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8화 (8/293)

8화

-전투

[ 제4관문을 클리어하라 ]

돌파하십시오.

등급 : E

보상 : 무기(무작위)

실패 : 죽음

어디선가 큼큼한 내음이 코를 자극했다.

오래된 화장실을 들어가는 듯한 암모니아의 찌든 내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정우는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냄새에 왼손으로 코를 막았다.

‘무슨 냄새가 이렇게 지독하지?’

코를 막은 상태로 주변을 살펴봤다.

냄새가 난다는 건, 허수아비 따위가 아닌 다른 종류의 적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정우는 오히려 자세를 낮춘 채 숨조차 차분하게 쉬려고 노력했다.

케륵, 케케케.

기묘한 울음이 뒤따랐다.

‘…고블린!’

흔하디흔한 몬스터이면서 F급 플레이어가 가장 자주 접하는 ‘악몽’ 중 하나.

‘음…….’

정우는 침음을 삼켰다.

허수아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적이다.

심지어 고블린은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이 특징이었다.

객체의 능력은 성인의 두 세배에 불과하지만, 군체의 능력은 어지간한 F급 파티를 어렵지 않게 집어삼킬 정도였다.

‘수는?’

때문에 고블린을 마주했을 땐, 그 수부터 파악하는 게 원칙이었다.

‘진수와의 대화가 이럴 때 많은 도움이 되네.’

정우는 상체를 숙이고 전면을 보았다.

풍경은 이전 관문과는 달랐다.

그저 통로만 있는 것이 아닌, 수풀과 나무.

‘개울까지.’

뒤늦게 졸졸 흐르는 개울을 발견한 정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숲.

고블린이 가장 사랑하는 무대.

‘…악질적이군.’

고블린의 지능은 매우 뛰어나다.

함정을 활용하고 상대의 생각을 역이용하는 능력은 초짜 플레이어들이 감히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악랄했다.

때문에 붙은 호칭이 ‘F급의 악몽’이다.

고블린 따위에게 붙이기엔 과분한 호칭이었지만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놈들의 함정에 걸려 죽어간 것을 떠올린다면, 어느 정도 어울리는 호칭이기도 했다.

‘함정을 숨길 곳도 많고, 지형을 이용한 특이한 함정을 만들 방법도 많아. 흐르는 물조차 조심해야 해.’

다가가지 않는 선에서 적의 수를 파악하고자 했다.

‘음?’

그때.

정우는 자신의 감각을 파고드는 여러 기척을 느꼈다.

‘이건?’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다.

느껴지는 것.

‘마력. 마력 감지구나!’

익숙한 감각이 정우의 머릿속을 자극했다.

패시브 스킬 마력 감지가 고블린의 수와 위치를 파악해냈다.

심지어.

‘이건, 마력으로 작동되는 함정인가?’

몇 개의 함정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대박이군.’

정우는 눈을 빛냈다.

또다시 보이는 시작 선을 앞에 두고, 정우는 스킬을 사용했다.

“매직 미사일.”

선수 필승.

정우의 마법이 함정에 작렬하고.

케에엑!

수풀에 몸을 숨긴 채 정우를 기다리던 고블린의 몸을 강타했다.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공기가 날카로워졌다.

케륵!

그들만의 언어가 벼락처럼 외쳐지고.

각각의 무기를 든 고블린이 정우를 위협하기 위해 뒤늦게 등장했을 때.

정우는 이미 이동한 상태였다.

함정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콰쾅!

정우의 매직 마시일이 부딪치는 곳마다 함정이 부서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기껏 준비한 함정이 부서지는 모습에 기가 찬 건 고블린이었지만, 막상 당황한 건 정우였다.

‘그냥 함정의 위치를 알 수가 없으니 일단 가격부터 한 건데… 대체 얼마나 함정을 깔아놨으면, 경로마다 함정이 파괴되는 거야?’

함정의 수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하지만 덕분에 함정으로부터 안전해진 정우의 움직임은 빨랐다.

고블린들이 뒤늦게 움직이며 정우를 막기 위해 각자의 무기를 틀어쥐었다.

독침과 화살이 날아왔다.

“매직 미사일!”

정우는 마법으로 그것들을 격추했다.

더불어 또 다른 마법이 지연시간도 없이 발현되어 고블린에게 쇄도했다.

기겁한 고블린들이 메뚜기 떼마냥 이리저리 뛰며 도망쳤지만.

케엑!

