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승리
후악!
숨을 내뱉은 정우가 몸을 돌려 다급히 뒤로 달렸다.
크하앙!
분노의 포효.
깡, 콰직!
철창이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
그리고.
투닥, 쿠쿵!
땅을 딛는 발소리까지.
후욱.
역한 내음이 분노를 타고 정우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웨어, 울프! 왜!’
웨어울프.
최소 D급의 몬스터.
그게 튜토리얼에서 등장했다.
‘미친!’
다급히 달리는 등 뒤로 분노에 찬 웨어울프의 포효와 기척이 느껴지자.
꽉!
다급히 손을 뻗어 철창을 잡았다.
그러고는 몸을 반전시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웨어울프의 번들거리는 노란 눈알과 정우의 시선이 마주쳤다.
노란 눈알이 아래로 훅 가라앉았다.
도약.
“매직 미사일!”
한껏 다리를 굽힌 놈을 향해 정우가 마법을 시전했다.
쿠웅!
돌진하려던 놈이 마법에 얻어맞고는 나가떨어졌다.
휙, 휘익!
얼굴에 적중했음에도 고개를 몇 번 터는 것으로 충격을 해소한 놈의 기세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사이, 정우는 다시 반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입구가 아닌,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놈이 있던 장소로.
‘지금 내가 가진 힘으로는 저놈을 이기지 못해!’
냉정한 판단.
그럼에도 정우가 믿는 건, 이곳이 튜토리얼이라는 점이었다.
모든 플레이어는 하나같이 말했다.
G급 던전은 인간을 초인으로 만들어주는 장소이며, 해결 불가능한 난제를 던져주는 막연한 장소가 아니라고.
‘방법을 찾아!’
스스로를 재촉하고 독려하며, 정우는 다시 자신을 노리고 달려들려는 놈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매직 미사일!”
여러 개의 매직 미사일이 웨어울프를 향해 쏘아졌다.
‘…음.’
정우는 왼손으로 심장 어름을 만졌다.
약간의 뻐근함.
‘마력이 벌써 이만큼이나 사용됐어?’
정우의 눈이 낭패로 가늘어졌다.
후욱.
숨을 내뱉은 정우가 땅을 내디뎠다.
콰앙!
정우의 마법에 얻어맞고는 철창에 부딪혔는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약간의 안도.
‘이때 살펴보자.’
지나온 길은 더 이상 살펴볼 이유가 없었다.
무엇 하나도 없는 휑한 감옥.
그렇다면 놈을 이길 방법은 놈이 있던 장소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양쪽으로 있던 철창 대신 사각형의 공간이 드러났다.
그리고 정우는.
‘글자?’
벽에 쓰인 글자를 발견했다.
[ 마지막 희망을 어그러트리는 것이 나의 목표이나, 부득불 해치지 못하고 가두어두노라. 어디 한번, 구할 수 있으면 구해보도록 하거라. ]
오만한 말투.
정우는 왠지 글을 읽는 순간 기분이 매우 나빠졌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구할 거다.”
그렇게 내뱉은 정우가 다시금 마법을 사용했다.
일자로 된 통로가 꽤 유용했다.
아무리 웨어울프라고 해도 피할 구석이 많지 않았으니까.
정우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 심지만 남은 횃불 ]
쓰레기 같은 물건 하나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정우는 그것을 챙겼다.
팔뚝만 한 횃불.
기름기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그것을 들고, 이동했다.
약간의 설명이 보인다는 것부터가 이 물건이 평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선 필요한 물건.
“이것도…!”
깨진 바닥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마력에 정우가 손을 푹 집어넣었다.
[ 발광 달팽이 ]
잠깐 멈칫했던 정우가 손안에서 미끄러지는 달팽이를 횃불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마력을 사용했다.
정우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 스킬, ‘마력 부여’를 습득하였습니다. ]
화르르르!
단번에 타오르기 시작한 횃불.
콰직, 우당탕!
그것을 다급히 웨어울프 쪽으로 돌리자 놈이 달려오다 말고 허우적대며 넘어졌다.
어둠에 적응하여 한껏 확장되었던 눈을 부여잡고 막대한 통증에 시달렸다.
매직 미사일에 당한 것보다 더 아파하는 모습에 기분이 상한 정우가 달려들었다.
품에서 대검을 다시 꺼냈다.
그러고는 놈의 마력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달렸다.
마력 부여.
검이 더 날카로워졌으면 하고 생각하자마자 심장 어름이 뻐근해지더니 검이 웅웅 빛나기 시작했다.
[ 스킬, ‘검기’를 습득하였습니다. ]
휘익!
기회를 놓칠 수 없던 정우의 검이 웨어울프의 종아리를 베었다.
쿠아앙!
