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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1화 (11/293)

11화

-특별 등급의 퀘스트

“반갑네. 유지석이네.”

정우는 유지석이 내미는 손을 잠시 주시했다.

왜 온 걸까?

의문보다 먼저 드는 생각이 있었다.

-못 구해요? 그럼 제가 구할 거예요. 아빠는….

가장 높은 사람처럼 보이던 남자에게 애걸복걸했던 기억이 있었다.

던전에 집중하게 되고,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며 자연스럽게 당시의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더 높은 사람.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그보다 높은 직위의 플레이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사람.

어린 자신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미안함이 공존하던 눈빛을 숨기지 못했던 사람.

정우는 유지석의 손을 잡는 대신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허허. 내가 한정우 씨를 기억 못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인사를 하는가.”

“상관없습니다. 제가 그저 이렇게 인사하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90도 인사는 아니다.

묵례에 가깝지만 마음이 느껴졌다.

유지석은 한정우를 지그시 보다가 어깨를 붙잡으며 허벅지 옆에 붙은 손을 잡아 흔들었다.

“이게 인사네. 악수. 난 악수를 청했네. 내 손이 부끄럽지 않은가.”

“반갑습니다. 협회장님.”

정우는 그런 유지석을 마주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 * *

“딱히 아는 게 없다?”

정우의 대답을 들은 유지석의 표정이 묘해졌다.

정우는 대답을 아꼈다.

그 모습에서 유지석은 한정우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아챘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이중 던전.

그 안의 것은 어디에도 풀리지 않은 비밀이었다.

막상 유지석 역시 대조군이 필요했을 뿐, 자신도 그 안에서의 상황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상관없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니. 나도 그렇고….”

유지석은 화제를 돌렸다.

과거를 떠올리기도 하고, 당시의 난처함을 해학적으로 늘어놓기도 했다.

덕분에 정우는 동네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듯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만 가야겠네.”

유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우도 따라 일어났다.

인사를 하는 정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앞으로 잘 해보자고 말한 유지석이 몸을 돌리다 말고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힘에 빠지지 말게. 자네의 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건, 힘이 아니라 지혜일지도 모르니 말일세.”

정우는 그 말에서 비단 아버지의 사정만을 이야기하지 않았음을 알았으나 그저 다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적당한 사람을 한 명 붙여주겠네. 그저 도우미라고 생각하는 편이 편할 걸세.”

유지석이 나가자 정우는 텅 빈 공간을 가만히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중 던전이라…….’

자신이 입장한 던전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더한 의문이 생겼다.

‘내게서 뭘 알아내려고 했던 걸까?’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유지석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그대로의 인물이었고, 적어도 정우의 눈으로는 흠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기 관리와 인성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협회 직원과 농담을 하며 껄껄 웃는 그의 웃음이 처소 밖에서 은은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느껴지는 막대한 마력.

‘비행.’

정우는 그의 마력량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마력 수치가 몇일까? 100? 200?’

“…대단하구나.”

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아리.’

-( ´ ▽ ` )ノ

‘…그 무성의한 이모티콘을 빨리 없애 버리든지 해야 하는데.’

정우는 이중 던전의 소악마, 메아리의 답변 메시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여보게.”

-그 고루한 인사는 여전하네.

“하하. 사람이 어디 그리 쉽게 변하던가.”

-그래. 만나봤어?

“만나봤지.”

-말 돌리지 말고 말해. 새로운 정보는?

“숨기는 건 있네. 하지만 우리에게 도움이 될 정보는 아닐 거라 생각하네.”

-숨기는 거라면… 보상일까?

“내 생각엔 그렇네.”

-보상은 중요치 않아. 우리가 얻고 싶은 건 정보지.

“아쉽게도… 따로 아는 게 없더군.”

유지석은 정우에게서 들은 던전의 형태와 시험의 내용을 언급했다.

-정말? 관문이 네 개? …그 정도면 그 새끼와 같은 수준인데?

“개인적으로 매우 기대되는 부분이네.”

-그렇겠지. 제대로 성장만 하면 그 망할 새끼보다 더 낫겠어! 아니, 무조건 나아야지!

“그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음. 간만에 기분이 좋았네.”

-같은 국적이라고 그런 건 아니고?

“아무래도 관심이 가는 아이였으니까.”

-관심이 가는 아이? 미리 알고 있었어?

“G-00.”

-G-00? 설마 그 생존자의 아들이라도 돼?

“허! 맞네.”

-…엥? 맞다고?

“허허. 자네도 본 적이 있는 아이일세. 멀리서이긴 하지만.”

짧은 침묵.

-아! 그 아이군!

그리고 등장하는 감탄사.

대통령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유지석을 향해 울부짖던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꽤 인상적인 아이였어.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참 대단한 부자네.