정우의 마법에 가격당한 채 쓰러졌다.

열 마리의 고블린이 싸늘한 시체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몇 분에 불과했다.

[ 클리어하셨습니다. ]

얼떨떨한 심정이었다.

기껏 만전을 기했는데, 어린아이와 다툰 느낌이었다.

3관문의 난관이 무색해질 정도로 정우는 손쉽게 승리를 쟁취했다.

F급 플레이어조차 목숨을 걸어야 했을, 열 마리의 고블린을 상대로.

“…….”

정우는 고블린을 처치한 뒤 훤히 드러난 출구로 향했다.

[ 등급은 SS+ ]

[ 보너스를 적립합니다. ]

“……!”

이번에는 산정 중이라는 문구 대신 곧장 튀어나온 결과에 정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SS+.

여태껏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최고 등급.

정우는 숨이 턱 막혔다.

짜르르한 쾌감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잠식했다.

대기실에 정우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 * *

[ 선택의 기로 ]

당신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를 구하십시오.

등급 : ???

보상 : ???

실패 : ???

다시금 떠오른 퀘스트.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흥분이 싸늘히 가라앉았다.

“…아.”

끝난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정우의 표정이 매우 허탈해졌다.

“이게… 메인이었지?”

관문을 클리어하라는 퀘스트만 계속해서 받다 보니 까먹었었다.

정우는 메인 퀘스트를 다시 보았다.

물음표로 가득한 내용.

구해야 하는 존재도, 등급도, 보상과 패널티도 알 수 없는 퀘스트는 상당히 의미심장했다.

“대체 누구를 구하라는 거지?”

선택의 기로는 또 무슨 말이고.

몇 번의 경험으로 차분해진 정우는 퀘스트를 다시금 살폈다.

선택의 기로.

꽤나 의미심장하고 음흉한 단어였다.

[ 정비하십시오. ]

이윽고 나타난 메시지에 정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어떤 놈이 등장하려고….”

하지만 정우는 메시지를 허투루 보지 않았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식사를 하고, 잠도 잤다.

배를 든든히 하고 밀린 잠까지 취하고 나니, 정우의 컨디션은 그야말로 만전의 상태가 되었다.

4관문을 너무 허탈하게 통과해 버린 탓에 상처가 없는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이 던전의 알 수 없는 시스템은 정우의 상태를 확신하듯.

쿠르릉!

미약한 진동과 함께 통로를 만들어냈다.

“…계단?”

대기실 중간에 나타난 사각형의 구멍엔 계단이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

[ 도전하시겠습니까? ]

예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저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 적립된 보상을 받고 여기서 종료하시려면, 입구가 닫힐 때까지 기다리시면 됩니다. ]

[ 만약 도전하시겠다면, 진입하십시오. 도전 시 적립된 보상 외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

[ 60s ]

시간이 줄어든다.

“…선택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제야 정우는 선택의 기로라는 퀘스트를 이해했다.

패널티가 죽음이 아닌 것도 희한했다.

“귀환이라면… 이대로 클리어 인정이라는 소리겠지?”

정우는 고민했다.

적립된 보상을 받고 이대로 끝내느냐.

아니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느냐.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지금 실행해야 하는 퀘스트가 튜토리얼에 입장하자마자 나타났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소리였다.

보상을 떠나, 꼭 자신에게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의미.

정우는 이대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구하려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안 돼. 그렇다면 나도 도전을 해야겠지.’

어느새 10초 대로 줄어든 시간을 본 정우가 계단을 디뎠다.

[ 도전하시겠습니까? ]

의지를 묻듯.

아니면 만류라도 하는 듯.

또다시 묻는 메시지를 향해.

“그래.”

정우는 계단을 내려갔다.

* * *

‘…지하 감옥?’

첫인상은 지하 감옥과 동일했다.

정우는 4관문을 클리어하고 보상으로 받은 무기를 들었다.

협회의 대검보다 더 긴, 창이었다.

삼단으로 접었다가 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무기.

[ 삼단창 ]

그리 훌륭하지 않으나, 썩 쓸 만하다. 평소에는 단봉처럼 들고 다닐 수 있어 소지에 용이하다.

관통력 : +10

창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정우는 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똑, 또옥.

천장에 맺힌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어둡다.

지하 감옥엔 빛이 없었다.

그럼에도 은은한 형태는 분간이 가능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정우는 겨우 보이는 실루엣을 통해 지형을 파악했다.

