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나이트 길드
오한우 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대화를 나눈 둘은 서로의 목적지로 향했다.
이진수와 헤어진 정우가 던전을 나오고 정신을 차린 후 본 메시지를 떠올렸다.
“…플러스까지 붙였으면 아주 난리가 났겠네.”
SS+.
정우가 최종적으로 받은 튜토리얼의 평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정우만의 비밀이었다.
‘그리고… 메아리도.’
-(◐ω◑ ).
‘너 부른 거 아니야. 대체… 이모티콘만으로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건지 모르겠네.’
-(੭ु。╹▿╹。)੭ु⁾⁾
‘그건 대충 알아듣겠어. 응원인가? 성장하라는 거면… 누구보다 간절하니 보채지 않아도 돼.’
-(*•̀ᴗ•́*)و ̑̑
훗.
정우는 코웃음을 치며 걸었다.
병원에서부터 마음을 졸이던 어머니는 기어이 정우를 보고는 눈물을 흘렸고, 동생 한정희는 정우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잔소리를 해댔다.
그 속에서, 정우는 간만에 편안함을 느꼈다.
“…후우, 길었다.”
무려 일주일의 던전 공략.
생각보다 시간이 꽤 흐른 상황이라 당황했던 것도 잠시, 정우는 자신의 ‘권능’을 사용했다.
‘아공간.’
쭉, 찢어지는 공간은 게이트의 그것을 닮았다.
다만 투명하다는 것과 크기가 아주 작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손을 집어넣은 정우는 그 안에서 여러 물건을 꺼냈다.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들이었으며, ‘적립된 보상’으로 받은 아공간 안에 이미 들어 있던 물건이기도 했다.
[ 행운의 반지 ]
행운이 깃들어있는 반지이다. 행운이라는 특별하고도 신비한 능력을 극대화시킨 아티팩트.
효과 : 특별한 행운 부여
특별한 행운이라는 수치화되지 않은 효과를 지닌 아티팩트를 시작으로 몇 개의 물건이 있었다.
그중 정우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바로 이것이었다.
[ 알 수 없는 열쇠 ]
이제는 그 이름조차 분명하지 않은 한 종족의 비밀을 간직한 열쇠. 그들의 수장은 이 열쇠를 지닌 자를 왕으로 섬긴다고 맹세하였으나, 종족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효과 : ???
자취를 감춘 종족.
[ 자취를 감춘 종족 찾기 ]
열쇠의 종족을 찾아라.
등급 : E
보상 : 종족의 인정
실패 : 멸족(滅族)
그 종족을 찾는 퀘스트.
실패의 페널티가 무려 멸족인 걸 보는 순간 정우는 깨달았다.
이 열쇠의 주인들은 아직 살아 있다고.
정우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아공간 내 물건을 전부 파악했다.
열쇠를 확인한 정우는 퀘스트를 받았지만, 사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받은 퀘스트가 하나 더 있었다.
정우는 그 퀘스트를 보았다.
[ 메아리의 성장(1) ]
최후의 ???종족 ‘메아리’는 현재 모든 힘을 상실한 상태이다. 메아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당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조건 : 마력 수치 15
등급 : SS+
보상 : 잊어버린 지식의 일부
무려 SS+의 등급을 가진, 퀘스트를.
* * *
삼 일은 빠르게 지났다.
그중 하루는 훈련까지 빼고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정우는 간만에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은 단 하루였을 뿐.
그 이후의 정우는 더욱 훈련에 열중했다.
협회의 트레이닝 센터를 방문하여 마력까지 사용하여 자신의 한계를 파악했다.
웨어울프 때의 행운을 바라기가 어려웠으니까.
협회에 온 김에 정우는 평가 내용에 대한 질문을 들었다.
마법 계열.
정우의 직업은 마도사였다.
하지만 협회의 측정 기구는 정우를 근접 계열로 파악했다.
높은 신체능력치 때문이었다.
정우는 굳이 이를 정정하지 않았다.
보통의 근접 계열보다도 더 낮은 마력 수치 때문에 정우는 F급에서도 1레벨의 등급을 부여받았다.
F급은 플레이어의 등급 수치.
뒤의 레벨은, 종합적인 능력치를 의미했는데 모든 능력치 중에 우선시 되는 것이 마력이었다.
아무리 근접 계열이라고 해도 마력은 중요했다.
신체적인 능력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기엔 몬스터는 강했고, 스킬은 필수였다.
그 스킬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것이.
‘마력이지.’
정우는 입맛을 다셨다.
알 수 없는 종족의 마지막 후예이자 생존자인 메아리는 소악마의 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였다.
