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사막 고블린 부락
“입장하겠습니다.”
정우는 우현승의 감탄 어린 칭찬과 함께 포메이션 작업을 끝마쳤다.
왜 자기가 팔짱을 끼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건지 모르지만, 이진수도 정우의 모습에 흡족해했다.
준비를 끝마친 정우는 일행의 안내를 받으며 게이트 앞에 섰고, 게이트의 위치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나이트 길드의 빌딩 내부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정우는 놀란 눈을 본 이진수가 더욱 흡족해했다.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복수한 이진수를 노려본 정우가 우현승의 지시에 따라 이동했다.
출렁.
게이트 안에 들어서자 세상이 바뀌었다.
후끈한 열기와 눈이 시릴 정도의 빛이 정우의 감각을 자극했다.
나이트 길드에서 준비해준 보안경이 아니었다면 한동안 눈이 멀었을 정도의 빛이었다.
이글거리는 태양.
번들거리며 태양의 열기를 반사하는 땅.
아니, 모래.
“…사막.”
“대단하죠? 영상을 보여드리긴 했지만, 저도 실제로 보니까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라도 떨어진 느낌이네요.”
우현승의 말에 정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현승은 이 팀의 유일한 E급 플레이어였다.
“가끔 보면 몬스터만 아니면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볼 수 있어서 참 아름답기까지 하던데요….”
우현승의 말마따나 던전 내부는 상당히 멋졌다.
입장과 동시에 더워지기 시작한 열기를 제외하더라도 금빛으로 빛나는 모래언덕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까.
정우도 신비한 느낌으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 사막 고블린 퇴치 ]
사막 고블린 부락을 섬멸하십시오.
조건 : 0/200
등급 : E
“퀘스트 떴죠? 진행하겠습니다.”
우현승이 자리를 잡았다.
정우도 연습한 대로 자리를 잡고 이동했다.
‘200마리라… 숫자가 확 뛰네.’
단순한 토벌 퀘스트.
핵을 찾아 파괴할 수는 없지만, 반복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던전이기도 했다.
‘핵이라…. 찾으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방치하는 걸까?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면 길드를 위해서라도 남겨두는 편이 좋았다.
보통 토벌 퀘스트는 보상이 적지만 위험도는 낮았으니까.
우현승이 멈추며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정지.
수신호를 알아들은 정우의 감각이 전면으로 퍼졌다.
‘고블린이야. 튜토리얼 때보다 강해 보이는군. 수는… 열 마린가?’
“정찰병. 조금 더 대기하다가 단번에 처리한다.”
미리 이야기되었던 대로 우현승의 말투가 간결해졌다.
우현승은 전면을 주시하며 말했다.
“선공은… 한정우 씨가 진행한다.”
* * *
“지금!”
우현승의 지시보다 먼저 정우가 반응했다.
곁에 있던 여자는 그런 정우의 움직임에 감탄해 버렸다.
‘뭔 마법사가 이렇게 민첩해?’
하지만 감탄은 일렀다.
“매직 미사일.”
웅웅.
단번에 생겨나는 네 개의 매직 미사일이 사막의 열기처럼 일렁거리며 전면으로 쇄도했다.
케, 케엑!
고블린의 단말마가 이어졌다.
그 수는 여덟.
“……!”
정우는 네 발의 매직 미사일로 여덟 마리를 죽이는 효율을 보였다.
모래언덕에서 이 장면을 목격하던 팀원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정우를 보았다.
갑자기 피를 흘리며 풀썩 쓰러지는 동족을 본 고블린 두 마리가 몸을 벌벌 떨며 비명을 지르고 도망을 치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화악, 쿵!
놈들의 머리 위에 갑자기 생겨난 망치 하나가 바닥을 내리찍었다.
케, 케케륵!
색다른 공격에 정우가 놀라움을 표하자 여자가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저예요!”
“자신의 공격을 보고 놀라는 걸 좋아해요. …그나저나 놀란 건 저흰데요? 무슨 매직 미사일의 정확도와 위력이 이렇게 뛰어나죠?”
