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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6화 (16/293)

16화

-습격

“…은근히 소문이 도나 봐요.”

유 대리가 입술을 삐죽였다.

정우의 합류로 바뀌는 난이도는 여러 플레이어들에게도 부담이 되었다.

같은 보상.

다른 진행.

모두는 정우를 은근히 기피하게 되었다.

“그래도 걱정 마세요. 협회에서 보유한 던전도 좀 있으니까… 일정을 잡으면 조만간 공략팀에 합류할 수 있을 거예요.”

모든 던전은 공략과 동시에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정우는 요 근래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껏 공략한 모든 던전이, 일정 퀘스트만 완료하면 자연스럽게 출구가 형성되는 던전이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공략이 가능한 던전.

플레이어가 아닌 이상 알기 어려운 정보 중 하나인 그것은, 중소급 이상의 길드가 가진 무기이기도 했다.

“일단 훈련하고 있죠.”

상황이 조금 애매해졌다.

그럼에도 정우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과거 아버지를 잃고 한 가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했을 때처럼, 훈련에 빠져들었다.

일반인일 때도 독하다고 소문이 났던 정우였다.

플레이어가 되어 마력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신체 회복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지쳐 쓰러지는 걸 기다리기보다 24시간이 지나는 게 빠를 정도의 체력이 되었다.

“정우 씨. 훈련을 조금 줄이는 게 어때요?”

유 대리가 보기에도 정우의 훈련은 지나쳤다.

정말 피곤하지 않으면 잠조차 아낄 정도로 훈련에 몰두하는 그의 의지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알잖아요. 의지만으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요.”

트레이닝 센터로 향하려던 정우가 고개만 돌렸다.

“유 대리님은 제가 더 이상 성장을 못 할 것 같으신가요?”

“그게 아니에요. 저도 방법을 찾고 있고, 연구진도 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유 대리가 다가왔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쉴 때는 쉬어야 해요. 이러다가 우리가 방법을 찾았을 때, 막상 지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그게 오히려 손해가 아닐까요?”

“…….”

“친구를 만나거나 잠깐 바람을 쐬는 게 좋겠어요. 벌써 삼 일이나 트레이닝 센터에서 살았어요. 잠도 안 자고.”

유 대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비서잖아요. 나머지 일은 제가 해결할 테니까, 가서 좀 쉬죠?”

특히 머리, 그렇게 덧붙이며 유 대리는 자신의 머리를 검지로 톡톡 건드렸다.

정우는 자신을 보는 커다란 눈에 져버렸다.

조급함.

그게 자신을 성장시켜주지도,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그럼에도 버릴 수 없던 그것이, 유 대리의 자신감 넘치는 눈동자에 꼬리를 말았다.

“잘 생각했어요.”

마지막까지 패배한 정우가 허탈한 듯 웃었다.

“금세 절 파악했네요.”

“당연하죠. 비서의 시작은 모시는 분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부터니까요.”

“과분한 호칭이네요.”

“그냥 그렇다고요. 원래라면.”

“훗.”

유 대리의 너스레에 정우는 문고리를 잡았다.

“바람 좀 쐬고 오죠.”

“뛰지 말고요.”

“아기는 아니니 걱정은 말아요.”

조금 가벼워진 낯빛으로 정우가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제야 유 대리는 볼에 빵빵하게 바람을 불어넣고는 한참 눈을 데굴거리다 후, 바람을 내뱉었다.

애써 가린 한숨이 바람과 함께 방안으로 퍼져 나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주라니!”

다시 생각이 났는지 유 대리가 발을 굴렀다.

저주받은 플레이어.

알음알음 퍼져 나가는 소문을 막느라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사실 어제 하나의 제안이 들어오기는 했다.

E급 던전 공략이었는데, C급 플레이어가 낀 전형적인 버스 파티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싫었던 그들은 어디서 정우에 대한 소문을 듣고 연락을 취했다.

몹 몰이용으로 적절한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미친 새끼들. 이제 정한 길드는 쳐다도 안 본다!”

유 대리는 모멸감을 느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협회장이 신경을 쓰는 인물이다.

고작해야 갓 각성한 사람에게 비서를 붙일 정도로.

그것뿐인가.

“A급 대우라고. A급 플레이어에 준하는 재능을 인정한 거라니까? 사실상 플레이어 중에서는 최고 재능이잖아.”

