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저, 저기다!”
“저쪽이다!”
최다솜의 안내에 따라 동문으로 향하고 있는 태정은 수많은 헌터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하나같이 다 그를 보며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에게 태정이 내린 판단은 화학탄이었다.
“모, 몸이 안 움직인다.”
“이 연기 뭐야!”
“이런 띨빵한 놈들. 정화 스킬은 폼으로 가지고 있나!”
제대로 된 대처가 되지 않아 줄줄이 굳어 버린 헌터들.
뒤늦게 노련한 간부들이 와 보지만 이미 늦어 버린 상황이었다.
빠르게 벗어나고 있는 태정과 2공대 부대장을 보고 있던 간부 하나가 통신을 날렸다.
“현재, 남동 S구역 적으로 보이는 자가 2공대 부대장을 납치해 동문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몇 명이야?
“하, 한 명입니다.
-뭐? 한 명? 지금 고작 한 명을 막지 못해… 뭐? 그쪽도 한 명이라고? 그것도 히든? 알았어. 야, 지금 애들 모아서 당장 동문으로 튀어와!
“여긴 어떡하고 말입니까. 추가 병력이 들어올 수도…….”
-지금 동문에 히든이 떴다잖아. 잔말 말고 애들 최대한 모아서 얼른 달려와!
“아, 알겠습니다.”
최철호의 집무실.
“아니야? 아까 전에 전시 상황이라 하지 않았나. 이미 경계 수위 최대로 올려놨는데.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게 지금까지 들어온 피해는 모두 동문 근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데다, 그 숫자도 소수에 불과한지라.”
“대체 몇 명이 얼마나 들어온 거야?”
“지금까지 파악하기론…….”
“파악하기론?”
“두 명인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 고작 두 명……. 근데 사이렌을 울렸단 말이야! 그것도 최고 수위로!”
“그게, 상황만 보면 대규모 침공급이 맞았습니다. 동문 근방에 있는 고층 사무 빌딩이 모두 박살이 나고 그곳을 지키고 있던 정예 병력 일천이 전부…….”
“전부 죽었어?”
“맞았습니다.”
“맞았다니?”
“실력 차이가 그만큼 난다는 뜻입니다.”
“이런… 각 부대 공대장들은?”
“1공대장은 휴가 복귀 중이고, 3공대장과 4공대장은 남문에서 올라가느라 아마 지금쯤 도착했을 겁니다. 그런데 보고받기로 쳐들어온 놈이 히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든? 어떤?”
“파악하기로는 무인… 이라고 합니다.”
“무인? 외국인이란 말이야?”
“한국인입니다.”
“한국에 무인이라니, 그런 말은 듣지 못했는데. 한데, 놈이 왜 우리 길드에 와 행패를 부린단 말인가. 우리와 무슨 접점이 있나?”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동문 경비대와 시비가 붙었다고 하는 것 같긴 했는데.”
“다른 놈은? 다른 놈은 또 뭐야?”
“다른 이는 2공대 부대장을 납치…….”
쾅!
“뭐야!? 그곳에 있는 병력이 얼만데 그걸 저지하지 못했단 말이야!”
“라이언4가 발령되는 바람에 모두 제 위치로…….”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비우지 말라 했거늘. 멍청한 새끼들, 거기 어느 공대야?”
“2, 2공대입니다.”
“공대장도 거기 있었지.”
“예. 길드장님.”
“멍청한 새끼 같으니. 그래서 놈의 소재는?”
“동문으로 향하고 있는 걸 보면 그곳에 있는 히든과 합류를 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래? 이 새끼들. 모든 병력 동문으로 집결시키고. 부단장은? 길드에 있나?”
“마침 계십니다.”
“그에게도 연락해 바로 튀어오라 그래. 나갈 채비해라.”
“길드장님께서도 가 보려 하십니까?”
“당연하지. 예비 신부를 뺏겼는데 그럼 가만히 앉아 보고만 받고 있을까? 당장 차 대기시켜.”
“예, 옛.”
* * *
“이 미친…….”
“저게 정녕 같은 사람이냐?”
한 명.
단 한 명을 천여 명의 사람들이 빼곡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더 없나! 나와 검을 섞을 자가 정녕 이 금사자엔 없단 말인가!”
한상진은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헌터들을 바라봤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정예.
목적을 달성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시선은 확실히 끌었고, 형님은 무사히 빠져나가셨을까?’
