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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73화 (173/182)

173화

쾅!

한차례 굉음과 함께 김용진의 신형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그 즈음 돌고 있던 태정의 신형도 제자리를 찾았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한상진이 그의 안위를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너는?”

“이 정도야 문제없습니다. 그보다 형님.”

“……?”

“저 여자 데리고 먼저 가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야?”

“놈은 제가 막겠습니다.”

“너 혼자선 무리야. 레벨이 천이 넘는 히든이다. 우리보다 최소…….”

“그래서 먼저 가시라고 하는 겁니다.”

“뭐?”

“얼마 못 버팁니다.”

직접 맞부딪혀 본 한상진은 이미 김용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괴물인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카운터를 맞았다지만 단 한 방에 기절을 할 정도였으니까.

더군다나 태정이 거대 로봇을 꺼내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진즉에 소환을 하지 않았겠는가.

즉, 현재로선 놈을 상대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 못 버틸 거 혼자해서 뭐해. 희박하겠지만 같이 해 보자. 은신과 클로킹을 적절히 사용하면, 아무리 감각이 뛰어난 놈이라 해도 분명 틈이 생길 거야.”

“형님, 둘 다 죽습니다.”

“너 나보고 일 번이라 그랬지.”

“예. 한데 그게 왜…….”

“주군이 일 번 버리는 거 봤냐?”

“형님, 지금 이건 비상사태입니다.”

“시끄러워.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네가 나 때문에 잘못되면 내가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겠냐. 나도 이러기 싫지만 해 보자, 우리.”

태정은 그를 담보로 차마 혼자 나갈 수가 없었다.

관계를 맺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직접 영입을 한 길드원이고 처음으로 들인 수하였다.

애초에 길드에 데려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당하지 않았을 터.

게다가 빠져나갈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었다.

놈의 조건은 자신을 꺾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구경만 하고 있던 병력들이 움직이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한상진이 태정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바닥으로 꺼졌던 김용진이 빛과 함께 솟아올랐다.

그렇게 강력한 공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모습.

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놀랍군.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서 이런 공격을 해 올 줄이야. 조금만 늦게 막았어도 옷을 버릴 뻔했어. 꽤 괜찮은 일격이었다.”

김용진이 미소를 띠며 흡족해하자 한상진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받아쳤다.

“네놈 역시 좀 하는구나.”

“그래서 이제 둘이서 덤빌 건가? 뭐 나야 상관은 없지만.”

“헛소리. 네놈은 나 하나로도 충분하다!”

‘형님,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릅니다. 가십시오.’

전음을 뿌리며 앞으로 쏘아진 한상진의 몸에서 푸른 청광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곧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그의 신형에 덮어졌고, 이내 한 마리의 거대한 청룡이 되어 김용진을 덮쳐 갔다.

그 공격에 맞선 김용진 역시 몸에 두른 금빛 광채가 더욱 진해지며 다가오는 한상진을 향해 쏘아졌다.

깡! 까앙-!

파팟! 파파팟!

금색과 청색이 어우러지며 순식간에 수백 개의 불꽃이 튀어 올랐다.

잡아먹으려는 청룡과 그 입을 찢어 버리려는 금빛 광채.

그 모습에 태정 역시 블레이드를 쥐고 블라스터의 출력을 높였다.

하지만 그는 그 전투에 난입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새 막아선 시커먼 갑옷의 사나이.

금사자 무력 서열 2위인 총대장 이기영이었다.

“총대장 이기영이다. 넌 내가 상대하도록 하지.”

간단한 소개와 함께 그가 들고 있는 거대한 양날의 도끼에서 흑색 기류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클래스는 다크 바바리안.

특수 계열이자 근접에서는 수위를 차지하는 클래스였다.

그런 그의 신형이 흑기를 뿌리며 태정에게로 쏘아졌다.

한데, 그 속도가 두꺼운 갑옷과 거대한 도끼에 비해 수준급이었다.

