만든 계기가… 거기에 있거든.”

그 말을 끝으로 제임스 밀러는 눈을 감았다.

정우는 그런 그를 잠시 응시하다가 몸을 돌려 회복실을 벗어났다.

‘던전의 법칙을 뒤흔든다?’

묘한 울림.

고심하던 정우가 입술에 침을 발랐다.

* * *

“바쁘네요.”

유 대리가 짐을 정리하며 투덜거렸다.

간만에 외국까지 나왔으니 잠깐 여행이라도 즐길 줄 알았던 일정은, 그녀의 망상으로 끝나 버렸다.

“던전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근처라도 구경하세요.”

“…그러고 싶은데요. 그래도 던전에서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럴 수는 없죠.”

몇 번의 권유, 그리고 거절.

정우는 더 이상 휴식을 언급하지 않았다.

“보고서예요.”

제임스 밀러의 비서에게서 받은 자료를 다시 정리하여 유 대리가 건넸다.

정우는 자료를 읽었다.

이미 여러 번 공략이 진행된 던전이었다.

천천히 읽던 정우의 눈이 한 곳에서 멈췄다.

“…이거.”

“아… 저도 걱정이 되긴 하는데… 제임스 밀러 씨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기대가 된다고….”

“음.”

내심 걱정이 앞섰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크네의 미궁이 1인 던전일 줄은 몰랐네요.”

1인 던전.

오직 1명만 입장할 수 있는 던전.

혼자서 입장하여 모든 진행을 홀로 진행해야 했기에 일반적인 던전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저주?”

“네. ‘마녀’라는 종족이 나오는데, 딱히 이성은 없고 저주를 사용한다고 해요. 이거 받고요.”

유 대리가 펜던트 하나를 건넸다.

[ 신성력이 깃든 펜던트 ]

미약한 신성력이 깃들어 있어, 부정적인 힘에 대해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마법저항력 : +5

저주 계열 저항력 : +10

“대여래요.”

유 대리가 자료를 가리켰다.

“그거면 마지막 공략 빼고는 어느 정도 다 저항이 가능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그러죠.”

유 대리가 싱긋 웃었다.

정우는 자료로 시선을 옮겼다.

상세히 적힌 공략법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왜 제임스 밀러가 자신에게 이 던전을 추천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미궁.

말 그대로 이리저리 꼬인 길은 자연스럽게 적들의 거리를 벌려놓았다.

어지간히 운이 없지 않은 이상 한 무리씩 상대하는 게 당연할 정도.

심지어 몬스터의 위치와 미궁의 지도까지 떡하니 존재하니, 더 이상 미궁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혼자서 공략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남은 건.

“시간만 재면 되는군.”

자체적인 타임어택뿐.

“괜히 신경 쓰다가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공략해요.”

유 대리가 다 꾸린 배낭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싱긋 웃는 유 대리에게서 배낭을 건네받은 정우는 그녀에게 인사했다.

“다녀올게요.”

“걱정 안 끼치게 차근차근 공략해요.”

“잔소리꾼이네요.”

풉, 둘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정우는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유 대리를 뒤로 한 채 건물을 벗어났다.

일전에 탑승했던 헬기에 올라탄 정우는 그래도 두 번째라고 하늘에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졌다.

이국의 하늘.

꽤 운치가 좋은 정경을 한참이나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

헬기에서 내린 정우는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느껴지는 파동.

“아라크네의 미궁입니다.”

대기하고 있던 금발의 푸른 눈의 사내가 말했다.

“한정우 씨 되십니까?”

“네. 제가 한정우입니다.”

정우가 내미는 패를 본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장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정우는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어딘지 모르게 서늘하면서도, 묘하게 들러붙는 기이한 느낌을 뿜어내는 게이트 안으로.

그렇게 한 발을 디뎠을 때.

눈이 커진 정우의 걸음이 빨라졌다.

후욱!

단번에 바뀌는 세상.

“…미궁이라고 하기에 지하를 생각했는데… 숲이었어?”

높고 커다란 나무가 빼곡하게 자리 잡고, 나무 사이를 굵고 가시 달린 넝쿨이 휘휘 감고 있었다.

작은 다람쥐조차 쉽게 건너지 못할 것 같은 단단한 모습.

마치 벽과 같은 그것은 사방을 둘러싼 채, 오직 일방적인 경로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정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게이트에 첫발을 디디자마자 떠오른 것 때문이었다.

