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한상진에게 자리를 지키라 말한 태정은 홀로 북문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들리는 고함 소리.
“야 이 개x끼들아! 유태정 그 인간 쓰레기 빨리 나오라 그래! 다 폭로해 버리기 전에 나와!”
“어이, 그 이상 지역대장님을 욕보인다면 우리도 더는 못 참는다.”
“못 참으면? 왜? 죽이고 싶나? 내 마음이 지금 딱 그렇다. 유태정 그놈을 죽이고 싶다, 이 말이다!”
“아니, 근데 이게…….”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경비조장이 나서려는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아 제지했다.
그는 태정이었다.
“엇. 지역대장님, 오셨습니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기 저 술에 꼴은 놈이 자꾸 대장님을 모욕하지 않습니까. 그냥 미친놈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한번 대화를 나눠 보죠.”
태정은 앞으로 나가 사내의 얼굴을 살폈다.
몇 번을 봐도 처음 보는 인물.
혹시나 싶어 계속 보고 있는데, 몸을 가누지 못하던 사내가 그를 발견하곤 삿대질을 시전했다.
“오. 너 이 새끼 이제야 나왔네. 야 이 치졸한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 네놈이 저지른 짓 때문에 우리 부대장… 헉!”
무언가 말을 내뱉던 사내가 숨을 쉬지 못하겠다는 듯 목을 부여잡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드러난 한 명의 사내.
그는 한상진이었다.
“이 새끼, 감히 우리 형님께 무슨 말버릇이냐 그게.”
“컥! 너, 넌 누구…….”
“일단 맞고 시작하자.”
퍽! 퍼퍽! 퍽!
그의 신형이 한상진의 주먹질에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태정이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떡이 되어 늘어졌다.
“별것도 아닌 새끼가, 어느 안전이라고.”
사내를 바닥에 던져 버린 한상진이 태정을 향해 반 무릎을 꿇었다.
“처리했습니다, 형님.”
“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태정이 늘어진 사내를 향해 달려가 급히 가슴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리곤 경비조장을 향해 급히 외쳤다.
“사람을 부르세요, 숨을 쉬지 않습니다. 빨리!”
제닉스 길드 병원.
“어떻게 됐습니까?”
“외상만 있을 뿐 목숨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일단 알코올 해독 주문과 축복을 넣어 놨으니 조금 있으면 눈을 뜰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뭘요. 그런데 누구입니까, 이 사람은.”
병원장의 말에 한상진이 앞으로 나와 자신을 소개했다.
“난 청룡대주요.”
“……?”
“후우. 너보고 한 말이 아니다. 그냥 제가 조금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군요. 팔목에 찬 아티팩트에 금사자 길드 각인이 되어 있어서 혹시나 해서 여쭤본 겁니다. 아시는 분이라 하니 전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
병원장이 자리를 벗어난 뒤 태정이 곧장 한상진을 보며 물었다.
“왜 그런 거야?”
“무엇을 말이십니까.”
“왜 사람을 이렇게 걸레로 만들어 놨냐고. 얘기는 다 들어 봐야 할 것 아니냐.”
태정의 말에 한상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형님, 이게 만일 무림이었다면 이놈은 지금 사지가 찢겨 들개의 먹이로 던져졌을 겁니다. 제가 손속에 사정을 둔 탓에 이 정도로 그친 거지요.”
태연한 그의 말에 태정은 순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코스프레 하는 재밌는 친구 정도로 알았는데, 이건 정신까지 지배가 당한 수준이었다.
중증 환자.
‘이거 보통 심각한 게 아닌데. 같이 다니면 사고만 생기겠어.’
그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누워 있던 사내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으으. 여긴… 어디?”
“정신이 드십니까.”
“누구… 엇. 당신은?”
태정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던 그가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났다.
“여긴 제닉스 길드 내 병원입니다.”
“그렇군요. 제가 결국 여기까지…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제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사내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자 한상진이 앞으로 나섰다.