정우에게 종속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메아리는 그와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그의 성장이 메아리의 성장이었으며, 퀘스트는 이를 촉구했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단 것이 바로 마력이었다.
마력 수치 15.
‘…….’
4에 불과한 정우로서는 까마득한 수치였다.
‘던전을 열심히 돌아야겠지.’
던전을 클리어하면 플레이어는 던전의 마력을 흡수하게 된다.
마력을 흡수한다고 무조건 마력 수치가 오르는 건 아니었다.
신체 능력이 상승하기도 하고, 마력 수치가 오르기도 하며, 특별한 수치가 생겨나기도 했다.
행동의 반복으로 수치가 변하는 건 능력치가 아닌, 스킬 경험치였으니까.
여러모로 던전은 플레이어에게 성장의 보고였고 기회의 장이었으며, 일터였다.
“…처음부터 마력이 오르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나?”
운이 좋아야 했다.
“이걸 믿어봐야겠지.”
그래서 정우는 행운의 반지를 꼈다.
던전 공략은 플레이어의 유일한 성장법이었다.
정우는 커다란 건물의 근처에 도착했다.
Knight guild.
건물 외벽에 세로로 쓰인 글씨가 꽤 멋졌다.
“여기!”
이진수가 손을 흔들었다.
괜히 민망해진 정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한정우 씨?”
“아, 네.”
“인사해. 여기 우리 길드 인사팀장님이셔. 길드 최고의 핸섬가이지.”
“이 팀장? 진심인가?”
“지금만큼은 진심이죠. 눈앞에 인사팀장님이 계시니까요.”
흐흐, 웃는 이진수를 향해 인사팀장이 쾌활하게 웃었다.
“지금만큼은 길드 최고의 핸섬가이, 인사팀장 박문수입니다. 반갑습니다.”
정우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악수했다.
“한정우입니다.”
간단한 인사를 끝으로 셋은 빌딩 로비로 걸었다.
“이 팀장 친구라고 해서 성격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한정우 씨는 꽤 진중한 성격인가 봅니다.”
“재미가 없어요. 재미가.”
“…그런가 봅니다. 친구의 주접을 꾹꾹 쌓아두고 있는 걸 보니….”
“하하! 이 팀장이 한 주접 하지.”
“팀장님…!”
이진수가 과한 모습으로 억울하다고 방방 뛰었다.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자, 다 왔습니다. 오늘 보니 자세한 이야기는 저보단 이 팀장이 맡아서 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박 팀장이 이진수를 보며 찡긋 윙크를 했다.
“다음에 봅시다”
몸을 돌린 박 팀장이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이진수는 그 모습을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뒷머리를 박박 긁었다.
“나 영입하려고 했냐?”
“어. 뭐, 인사팀장님도 마음에 들어 하신 것 같긴 한데….”
“쓸데없는 짓을 했네.”
“쓸데없다니? 야, 나이트 길드야. 한국 3대 길드 중 하나.”
“알아.”
“근데 뭐가 쓸데가 없어?”
“길드에 소속되면 제약이 있잖아.”
“어디든 없겠냐.”
“그래도…. 내 목적은… 강해지는 게 아니야. 알잖아.”
이진수가 입맛을 다셨다.
“알지. 아저씨 구하는 거.”
“당분간은 협회에 몸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줄게. 그냥 유지석 협회장님이 날 찾아왔었다는 것만 알면 돼.”
“……에? 유, 유지석 협회장님이? 널? 왜?”
“그니까. 나중에.”
“아, 그럴 거면 말이나 하지 말지! 세상에서 가장 그지 같은 짓이 뭔지 알아? 말하다 마는 거야!”
“알아. 나중에.”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들어가자. 안에서 기다린다며?”
정우의 태연한 표정에 이진수는 가슴을 탕탕 치며 분개했다.
“…그래. 일단은 들어가자.”
이진수가 회의실 문을 노크하고는 열었다.
“여어. 후배님들!”
단번에 톤이 바뀌었다.
‘그래. 이놈도… C급 플레이어였지?’
친구의 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이진수의 인사 아닌 인사에 회의실에 앉아 있던 이들이 하나같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기강이 잡힌 모습이다.
“오셨습니까.”
“그래. 아직 브리핑 시작 안 했지?”
“네.”
“좋아. 여기. 소개는 각자 진행해.”
이진수의 말에 건장해 보이는 20대 사내가 정우를 돌아보았다.
“반갑습니다. 이번 공략팀의 리더, 우현승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한정우입니다.”
“앉으시죠.”
정우는 우현승의 안내에 빈자리로 이동했다.
이진수는 그런 정우를 한 번 쓱 보더니 피식 웃으며 스크린과 가장 먼 중앙에 앉았다.