이전과는 달리 고통에 찬 비명이 정우의 귀를 저릿하게 만들었다.
횃불을 철창에 대충 꽂아두고 슬라이딩처럼 몸을 날렸다.
서걱!
쿵!
놈이 반격을 하듯 팔을 휘저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무의미한 허우적거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 눈을 뜬 정우의 움직임은 더욱 예리해졌다.
심장 어름의 뻐근함은 여전했지만, 육체만큼은 활활 타오르는 화산처럼 뜨거웠다.
‘더 빠르게…!’
서걱, 서걱!
크앙!
쉐에에엑!
놈의 날카로운 손톱이 정우의 얼굴을 긁고 지나갔다.
주륵!
한 끗 차이.
그럼에도 정우는 오히려 놈의 움직임에 반응이라도 하듯 더욱 빠르게 땅을 박차고 놈의 팔을 붙잡고 몸을 회전하며 여태껏 배운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정우의 근력은 F급 플레이어보다 뛰어나다.
‘단단해.’
그럼에도 정우는 놈의 성인 남성 허리보다 두꺼운 팔을 부러트릴 수가 없었다.
순수한 근력이라면 웨어울프의 압승.
휙, 휘익!
놈이 고개를 털며 눈을 살짝 떴다.
마치 초승달이 떠올랐다가 다시 구름에 가려지는 것처럼, 놈의 눈알이 다시 자취를 감췄다.
‘불빛에 약하다.’
그게 놈의 약점이었다.
게다가 움직임이 매우 빠르기는 하나 정우가 못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친 상태.
그것도 아니면.
‘부상.’
어쨌든 정상이 아니라는 게 정우에게는 호재였다.
그럼에도 정우는 웨어울프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가죽이 너무 두꺼웠고.
‘…방어력이 뛰어나.’
마력방어력이 너무 우수했다.
매직 미사일에 당하지 않은 게 이해가 될 정도로, 웨어울프는 마력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났다.
정우가 웨어울프의 왼팔에 긴 상처를 만들었을 때.
“…큭!”
정우는 심장에서 느껴지는 상당한 통증에 주춤 물러났다.
심장 어름을 꽉 쥐어짜듯 붙잡고 통증을 다스렸으나,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력, 고갈!’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징후.
하필이면 그때, 놈의 노란 눈알이 번들거리며 다시 정우를 찾기 시작했다.
웨어울프의 살기 가득한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정우는 지체 없이 움직였다.
검을 들고, 이를 악물며.
‘찌른다!’
놈의 휘두르는 팔에 얻어맞으면서도 정우는 검을 찔러 넣었다.
온몸이 격통으로 바르르 떨렸지만 대검의 손잡이는 놓치지 않았다.
이미 상처가 나 있던 옆구리.
그곳을 제대로 가격한 탓에 대검이 생각보다 깊게 박혔다.
웨어울프가 비명을 내질렀다.
놈에게도 이건 중상이었다.
그러나 위험한 건 정우였다.
스르….
정우의 대검에서 일던 마력이 사라졌다.
몸속을 헤집던 마력이 사라지자 놈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정우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매직! 미사일!”
유일한 스킬.
그것이.
“……!”
대검을 꽂아 넣은 놈의 내부에서, 폭발했다.
퍼엉, 하고.
* * *
어둠 속에서.
희미한 점이 느릿하게 점멸한다.
-……그래도, …최소한의…….
끊어지는 말.
희미해진 목소리.
그것은 생각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에 낙담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기억을 잃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많은 기억을 잃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구한다면….
그가 자신과 함께 성장해준다면….
-기회…….
그 말을 내뱉은 붉은 점이 흐릿해졌다.
이윽고 어둠이 가득 찼다.
철그렁.
쇠사슬만이 한 차례 울릴 따름이었다.
* * *
“……으음.”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도 모를 정도로 머리가 멍했다.
정우는 그 와중에도 고개를 돌렸다.
“……!”
뒤늦게 떠오르는 기억.
심장의 막대한 통증.
희미해지는 정신.
폭발하는….
“……잡은, 건가?”
탁하게 갈라진 음성이 목구멍을 짜르르 자극하며 흘러나왔다.
벌어지는 입 사이의 뾰족한 이빨이 당장이라도 목을 노리고 짓쳐 들 것만 같았지만….
“……잡았군. 잡았…어.”
보이는 건 기다란 혀를 쭉 빼놓은 채로 늘어져 있는 머리뿐이었다.
그것도 자신과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모습 그대로 죽어 버린.
“…꿈에 나올까 무섭군.”
마지막 순간에 웨어울프는 자신을 물어뜯으려고 했을까?
정우는 그런 모양새의 웨어울프를 보며 실소했다.
“죽을 뻔했어….”