S급을 천외로 보는 통례상 A급은 일반적인 플레이어 중에서 끝에 도달한 이들이었다.

초범적인 권한을 여럿 들고 있는 S급 플레이어와 비교하자면 모자람이 있지만, 그래도 누릴 수 있는 권한은 매우 많았다.

그런 권한을 일개 F급 플레이어에게 준 것이었다.

몇몇만 아는 비밀이지만.

유 대리는 정우가 나간 방의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보던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상해. 왜 유독 정우 씨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F급 플레이어는 F급 던전에서 성장한다.

E급 플레이어는 F급 던전에서 미약하게 성장한다.

D급 플레이어는 F급 던전에서 거의 성장하지 않는다.

C급 플레이어는 F급 던전에 출입할 수 없다.

두 단계의 법칙.

정우는 정상적인 수준에서 정상적인 공략을 진행하고 있었다.

몬스터의 이상 현상을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마력은 성장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지?”

적어도 마력 수치만큼은 협회에서도 파악이 가능했다.

정우의 수치는 변함이 없었다.

근사치일 뿐이지만 오차는 매우 적었으니까.

하물며 한 자릿수의 마력엔 오차범위가 끽해야 1 정도일 뿐이다.

몇 주가 지났음에도 정우의 마력은 그대로였다.

변함없음.

성장하지 않음.

이런 평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정우 본인이었다.

“으으으. 연구실에서도 모른다고 하고… 대체 이유를 모르겠네.”

그럼에도 신체 능력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었다.

정우는 수치상의 변화는 없다고 했지만, 적어도 유 대리가 보기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더욱 예리해지고 기민해지며, 파괴력이 증가했다.

당장 신체 능력만으로도 F급 던전에서 근접 계열로 뛰어들 수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정우는 F급 던전에서 전투 능력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몬스터의 이상 현상만 없었다면, 어마어마한 루키가 되었을 거라는 게 유 대리의 판단이었다.

“이대로 둘 수는 없는데…….”

여러모로 정우의 근성에 반한 유 대리였다.

좌절하기보다 한 발을 내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얼른 답변을 줬으면 좋겠네.”

미국 플레이어 협회에 넣은 메일에 회신이 오기를 기다리며, 유 대리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찬 공기를 맡고 조금은 나아진 표정의 정우가 벤치에 앉았다.

멍하니 야경을 보던 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승민이라도 부를까?”

간만에 술이 당겼다.

그러고 보니 튜토리얼 이후 이승민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오른 정우였다.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

새벽부터 자신을 기다렸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조급함으로 좁아졌던 시야가 조금은 넓어졌다.

“천천히. 차근차근히. 그리고 꾸준히.”

힘이 들 때마다 중얼거렸던 자신만의 격언을 내뱉으며 벤치에서 일어난 정우가 도로로 향했다.

이승민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주머니를 뒤지다가 핸드폰을 두고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간 정신이 없었나 보네.”

스스로가 생각하더라도 최근의 자신은 성장이라는 단어에 너무 얽매여 있었다.

정우는 그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정우는 이승민에게 연락을 하기 다시 트레이닝 센터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저벅.

“…마침 적절한 때에 나와서 다행이야. 계속 기다릴 뻔했잖아?”

웃음기가 가득한 음성이 정우의 발을 잡아끌었다.

정우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갑자기 나타낸 상대는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끈적거리는 음성엔 전혀 호의란 단어가 담겨있지 않았다.

‘누구지?’

의문이 들었지만 정우는 답을 알고 있었다.

농밀한 적의.

아니.

‘살기.’

“아주 귀찮았단 말이야. 은근히 정보가 숨겨져 있어서 찾느라고 고생을 좀 했지.”

‘날 노렸다. 내가 적대 관계를 맺은 건 한 집단밖에 없어.’

“……빌런?”

깡마른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가 악당이야?”

못마땅한 음성이었지만 여유가 가득했다.

“우리는 혁명가다.”

“……개소리.”

진심이었다.

빌런에게서 이런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정우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원래 머저리들은 새로운 세계를 볼 자격이 없는 법이지.”

깡마른 사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오한우를 잡은 건 우연이었겠지만, 덕분에 우리가 꽤 곤란해졌거든.”

우드득.

