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관문 클리어
[ 산정 중입니다. ]
아직도?
정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도 산정하고 있다는 말은 시스템도 고민이 된다는 소리.
높은 등급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만 같았다.
두근거리는 기대감에 잠을 못 이룰 것 같았지만.
코오-.
몇 번 눈을 깜빡거리던 정우는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 * *
산정 중….
산정 중….
커서가 깜빡거리듯 메시지가 점멸했다.
-…예상보다…….
일전의 음성이 잠깐 등장했다 사라졌다.
희미한 만족.
마지막 순간, 의지를 보태자.
[ 테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
잠에 빠진 정우의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등급은 S+ ]
[ 보너스를 적립합니다. ]
-…시간이…… 없어… 요.
그 메시지를 본 음성이 마지막 의지를 불태웠다.
* * *
[ 보너스를 적립합니다. ]
정신을 차리자마자 등장한 메시지에 정우는 눈을 깜빡였다.
정산이 끝났다.
“…S+?”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떠 있었다.
멍하니 그것을 보던 정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대 최고 등급인 SS급보다는 한 단계 낮았지만, 정우는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좋아!”
입장과 동시에 클리어된 1관문.
그리고 생각보다 더 높은 등급을 받은 2관문.
자리에서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한 정우는 자신의 컨디션이 생각보다 더 괜찮다고 느꼈다.
식사를 한 후 3관문 앞에 섰다.
[ 제3관문에 입장하시겠습니까? ]
“그래.”
숨을 고른 후 진입한 3관문은 일전과 마찬가지로 어둡기만 했다.
‘…이번엔 뭐지?’
진행 순서가 교육받은 것과는 다르다 보니 다소 혼란스러웠다.
이제는 같이 입장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하지 않았다.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이 중요할 뿐.
‘뭐든… 전부 다 클리어하고 돌아간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 다짐했다.
파앗!
불빛이 비친다.
또다시 등장하는 허수아비.
“……!”
하지만 2관문과는 달랐다.
“진검?”
검뿐만이 아니다.
창, 활, 방패까지.
심지어 방향도 정우를 향한 것이 꼭.
“방어…태세라.”
방어진을 형성한 것만 같았다.
수는 2관문보다 적었다.
열하나.
하지만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무기를 보니 입이 바짝 말랐다.
[ 제3관문을 클리어하라 ]
돌파하십시오.
등급 : F
보상 : 스킬(무작위)
실패 : 죽음
“……뭐?”
뒤늦게 나타난 퀘스트를 본 정우가 멈칫했다.
“…실패 시 죽음?”
던전의 악의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G급 던전은 인간을 초인으로 각성시켜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안전하기만 한 검증된 방법이 아니며,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방법이었다.
문구를 보자 정우는 입맛이 썼다.
특히나 가슴 한편이 묵직해졌다.
잠이 들면서도 잊지 못하는 한 가지 사실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러웠다.
‘…마찬가지인 상황이시겠지. 꼭 구해드릴게요!’
아버지를 떠올리자 걱정과 우려가 잦아들었다.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지만, 아버지는 무려 5년 동안이나 G급 던전에 갇혀 있었다.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유일한 사례.
내부 사정을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만 했던 5년.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버지를 구할 때를 위해 단련하고 또 단련하는 것뿐이었다.
단란한 가족.
그 순간을 되돌리기 위해서.
스릉!
정우는 배낭에서 대검을 꺼냈다.
대검이라고 하기에는 작고 단검이라고 하기에는 큰 애매한 크기였지만.
휘익, 휘이익!
정우의 손에서는 나쁘지 않게 움직였다.
“나쁘진 않아…. 하지만 썩 훌륭하지도 않아.”
플레이어 학원에서는 무기술을 가르쳐준다고 했지만, 정우는 학원을 다니지 못했다.
배울 수 있는 건 여러 무술뿐이었다.
태권도, 복싱, 유도 등.
수많은 무술을 닥치는 대로 배운 정우였고 또 재능이 있어 단시일 내에 일정 경지 이상에 도달한 그였지만.
검이라고는 검도 때 만져본 게 전부였다.
그것도 진검이 아닌, 죽도로.
그 어색함을 줄여야 했다.
여전히 시작 버튼이나 다름이 없는 선을 앞에 두고, 정우는 끊임없이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고 지치면 쉬면서 체력을 보충했다.
내친김에 식사까지 진행했다.
허수아비이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와중에 발견한 것도 있었다.
제 자리에 고정되어 있던 2관문의 허수아비와는 달리.
‘발이 있어.’
3관문의 허수아비에는 발이 달려 있었다.
‘이동이 가능하다는 뜻이겠지. 멋모르고 달려들었으면 큰일이 났겠어.’