마지막 순간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죽은 목숨이었다.
‘기지라고 할 것도 없어. 그저 매직 미사일을 검기 대신 사용했을 뿐이니까.’
운이 좋았다.
정우는 그렇게 평가했다.
하지만 정우는 몰랐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것인지.
아티팩트는 물론, 아이템의 수준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물건에 마력을 전이하고, 그 전이된 마력을 변형시켜 마법을 실현시켰다.
어지간한 마법사조차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기예.
“…심장은 물론 온몸이 욱신거리는군.”
통증을 참으며 일어나 자신을 점검하는 정우를 마법사들이 보았다면 기함했을 터였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정우는 털레털레 걸어가 창을 챙겼다.
자루만 남기고 깊숙이 박힌 창을 빼내느라 또다시 온몸이 욱신거렸다.
“만신창이군.”
오히려 오한우에게 당했을 때가 상태가 더 나았을 정도였다.
덩그러니 던져진 배낭을 찾아 약을 바른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반대편 벽.
횃불과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발광 달팽이를 찾은 곳.
그곳에서 본 작은 홈을 떠올린 정우는 숨을 들이켰다.
‘어떤 게 있을지는 모르지만… 들어가 봐야겠지?’
정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퀘스트가 말한 ‘누군가’가 저 안에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그그그그그!
홈을 건드리자마자 열리는 입구.
그곳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니, 단순히 서늘한 정도가 아니었다.
‘냉기. 꼭 냉동 창고에 들어가는 것 같군.’
냉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정우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정우는 아직도 은은하게 남아 있는 횃불을 챙겼다.
찰그랑.
‘쇳소리?’
정우는 귀를 기울였다.
횃불을 앞으로 뻗어 주변을 밝혔다.
정우의 예상은 맞았다.
쇠사슬에 결박당한 채 십자가 형태로 벽에 고정되어 있는 이가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온전한 상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소녀.
“……악마?”
반쯤 부러진 뿔.
찢겨 나가 형태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난도질 된, 박쥐 피막 같은 날개.
푹 숙인 고개를, 피와 땀으로 얼룩져 뭉친 머리가 뒤덮고 있었고.
‘…피.’
나체의 전신은 피와 상처로 가득했다.
시리다 못해 아릴 정도의 추위가 아니었다면.
썩어 문드러졌을 상처가 눈에 밟혔다.
지끈.
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심장이 아파 왔다.
‘제 컨디션이 아니구나.’
천천히 숨을 몰아쉰 정우를 향해 메시지가 떠올랐다.
[ 구하시겠습니까? ]
“…….”
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애당초 첫 진입 때부터 뜬 메인 퀘스트가 이 소악마를 구하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적어도 퀘스트는 거짓이 없다.
정우가 아는 한 그랬다.
‘앞으로도 그러리란 법은 없지만….’
바람에 휘날리듯, 당장이라도 꺼질 듯한 촛불 같은 소악마의 마력을 보며, 정우는 시간이 없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망설이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악마야. 일단 외형은 그렇지. 악마가 내게 도움이 될까? 과연?’
악마라는 형태가 지닌 이미지. 관념. 고정적인 생각이 정우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 구하시겠습니까? ]
메시지가 재촉했다.
‘연속해서 떴어?’
마치 급하기라도 한 것처럼.
지끈.
또다시 지끈거리는 심장에 인상을 구기던 정우가 멈칫했다.
‘뭔가 다르다.’
통증의 강도를 떠나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력을 전부 소진해서 느끼던 통증은 심장병의 그것과 비슷했다.
피가 제대로 순환이 되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가 심장을 쥐고 비트는 것처럼 통증이 앞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통증의 정도는 비슷했다.
그러나 그 통증이 오기 이전의 느낌이 달랐다.
어딘지 모른.
‘…그거다. 가슴의 지끈거림. 슬픈 영화나 가슴 아픈 사연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
고민하던 정우는 깨달았다.
이 지끈거림이, 먼저 감정을 타고 흘러들어온다는 것을.
정우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소악마를 보았다.
“…구하겠어.”
결정이 섰다.
정우는 소악마를 구하기로 했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퀘스트가 언급한 대로.
그 말과 동시에 새로운 퀘스트가 떠올랐다.
[ 결박 해제 ]
???를 결박한 쇠사슬은 보통의 물건이 아니다. 마력의 패턴을 해석해야만 결박이 풀어진다. 마력의 패턴을 해석해서, ???의 결박을 풀어내자.
등급 : ???
보상 : ???의 결박 해제
실패 : ???의 죽음
“마력의… 패턴?”
그렇게 중얼거리던 정우의 눈이 커졌다.
[ 제한 시간 04:59 ]
“…이거, 타임어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