“이거… 우리가 할 일이 없는 거 아니에요?”
검집을 툭 친 검사의 말에 유현승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 다행인 거고.”
모두가 정우를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
“한정우 씨의 능력도 확인했으니까… 속도를 좀 내볼까요? 최대한 정찰병을 죽여서 퀘스트를 깨보도록 하죠.”
우현승의 판단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콰앙!
피 묻은 모래가 비산했다.
곡도 형태의 무기를 든 갈색의 고블린이 비산하는 모래 사이로 달려들었다.
케엑!
분노에 찬 포효로 벌어진 입에 묵직한 둔기를 때려 박은 우현승이 소리쳤다.
“딜러들에게 못 가게 막아!”
검사가 작은 방패를 휘둘러 한 마리의 고블린을 쳐내며 스킬을 사용했다.
빙글, 몸을 돌리는 검에 여섯의 고블린의 몸이 잘려 나뒹굴었다.
“…후욱!”
지끈거리기 시작한 심장의 통증을 참으며, 검사는 검을 휘둘렀다.
“진형이 무너졌어요! 후퇴해야 해요!”
여자가 소리쳤다.
“사막에서? 이 새끼들… 너무 영악해!”
힐러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적이 있었어요?”
“없었어. 있었으면… F급이 왔으려고?”
“미치겠네!”
여자의 스킬에 얻어맞은 고블린 두 마리가 허공을 날았다.
그럼에도.
“…대체… 왜 이렇게 몰린 거야?”
사막 고블린의 수는 끊임이 없었다.
“방패 막기!”
빠르게 뒷걸음질 친 우현승이 말했다.
그의 커다란 방패에서부터 퍼진 마력이 하나의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우두둑! 투득!
달려든 사막 고블린들이 이를 드러내며 방어막을 때려댔다.
지붕을 때리는 우박처럼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젠장!”
몇 개의 정찰팀을 없앨 동안 일행은 단 한 번의 교전도 없었다.
정우와 여자.
둘이서 모든 정찰팀을 제거한 것이다.
그렇게 편안한 분위기로 몇 시간이나 걸었을까.
순간적으로 멈칫한 정우의 고개가 사방으로 돌아갔다.
‘포위…됐어요.’
정우의 말에 농담하지 말라며 웃어넘긴 여자와는 달리 우현승은 얼굴을 구기며 지시했다.
전투 준비, 라고.
우현우는.
“…젠장! 이건 전투를 할 게 아니었어!”
불과 10분 만에 자신의 과거를 후회했다.
몰려든다.
사막 고블린이 아무리 보통의 고블린보다 강하다고는 하지만, F급 던전이다.
심지어 수년 동안 나이트 길드에서 통제해오던, 길드만의 튜토리얼이나 다름이 없는 장소.
죽이고.
퍼억!
또 죽여도.
케르르르르르.
기묘한 울음을 내뱉으며 달려드는 놈들은 뜨거운 사막의 모래와 같았다.
“한 방향을 뚫어야 해!”
방패로 고블린을 밀어낸 우현승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빙글.
회전하는 검사의 검에 고블린 네 마리의 몸통이 갈라졌다.
“…무리하지 마. 힘을 아껴야 해!”
마력사라는 특별한 직업을 지닌 여자의 말에 검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방향을 정해!”
우현승이 외쳤다.
정우는 그게 자신에게 한 말이라는 걸 인지했다.
가장 먼저 적의 침입을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판단이 빠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리더로부터 2시!”
“좋아! 포메이션 A.”
“돌진대형이라고 말해요, 그냥!”
“간다!”
우현승의 방패에 마력이 맺히기 시작했다.
“차징!”
쿠웅!
달려들던 고블린이 나가떨어지자 정우는 마법을 사용했다.
정우의 주변에서 생겨난 매직 미사일이 전면의 고블린을 죽여 나갔다.
마력사도 마찬가지.
퍼억, 퍼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래가 튀어 오르고.
“고고고!”
일행은 고블린의 포위를 뚫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뒤처지지 마!”