손을 푸는 빌런의 모습에 정우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한우? 곤란해졌다? 그건 무슨 말이지?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일단은… 버텨야 하나?’

정우는 힐끗 센터를 염두에 두었다.

정우의 생각처럼 빌런은 조금 조급한 상황이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정보를 얻는 게 어려웠고, 또한 겨우 찾은 놈이 협회의 트레이닝 센터에 처박혀서 나오질 않았으니까.

장소가 염려되었지만 따로 더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리더가 돌아오기 전,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으니까.

“잡설은 이만하고….”

빌런의 찢어진 눈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이만 데려가 볼까?”

후웅!

순식간에 공기가 찢어질 듯 요란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천천히 형성되는 하나의 구.

“……!”

눈이 커진 정우가 다급히 자신의 주변에서 생성되는 구를 피해 이동했다.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에 놀란 것일까.

빌런의 눈이 커졌다.

스륵.

완성되어가던 구가 흩어졌다.

“…뭐야? 신기하네? 어떻게 본 거지? 맞지? 본 거.”

빌런의 눈에 흥미가 생겼다.

가볍게 가둬서 데리고 가려던 게 실패했지만, 오히려 작전 때문에 숨죽이며 대기해야 했던 그에겐 흥미로운 이벤트일 뿐이었다.

할짝.

혀로 입술을 핥은 빌런이 정우를 보며 히죽 웃었다.

“재밌겠네?”

오싹!

갑자기 느껴지는 불길함에 정우는 몸을 날렸다.

입을 쩍 벌리는 구가 정우를 덮쳤다.

발끝을 스치며 닫히는 구가 빌런의 손에 의해 정우를 노리고 움직였다.

‘칫!’

혀를 찬 정우의 몸이 이리저리 구를 피해 움직였다.

스스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구가 정우의 경로에 생성되어 덮쳐 왔다.

‘하나만 사용하는 거 아니었어?’

당황하는 와중에도 정우의 움직임은 매우 기민했다.

가뜩이나 빠른 구의 생성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다.

‘빨라!’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가 자꾸만 자신을 가두기 위해 생겨났다.

정우는 쉴 틈 없이 이리저리 움직여야만 했다.

‘…패턴이 바뀌고 있어.’

처음 정우는 구의 정체가 자신을 가두는 용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의 회피에 즐겁게 웃기 시작한 놈은 천천히 패턴을 바꾸고 있었다.

콰콰쾅!

반듯하게 깔려 있던 보도블록이 튀어 오르듯 부서졌다.

무거운 추에 부딪힌 것처럼 잔해가 이리저리 비산했다.

치익!

몇 개의 잔해가 정우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휘익!

정우가 상체를 옆으로 숙이며 땅을 짚고 회전했다.

마치 팩맨처럼 하나의 구가 정우의 빈자리를 와락 집어삼켰다.

“크크. 크하! 재밌어! 재밌다고!”

벌써 몇 번이나 포획에 실패했음에도 빌런은 여유가 넘쳤다.

장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후욱!

숨을 내뱉은 정우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웅웅,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

갑자기 진동하는 공기에 빌런이 의아함을 표했다.

홱!

뒤늦게 느껴진 기이한 감각에 반응하여 고개를 돌린 빌런의 눈에 보이는 것은.

“……마법?”

요란하게 진동하며 그를 타깃으로 쏘아지는 투명한 마력의 화살들.

슈슉!

마치 소음기를 단 총알처럼 가볍게 들려오는 날카로운 파공성에 빌런은 다급히 스킬을 전개했다.

까가가가각!

회전까지 머금은 그것은 빌런의 스킬로 만든 방어막을 드릴처럼 갉아내기 시작했다.

‘…매직 미사일? 고작해야 기초 마법으로….’

그는 자신의 마법에 자신이 있었다.

방어막.

자신을 지키는 게 고작인 그것을 변형시켜 공격과 포획, 속박의 능력까지 지니게 만든 건 순전히 본연의 재능이었다.

그 결과, 협회에서도 인정을 받아 유능한 팀에 배정되었다.

그랬던 자신이다.

하지만 고작해야 기초 마법에 자신이 자랑하는 방어막이 말 그대로 ‘방어막’처럼 느껴지자 빌런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고작해야 F급 따위에게.

빠직!

빌런의 이마에 혈관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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