“그렇지. 인상적인 아이였네.”

유지석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건 그렇고, 몇 년 만에 나온 이중 던전 입장자라 기대를 했는데 아쉽더군.”

-그러게. 그래도 얻은 게 없진 않네.

“그렇군. 얻은 게 없진 않군.”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정우는 모르겠지만 유지석은 정우와의 대화에서 많은 걸 얻었다.

이중 던전의 난이도는 관문의 수로 결정이 된다.

유지석은 세 개의 관문을 통과했고, 비타를 통해 연락 중인 그녀 역시 세 개의 관문을 통과했다.

그들이 아는 한 네 개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전 세계에서도 두 명뿐이었다.

뇌신과 마왕.

하지만 이번에 새로운 네 개의 관문 통과자가 나타났다.

한정우.

유지석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보상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

-그 아이는 무엇을 보상으로 받았을까?

“보상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

-네 개의 관문이라면 말이 다르지! 보상의 질도 차원이 달라질 테니까.

“음….”

-왜 그래? 그 정도는 다 알면서. 뇌신이 ‘용의 정수’를 얻었고, 마왕이 ‘마족의 뿔’을 얻었잖아. 적어도 그에 준하는 걸 보상으로 받았겠지.

“…그렇겠지.”

-후훗. 그건 또 그거대로 기대가 되네? 지원하겠지?

“해야지. 이미 진행했네. 그러고 보니 등급을 묻지 않았군.”

-역시 빠르네. 움직임만큼이나 행동도 빨라. 등급을 묻지 않은 건 당신답지 않았지만….

“그렇군. 나 역시 은연중에 기대를 했던 모양이네. 그나저나 내 행동보다는 당신의 행동이 더 빠르지 않나. 무려 대마법사인데….”

-후훗, 말은….

“아, 그러고 보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

-뭐지?

“자네가 진행 중이던 퀘스트가 뭐였나?”

-퀘스트? 하도 많아서… 뭘 말하는 거지?

“직업.”

-아! 마도사? 하! 그러고 보면 나도 부탁할 게 하나 있었어. 도무지 단서를 찾지 못해서…….

대마법사의 말을 듣던 유지석의 표정이 굳었다.

‘적어도… 대마법사 이상이란 소리인가.’

두근두근.

일선에서 물러났던 그였지만, 모처럼 심장이 뛰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인물.

그것도 기존의 수준을 뛰어넘은 인물의 등장에 유지석은 예전 격변의 시대를 떠올렸다.

가장 가슴이 떨리던 시대.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날.

비명, 고함, 살인, 방화, 강간.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하던 세대.

몬스터보다 인간의 손에 죽은 인구가 더 많다는 통계는, 불과 10년 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증거였다.

그 짧은 시간에 인류는 승리했고, 나름의 체계를 이룩했으며, 다시 평화를 가져왔다.

그때도 그랬다.

G급 던전을 통해 인간은 초월적인 힘을 손에 넣을 토대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1세대는 수많은 죽음에서 승리하여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다.

대마법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그녀가 새로이 얻어야 하는 직업.

마도사.

‘분명히…….’

유지석은 한정우의 말을 떠올리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지원해줄 이유가 차고 넘쳐서.

‘새로운 격변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자신의 생각을 밝힌 유지석이 대화를 종료했다.

* * *

협회 직원의 안내를 받아 불새 길드의 임시 처소를 벗어나던 정우가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나름의 짧은 대화를 나눴지만, 그들이 선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던전 안에서 죽었어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고 이 빚은 갚겠습니다.’

하지만 불새 길드는 편하게 손을 흔들 수가 없었다.

협회장이라는 거물이 찾아올 정도의 인물.

즉, 친하게 지내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으니까.

인사를 한 정우는 협회 직원을 따라 차를 탔다.

“협회장님께서 지시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차에 타자마자 건네는 태블릿 내용을 본 정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걸 왜 보여주시는 거죠?”

“협회장님의 지시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친구분을 두셨더군요.”

“친구요?”

“해당 던전은 나이트 길드의 소유입니다.”

‘이진수!’

나이트 길드라는 말과 친구라는 단어의 조합에 한 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정우가 이진수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을 때, 직원이 말을 이었다.

“보통 각성을 한 뒤로는 협회에서 추가 교육을 받고, 협회의 진행에 따라 던전 공략에 착수하게 됩니다.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을 안전하게 습득하면, 뒤로는 선택이 주어집니다.”

길드. 기업. 협회.

플레이어를 원하는 여러 단체에 투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협회는 그 와중에 이적료와 비슷한 금액을 받아 자원을 확보한다.

정부 기관에서 출발했던 협회가 이토록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에서 받는 예산이 1원도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던전을 공략하고, 던전 안의 부산물을 수거하는 시간을 가진다.