양쪽으로 감옥의 쇠창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중간중간 열린 문이 있었으나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숨소리 하나.

작은 기척 하나.

‘무엇 하나 느껴지는 게 없어.’

그럼에도 정우는 천천히.

아주 조용히 걸었다.

‘선택의 기로. 포기와 도전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어. 그렇다는 말은, 지금이 앞선 관문보다 더 위험하다는 말이야.’

심지어 앞의 관문이 지금을 위한 훈련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정우는 내심 자신이 붙었다.

4관문의 고블린 무리를 너무 쉽게 상대했기 때문이다.

컨디션도 좋았고, 자신이 습득한 능력도 파악했다.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능력에 자신이 붙을 만도 했다.

그럼에도 정우는 자만하지 않았다.

‘자만은 독이야.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해.’

이미 여러 스파링을 통해 정우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이긴 경험이 있었다.

정우의 신체 능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상대가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만하다가 벌어진 결과였다.

적당한 자신감은 승리의 요인 중 하나지만 과하면 독이 된다.

지하 감옥의 복도는 생각보다 길었다.

이 감옥 안에 누군가가 붙잡혀 꽉 차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오싹했다.

정우의 걸음이 멈췄다.

‘…마력.’

지금까지는 느껴지지 않던 마력이 반대편 통로에 나타났다.

무겁게 가라앉은 듯한 느낌.

그럼에도 뒷목이 저릿해질 정도의 섬뜩함까지.

‘몬스터다.’

적어도 고블린보다는 위험한 몬스터였다.

‘어떤 놈이지?’

정우는 숨소리조차 죽였다.

자신의 마력 감지 반경을 알게 된 건 소소한 성과였지만, 상대의 정체를 모르니 조금은 답답해졌다.

정우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

‘한 마리다.’

추가로 느껴지는 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강해 보여.’

느껴지는 감각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마치 그때와 같았다.

‘빌런을… 처음 만났을 때.’

그나마 빌런 오한우는 방심이라도 했었다.

하지만 몬스터는 그런 게 없다.

인간을 죽이고자 하는 악의로 가득 찬 놈들.

준비하고 또 준비해서 맞붙어야만 했다.

부스럭.

“……!”

발밑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자, 정우의 눈이 커졌다.

실제로는 매우 작은 소음에 불과했지만 사위가 너무 조용하다 보니 정우의 귀엔 천둥처럼 들렸다.

‘…젠장!’

그리고 그건.

크르릉!

몬스터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단번에 반응하여 달려드는 몬스터의 기척에, 정우는 창을 내밀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매직 미사일.”

웅, 하고 떠오른 마법의 화살이 앞으로 쏘아진다.

연이어 두 발을 더 사용한 정우의 눈가가 좁혀졌다.

‘…피했어?’

달려오던 놈의 기척이 붕 뜨는가 싶더니, 첫발을 피해 냈다.

이어 쏘아진 매직 미사일에 가격당해 뒤로 나뒹굴었지만, 그리 큰 피해는 없어 보였다.

‘아무리 효율이 좋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맞춰야 해. 앞으로 나아가자!’

고블린조차 일격에 죽였던 마법이다.

하지만 이번의 적은 매직 마시일에도 건재했다.

그나마 약간의 충격이 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정우는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파앗!

이번엔 정우가 거리를 좁혔다.

어지간한 F급 근접 계열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이 활성화된 마력을 머금고 포탄처럼 정우를 밀어냈다.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감옥.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연이어 만들어낸 마법이 정우보다 먼저 전면으로 쇄도하고, 그 틈을 타 정우가 접근했다.

어둠 속에서.

마법에 얻어맞고는 크르릉, 고개를 터는 상대의 실루엣이 보였다.

쏴아악!

정우의 창이 예상보다 더 커다란 형태의 적을 노리고 내질러졌다.

푹!

어딘가에 박히는 창.

‘…얕다.’

관통의 효과로 박히기는 했지만, 손으로 느껴지는 감촉이 그리 좋지 않았다.

실루엣이 창대를 잡고 비튼다.

‘…무슨 힘이!’

정우의 근력으로도 감당하지 못할 거력이 창대를 타고 넘어오자 정우가 창을 놓으며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착지했다.

“…큭!”

그러고는 다급히 뒤로 굴렀다.

쐐애액.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자신의 창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뒤로 날아갔다.

꿀꺽.

그 기세에 마른침을 삼킨 정우의 눈에.

상처에 분노하며 몸을 일으키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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