한상진이 깽판을 부린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곳에 잠입해 있을 태정이 좀 더 쉽게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 외에 다른 생각은 없었다.
문제는 연락할 수단이 없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지만.
일단은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성과였다.
제닉스 소속인 것을 밝히지도 않았으며, 최다솜의 부모를 구하러 갔을 때 나오며 한 태정의 말도 지켰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것.
모두 고생이야 좀 하겠지만, 그는 정말이지 예술이라 할 정도로 금사자 헌터들의 목숨을 보존해 줬다.
‘내가 봐도 난 사람을 죽이는 살법보단 살리는 활법이 발달된 것 같아.’
“으하하하!”
뿌듯함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한상진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있는 금사자 길드의 헌터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놈은 미친놈이 틀림없어.”
“사람을 가지고 노는 악마야.”
“아까 특전대 부부대장 봤냐? 차라리 죽일 것이지. 힐러들의 말을 들으니, 뼈가 수백 조각으로 쪼개졌다더군.”
“내가 본 것만 해도 수백 대를 얻어맞았는데, 살아 있는 것도 기적이야.”
“그러니까. 저놈이 악마라니까. 사람 패는 걸 놀이로 알고 있는 놈이야.”
“근데 대체 공대장님은 언제 오시는 거야? 저런 미친놈은 공대장님만 오면 아무것도 아닌데.”
이미 줄줄이 떡이 되어 나가떨어진 선배들(?) 때문에 도저히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금사자 헌터들이었다.
걸렸다 하면 걸레가 될 것이 뻔한데, 누가 감히 그 앞에 나설 수가 있겠는가.
바로 그때.
후방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 3공대장님이시다!”
“4공대장님도 함께 오셨어!”
“이제 미친놈 너는 뒈졌다.”
헌터들이 길을 열고 두 명의 사내가 등장했다.
함께 휴가를 갔던 3-4공대장.
금사자 무력 서열 20위권의 초 실력자들이었다.
당연히 헌터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들한테는 무적이나 마찬가지인 사나이들.
“저놈인가 보군. 검이 없는 걸 보니 격투 계열인 것 같은데. 자네가 해볼 텐가?”
“왜? 자신 없나 보지?”
“그럴 리가. 그럼 내가 하도록 하지.”
3공대장이 먼저 앞을 나섰다.
“이봐, 넌 누군데 길드에서 이런 행패를 부리는 거지?”
“넌 정말 멍청하다.”
“멍청하다? 내가?”
“내가 그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았을 것 같나.”
“하긴 그도 그렇겠군. 격투 계열인가.”
“뭐, 주먹과 발도 곧잘 쓰는 편이지.”
“그럼 나도 검은 쓰지 않겠다.”
“웃기는군. 기사 계열인 것 같은데 검을 쓰지 않는다라. 니가… 이 청룡대주라도 된다는 말이냐!”
외침과 함께 빛살같이 쏘아진 한상진의 신형이 순식간에 3공대장에게 도달했다.
그 대시가 얼마나 빠른지 암암리에 이동기를 전개하고 있던 그가 미처 반응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무, 무슨 속도가…….”
“이걸 무림에선 전광석화라고 하지.”
한상진이 입을 열었을 때, 이미 3공대장의 신형은 자리에서 수십 미터를 벗어난 뒤였다.
문제는 한상진 역시 똑같은 거리를 이동해 있다는 것이었다.
“복날에 개잡듯 맞아 본 적이 있나?”
“이, 이런.”
뒤늦게 검을 소환한 3공대장이 중단을 깊게 갈랐다.
하지만 그보다 한상진의 주먹이 반박자는 더 빨랐다.
퍼억!
“크헉.”
날아가는 3공대장을 쫓아가는 한상진이 그의 머리채를 낚아챘다.
동시에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보통 약자가 강자에게 대가리를 박을 때 몇 번을 박는 줄 아나?”
“……?”
“백팔 번이다.”
“놔, 놔라, 이놈.”
“오늘같이 나를 몰라봤을 땐 백팔 번을 하고, 다음부턴 잘 알아보고 아홉 번만 해라. 대가리 안 터지도록.”
동시에 바닥으로 처박히는 공대장의 신형.
마치 무게가 없는 듯 그의 머리통이 사정없이 바닥을 강타했다.
“이놈! 그 손 놓지 못할까!”
4공대장의 우렁찬 음성이었다.
그는 이미 검에 오러를 장전한 상태였는데, 한상진을 죽일 듯 노려보며 바로 살수를 전개했다.