[ ‘알 수 없는 열쇠’가 강하게 반응합니다. ]

제임스 밀러의 말에 약간 기대를 한 건 사실이었다.

인위적인 게이트 생성장치의 연구 계기가 된 장소.

그 연구에도 반응한 열쇠가 해당 게이트에서 반응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으니까.

기대는 확신이 되었다.

그리고 확신은.

[ 아라크네의 미궁의 진실 ]

진실을 파악하라.

등급 : (미정)

보상(1) : 알 수 없는 열쇠의 사용법

보상(2) : (미정)

등장한 퀘스트로 증명이 되었다.

간단명료한 퀘스트 내용.

조금의 단서도 주지 않는 진실이라는 것은, 유 대리에게서 건네받은 그 어떠한 자료에도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이었다.

‘던전의 법칙을 뒤흔드는…….’

정우는 제임스 밀러의 말이 떠올랐다.

혼자만 다른 세상을 겪었던 튜토리얼, G급 던전.

성장하지 않는 마력.

기존의 법칙을 벗어나 자신을 노리며 달려드는 몬스터들.

쉽게 얻을 수 없는 아공간에.

“물건까지 존재했어.”

열쇠 또한 아공간에서 나온 물건이었다.

정우는 어쩌면 스스로가 진실로 던전의 법칙을 뒤흔드는 존재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이내 묘한 기대감으로 바뀐다.

던전의 법칙을 바꾼다.

바꾼다.

“…그럼. G급 던전의 법칙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내뱉은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 손으로….’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순간에 대한 단서를 잡은 느낌이었다.

정우가 묘한 울림에 희열을 애써 억누르고 있던 그때.

적의 기척이 느껴졌다.

느릿한 움직임, 그러나 꾸준한 접근.

삼단창을 꺼내 든 정우가 숨을 죽이며 천천히 움직였다.

슬며시 비타 안에 저장해 놓은 지도를 불러내 확인했다.

‘처음엔 미로 없이 외길이네.’

유 대리로부터 받은 자료를 맹신할 수는 없었다.

이동해야 조우할 수 있던 이전과는 달리, 자신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부터 몬스터들은 열심히 접근하고 있을 테니까.

정우는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여러 변수를 점검했다.

이윽고 몬스터의 모습이 얼핏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 빠르지 않은 움직임.

로브를 둘러쓴….

‘……인간?’

“……!”

정우의 눈이 커졌다.

푸른색의 피부와 흰자로만 이루어진 눈이 섬뜩하긴 했지만 외형만큼은 여느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첫 조우부터 정우는 제임스 밀러가 왜 게이트 생성장치를 연구한 건지 얼핏 짐작이 갔다.

‘이 세계가… 궁금했던 걸 거야.’

제임스 밀러가 연구하는 게이트 생성장치는 비단 던전으로 진입하는 문을 여는 것에 국한되는 게 아닐 가능성이 컸다.

클리어하면 사라지는 던전.

그 이면의 세계.

몬스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자신들의 힘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학구열과 호기심이 많은 과학자.’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한 제임스 밀러였다.

던전 너머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절레절레.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고작해야 E급 던전에서 등장한 인간의 형태를 지닌 몬스터가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모퉁이에 숨어 상대를 파악하고 있던 정우.

‘마녀’라 불리는 몬스터 셋이 천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다가, 이내 고개가 빠르게 돌아간다.

“……!”

정우가 숨은 장소로.

중얼중얼.

단번에 묘한 울림이 공기를 자극한다.

‘들켰다?’

어째서 들켰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지만, 여태껏 자신만을 노리던 몬스터를 떠올리면 그리 어색한 일도 아니었다.

정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반응했고, 순식간에 땅을 박차며 창을 휘둘렀다.

더불어 놈들의 뒤편에서 생겨난 작은 점 하나가 이내 덩치를 불려 가며 회전한다.

“매직 미사…….”

덜컥!

하나, 마법이 완성되기 이전에 정우의 무릎이 꺾였다.

[ 저항합니다. ]

단순명료한 메시지가 떠올랐음에도 정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유 대리의 말은 틀렸다.

펜던트를 착용하면 마지막을 제외하고서는 모든 저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그 말.

그렇지 않고서야.

‘……환각?’

환각에 걸릴 리가 없었으니까.

화악!

자신을 보는 마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눈앞이 일그러지듯 회전한다.

꺄르르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정우의 귓가에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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