발까지 꼰 위상에 정우는 괜히 입맛을 다셨다.
“좋습니다. 그럼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대충 진행은 이렇게 됩니다. 다들 이해하셨죠?”
“네.”
“좋습니다. 그럼 한정우 씨?”
“네.”
“마법 계열이라고 들었는데…, 대표 스킬이 뭘까요?”
보통 E급만 되어도 여러 번 던전을 공략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남는다.
도중에 새로운 스킬을 습득해도 가장 기본적인 스킬을 바탕으로 전략을 짠다.
그러니 던전 공략이 처음인 정우에게 이 질문은 당연했다.
“매직 미사일입니다.”
“…음. 몇 발 정도 사용이 가능하시죠?”
“마력 고갈까지 말하는 거죠?”
“아뇨. 그건 경험이 없으실 테니까. 대충 튜토리얼에서 최대로 사용해보신 횟수를 말씀하시면 돼요.”
“14발 정도, 가능하네요.”
정우의 그 말에 회의장에 기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진짜?”
침묵을 깬 이는 이진수였다.
“어.”
“…미쳤다.”
“우와. 이제 막 각성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이거… 특별 직업인 건가? 직업 열람 좀 요청해 봐.”
“F급 플레이어가 매직 미사일을 14발이나 사용한다고? F급 10레벨은 찍었겠는데?”
“호오.”
회의실이 크지 않다 보니 정우는 이들의 웅성거림을 전부 다 들었다.
‘14발이 많은 건가?’
이진수는 정우의 표정을 보고는 ‘이 자식, 교육이 필요하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정우의 삶은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일념하에 벌이는 훈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때문에 협회나 길드에서 간혹 진행하는 좌담회나 행사 따위에 참여할 여력이 없었다.
‘이렇게 지식이 없어서야. 바보구만. 에휴. 어쩌겠어. 못난 친구를 둔 내가 더 신경을 써야지.’
“대단하시군요.”
우현승의 말에 정우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자리를 정해보죠. 제가 메인 탱커고, 여기 이 친구가 힐러입니다.”
우락부락한 사내가 손 인사를 건넸다.
“이 친구는 검사인데, 방패도 사용할 수 있어서 여차하면 서브 탱커를 맡을 겁니다.”
날카로운 외형의 사내였다.
“그리고 이 친구는…… 가서 보시면 압니다. 원거리 딜러예요.”
“안녕하세요. 저랑 포지션이 같네요!”
고양이 상의 여자가 방긋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트레이닝 센터에서 간단하게 포메이션만 몇 번 맞춰 보고 입장하죠.”
우현승은 그렇게 회의를 끝마쳤다.
이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우의 곁으로 드르르, 의자를 밀어 이동했다.
“너, 나한테 말 안 한 게 많네?”
“내가?”
“어. 그거나 이거나.”
그거는 협회장, 이거는 능력에 관련된 말이었다.
“매직 미사일 14발이 많냐?”
“많아. 보통 F급은 6발 정도 사용하면 마력을 회복해야 해. 초반에 마법 계열이 얼마나 쓸모가 없는 줄 아냐? 신체 능력은 뒤떨어져, 마력은 조루야. 위력은 썩 쓸 만한데, 효율이 떨어져.”
그래서 내가 널 여기에 꽂으려고 노력했던 거고, 이진수가 꿍얼거렸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쩝. 넌 우리 길드의 버스를 타고 열심히 성장하면서 친구의 고마움을 느꼈어야 해. 근데… 에휴. 됐다. 내 원대한 계획이 실패해서 아쉬울 따름이지.”
“웃기고 있네.”
정우가 이진수의 어깨를 팍 쳤다.
“가야겠다.”
정우는 이미 일어나서 회의실을 나서기 시작한 일행을 보며 말했다.
“가자. 입장까진 구경해줄 테니까.”
“심심하면 가서 훈련이나 해.”
“친구의 첫 경험을 내가 어떻게 무시할 수가 있냐?”
“……똥개도 제집 앞마당에서는 한 수 먹고 들어간다더니, 오늘 아예 날을 잡았다?”
“흐흐.”
“그래서 더 나이트 길드에는 못 오겠는데?”
“…뭐? 왜!”
“여기 오면 네가 내 상관이잖아. 그 꼴을 어떻게 보냐? 지금보다 더할 텐데.”
“야! 야, 그건 아니지! 정우야! 아우. 내가 미안. 미안하니까 생각 좀 고쳐봐.”
“매달리지 마. 질척거리는 남자는 질색이니까.”
정우의 말에 이진수가 풉, 웃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