무시무시한 오러가 서린 검이 한상진의 머리통을 그대로 양단해 들어갔다.
하지만.
까앙-!
쇠구슬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공격을 한 4공대장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자신의 검과 맞대고 있는 작은 손가락 하나.
놀랍게도 상대는 오러가 실린 검을 손가락 하나로 막아 내고 있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무림에선 이런 걸 수강이라고 부르지.”
“수, 수강? 설마. 그럼…….”
“이미 늦은 것 같군. 너도 백 팔번이다.”
그때부터였다.
양손에 들린 대가리가 바닥을 찍게 된 것은.
쿵!
“한 배요!”
쿵!
“두 배요!”
쿵!
“세 배요! 으하하하!”
무적으로 알고 있던 공대장들이 장난감으로 전락하자 헌터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3-4공대장들이 누구인가.
1-2공대장에 비해 서열은 낮다지만, 그래도 20위권의 초특급 실력자들이었다.
한데, 이렇게도 무력하게 당하다니.
도저히 뜬 눈을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저, 저놈은 사람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1공대장님이 오셔도…….”
헌터들이 나약한 소리에 후방에서 일갈이 떨어졌다.
“닥쳐라! 네놈이 그러고도 금사자 길드의 일원이라 할 수 있는가.”
놀라 뒤를 돌아보자 화려한 차림새의 나이 지긋한 중년인이 들어와 있었다.
“차, 참모장님.”
“저놈인가.”
“예. 3-4공대장이 순식간에 당했습니다.”
“못난 것들. 마법 전단은 들으라!”
참모장의 외침에 일단의 무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땅을 가르고 하늘을 떨어 울린다는 금사자 최정예 마법 부대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참모장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죽여라!”
“그, 그럼 공대장들은…….”
“길드에 망신을 준 놈들은 살 가치가 없다. 뭣들 하나! 공격해!”
재차 내린 명령에 허공으로부터 오색 빛깔의 마법들이 속속들이 장전됐다.
그 하나하나가 죄다 800레벨의 스폐셜 무브.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상진이 양손에 들고 있던 공대장들을 뒤로 빠져 있는 헌터들에게 던져 버렸다.
“이번엔 좀 제대로 해볼 모양이군. 그럼 응수를 해 줘야지.”
그가 마법 전단을 향해 경공술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참모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미친놈. 피해도 모자란 판에 정면으로 들어오다니. 볼 것도 없겠군.”
쾅! 콰콰콰쾃!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한상진의 신형이 폭사 된 빛에 잠식됐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참모장.
하지만.
그런 그의 미소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 뭐야? 저건?”
폭운을 뚫고 멀쩡한 상태로 나타난 한상진의 모습에 참모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재가 되어 사라져도 진즉에 사라졌어야 할 놈이 어떻게 그 폭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의문 속 이어 날아간 마법들이 재차 그의 신형을 강타했다.
쾅! 콰쾅! 쾅!
수많은 마법이 한상진의 작은 신형을 강타했다.
하지만 그 어떤 마법도 그의 몸에 타격을 줄 순 없었다.
충격으로 신형은 쭉쭉 밀리지만 몸은 멀쩡한 상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저게 말이…….”
참모장의 입이 벌어졌을 때, 뒤늦게 도착한 참모 하나가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동시에 눈이 크게 떠지는 참모장.
“뭐야? 그럼 저놈이 무인이란 말이야!?”
다시 한상진을 바라본 참모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검도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건 말건 한상진은 계속해 경공을 펼쳐 나갔다.
충격파로 인해 접근은 못하고 있지만, 어차피 먼저 떨어질 것은 놈들의 마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신강기의 방어력은 무려 10만.
한 타에 10만이 나오지 않는다면 무적의 방어기나 마찬가지였다.
쏘아지는 마법들을 처맞으며 다가오고 있는 한상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귀나 다름이 없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실실 쪼개며 조금씩 거리를 좁히는 그.
떠오른 마법 전단도, 지상에 있던 정예 병력도 이미 뒤로 한참을 물러난 상태였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굳은 듯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곤 이내 이곳엔 관심도 없다는 듯 어느 지점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엔 웬 이상한 갑옷을 입은 헌터가 여자를 안고 서 있었는데, 속도를 줄인 한상진이 반 무릎을 꿇으며 크게 외쳤다.
“삼가 청룡대주 주군을 뵙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