“그게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당장 대가리를 박고…….”
“가만있어라. 명령이다.”
“죄송합니다.”
처음 만난 사이, 명령이란 단어까지 쓰고 싶진 않았던 태정이었다.
하지만 딱히 이외에, 그를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그렇게 그의 입을 틀어막은 태정이 사내를 향해 물었다.
“아까 부대장의 얘기가 나오는 것 같던데, 혹시 오늘 연락을 주신 분입니까?”
“예. 금사자 2공대 부대장의 부관 이동우라고 합니다.”
“그럼 다솜이의…….”
“맞습니다.”
“한데, 아까 그 얘기는 무엇입니까. 저 때문에 다솜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태정의 물음에 이동우가 안색을 굳히며 대답했다.
“지금 부대장님께서 감금을 당하셨습니다.”
“감금이요?”
“일전에 창고에서의 일 때문에…….”
“역시. 그것이… 그럼 출장은 가지 않은 겁니까.”
“거짓말을 하신 겁니다.”
“무사하긴 한 거죠?”
“예. 얼마 뒤 길드장과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어 함부로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만, 평생 그곳에 갇혀 살아야 될지도 모릅니다.”
“음…….”
이동우의 말을 들은 태정이 고민에 잠긴 듯하자 한상진이 궁금하다는 듯 말을 물었다.
“부대장이란 자가 누굽니까.”
“옛 친구.”
“친합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그럼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당장 구하러 가야지 않겠습니까.”
단순한 그의 말에 태정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금사자는 톱 텐에 들어 있는 거대 길드야. 절대 만만하지가 않다는 소리지. 게다가… 명분에서도 지고 있으니 이 일로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제닉스에 엄청난 피해가 올지도 몰라. 그쪽과는 일이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금사자와의 일을 마무리한 지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제닉스였다.
여기서 또다시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땐 정말 전쟁을 치러야 될지도 모른다.
국가전이 코앞인데다, 이번엔 한산도 역시 도와주지 않을 터.
자신의 경거망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가 있단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일을 수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별장의 경계는 어떻습니까.”
“설마 전쟁이라도 일으키시려는 겁니까? 양측 다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그냥 물어보는 겁니다. 혹시 어떻게 빼내 올 수 있을까 해서.”
“불가능합니다. 그곳은 공대 하나가 통째로 지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길드 내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 잠입도 어려울 겁니다.”
“일단 생각을 좀 해 봐야겠습니다. 편하게 계십시오.”
병원을 빠져나온 태정은 홀로 사색에 잠겼다.
마음 같아선 당장 구하러 가고 싶었지만, 길드가 걸려 있으니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보장이 있다면 모를까.
아직까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남극 기지에 있던 놈들하곤 사이즈가 달라. 뭔가 방법이 없을까, 방법이…….’
카이저를 소환한다 해도 운용 시간이 제한적이었다.
그렇다고 핵미사일을 사용하자니 죄 없는 사람들이 휘말릴 확률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었다.
도둑질을 한 놈이 큰소리를 친다는 것자체가 통념상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니까.
바로 그때, 그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맞아. 그놈들 내가 털어 간 건 모를 거 아냐? 알았으면 진즉에 연락이 왔겠지. 모르는 거야, 이놈들.”
최다솜이 불었다면 진즉에 금사자로부터 연락이 와도 일찍이 왔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감금되어 있을 필요도 없는 일.
다시 병원으로 올라간 그가 이동우에게 확답을 받았다.
“모릅니다. 그 일은 부대장님과 저밖에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역시, 이렇게 되면 다솜이의 생각이 중요한데.”
“왜 그러십니까.”
“다솜이가 길드에 남아 있을 이유가 있습니까? 다솜이에게 금사자는 어떤 곳입니까.”
“증오의 대상입니다.”
“어째서요?”
