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길드 내부로 들어선 그들은 민간 구역까지 다이렉트로 통과했다.
지역대장이 함께하는데, 막을 자 누가 있으랴.
그렇게 태정을 따라 처음 길드란 곳에 들어와 본 한상진은 보이는 모든 것이 신세계였다.
깨끗하게 닦인 도로와 주변에 즐비하게 들어선 건물들.
식당부터 해서 온갖 것들이 다 들어서 있는 이곳은 하나의 도시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커뮤니티에서 본 내용이 사실이었군요, 거대 길드는 도시 하나를 가져다 놓은 것 같다더니. 믿을 수가 없는 규모입니다. 식당, 편의점, 마트… 저건 호텔입니까?”
“예. 없는 거 빼고 다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길드를 드나 보군요, 이런 최첨단 시설이라니.”
놀라는 그를 보며 태정은 머릿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쩐지 자신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700레벨 히든이 겨우 이런 거로 호들갑이라니. 역시 데리고 오길 잘했군.’
이후에도 한상진의 감탄은 계속 터져 나왔다.
그사이 태정은 별관에 연락해 최대한 많은 음식과 고급 요리를 준비해 놓으라 부탁했다.
일단 푸짐하게 먹여 놓고 일을 보겠단 작전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별관에 도착한 그들은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올라갔다.
“앉으시죠.”
태정의 권유에 한상진이 자리에 앉고 이내 준비된 음식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미리 부탁을 해 놓은 대로 요리는 하나같이 다 최상급이었다.
가짓수도 얼마나 많은지, 태정 역시도 처음 보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버너에 즉석 밥이 주식이던 한상진의 입이 큼지막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엄청나군요. 모르는 요리가 태반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이게 기본입니다.”
태정의 말에 한상진이 놀라며 되물었다.
“매일 이렇게 드신단 말씀이십니까?”
“매일은 아니지만 귀한 손님이 오시면 보통 이렇게 대접을 합니다. 어서 드시죠. 식겠습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먹어 보겠습니다.”
입맛을 다시던 한상진은 마치 며칠을 굶은 것처럼 이것저것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지,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먹기만 하는 그.
그 모습이 태정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700레벨의 무인이면 이미 재력은 재벌 수준일 확률이 높았다.
못해도 수백억대의 재산을 쌓아 놓지 않았을까?
그 말은 곧 이런 음식 따위야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단 뜻이었다.
한데, 저 모습을 한번 보라.
저게 어디 돈이 있는 자의 모습인가.
솔직히 말해, 며칠 굶은 노숙자의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
‘예의상 잘 먹어 주는 건지 아니면 저게 진짜 모습인지, 알 수가 없구만.’
본론은 그게 아니었기에, 태정은 옆에 놓인 술병을 들며 입을 열었다.
“술도 한잔해야죠?”
태정의 말에 한상진이 먹고 있던 것을 급하게 삼키며 급히 두 손을 저었다.
“술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그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리병이었다.
“그건 뭡니까?”
“이게 바로 제가 은인께 대접할 술입니다.”
자랑스럽게 보여 주는 한상진을 뒤로하고 그가 유리병을 유심히 바라봤다.
녹이 잔뜩 슬은 마개에 유리에 각인된 정체불명의 상표.
태정이 물었다.
“외산인가요?”
“국산입니다.”
“처음 보는 술병 같은데…….”
“아마 그러실 겁니다. 이건 지금으로부터 무려 70년 전의 술이니까요.”
“예? 70년 전이요?”
“제가 울산에 내려가서 지낼 곳을 찾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술입니다. 그곳이 옛날에 슈퍼였던 것 같은데, 다른 건 없고 딱 이 술만 일곱 병이 있더군요. 처음엔 뭔지 몰라서 보관만 해 두다가 서울에 올라갈 일이 있어 알아보니, 70년 전에 제조된 술이란 걸 알게 되었죠. 밀봉 상태도 양호하고 이물질도 없는 것 같아서 한 병을 따 먹어 봤는데, 숙성이 돼서 그런지 그 맛이 아주 일품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자. 제가 한잔 드리겠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병을 좀 깨도 되겠습니까?”
“병은 갑자기 왜…….”
“이게 오래돼서 그런지 마개가 다 녹이 슬어서 부서지더군요. 이 좋은 술을 녹과 함께 먹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예. 뭐… 그러시죠.”
태정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가 수도로 병의 주둥이를 날렸다.