쉬면서도 정우는 허수아비를 노려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무기를 쥔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상대가 진검을 들고 있어서.
손으로 막는 건 불가능했다.
2관문의 허수아비조차 일격을 얻어맞았을 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강력했다.
무기가 들려 있다면?
허리가 갈라질지도 몰랐다.
아쉽게도 상대의 무기를 막을 수 있는 무기가 대검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소리였다.
‘허수아비의 강도가 2관문과 동일하다면 부술 수 있을 거야.’
협회에서 준비해준 대검은 꽤나 날카롭고 튼튼했다.
아이템이라고 불리기엔 부족했지만, 하급 몬스터를 썰기에는 충분한 예기를 지니고 있었다.
수많은 패턴이 존재하는 던전인 이상 몬스터와의 결전에 대비해서 준비한 물건다웠다.
정우는 배낭을 내려놓았다.
후욱!
크게 들숨과 날숨을 내쉰 정우가 목을 비틀었다.
뚜둑.
소리를 내며 긴장을 푼 정우의 자세가 낮아진다.
뒤로 내민 오른발 근육이 수축한다.
그리고 급격히 팽창하며 바닥을 밀어낸다.
고개를 한껏 숙인 탓에 지면을 스치듯 쏘아지는 정우의 자세는.
‘처음은 레슬링.’
레슬링의 태클이었다.
우웅!
정우의 상체가 선을 넘자마자 허수아비의 안광이 붉게 타올랐다.
끼긱,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허수아비들.
하지만 작정한 정우는 제일 가까운 허수아비의 하체를 쓸어 가고 있었다.
왼손으로 다리를 잡고 어깨로 민다.
강도보다 가벼운 허수아비의 몸체가 붕 떠서 뒤로 기운다.
쿠웅!
바닥에 메다꽂은 정우가 대검으로 허수아비의 목을 찍었다.
스으.
방금 타올랐던 안광이 순식간에 꺼졌다.
하나를 처리하자마자 정우는 다급히 바닥을 굴렀다.
여러 무기가 쇄도했다.
구르던 자세 그대로 바닥을 손으로 밀어 회전하며 발을 디뎠다.
쿵!
“……큭.”
달려든 허수아비의 방패에 얻어맞은 정우의 몸이 부웅 떴다.
그 틈을 노린 허수아비들의 일격이 예리하게 빛났다.
깡, 가가가각!
서걱.
“……!”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어서 치명상을 피했다지만 왼쪽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욱신거리는 어깨.
‘왼팔도 아프다….’
어깨 때문에 팔의 가동 범위까지 좁아졌다.
그 와중에도 정우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패턴이 있을 거야.’
난이도가 미친 듯이 상향되었다.
허수아비들의 패턴은 존재했다.
허리를 굽히거나 여러 관절을 가동해야 하는 등의 행동은 불가능했다.
휘두르고 내려치고.
허수아비의 공격은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합이 좋아….’
처음의 허수아비가 빠졌음에도 허수아비의 공격은 예리했고, 방어는 단단했다.
‘방패부터 치워야겠어.’
교근이 도드라질 정도로 이를 앙다문 정우가 틈을 노렸다.
상체를 노리는 검을 쳐내고, 허리를 노리는 창을 피한다.
쿵!
방패를 바닥에 내리찍은 뒤에 돌진하는 허수아비를 보며.
파앗.
정우는 파쿠르를 하듯 방패의 윗부분을 잡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방패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급격히 아래로 회전했다.
위를 쳐다보는 허수아비의 붉은 안광.
정우는 허수아비의 붉은 눈을 향해 대검을 내리찍었다.
콰직!
머리가 반쯤 부서진 허수아비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후욱.
뜨거운 숨을 내쉰 정우가 또다시 움직였다.
창을 든 팔이 부서져 허공으로 치솟고.
정우의 대검이 허수아비의 가슴을 찔렀다.
“으읍!”
대검을 찌른 상태로 힘을 주어 허수아비를 밀쳤다.
놈의 뒤에서 공격을 가하려던 허수아비 하나가 정우가 밀친 놈과 부딪혀 뒷걸음질 쳤다.
그사이.
“……후욱, 후욱!”
정우는 뒤로 훌쩍 물러나며 대검을 틀어쥐어 앞으로 내밀었다.
허수아비들은 그런 정우를 보며 다시금 진형을 갖췄다.
셋을 없애 허수아비의 수는 여덟이 되었다.
‘화살이 날아오지 않는 건… 난이도 조절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맨 뒤에 선 허수아비 하나는 활을 겨누고 있었다.
화살까지 메긴 상태로 활줄을 한껏 당긴 채로 정우를 따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스나이퍼라고 생각하면 되겠어.’
