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5화 (5/293)

5화

-나만의 튜토리얼

갑자기 세상이 무거워졌다.

중력이 몇 배나 강해진 것처럼, 온몸의 피가 일순간 발바닥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정우는 순식간에 적응하는 자신을 새삼스럽게 보았다.

이진수가 몇 번이나 강조했던 마력적응도.

협회에서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여 일부러 준 선물도.

정우에게는 필요가 없다는 듯, 모든 게 자연스러워졌다.

‘…오히려 익숙한 느낌마저 들어.’

마치 그것과 같았다.

어릴 적에 수십 번씩 넘어지며 배운 자전거를 나이가 들어서 오랜만에 타는 기분.

처음에는 삐걱거릴지 몰라도 금방 익숙해지는 그런 느낌.

잊었던 감각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듯한 기시감에 정우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마력이 주는 감각에 잠깐 정신이 팔렸던 정우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아무도 없었다.

지휘를 해야 할 김 중사도.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대화를 나누던 여러 사람들도 없었다.

“…어디 갔어?”

어두운 공간 속에 존재하는 건, 본인만이 유일했다.

파앗!

“……!”

그때.

사방이 밝아졌다.

그리고 들리는 한 줄기의 음성.

-오래… 기다렸…….

“…뭐?”

정우가 반문했지만 음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환청이 들린 것처럼 밝아진 주변은 여전히 조용했다.

농구장 크기의 공동.

사각형의 건물 내부였다.

정우는 주변을 살폈다.

입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방이 막힌 건물 안에 갇힌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하지?”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덜렁 혼자만 떨어진 상황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통로가 없는 건물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선택의 기로 ]

당신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를 구하십시오.

등급 : ???

보상 : ???

실패 : ???

“……!”

그때, 퀘스트가 떠올랐다.

튜토리얼에서 퀘스트는 매우 중요했다.

공략의 목표이자 단서가 되며.

성장의 단초가 되는 것.

때문에 튜토리얼의 퀘스트는 직관적이고 간단했다.

“…튜토리얼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뭘, 구해?”

이진수와 협회에서 들었던 내용과는 판이한 퀘스트 내용.

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난, 어디에 있는 거지?”

* * *

쿠르릉!

미약한 진동과 함께 문이 열렸다.

아무리 살펴봐도 조금의 틈새도 보이지 않던 벽면이 열렸다.

정우는 그 문 위에 떠 있는 문자를 읽었다.

“…1관문.”

[ 제1관문 ]

“…2, 3관문도 있다는 건가?”

정우는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정우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도 없었고.

다만 혼자만 같은 입구에서 덩그러니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고 유추할 수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되겠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던전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많은 부분이 드러났음에도 인간의 이해도는 던전에 미치지 못했다.

그저 이해할 수 있는 사항만 놓고 이해할 따름이었다.

정우는 관문의 앞에 섰다.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협회에서 준 배낭 안에는 여러 물건이 가득했지만, 그중 식량은 고작해야 일주일 분에 불과했다.

여차하면 몬스터 고기를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몬스터가 있다면 말이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우의 심장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같이 입장했음에도 혼자만 떨어진 상황.

묘하게 연상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이런 걸까?”

과연 튜토리얼에 입장한 게 맞는 건지도 의문일 정도의 상황이다.

아버지도 이런 상황이라면….

정우는 단서 하나를 잡은 느낌이 들었다.

내친김이었다.

정신을 다잡은 정우는 천천히 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매우 조심스럽게 한 발만 내디뎠다.

관문이라 불린 그곳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제1관문에 도전하시겠습니까? ]

뒤늦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래.”

정우의 대답에 화답하듯.

화르르륵!

어둠을 밝히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횃불.

“…복도, 인가?”

조금 넓은 복도와 같은 형태의 길.

그 양쪽에 생긴 횃불이 일렁이며 관문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들리는 섬뜩한 소리.

피융!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에 정우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파앗!

묵직한 소리와 함께 자신의 발치에 꽂히는 화살.

“……!”

정우의 눈이 커졌다.

하필이면 함정형이었다.

“…곤란한데?”

정우는 전면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바닥의 선 하나를 발견했다.

“…여길 넘어가면 발사되는 건가?”

