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빛의 틈새에서 솟아난 정체 모를 그것은 거대한 로봇이었다.
단순히 크다고만 하기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웅장한 하나의 구조물.
고층 빌딩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 이게 대체 뭐냐?”
힘겹게 하늘로 솟고 있던 김용진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괴물을 보고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이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는 체고 80m의 기계 괴물.
현실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모습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김용진은 이젠 진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이 레벨의 자신이 무력하게 당한 것부터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초거대 로봇까지.
하나같이 다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
그렇게 떠오르던 그가 무언가를 감지했다.
자신의 머리 위로 지는 거대한 그늘.
그것이 뭔지도 채 파악하기 전.
쿵!
쾅!
굉음과 함께 그의 신형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이런 놈에게 빌빌대고 있었다니. 나 원 어이가 없군.]
김용진에게 꿀밤 한 방을 준 카이저의 말이었다.
그 말에 대답을 한 것은 프리지아였다.
=자랑 그만하고 빨리 꼬마나 어떻게 해 봐라.
[내가 네 명령을 따라야 하나?]
=너 아직도 그런 병신 같은 소릴…….
[하지만 나 또한 그럴 생각이었기에. 그리하도록 하지.]
한차례 신경전이 있은 후 카이저의 손이 태정을 향했다.
=살살해. 이 녀석 지금 맨몸이라 조금만 힘 조절을 잘못해도 크게 다칠 수 있어.
[그 정돈 나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상태다. 그 입 좀 다물어라, 망령.]
세심한(?) 컨트롤로 태정을 손에 올린 카이저는 그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들어가 있어라.]
한차례 음성과 함께 카이저의 입이 벌어지며 태정을 집어삼켰다.
내부로 들어간 태정은 어떠한 작용으로 인해 하염없이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그렇게 한참을 빨려 들어가 안착한 푹신한 공간.
그제야 정신을 차린 태정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여긴 어디지?”
=큰 고철의 몸속이야.
들려온 익숙한 음성에 그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프리지아! 너 돌아왔구나.”
=네가 돌아온 거지. 큰일 날 뻔했어.
“어떻게 된 거야? 아까 내가 있던 곳은 어디였지? 아니,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어?”
=일단은 안전해. 네 의식이 꺼지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위협을 줄 만한 존재는 없는 것 같으니까.
“김용진은? 놈은 어떻게 됐지?”
=기절했어. 부상이 워낙 심해 당분간 거동을 하긴 힘들 거야.
“한상진은? 다솜이는?”
=내가 그런 떨거지들의 생사까지 알아야 돼?
“어떻게 됐냐고.”
재차 묻는 태정의 말에 제라드가 대답했다.
-둘 모두 무사합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걱정을 하고 있던 것이 사라지자 이내 그가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근데 여기가 카이저의 몸속이란 말이야? 그럼 내가 지금 방어력 십수만의 거대 기체 안에 들어와 있는 거네?”
=그런 셈이지. 네 정신력이 고갈되기 전까진.
“그럼 이놈은 지금 뭘 하고 있지?”
=네가 물어봐.
“이봐, 카이저.”
[말해라.]
“밖을 좀 보고 싶은데.”
[여기가 네 집 안 방이냐? 기다려라.]
그 말이 있고 몇 초 후.
사방으로 불이 들어오며 스크린 수십 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cctv처럼 온 군데군데를 다 비추고 있는 화면.
아직도 여긴 금사자 길드의 본진인 듯했다.
그리고 보이는 최다솜과 그녀가 안고 있는 한상진의 모습.
그런 그들의 주위로 다수의 헌터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저들을 구해야 돼. 빨리 데리고 빠져나가자.”
[저런 도움도 안 되는 것들…….]
“빨리.”
[별수 없군. 내 과오가 있어 들어주는 것이다. 두 번은 없으니 착각하지 마라.]
“그래그래. 그보다 한 명은 부상에, 한 명은 무장 해제 상태니까. 조심히 들어야 돼.”
[그런 말 할 시간에 의식이나 제대로 붙잡고 있어라.]
대답을 마친 카이저가 허리를 숙이며 지상으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이건 악몽이야.”
“오, 온다!”
겁에 질린 다수의 헌터가 입을 벌리며 소리쳤다.
서서히 내려오는 거대한 로봇.
아니, 적어도 그들에겐 로봇이 아니었다.
괴물. 그냥 괴물이었다.
몸이 완전히 얼어 움직일 수조차 없는 그들의 뒤로는 한상진을 보살피고 있는 최다솜이 있었다.
그녀 역시도 넋이 나간 듯 입만 벌리고 있는 상황.
그런 그녀를 향해 사제 중 하나가 급히 소리쳤다.
“부대장님 피하십시오! 이러다 깔려… 어어!”
“앗!”
“오오. 신이시여.”
내려오던 손이 일정 거리에 서자 마치 자석에 끌리듯 그들의 몸이 로봇의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줌이 되어 쥐어진 그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시퍼렇게 질렸다.
“우린 죽을 거야.”
“오오. 신이시여.”
“그놈의 얼어 죽을 신은!”
“우린 이제 쥐포가 될 거야.”
나오는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
하지만 로봇의 손은 그들을 움켜쥐지 않았다.
단지 어깨 위에 올려놓았을 뿐.
“뭐야? 왜?”
“노, 높아.”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다들 이해가 되지 않고 있는 그때.
로봇의 머리통으로부터 증폭된 음성 하나가 들려왔다.
[다솜아, 괜찮아?]
“태, 태정아, 너야? 너 괜찮은 거야?”
[난 괜찮아. 너는? 한상진은?]
“일단 고비는 넘겼어. 나도 아무 일 없고.”