확실한 일격을 준비하는 허수아비를 눈여겨본 후, 왼쪽 어깨를 슬쩍 들었다.
‘…상처가 더 벌어졌어.’
욱신거리는 통증이 커졌다.
‘이 정도야….’
이겨내야 했다.
정우는 그렇게 의지를 불태우며.
천천히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놈들의 틈을 노렸다.
‘방패병에게 붙으면 검병이 달라붙어. 창병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경향이 있어.’
긴박한 접전.
그 와중에도 정우는 놈들의 패턴을 파악하는 걸 놓치지 않았고, 잠깐의 대치 상황을 통해 생각을 정리했다.
방패병에게 달려들자 검병이 검을 수직으로 내리친다.
‘놈들은 철저하게 같은 팀을 노리지 않아. 허수아비를 방패로 삼아야 해.’
검을 피한 정우가 회전하듯 몸을 돌려 방패병 옆으로 돌아갔다.
“흡!”
그리고 힘을 주어 방패병의 옆을 밀었다.
주춤거리며 밀려나는 방패병.
그리고 뒤편에서 공격하던 검병이 부딪쳤다.
그렇게 드러난 틈을 노리고 정우가 도약했다.
검병의 양팔을 잘라 버린 정우가 뒤돌려차기를 날렸다.
창을 내지르려던 허수아비가 가슴을 얻어맞고 뒤로 나뒹굴었다.
벌어진 틈.
심장이 터질 듯 요동을 치고, 숨이 목구멍을 따갑게 자극했지만.
“후욱!”
끝내 정우는 둘을 제외한 모든 허수아비를 제거했다.
활을 든 허수아비와 검을 든 허수아비.
폐가 터질 듯해 숨을 몰아쉬던 정우의 눈에 갑자기 점 하나가 생겨났다.
피잉!
뒤늦게 날카로운 소리까지.
점을 보자마자 고개를 비튼 정우의 눈앞으로 허수아비가 겨누고 있던 화살이 보였다.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감각 덕분이 아니었다면 단번에 꿰였을 불시의 일격.
때문에 쉴 틈을 놓친 정우를 향해 검병이 달려들고, 화살병이 다시 화살을 메겼다.
검병 하나라면 그리 어려울 게 없는 상대였지만, 지칠 대로 지친 정우는 힘겹게 검병을 상대했다.
화살에 허벅지에 상처가 나고.
검에 당한 팔뚝에서 울컥 피를 쏟고 나서야.
콰직!
“……하아, 하악!”
정우는 보랏빛까지 나는 낯빛을 한 채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이, 이겼다!’
그럼에도 정우는 환호했다.
당장의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웃음을 지었다.
어렵던 전투.
그것을 승리로 만든 자신을 한껏 치하했다.
“…끄응.”
잠시 쉬던 정우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구로 돌아가 배낭을 챙겼다.
그것만으로도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당장 휴식이 필요했다.
정우는 대기실로 이동하기 위해. 그리고 3관문을 클리어하기 위해 출구로 걸었다.
[ 클리어되었습니다. ]
메시지와 함께 3관문이 사라지고 4관문이 나타났다.
한 번도 문이 생겨나지 않았던 벽.
처음의 불길한 예상대로 관문은 네 개나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일단은… 쉬자.”
정우는 약을 바른 뒤 대기실 중간에 드러누웠다.
게임이나 소설에서처럼 자동적으로 회복이 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냉혹했다.
상처가 꽤 많아 약이 상당히 소모되었다.
특히나 등 쪽에 난 상처는 손이 닿지 않아 약을 바르지도 못했다.
“중상은 아니니까.”
당장 약을 바르지 않는다고 위험할 상처는 아니었다.
[ 산정 중입니다. ]
“……또?”
정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심 기대가 되기도 했다.
2관문을 클리어했을 때도 S+라는 등급을 받았다.
비슷한 상황.
기대가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원래 이렇게 바로 적용이 안 되는 건가? 듣기로는 아닌 것 같던데….”
하나의 주제를 클리어하는 도중에 사람들은 능력을 깨우치고 그것의 활용법까지 배우게 된다.
스킬을 습득하고, 마력을 다루는 것.
그건 관문을 클리어해야 주어지는 게 아닌, 과정 중에 주어지는 부산물이자 꼭 얻어야만 하는 필수 성과였다.
하지만 정우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아니. 정말 없었나?’
“…선택의 기로. 그게 이 튜토리얼의 메인이라면… 관문 클리어는 과정일 뿐이야. 그럼 난 능력을 얻었어야 해.”
1관문.
마력 체득.
입장과 동시에 클리어되어 버린 관문을 떠올리곤 정우는 헛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