그러고 보면 화살이 꽂힌 위치가 딱 선을 넘어선 자리였다.

정우는 몇 가지 검증을 거쳤다.

“여긴 안전지대라 이거군.”

선 안쪽의 공간은 좁았다.

크게 한 발을 내디디면 바로 선을 벗어날 정도였으니까.

후우.

한숨을 내쉰 정우가 배낭을 뒤적거렸다.

그중에서 야광 스틱을 꺼낸 정우가 그것을 앞으로 던졌다.

횃불은 선의 바로 앞 양쪽에만 존재했고, 화살이 나오는 방향엔 횃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야광 스틱.

파앙!

그리고 들려오는 파공성.

“…움직임에 반응한다, 이거군.”

마치 센서와 같았다.

정우는 화살에 맞은 채로 파괴되어 버린 야광 스틱의 잔해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파괴력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정우는 배낭을 뒤져 적절한 보호구를 찾아봤지만, 딱히 쓸 만한 게 없었다.

‘패턴을 파악해야 해.’

함정형 던전은 패턴이 있었다.

더불어 이곳은 튜토리얼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만 입장한 이상한 장소였지만.

‘G급 던전 안일 거야.’

패턴이란 게 그리 어려울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정우는 처음의 두 발을 기억했다.

발치에 꽂혔던 화살.

그리고 야광 스틱을 강타한 화살.

‘조금씩… 파악해 나가는 거야.’

정우의 발이 선을 넘었다.

* * *

[ 제1관문을 클리어하라 ]

마력은 모든 능력의 기초입니다.

마력을 체득하십시오.

등급 : F

보상 : 마력 수치 활성화

실패 : (없음)

관문을 넘자마자 새로이 뜬 퀘스트는 확실히 튜토리얼다웠다.

그리고.

[ 클리어되었습니다. ]

“……?”

입장과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도 다 읽지 못한 상황이었다.

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클리어?”

의문이 들었지만 메시지는 여전했다.

오히려 빨리 이곳에서 나가라고 재촉하듯 깜빡거렸다.

“…진짜?”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정우는 되물었다.

[ 클리어되었습니다. ]

“뭘 했다고?”

관문은 어두컴컴했다.

불조차 켜지지 못한 채 꺼진 느낌.

오로지 들어왔던 입구만이 훤히 출구가 되어 빛날 뿐이었다.

정우는 전면을 노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뒤로 물러났다.

그르르릉!

1관문의 문에서 나오자마자 1관문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른쪽 벽에 다른 문이 생겨났다.

[ 제2관문 ]

“클리어는 확실한가 본데….”

상태창, 정우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모든 퀘스트를 공략한 게 아니라서 그런지 상태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력 수치.

활성화된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컨디션은 좋았다.

때문에 정우는 2관문에 진입했다.

한 번 해봤기에 망설임은 적었다.

[ 제2관문을 클리어하라 ]

신체 능력을 테스트합니다.

등급 : F

보상 : 신체 능력 수치 활성화

실패 : (없음)

파앗!

하늘에서 빛이 비쳤다.

전등처럼 불이 들어오자 어두운 통로가 환히 밝혀졌다.

“허수아비?”

옛날 게임의 초반부를 보는 듯한 외형.

나무로 만들어진 허수아비가 수십 개나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우는 조금 앞에 그려진 선을 보았다.

“이 선을 넘어가면 시작인 건가?”

정우의 시선이 메시지로 향했다.

테스트.

체득이라는 단어와는 달리 현재의 상태를 추정하는 그 단어에 정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게 내 수치가 될 수 있다 이거지?’

협회에서 들은 내용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정우는 어쨌든 지금의 과정을 대충 넘길 생각이 없었다.

정우가 알기로 모든 플레이어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공략을 진행하는 도중 자연스럽게 테스트를 수행하게 된다.

이렇게 관문이라는 이름하에 하나의 주제만 반영하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이건 마치.

“…진짜 테스트 같은데?”

메디컬 테스트 같은 느낌.

정우는 묘한 표정이 되었다.

허수아비의 수는 많았다.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빽빽한 건 아니었지만, 저것들이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서는 지나가지 못할 정도의 간격이기도 했다.

‘허수아비가 움직이겠지?’

신체 능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적어도 현대문명식으로 테스트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반응 속도, 파괴력 등.