‘빠르다. 분명 보조를 받고 있을 텐데, 이 정도 속도가 나오다니.’

태정은 이번 전투에서 몰랐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바로 비행 마법이 없는 이들의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럽단 것이었다.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비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클래스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특히 병장기를 사용하는 클래스에선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데, 이놈이나 저놈이나 하나같이 다 제약이 없는 듯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기껏해야 보조를 받아 몸을 띄우는 정도가 다일 텐데.

어떻게 이런 움직임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에 대한 비밀은 바로 마법 병기에 있었다.

문명이 회귀를 한 이후, 기계의 발전은 멈췄지만 마석을 이용한 마법 병기들은 꾸준히 발전을 해 온 인류였다.

그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 병기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에이비에이터.

비행을 가능케 해 주는 제작 아이템이었다.

이 아이템은 제작 성공률도 극악이지만, 성능 또한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시중에서 인기가 없는 아이템으로 유명했다.

들어가는 재료도 희귀해 값은 비싼데 마법보다 성능이 떨어지니 아무도 찾지를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극악의 확률을 뚫고 다시 극악의 확률로 좋은 수치가 붙는 레전드 등급의 에이비에이터도 존재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 김용진과 이기영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론 블라스터 이상의 움직임은 낼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출력을 담당하는 아이템이니까.

하지만 여기에 각종 보조 마법이 더해지면 땅에서와 같은 움직임을 낼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데, 바로 지금 그 움직임을 태정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까앙-!

불꽃이 튀며 흑색 오러가 서린 배틀액스와 스피어 블레이드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러자 태정의 신형이 5미터가량 하강하며 블레이드에 서린 플라즈마가 움푹 들어갔다.

한 번의 충돌로 변형이 생길 정도라니.

즉, 이쪽도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까앙-! 깡!

묵직한 공격이 수차례 그의 신형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때마다 태정은 바위에 얻어맞은 듯 자세가 흐트러졌고, 틈을 노린 이기영의 도끼가 거목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용진과의 전투에서처럼 손도 못 쓰고 당할 정도는 아니란 것이었다.

위태위태하지만 워커팩을 통해 어떻게든 치명타는 피하고 있는 상황.

다만 클로킹이나 화학탄 같은 기술은 그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밑에서 대기 중인 서포터들이 죽어라 해제와 정화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카이저를 믿는 게 아니었는데.’

사실 그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순전히 천신병 카이저 때문이었다.

이런 최악의 경우가 생겼을 때, 돌파가 가능한 유일한 수단.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한 번 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금사자의 히든이 이 정도로 강한 줄은 붙어 보고 알았지만, 1만의 병력을 뚫고 아무렇지 않게 나올 것이라곤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태정에겐 최악의 수밖에 남지 않았다.

절대로 사용하기 싫었던, 아니 사용할 수가 없었던 모두가 나락으로 갈 수밖에 없는 바로 그것.

살수였다.

태정은 자신의 특성을 배제한 채 싸우고 있었다.

이곳을 날려 버릴 무기야 얼마든지 있지만, 굳이 근접을 택해 불리한 전투를 고집한 것은 대량 참사를 막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 제약 때문이었다.

봉신방과 같이 누가 봐도 적이 분명하다면 모를까.

이는 태정의 개인적인 문제.

그런 문제에 수천의 사람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그는 아직도 길드 상공에 떠 있는 전략폭격기에 포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태정이 이기용을 상대로 어찌어찌 합을 겨루고 있을 때, 한상진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미 몸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가 여럿 생겨 거적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나름 선전은 했지만 레벨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700레벨대와 1,000레벨대의 현격한 차이.

아무리 무인이 소드 마스터보다 등급이 높은 클래스라 해도 100단위마다 몰라보게 상승되는 능력치의 차이를 무시할 순 없었다.

무려 3단계나 높은 상대.