달려드는 고블린을 죽이던 후위의 검사가 우현승의 말에 검기를 뿌린 후 몸을 돌렸다.
미끄러지는 모래.
그에 반해 놈들의 움직임엔 거침이 없다.
“이대로는 시간문제다. 최소한 등질 곳을 찾아야 해.”
“미치겠군!”
온통 모래만 가득했다.
몸을 숨길 구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모래언덕이 끊임없이 풍경처럼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퀘스트는?”
“이백 마리…. 진작 넘겼어요!”
힐러의 외침에 우현승이 입술을 깨물었다.
“…출구가 생성되었을 거야!”
“이대로라면 못 찾아요.”
우현승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리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는 E급 플레이어다.
그 많은 경험엔 이런 돌발적인 상황이 없었고, 그의 경험도 어지간한 플레이어에 비하면 일천하기 짝이 없었다.
‘이대로는 시간문제야….’
정우는 마력사의 생각에 동의했다.
까득.
첫 던전부터 이게 웬일인지.
이를 갈며 아공간에서 삼단창을 꺼냈다.
“진형을 변경하죠. 제가 검사와 후위를 맡을게요.”
“위험해요! 아, 아니. 그 창은 뭐예요? 갑자기?”
“그게 중요해요? 이대로는 위험하니까 숨을 곳을 찾아야 해요.”
“마법 계열이 무슨! 창을 든다고 다 근접 계열처럼 싸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시간 없어요! 리더도 후위를 맡아요. 당신과 힐러가 숨을 곳을 찾아요! 돌아가는 놈은 제가 저격할 테니, 최대한 빨리!”
그렇게 말하며 정우는 달려드는 고블린의 목을 꿰뚫었다.
푹!
허공에서 목을 부여잡고 나뒹구는 고블린을 본 마력사가 침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앞장설게. 네가….”
“치유할게. 걱정 말고 얼른!”
마력사의 공격은 정우보다 뛰어났지만 효율이 떨어졌다.
마력으로 모든 공격을 가해야 했기에, 마력 소모가 상당했다.
정우는 가끔 땀을 흘리며 긴 한숨을 내뱉는 여자의 손이 심장 어름을 쓰다듬는 것을 목격했다.
‘나도 여유는 없어.’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행운을 준다더니! 젠장!’
창을 내지르며 자신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본 정우가 욕설을 내뱉었다.
촤악!
“집중해!”
우현승의 외침에 정우의 눈알에 다급히 옆을 향했다가 돌아왔다.
검사의 목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 내가 남을 테니까!”
우현승이 다리를 멈췄다.
그사이 검사와 정우가 몇 발 뒤로 물러섰다.
다닥, 타다닥!
요란한 소리가 방패를 울렸다.
“…F급의 악몽 따위가! 난 E급이라고!”
농담 같은 고함과 함께 우현승이 방패를 세게 밀었다.
케르!
나뒹굴며 동족을 잡아 같이 넘어지는 고블린들.
“매직 미사일!”
그사이 모래언덕을 길게 돌아 마력사에게 다가가는 고블린을 본 정우가 입술을 깨물며 저격했다.
머리가 터진 고블린이 모래언덕으로 굴러떨어졌다.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나요?”
“이런 돌발 상황은 없었어요!”
“그래도… 들은 게 있을 거 아니에요!”
“리더!”
“자, 잠깐만 버텨봐. 생각 좀 하자.”
“생각은 무슨 생각! 그러고도 리더예요?”
“이 새끼가! 나가면 뒈질 줄 알아!”
“나가게나 해줘 봐요!”
긴장을 풀기 위한 대화.
끊임없이 움직이고 적을 후려치고 베면서, 정우와 일행은 뒷걸음질 쳤다.
‘방법을 찾아야 해.’
정우도 다급해졌다.
심장 어름의 뻐근함이 점점 강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게이트를 찾아야 해. 그러려면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하던 정우가 이를 갈았다.
“리더. 둘을 불러줘요.”
“뭐? 저쪽으로 안 가고?”
