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내부에도 지키고 있는 헌터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바깥의 병력과 다르지 않은 최후를 맞이했다.
기절해 나자빠진 그들을 치워 버린 한상진이 503호의 손잡이를 부숴 버렸다.
“들어가시죠.”
“그래.”
내부로 들어서자 놀란 얼굴의 두 남녀가 태정과 한상진을 바라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그도 잠시.
여자가 이내 태정의 얼굴을 알아봤다.
“너, 너는…….”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태정이 네가 어떻게 여길…….”
여자의 말에 남자가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당신 몰라? 왜 옛날에 굴다리 옆에 살던…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왔었잖아. 다솜이 친구.”
“아, 이제 보니 그 학생이…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시간이 없어서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태정은 그렇게 말하며 태극 1호를 소환했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란 그들.
이후 베란다를 활짝 열어 젖힌 그가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상진아, 아저씨 모셔.”
“예. 형님.”
그렇게 각자 한 명씩 끌어안은 그들이 베란다를 통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어머 어머!”
“어엇!”
갑작스레 수십 미터 상공으로 떠오른 그들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두 사내의 품에 안긴 최다솜의 부모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진정하며 눈을 뜰 수가 있었다.
개미처럼 작아진 도심의 풍경.
그것도 잠시.
도시의 경계 벽이라 할 수 있는 차단벽을 넘어서자, 허허벌판의 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곳이 좋겠군.”
서울을 벗어난 그가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대지에 내려선 태정이 한상진을 향해 명령했다.
“두 분 모시고 길드로 돌아가.”
“예? 그럼 형님은…….”
“난 알잖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거.”
“혼자선 위험하십니다. 차라리 같이 돌아갔다가 다시 나오시는 게.”
“이미 이 일이 길드에 알려졌을 거야. 방비가 심해지든 뭐든, 무슨 대책을 세우고 있을 거란 말이지. 네 은신이 좋은 기술인 건 알지만, 그곳의 감시망을 뚫고 들어가진 못해. 내가 해 봤으니까.”
“그러지 말고 그냥 쳐들어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말했잖아. 일이 커지면 복잡해진다고. 혼자 들어가서 가급적 충돌 없이 데리고 나오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야.”
“그럼 그땐 가만있겠습니까.”
“가만 안 있겠지. 근데 그땐 한산도를 끌어들이면 돼. 본인이 탈퇴를 하겠다는데, 뭐 어쩔 거야.”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금 한산도에 연락을 해서 도움을 구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사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다솜이가 놈들의 손에 있는 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론 절대 흘러가지 않을 거야. 조사를 막고자 하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다솜이가 우리에게 있다면 본인이 바로 증명해 주면 되니, 뭐가 됐든 일단 그녀의 신병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야.”
“그래도 형님 혼자 보내기엔 조금… 은신이 통하지 않는다면 형님도 달리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걱정 마. 내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두 분 잘 부탁한다.”
“후우.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한상진의 걱정과 함께 그가 다시 솟아 서울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차단벽을 넘은 그가 잠실에 있는 금사자 본부에 도달했다.
“저곳인데. 분명 방공망이 쳐져 있을 거란 말이지.”
수백 미터 상공에서 별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린 그의 말이었다.
일정 부근에 들어서면 온갖 마법이 난사되는 것은 물론이고, 함정 마법진 역시 발동될 확률이 있었다.
방어력을 믿고 들어간다 해도 그 소란이면 이미 조용히 나오긴 글렀다는 뜻.
게다가 최다솜을 인질로 잡아 버리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될 수도 있었다.
태정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었다.
그녀가 약점이 되어 버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공산이 크니까.
“여기로 들어가긴 위험부담이 너무 커. 푸닥거리를 하더라도, 다솜이 신병부터 확보해야 해. 일단 위치는 잡았으니까. 입구로 가 보자.”
어디에 있는지 파악을 한 것으로 만족한 태정은 그나마 가까운 남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십여 대의 차량이 진입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클로킹을 전개해 대지로 내려온 그가 차량 후미에 따라붙었다.
동시에 트렁크에 안착을 하며 플렉시온을 전개하자, 그의 신형이 1.8센티미터까지 줄어들었다.
그 상태로 검문대를 통과한 그가 길드 내부로 진입했다.
차량이 향하는 곳은 그가 가야 할 곳과 정반대인 곳이었다.
사거리에서 하차 후, 별장 방향으로 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는 태정.
이 상태로는 뛰어 봐야 벼룩이기 때문에,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겠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별장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죄다 반대쪽으로 향하는 차량들.
결국 기다리다 못한 그가 이동을 시작했다.
가다 보면 한 대는 지나가리라.
몸이 작아진 만큼 모든 능력이 줄어들어 있었다.
블라스터의 출력을 최대로 전개해 보지만 속도계는 겨우 4km/h.
이 정도면 일반인의 조금 빠른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가는 거냐, 마는 거냐. 바람은 쌩쌩한데, 길은 줄어들 생각을 안 하네.’
태정은 당장이라도 플렉시온을 풀고 날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플렉시온의 쿨타임은 일주일.
한번 풀면 최소 7일간은 다시 사용할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되면 곳곳마다 존재하는 검문대를 통과하는 데 애로 사항이 생길 것이다.
이동우에 말에 따르면 수준 높은 마법진이 설치된 검문대가 여럿 존재한다고 했으니까.
클로킹 하나 가지곤 들키지 않고 잠입을 하기가 힘들단 뜻이었다.
태정이 거북이처럼 별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 최철호에겐 외부로부터 한 통의 보고가 들어와 있었다.