“이걸 말씀드려도 될지… 8년 전, 부대장님께선 강제로 길드에 들어오셨습니다. 특수 클래스라 길드장이 탐을 낸 것 같은데,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협박이요?”
“부모님을…….”
“아, 그래서…….”
태정은 이제야 그날의 일들이 이해가 갔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행복했던 그들이 찢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말 한마디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것은 그에게까지 그런 고민을 안겨 주기가 싫었기 때문이리라.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일이니까.
“지금 다솜이의 부모님은 어디 계십니까.”
“길드의 통제 아래 서울에 머물고 계십니다.”
“위치를 아십니까?”
“예.”
“이거 제 번호입니다. 여기로 하나 찍어 주십시오.”
말을 끝으로 그가 병실을 빠져나갔다.
이후 사무실로 복귀한 태정은 박세아를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모든 얘기를 들은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물었다.
“그럼 거길 가시겠다구요?”
“어. 데리고 와야겠어.”
“무리예요. 보스가 그분을 얼마나 생각하는지는 알지만, 혼자서는 위험해요. 상대는 톱 텐이라구요.”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한상진이 걱정 말라는 듯 입을 열었다.
“혼자가 아니오. 이 몸이 함께 갈 것이오.”
“그래. 그러니까, 입단속 잘하고. 네가 입을 열면 자칫 길드전으로 번질 수 있어.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일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공식적으로 탈퇴 기사 내보내. 대응은 알려 준 대로 하고. 놈들도 딱히 별말은 하지 못할 거야.”
그렇게 밖으로 나온 태정은 한상진을 향해 말했다.
“좌표는 찍었으니 따라오면 된다.”
“바로 쳐들어가는 것입니까.”
“아니, 그 전에 들릴 때가 있어. 약점부터 없애야지.”
말을 끝으로 그의 신형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후 한상진과 서울에 도착한 태정은 부촌이라 할 수 있는 한 동네에 이르렀다.
“저곳인 것 같은데. 저 나와 있는 자들이 지키고 있는 놈들인가 보군.”
한눈에 봐도 꽤 레벨이 있어 보이는 이들이었다.
좌우 사방을 경계하며 지키고 있는 십여 명의 무장 헌터들.
다른 빌라 역시도 사정은 비슷했는데, 이동우의 말을 빌리면 이곳이 바로 이동 포털에 대비한 안전 가옥촌이라 했다.
금사자뿐 아니라 여러 길드가 운영을 하고 있는 수십 개의 빌라.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금사자가 맡고 있는 빌라를 쳐다보던 태정이 한상진을 향해 계획을 전파했다.
“5층에 있다고 했으니까. 옥상으로 들어가면…….”
전파를 하던 태정은 말을 다 이을 수가 없었다.
언제 움직인 것인지 한상진이 입구의 병력을 사정없이 줘 패고 있었기 때문이다.
퍽! 퍼퍽! 퍽!
“으악! 넌 뭐, 악!”
“미친놈이… 컥!”
순식간에 오징어가 되어 늘어진 십여 명의 헌터들.
순간 주변 빌라의 헌터들이 긴장을 하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한상진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별일 아니오. 이건 내부 사정이니, 다들 신경 쓰지 말고 일들 보시오.”
그렇게 손을 털고 태정에게 다가온 그가 자랑스럽게 포권을 취했다.
“가시죠, 주군. 길은 닦아 놓았습니다.”
“너 왜 시키지도 않은…….”
“모름지기 진정한 수하란 주군의 가려운 곳을 대신 긁어 주는 법 아닙니까.”
“…난 옥상으로 몰래 들어가려 했다.”
“앞에 길이 있는데 뭐 하러 옥상까지 가십니까.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뒷짐 지고 편하게 들어오십시오.”
보무도 당당히 걷는 한상진의 뒤를 따르며 태정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의도치 않게 수많은 길드에 얼굴을 각인시켜 버린 것이다.
‘이거 왠지 앞으로 계속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