그나마 근접 최강캐인 무인 클래스기에 이만큼이라도 버틴 것이었다.

‘큰일이다. 이제 남은 기술도 몇 안 남았어. 이기진 못해도 사지 하나는 끊어 놔야 형님이 빠져나가실 수 있을 텐데.’

태정과 마찬가지로 한상진 역시 김용진의 강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모든 걸 압도적으로 이겨 왔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벽이 존재하고 있었을 줄이야.

끽해 봐야 한 수 위 정도로 생각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뒤늦게 후회가 되는 한상진이었다.

‘톱 텐이 괜히 톱이 아냐. 너무 자만했어. 그래도 내가 국내에선 손에 꼽을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역경과 패배가 없이 살아온 자의 뒤늦은 후회였다.

하지만 이제 깨달아 봐야 의미가 없었다.

자신이 벌인 일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했다.

그 책임은 김용진의 사지 하나.

큰 부상을 입혀 태정을 무사히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다. 하지만 이걸 쓰면 모든 기술이 봉인될 텐데… 내가 기회를 벌 수 있을까.’

한상진에겐 아직 비장의 수 하나가 남아 있었다.

모든 기술이 한시적으로 봉인되는 청룡검법의 오의.

문제는 이걸로 김용진에게 부상을 입힌다고 한들, 태정을 막고 있는 저 총대장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었다.

당장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날 상대로 이 정도까지 하다니. 확실히 무인이란 클래스는 탐이 날만 하군. 국가적으로 본다면 손실이겠지만,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해라. 인정을 하는 의미로 마지막은 내가 즐겨 쓰는 기술로 보내 주지.”

끝을 보겠다는 듯 김용진의 몸에서 금빛 오러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기세가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한상진 역시 마지막 일격을 위해 마나를 풀로 개방했다.

그러자 그의 신형을 타고 푸른 청광이 번개처럼 요동치며 주변을 초토화시켜 나갔다.

다시금 벌어진 포위망.

그 모습에 김용진이 놀랍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직도 그런 힘이 남아 있었나. 좀 놀라운데? 하나, 그거 가지고 될까. 이미 넌…….”

“네놈을 날려 버리기엔 차고 넘친다!”

탓!

먼저 움직인 것은 한상진이었다.

그에 보답하듯 김용진 역시 그를 향해 마주 쏘아졌다.

회오리치는 금빛 기류와 뇌전이 들이치는 청색의 기류.

두 기운이 순식간에 충돌했다.

순간 섬광이 번쩍이며 모든 이의 눈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던 빛이 사라지고.

드러난 결과는.

“여, 역시 부단장님이시다!”

처참한 모습으로 추락하고 있는 한상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면에 아무 일 없다는 듯 곧은 자세로 서 있는 김용진.

떨어져 내리는 한상진의 힘없는 고개가 힘겹게 전투를 하고 있는 태정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친 그가 즉각 몸을 날렸지만, 이내 이기영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승부는 내고 가야지.”

“나와.”

“뚫어 보시던지.”

“나와, 이 새끼야!”

슈아악!

태정의 블레이드에서 십여 개의 반월형 플라즈마가 쏘아졌다.

갑작스러운 원거리 공격에 방어기를 전개한 이기영이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최고 속도로 낙하를 한 태정이 한상진을 낚아채며 외쳤다.

“한상진! 정신 차려라! 야! 정신 차려, 인마!”

태정의 외침에도 한상진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풀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태정은 자신의 몸이 피로 범벅이 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이런. 야, 죽으면 안 돼. 야! 대답해! 청룡대주 대답해라! 너 말 안 들어!?”

뺨까지 때리며 외치는 그의 말에 죽은 듯 닫혀 있던 한상진의 입이 달싹였다.

“형님…….”

“그래. 듣고 있다 말해라. 나 여기 있다.”

“부디, 삼십육계 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한상진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참으로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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