던전마다 문이 닫히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최근에는 기술이 발달해 게이트의 소멸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도 개발되었다고 했다.

정우는 직원의 설명을 참으로 재미있게 들었다.

그러나 이내 본론으로 돌아갔다.

“나이트 길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정우 플레이어의 첫 던전으로 나이트 길드 소유의 F급 던전을 추천한다고.”

이진수 플레이어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첨언하는 협회 직원의 표정이 부드러웠다.

“진수와 연락해보겠습니다.”

“네. F급 플레이어의 던전 진입은 협회 소관이니, 저희 측에 먼저 보고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내일 중에 연락이 갈 겁니다.”

“연락이요?”

“협회장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던데… 못 들으셨나요?”

정우는 협회장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연락이 어디서 누구에게 온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적당한 사람이라더니. 누굴 보내려는 거지?’

“짐작 가는 부분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자세한 설명은 그분께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이렇게 사람을 붙이는 게 흔한 일인가요?”

정우의 물음에 직원의 표정이 묘해졌다.

몇 번 입술을 달싹하던 직원이 후, 웃어 버렸다.

“그럴 리가요. 제가 아는 한… 두 번째입니다.”

* * *

“죽은 줄 알았다.”

“…죽는 줄 알았다.”

이진수는 정우를 와락 끌어안았다.

“X발. 뭔 일이냐. 공략 완료되고서도 안 나와서… 협회 가서 깽판을 쳤다니까.”

“미친놈….”

정우가 욕설을 내뱉었지만 친구의 마음에 웃음을 터트렸다.

“나이트 길드건 뭐냐?”

정우의 말에 이진수가 입맛을 다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

“음……. 문제는 없어?”

“없어. 문제될 것 같으면 내가 못해. 나 아직 그 정도 등급은 아니다?”

정우가 피식 웃었다.

“그래. C급.”

“이 F급 쩌리가 어디서 까부냐?”

이진수가 퉁, 하고 정우의 어깨를 쳤다.

“제대로 각성했냐?”

“…모르겠어.”

“평가는?”

“받았지.”

G급 던전을 클리어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협회의 특수 장비로 평가를 받는다.

매우 정확한 상태창이 있었지만, 자신의 수준을 숨기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장치였다.

“등급은?”

“F급.”

“그거 말고. 튜토리얼 때 받은 등급.”

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도 모르게 주변까지 살폈다.

“뭔데 그래? SS급이라도 받았어?”

“……!”

이진수는 자신의 농담에 정우의 눈이 커지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어.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자 이진수가 욕설과 함께 정우의 목을 감싸며 걸었다.

“미쳤어. 미쳤어!”

널 믿기는 했는데… 이건… 와! 진짜,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웅얼거리듯 내뱉는 이진수의 말에 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왜 이렇게 힘이 세졌냐?”

“그게 중요한 게… 와! 탱커한테, 힘자랑하면 안 되고… 와!”

“말 좀 똑바로 해.”

“와…… 잠깐만 있어 봐. 와!”

어깨동무를 푼 이진수는 정우를 새삼스럽게 보았다.

아버지를 잃고.

집에서 쫓겨나듯 나왔어야 했고.

돈이 없어서 저렴한 월세방을 찾아 전전해야 했으며.

시도 때도 없이 코피를 흘리고 팔다리의 경련을 느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혹사하듯 단련했던 친구.

“…와…… X발.”

머릿속으로 그 친구의 과거가 스쳐 지나가자 이진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사마귀. 왜 우냐.”

“…졸라 감격스러워서 그런다. 야. 그 코찔찔이가… 이렇게나…….”

“코 흘리던 건 너였을 텐데?”

“X발. 그냥 넘어가.”

이진수는 정우의 목을 다시 감싸며 말했다.

“승민이 불러. 오늘은 내가 풀코스로 쏜다!”

“됐어. 나도 들어가 봐야지.”

“왜! 아……. 이모한테?”

“어. 협회에서 연락이 갔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가는 게 낫겠지.”

“음… 그래. 이모, 내색은 안 해도 너 걱정 엄청 많으시니까. 정희도 그렇고.”

“바쁠 텐데 와줘서 고맙다.”

“고맙기는… 야, 준비는 내가 다 해놓을 테니까. 몸만 와.”

“…프로포즈 멘트라 기분이 나쁘다?”

“킥. 헛소리가 늘었어? 아무튼 삼 일 뒤에 보자.”

“그래. 나이트 길드 본사로 찾아가면 되는 거지?”

“어. 야… 씨. 썰은 나중에 풀어. 꼭!”

“알았어. 들어간다.”

정우는 헤어지기 전 이진수의 눈빛을 보았으나 손을 휘젓는 것으로 대답했다.

이진수도 머뭇거리다 픽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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