“생각해봐요! 우리는 이 던전에 대해 아는 게 적어요. 대신에 놈들은?”
몸을 빙글 돌린 정우의 창이 고블린 몇을 후려쳤고, 검사의 검이 놈들의 숨통을 끊었다.
“방향이 틀렸어요. 뚫기 쉬운 곳을 찾았는데… 일부러 두께를 얇게 한 걸 거예요!”
“…잠깐. 그럼 한정우 씨의 말은?”
잠깐 틈을 만든 우현승이 시뻘게진 눈으로 물었다.
“돌아가요. 반대 방향으로…!”
* * *
그야말로 총력전이었다.
베고 또 베고.
터트리고 또 터트리며.
어지간한 상처를 감수한 우현승의 희생으로 일행은 진로를 변경했다.
정말 가까스로.
“…이제 마지막이에요! 더 다치지 마요!”
인상을 찌푸린 힐러의 말에 모두는 심장이 묵직해졌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치유 덕분.
죽이고 또 죽였음에도 여전히 어디선가 등장하여 달려드는 고블린을 전멸시키기엔.
‘너무… 약하다!’
정우는 그 사실에 턱이 도드라지도록 이를 갈았다.
그나마 달리면 달릴수록 방향이 확실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게 위안이었다.
고블린의 부산한 움직임을 보며 정우는 자신의 판단에 힘을 실었다.
‘메아리!’
-٩(•́⌄•́๑)و
‘그거 아니야! 정신 차려!’
-???
‘목격자가 뭐야? 네게 조언을 구하라던데… 지금이야말로 조언을 해줘야 할 때가 아니야?’
[ 메아리 ]
???일족의 최후의 목격자.
역사를 목격한 그녀의 조언을 받는다면 빠른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상태 : 빈사(瀕死)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검사의 검은 지팡이처럼 활용되고 있었고.
우현승의 둔기는 버려진 지 오래였다.
체력이 부족한 마력사가 휘청거리고.
누렇게 뜬 힐러가 ‘제발, 제발’ 중얼거리며 마력의 회복을 간절히 염원했다.
“…남은 포션도 없어.”
그나마 놈들을 돌파하고서부터는 포션을 먹을 기회라도 생겼다.
등허리에 긴 상처가 나 있던 우현승과 옆구리에 녹슨 단검을 덜렁 달고 있던 검사가 주로 포션을 마셨다.
미미한 체력 회복.
다른 사람들은 그런 효과를 기대하며 포션을 한 병씩 비웠을 뿐이다.
‘메아리!’
-(*^▽^)/
‘야, 이 새끼야!’
-(*^▽^)/
해맑은 이모티콘에 정우가 욕설을 내뱉었을 때.
정우의 눈이 커졌다.
등장한 메시지의 방향이, 절대 응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래?’
손 모양이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사!’
도망치는 중이라 눈여겨보지 못한 모래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정우는 정신을 집중했다.
“……!”
그러고는 소리쳤다.
“아래로! 뛰어요!”
“……뭐?”
정우는 힐러의 목덜미를 잡고 뛰었다.
일행은 당황했지만 요란하게 따라붙는 고블린을 힐끗 보고는.
“젠장!”
“지, 진짜 뛰어요?”
“뛰어!”
우현승이 마력사의 손을 잡아끌고 뛰었다.
주르륵!
“우, 우와아악!”
마력사의 비명을 들으며, 고블린 하나의 목을 친 검사도 다이빙하듯 유사로 뛰어들었다.
“오, 하나님. 제발!”
힐러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정우는 마력을 소모했다.
“…매직, 미사일!”
정우의 공격이 유사의 중심으로 향했다.
폭발하는 모래.
그리고 드러난.
“……구멍?”
“아래로……!”
정우의 외침이 끊겼다.
그리고 일행들도 구멍으로 떨어졌다.
케륵, 케르르!
쿵!
각자의 무기로 바닥을 찍고 발로 모래를 걷어차는 그들의 찢어진 눈이, 흘러내린 모래에 사라지는 구멍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우르르, 사방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