“뭐라고? 누가?”
“워낙 빨라서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뭐야? 이런 병신 같은 것들이 있나. 그래서 얼굴도 못 봤단 말이야?”
“예. 한데, 주변 길드에 물어보니, 남자가 두 명이었다고 하더군요. 한 명은 무장이 안 된 일반인으로 보였고, 다른 한 명은 무슨 거적때기 같은 것을 입고 있는 노숙자같이 보였다고 하는데… 그자가 저희 애들을 곤죽이 되게 패 버렸다고 합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최철호가 헛웃음을 뱉으며 혀를 찼다.
“하다 하다 이제 노숙자한테도 줘 터지고 다니는군. 최근에 제닉스 일부터 시작해서 우리 금사자 꼴이 말이 아니게 됐어. 그 안전 가옥촌에 있는 다른 길드 놈들이 얼마나 우릴 비웃겠나. 그래서, 그놈들이 최다솜의 부모를 데려갔다고?”
“예. 바로 앞에 있는 초록성 길드에 물어보니, 중년 남녀 둘이 둥둥 떠오르더니, 갑자기 속도를 붙여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놈들은?”
“그게 어디로 사라졌는지 들어가긴 했는데, 나오는 건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비서실장의 대답에 최철호가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최다솜의 부모는 일반인이야. 그렇다는 건 은신이 가능하고 비행 마법이 가능한 놈들이 꾸몄단 얘기지. 한데, 대체 어떤 조합이기에 그런 게 가능한 거지? 어쌔신은 날지를 못하고, 프로핏이나 메이지 계열은 투명화 마법이 없는데. 한 명은 숨겨서 날린다 해도 다른 한 명은 어떻게 몸을 숨길 수 있냔 말이야.”
“저희도 그게 신기해서 지금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아무튼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 일이 절대 최다솜에게 들어가게 해선 안 된다는 거야. 그 아이를 잡아 둘 수 있는 이유가 그거 하난데, 사라졌다고 하면 그 성격에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그렇지 않아도 나를 탐탁지 않아 하는데. 특히 그놈 그거 누구야, 따라다니는 놈.”
“이동우 부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놈. 그놈 주시하라고. 촉새 같은 놈이 또 어떤 헛소리를 해 댈지 모르니까.”
“어차피 부대장이 있는 별장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는 거야. 미친놈이 확성기라도 틀지 누가 어떻게 아나.”
“그럼 차라리 제거를 해 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번에도 한산도에 연락을 해서 이상한 소리를 해 대지 않았습니까. 그거 둘러 대느라 혼났습니다.”
“나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약속을 했어. 다른 건 몰라도 그놈만큼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 하더군. 아무래도 함께한 시간이 오래돼서 각별한 사이인 모양이야.”
“하긴, 부대장이 길드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자라고 하긴 하더군요.”
“그래 봐야 그놈도 얼마 가진 못해. 식 올리고 애 배는 순간 없애 버릴 거니까. 설마 아이를 가졌는데, 허튼짓을 할 수 있겠나?”
“역시 생각이 다 있으셨군요.”
“당연하지. 난 촉새 같은 놈을 제일 싫어해. 제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떠드는 놈은 죽어 마땅하지. 아무튼 그렇게 알고. 최다솜 부모 건은 계속 알아봐. 누가 무슨 이유로 데려갔는지 또 원하는 게 있다면 뭔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 * *
최다솜의 부모를 양팔에 안아 들고 대지를 질주하고 있는 한상진은 제닉스가 있는 남양주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본부다.’
한상진은 순순히 길드에 남아 있을 마음이 없었다.
모시고 가라고만 했지 오지 말라는 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계획은 이들을 내려놓자마자 금사자로 향할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자신은 태정의 1번.
이런 일에 빠진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저, 저기요.”
“무슨 일이오.”
“저희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가 보면 알게 될 것 아니오.”
“혹시 저희 딸에게 무슨 일이…….”
“없소.”
“…….”
한상진의 딱딱한 말투에 최다솜의 부모는 자신들이 납치가 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설명도 없이 보쌈이라니.
점점 겁이 나기 시작하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달리기도 한참.
드디어 그들의 앞에 높게 세워진 방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닉스 본부에 도착을 한 것이다.
“엇. 당신은 아까 지역대장님과 함께 있던 사람이 아닙니까.”
경비조장이 그렇게 말하자 한상진이 위엄 있는 말투로 그를 나무랐다.
“난 지역대 청룡대주다. 넌 간부도 못 알아보나.”
“예?”
경비조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알을 굴리자, 그가 명패를 꺼내듯 아이디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것을 받아 든 경비조장이 기겁을 하며 예를 갖췄다.
“죄송합니다, 청룡대주님. 아직 자료가 내려오지 않아서 미처 몰라뵀습니다.”
“다시.”
“예?”
“인사를 할 땐 앞에 직급과 이름을 대고 ‘청룡대주를 뵙습니다’로 하는 것이다.”
“아…….”
“다시 해 보거라.”
“북문! 경비조장 이기용! 청룡대주를 뵙습니다!”
경비조장의 제대로 된 인사에 한상진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수고가 많군. 여기 이자들은 형님, 아니 지역대장님의 손님이시다. 정중히 모시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난 일이 바빠서 이만.”
경비조장에게 그들을 인계한 한상진은 다시 서울 방면으로 쏘아졌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기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청룡대주가 뭐 하는 직급이지? 새로 생겼나? 그건 그렇고 무슨 스킬인진 몰라도 더럽게 빠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