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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7화 (17/293)

17화

-겨우….

“…어떤 새끼야?”

경비팀의 당직이 갑자기 요란하게 빛나는 버튼을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뻔히 트레이닝 센터가 눈앞에 있는데 왜 밖에서 마력을 쓰고 지랄이야.”

마력 감지 센서.

요란하게 점멸하는 버튼을 꾹 눌러 끈 당직이 키보드를 조작했다.

외부 감시 카메라를 화면에 띄운 당직의 표정이 당혹으로 일그러졌다가 이내 굳어진다.

황급히 비타를 조작한 그가 말했다.

“T-34 구역! 전투가 벌어졌다! 대응팀 출동 요청! 반복한다….”

두 번의 반복.

당장 출동하겠다는 응답.

당직은 키보드를 조작해 화면을 키웠다.

점차 가까워지는 모습을 본 당직의 눈에, 화가 난 듯 달려드는 상대를 쳐내는 깡마른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우지끈!

들릴 리 없는 소리와 함께 나무에 부딪힌 사내가 무너져 내린다.

“이 미친놈들이… 단순 싸움이 아니잖아?”

정확한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당직이 다시 한번 비타에 상황을 알렸다.

* * *

‘……후우!’

한숨을 내쉰 정우가 바닥을 박찼다.

빌런의 방어막은 단단했다.

거북이 껍질에 들어간 것처럼, 단단한 마력의 구는 도무지 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직접 부숴야지.’

정우의 손엔 어느새 아공간에서 꺼내 든 삼단창이 들려있었다.

삼 일 동안 잠도 마다하고 훈련에 매진했다.

조급함 때문에 행한 행동이기는 했지만, 무의미한 시간은 결코 아니었다.

몇 개의 성과가 있었고.

파스스.

창이 한 차례 떨리는 것으로 정우는 성과 중 하나를 선보였다.

검기.

아니, 이제는 창기(槍氣)라 불려야 할 기운이 삼단창에 맺힌다.

삼단창의 능력, 관통력.

‘마력 강화!’

그것을 강화한다.

창끝에 맺힌 마력의 농도가 순식간에 진해졌다.

매직 미사일에 정신이 팔린 빌런이 정우의 접근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삼단창의 끝이 방어막에 닿았을 때였다.

콰직!

“……!”

요란하게 소리쳤던 것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고, 그 빈자리를 당혹이 채웠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빌런의 마력이 폭사한다.

방어막은 두꺼워지고, 단단해졌다.

거북이의 등껍질은 단번에 쇳덩이처럼 변해 버렸다.

‘……아쉽다!’

꿰뚫기 직전인 창을 빼내며 정우는 혀를 차며 뒤로 몸을 훌쩍 날렸다.

드릴처럼 회전하며 나름의 성과를 보이던 매직 미사일도 마력의 폭사를 견디지 못하고 바람의 촛불처럼 꺼져 버렸다.

정우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플레이어가 된 뒤, 정우는 유 대리를 통해 여러 지식을 습득했다.

이미 이진수를 통해 전반적인 지식을 알고 있던 정우였기에, 필요한 지식의 방향이 달랐다.

보다 세밀하고, 자세하게.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알지 못하는 여러 실전적인 지식을 갈구했다.

그 중, 던전에서 필수 요소 중 하나인 방어막에 대한 지식도 있었다.

방어막의 지식은.

‘둘로 나뉘어. 하나는 마력을 밀어내듯 자신을 중심으로 방어막을 펼치는 것. 방어막의 타이밍이 조금만 늦으면 오히려 공격을 허용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전방위 방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하지만….’

한껏 젖혔던 어깨를 앞으로 쭉 밀었다.

손에 들려 있던 창이 점이 되어 방어막과 부딪힌다.

카가가가각!

빌런의 눈이 싸늘해진다.

손을 든 빌런의 손에서, 또 다른 마력의 구가 생겨난다.

방어막.

외부의 물질적, 마력적인 접근을 막는 그것을 공격으로 사용하는 그 기이한 방법은.

쿠웅!

터지지 않는 폭탄처럼 묵직하게 사방을 짓이겼다.

“발악하지 마라!”

버럭 소리를 지른 놈의 기세가 날카로워졌다.

정우의 가늘어진 눈이 사방을 훑었다.

‘…왼쪽.’

빌런의 방어막은 첫 번째 방법이 아니다.

한 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 결국엔 전방위를 막는 형태.

빠른 판단이 가능하다면 더없이 효과적으로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방어막의 시작점만 알면 공략이 가능할 수도 있단 소리야!’

정우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더불어 빌런의 공격도 점차 거세졌다.

‘…이놈! 분명히 내 공격을 피하고 있다!’

빌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단순히 공격을 피하는 게 아니었다.

스킬을 전개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움직였다.

미리, 아는 것처럼.