[좋아. 지금 빠져나갈 건데. 혹시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잘 붙잡고 있어. 설명은 나중에 가서 할게.]
태정은 그렇게 말하며 겁에 질린 나머지 헌터들을 보며 말했다.
[거기 사제분들이죠?]
“예. 옛!? 예!”
[그 의식 없는 친구 치료 좀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사례는 충분히…….]
“아닙니다!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당연히 해야죠! 야. 빨리 힐!”
기겁을 하며 힐을 때려 박기 시작한 사내를 필두로 나머지 역시 죽어라 치료 마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 무렵 지상에서는.
“미, 미친. 이게 뭐냐?”
“모, 모르겠습니다. 뭔가 엄청난, 엄청난…….”
참모장과 그의 부관이 천신병을 보고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이미 경악을 넘어 있었다.
몬스터라 하기엔 너무 크고 그렇다고 기존에 상상하고 있던 로봇이라 하기에도 너무 컸다.
대체 이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물체는 뭐란 말인가.
“내 평생 이런 건 본 적이 없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괴생명체가 존재할 줄이야.”
“어, 어떻게 할까요? 이거 검은 아예 통하지도 않겠는데요.”
부관의 판단은 정확했다.
로봇은 신장만 큰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인간들의 무기는 이쑤시개 정도나 될까.
게다가 부상을 입었다곤 하나, 부단장 김용진을 한 방에 다운 시킨 괴물이었다.
이런 놈을 상대로 근접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
참모장도 그것을 알기에 후방을 보며 소리쳤다.
“마법전단은 들으라.”
“예!”
“공격… 공격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처음으로 부관의 의견을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이에 대한 답은 확실치 않았다.
“그, 글쎄요.”
“그래도 하는 게 맞겠지?”
“그러셔도 뭐 저는…….”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신경질을 내는 그의 말에 사내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노인네가 언제부터 내 말을 들었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딱 봐도 x 되겠구만. 이게 판단이 안 서나?’
사내는 참모장이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길 바랐다.
부단장과 총대장 그리고 공대장들이 당한 상황이었다.
길드의 최강 전투력들이 모두 무너진 마당에 자신들이 대체 뭘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으로선 잠깐 빠져 동맹 길드나 한산도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일개 간부와 핵심 주축인 참모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곳은 어찌 됐든 길드의 본진.
퇴각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다들 공격 준비하라!”
참모장의 지시에 마법전단이 스킬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명령과 함께 수백 발에 달하는 마법이 오색 빛을 자랑하며 쏘아졌다.
슈슈슉! 슈육!
화르르륵!
피이잉-!
허공을 수놓은 수많은 마법이 거대 로봇에 직격됐다.
하지만 워낙 동체가 커 뒤덮긴커녕 한 부위조차도 제대로 된 타격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뭐지? 아. 내가 공격을 받고 있는 거군.]
온갖 속성이 발린 마법들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있는 카이저였지만, 그에겐 간(?)의 기별조차 오지 않았다.
그의 맨몸 방어력은 무려 15.5만.
오러 드라이브 정도는 되어야 기스 정도를 낼 수 있단 소린데, 이곳에서 그런 전투력을 가진 헌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후후. 버러지 같은 놈들, 진정한 절망이 무엇인지…….]
=이봐. 상대할 시간 없어. 개짓거리하지 말고 빨리 나가.
[뭐, 뭣 개짓거리?]
-주인님의 의식이 그나마 온전할 때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별수 없군. 네년, 그 말은 두고두고 기억해 두지.]
헌터들을 쓸어버리려 했던 카이저가 거대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어어!”
“피, 피해!”
단 한 발짝을 움직였을 뿐인데, 마법을 쏘던 부대는 물론이고, 수천에 달하는 병력들이 일시에 흩어져 건물로 숨어들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톱 텐의 저력(?)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무슨 바퀴벌레 달아나듯 순식간에 없어지냐.”
“모든 건 상대적이라잖아. x발. 근데 이게 말이 되냐? 최강 금사자가 어떻게 이런…….”
“꽉 잡기나 해. 떨어지면 끝장이니까.”
천신병의 어깨에서 직관하고 있던 사제들의 대화였다.
쾅! 쿵!
쿠르르-!
쿵!
한 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지반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초소부터 주택, 아파트 고층 빌딩에 이르기까지.
당연한 얘기지만 그 어떠한 구조물도 카이저의 장애물이 될 순 없었다.
그저 지나가기만 하면 죄다 박살이 나거나 부셔져 초토화가 돼 버리는 상황.
그걸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수천의 병력은 아무런 제지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는 것 외에는.
“참모장님, 괜찮으십니까?”
같은 방향으로 몸을 숨긴 부관의 말이었다.
“주변 길드에 연락은 했나?”
“예?”
“뭘 ‘예?’야, 예는. 당장 지원 요청해!”
“하, 하지만 부단장님께서…….”
“이런 멍청한… 지금 이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너는? 초비상사태다. 초비상사태란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당장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금사자 길드가 초토화되고 있을 때 잠실 본동에서는.
길가던 사람, 차에 탄 사람, 상가에 들어가 있던 사람 할 것 없이 수많은 이들이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를 찍고 있었다.
“저게 뭐야?”
“괴물 아냐?”
“뭔 괴물이 저렇게 커? 방벽보다 더 크잖아.”
“x발. 드디어 종말인가.”
“근데 저거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거 아냐? 방벽을… 넘어섰잖아? 미, 미친. 온다.”
“어? 어? x발?”
휴대폰을 들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전방을 바라봤다.
두 눈을 뜨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거대한 물체.
놀랍게도 그것은 길드 방벽을 넘어 도심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