플레이어에 적합한 능력을 테스트하려면 당연히 허수아비가 움직일 터였다.

정우는 조심스럽게 선을 넘었다.

크릉!

기묘한 기계음이 들리고, 허수아비의 눈에 붉은빛이 돌기 시작했다.

가르릉!

기기묘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는 허수아비.

팔이 회전하거나 칼을 휘두르거나 각각의 형태로 움직이기 시작한 허수아비를 보는 정우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딱 봐도 틈이 많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다행인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쿠쿵!

통로가 진동했다.

그리고 허수아비 외 빈 공간을 벽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채우기 시작했다.

“…창?”

뾰족한 창.

기어코 허수아비를 상대해서 넘어가라는 듯, 반대편 통로에 문이 생겼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정우는 어느새 닫혀 있는 문에 인상을 구겼다.

* * *

허리를 숙이고.

파앗!

회전하는 허수아비의 팔을 양팔을 교차해 막은 뒤, 그 힘을 빌려 허공으로 뛰어올라 발을 내질렀다.

콰직!

바로 옆에서 목검을 휘두르던 허수아비의 팔이 반쯤 부서졌다.

후욱!

뜨거운 숨을 내뿜은 정우가 바닥을 딛자마자 몸을 비틀었다.

쿵.

바닥을 찍는 검.

정우는 그것을 밟고 허공으로 뛰어 무릎으로 허수아비를 쳐 냈다.

뒤로 젖혀지는 허수아비가 만들어놓은 틈으로, 몸을 집어넣자마자.

쿵, 쿵, 쿵!

바닥을 내리치는 타격이 정우의 등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후욱!”

뜨겁고 깊은 숨을 내쉬자마자 다시 움직임을 개시했다.

허수아비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빨랐고 날카로웠으며, 의외성이 있었다.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어렵지 않은 놈들이 한데 뭉쳐있으니 파훼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정우에게는 무기도 없는 상황.

온몸을 부딪치며 놈들의 움직임을 바꾸고 틈을 만들어 이동하는 수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리고 정우는 그런 방법을 너무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근육을 한껏 짜낸다.

발가락에 힘을 실어 꾹꾹 바닥을 누른다.

그리고 튕겨 나가는 속도는 단거리 육상 선수에 비견될 정도였다.

수많은 허수아비들이 각각의 형태로 공격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정우의 속도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정우는 기이한 감각에 휩싸여 있었다.

‘느려.’

때때로 정우는 그런 감각을 느낀 적이 있다.

주로 격투를 배우고 스파링을 할 때.

상대의 움직임이 눈에 선하게 보일 때가 있었다.

종이 한 장의 차이.

아주 세밀한 회피.

관장들은 정우의 움직임에 반했고, 그를 선수로 들이고 싶어 했다.

‘지금처럼!’

느려진다.

아니, 사고가 확장된다.

세상이 보다 느려지고 여러 허수아비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야가 넓어지고, 틈이 보인다.

정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콰직!

마지막 허수아비의 옆구리를 쳐내는 것으로 정우는 반대편 입구에 도착했다.

“…후욱!”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한껏 움직인 다리와 허리가 잘게 떨렸다.

허수아비의 공격을 막은 양팔은 사정없이 욱신거렸다.

“…뭔 난이도가…….”

생각 이상으로 난이도가 높았다.

허수아비의 공격은 끊임이 없었고, 쉴 틈이 없는 공격 사이에서 방어와 공격을 번갈아 가며 진행해야 했다.

버거운 부분이 많았지만.

[ 클리어되었습니다. ]

“…후우. 잠깐 휴식을 해야겠군.”

출구로 진입하자 예의 커다란 사각의 공동 안이었다.

마치 대기실과 같은 형태.

정우는 3관문이 개방되는 것을 보며, 배낭에서 식량을 꺼냈다.

우걱우걱.

전투 식량을 먹고 난 정우는 대기실의 구석에 등을 기댔다.

‘위험할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까.’

온몸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단 한 개뿐인 포션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대신 약을 바른 정우는 후욱, 숨을 내뱉었다.

“사각형 방이니까… 관문도 네 개겠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정우는 깜빡 잊고 있던 걸 떠올렸다.

“…근데 2관문의 결과는 어떻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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