‘확실히 마력을 보는 거다. 어떻게? 그건 고위급이나 가능한 게 아니었어?’

반신반의하며 드러냈던 흥미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주제에 맞지 않은 마력감지능력이었다.

‘이건… 사로잡아도 리더의 말대로 할 수 없어!’

목을 베겠다는 선언.

그것을 부정하고서라도 데리고 가야 했다.

이 능력을.

‘그분’에게 바친다면…!

오싹!

빌런은 더욱 강력해지는 그분을 떠올리고는 환희했다.

그렇게 일그러진 미소를 본 정우는, 저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저열한 의지.

그것으로 불타는 욕망.

그것들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드러나는 추악한 미소에.

욱신!

정우는 머리가 아파 왔다.

-ᕕ(ꐦ°᷄д°᷅)ᕗ

메아리의 뾰족한 고함이 정우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의미를 짐작하기도 전에.

데굴!

몸을 날려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빠르게 생성된 방어막이 간발의 차이로 정우의 발끝만 스치고 완성되었다.

‘…위험했다.’

메아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여러 개의 방어막이 정우를 가둘 듯 주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정우는 그것을 보며 이를 갈았다.

‘피해야… 하는데.’

작정을 한 것인지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한 방향으로 돌파하자고 결정하던 정우의 눈에 조금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왜… 저기만 멀쩡하지?’

빌런의 주변.

이리저리 파헤쳐진 지면과는 달리 빌런의 주변만 온전한 모습을 유지했다.

‘…설마?’

정우는 빌런이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움직이면 스킬이 해제되는 건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마자 정우는 마력을 끌어 올려 사방으로 매직 미사일을 발사했다.

가가각!

사방의 방어막을 매직 미사일로 밀어내자 심장이 사정없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지끈거림을 억누르고.

여태껏 사용하지 않았던 스킬 하나를 집중하여 사용했다.

아주 미약했지만, 효과적인 틈을 노려.

놈의 발끝을 휘감아, 움직인다.

‘염동!’

“……!”

휘청!

아주 미약한 휘청임이었다.

빌런은 금방 자세를 잡았고, 고작해야 반 발짝 자세를 잡느라 움직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반 발짝에 대한 결과는 매우 컸다.

스르르!

사라지는 방어막.

사방에서 압박해 오던 투명한 구의 벽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일렁거리던 공기가 또렷해지고, 그 너머로 당황한 눈으로 주변과 자신을 힐끗거리는 ‘적’이 보이자.

타앗!

정우는 지체 없이 창을 틀어쥔 채로 지면을 박찼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마력을 부여한 창이 공명하며 일점이 되어 공기를 가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비하고 있던 정우의 공격은 빨랐고.

푸욱!

창은 빌런의 복부를 관통했다.

“……이, 새끼가… 감히!”

복부를 관통당한 통증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빌런이었지만 고통에 발광하는 그런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생각지도 않은 타격에 분노하면서도 싸늘하게 식어 버린 뇌리로 정우를 향해 반격할 뿐이다.

퍼어엉!

“……크윽!”

팔을 교차하여 방어막을 막아 낸 정우가 허공에서 빙글거리며 날아 쓰러지듯 착지했다.

머리와 심장이 깨질 듯 아파 왔다.

휘청거리는 정우를 향해 살의를 내뿜으면서도 사로잡으려고 스킬을 전개하던 빌런의 손이 움찔거린다.

홱, 돌아간 고개에 낭패감이 어린다.

“……젠장.”

나지막한 욕설.

‘…죽여?’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빌런은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어느새 정우가 뒷걸음질 쳐 거리를 벌렸기 때문이다.

기회를 놓쳤다.

다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놀다가 손에서 놓쳐 버린 상황.

순간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판단은 빨랐다.

정우를 노려보던 그 모습 그대로 투명한 막이 덧씌워진다.

그리고 마치 탱탱볼이 바닥에 튕겨 허공으로 높이 튀어 오르듯, 빌런의 몸이 뒤로 멀리 퉁, 날아간다.

뒤늦게 달려오던 경호원들의 눈이 빌런에게 꽂힌다.

“감히 협회 기관 앞에서 전투를 해?”

“잡아! 잡아서 취조를…….”

“자, 잠깐! 저거… 결계사 아니냐?”

“결계사? 그럼….”

“근처 길드에 협조 요청을 해! 결계사다! 빌런이야!”

빠르게 상황을 인지하며 정리하는 경호원들을 보며.

뚝.

정우의 정신은 퓨즈가 나간 전등처럼 훅, 꺼져 버렸다.

* * *

“기절이 취미예요?”

눈을 뜨자마자 싸늘한 음성이 들렸다.

정우는 뻐근한 눈을 꾹 감았다가 다시 떴다.

유 대리가 보였다.

안도감에 들썩거렸던 상체를 다시 침대에 눕히는 정우를 보며, 유 대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침대를 툭 건드렸다.

“대체 왜 결계사와 붙은 거예요?”

“…결계사요?”

“일단 궁금할까 봐 미리 답하면, 정우 씨는 기절한 지 이틀이 됐고요, 결계사는 빌런 중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이에요. 방어막을 결계처럼 사용하고, 그걸 무기로 삼는 능력이 탁월하거든요. 특히나 바람 계열 정령사나 마법사와 합이 매우 좋아요. 더불어 이번엔 놓쳤고요. 됐죠? 이제 이유나 말해요.”

빠르게 말을 한 유 대리가 눈에 힘을 주었다.

“아무래도 오한우… 건 때문인 것 같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그 때문에 할 말이 있어요.”

“뭔데요?”

정우는 상체를 일으켰다.

기본적으로 회복력이 좋기도 하지만, 힐러의 치유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좋았다.

미약한 통증만 남은 상체를 이리저리 비틀며 상태를 확인한 정우가 재촉하는 유 대리와 눈을 마주쳤다.

“뭔가를 꾸미는 것 같아요. 오한우의 죽음 때문에 뭔가가 곤란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유 대리의 눈이 커졌다.

결계사는 협회에서도 쫓는 썩 유명한 빌런 중 하나였다.

“잠깐요. 이건 위에 보고를 해야 해요.”

정우는 얼른 전화를 하라고 손짓했다.

유 대리는 몸만 돌린 채로 협회에 보고했다.

전화가 끝난 후, 정우에게 물었다.

“또 뭐 없어요?”

“오한우의 능력이 뭐였나요?”

“네?”

“오한우가 죽어서 곤란하다고 했어요. 그럼 오한우의 능력이 필요했다는 말이 되죠.”

“그렇죠. 잠깐만요.”

유 대리는 비타를 조작했다.

“은신이네요.”

“…은신이요?”

꽤 고급 스킬이었다.

“어딜 잠입하려고 그랬을까요?”

“그랬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오한우 정도의 은신 스킬은 열 감지 카메라에도 잡혀요.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거든요.”

“……음.”

뭔가가 잡힐 듯 말 듯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래도 다행히 시기적절한 때에 다른 분들이 등장해서 살았군요.”

“그니까요. 조금만 늦었어도 잡혀갈 뻔했어요.”

그 말에 정우는 결계사의 눈빛을 떠올렸다.

개미 취급하며 한껏 내려 보던 눈빛을.

“당직이 카메라를 보고 처음에는 단순 싸움이라고 여겼대요. 뭐, 능력을 사용한 거니까 제재를 가하려고 한 것도 있지만, 이미 벌어진 흔적부터 단순 싸움이 아니라 전투에 가까워서 급하게 경호팀을 호출한 거죠.”

“운이 좋았군요.”

“그런 것도 있지만, 각 공공 기관이나 협회의 건물 그리고 안전 지역엔 마력감지센서라는 게 있어요. 아마 정우 씨와 결계사의 전투에서 마력을 감지해 당직에게 알렸을 거예요. 그래서 카메라를 확인…….”

차분히 설명하던 유 대리의 음성이 느려지더니 멈췄다.

정우 역시 듣다 보니 애매하게 머릿속을 간지럽히던 무언가를 잡은 느낌이 들었다.

“전투 중에 발견했다고 했죠?”

“…네.”

“결계는 이미 쳐져 있었어요. 그건 센서가 파악하지 못한 거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이미 전투 흔적이 남았었고요.”

“…결계사의 능력으로 오한우를 숨길 생각이었군요.”

“유 대리님이 생각하기에도 그렇죠?”

“이것도 보고를 할게요.”

유 대리는 다시 통화했다.

“협회로 가시겠어요?”

“지금요?”

“네. 아니, 가야 해요.”

“알았어요.”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은 이미 갈아입혀져 있었다.

“제가 안 했어요. 남직원분이 했지.”

정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 그리고 이거부터 받아요.”

유 대리가 삼단창을 건넸다.

인사와 함께 그것을 받아든 정우가 유 대리를 따라 트레이닝 센터를 벗어났다.

“…아직도 여기에 있었다는 게 놀랍네요.”

“어지간한 병원보다 시설이 더 좋아요. 훈련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아서.”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얼핏 본 트레이닝 센터는 경계가 삼엄했다.

코앞에서 빌런이 난동을 부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우는 유 대리의 차에 탔다.

부아앙!

빠르게 출발하는 차에서 둘은 대화를 나눴다.

“뭔가 벌어지려고 하는 건 분명하네요. 정우 씨는 운 나쁘게 얽힌 거고요.”

“…성장을 못 하고 있으니까요.”

“아!”

정우의 침음 섞인 말에 유 대리가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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