그러자 칼로 벤 듯 정확히 머리 부분만 잘려서 날아갔다.
“그럼 한잔 받으시죠.”
두 술잔에 술이 가득 채워졌다.
그걸 보고 있는 태정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걸 과연 먹어도 되는 것일까.
첫 번째론 독약이 의심됐고, 두 번째론 70년 된 썩은 물이 의심됐다.
아무 의심 없이 순순히 따라온 사내.
혹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첫 번째 의심은 금세 사라졌다.
잔을 부딪힌 한상진이 바로 원샷을 때려 버렸기 때문이다.
“크흐. 역시 술은, 콜록! 콜록! 숙성이 돼야 제맛이죠. 쿨록! 콜록!”
“괜찮으십니까?”
“이게 일반 술보단 좀 독해서 그렇습니다. 드셔 보시죠.”
“예.”
대답을 한 그가 의식으로 제라드를 불렀다.
‘이거 진짜 존재했던 술 맞아?’
-청화양조에서 나온 도수 35도의 소주입니다.
‘청화양조?’
-지금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주인 ‘참서리’의 전신이었던 곳입니다.
‘아, 그래? 내용물을 바꿔치기했다거나 그러진 않았겠지?’
-조금 전 마개의 밀봉 상태나 세월의 녹을 봤을 때, 최소 50년 이상 보관되어 있던 술이 맞습니다.
제라드의 말을 듣던 태정이 술잔을 내려다봤다.
그리곤 눈을 질끈 감더니.
이내 입으로 털어 넣었다.
그러자 명치가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금세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크흠. 독하군요.”
“옛날 술은 다 이렇다고 하더군요. 맛은 어떠십니까? 요즘 나오는 밍밍한 소주하곤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한 잔 더 받으시죠.”
“예. 상진 님도.”
솔직히 말해 맛은 좋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려 토가 쏠릴 지경.
하지만 내색을 할 순 없었다.
어찌 됐든 그는 영입을 해야 될 대상.
이 정도 장단은 맞춰 주는 것이 예의였다.
한편, 이미 태정의 연락을 받은 제닉스 수뇌부는 초비상 상태였다.
“그게 정말인가? 지금 지역대장이 무인 클래스를 가진 헌터와 함께 길드에 들어와 있다는 말이.”
“그가 본청에 직접 연락해 올린 말이니, 틀림없는 사실일 겁니다.”
“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무인은 전 세계에 단 넷밖에 없는 초희귀 클래스야. 히든 중에서도 한 손에 꼽는 능력자거늘.”
“여기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중요한 건 그가 소속된 길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누구한테 들었나?”
“본청 과장에게 들었습니다.”
“최근에 각성한 인물인가?”
“그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소속이 없다 하니, 뭐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럼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얼른 가서…….”
그들이 호들갑을 떨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길드장 양태식이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이미 들었겠지만 지금 우리 길드에 히든이 한 명 들어와 있네. 지역대장의 말로는 700이라고 하는데, 가입된 길드가 없다고 하는군.”
그의 말에 참모 하나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700인데, 길드가 없단 말씀이십니까?”
“내가 보고받은 바로는 그래.”
“그럼 뭔가 다른 뜻이… 그만한 레벨의 히든이 지금까지 길드가 없었다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말이 안 되는 일이지. 하지만 지역대장이 거짓을 말할 리는 없지 않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민간 구역 영빈관에 있네.”
“그럼 당장 저희가 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700레벨의 히든, 그것도 무인입니다. 그를 영입할 수만 있다면 저희 길드는 단숨에 톱 텐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네들을 이리 불러 모은 것이 아니겠나.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어지간한 조건으론 데리고 오기가 힘들 텐데. 무슨 좋은 생각들 있나?”
양태식의 말에 기획본부장이 바로 의견을 내놓았다.
“지역대장 정도의 조건과 대우라면 어떻겠습니까. 둘 모두 희귀 히든에 700레벨이면 능력 또한 엇비슷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당연한 얘기고. 사실 그가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그렇지 지금의 대우는 그의 능력에 비하면 약소한 편이야. 공대장을 맡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인물이지.”
그의 대답에 길드 총대장이 입을 열었다.
“공대장이 아니라 총대장을 해도 이상할 게 없지요.”
“그 말은 자리를 내려오겠단 말인가.”
“지역대장일 경우에 말입니다. 전에 슬쩍 언질을 넣어 봤는데, 기겁을 하고 거절을 하더군요. 이 자리에 미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검증이 안 됐는데 무턱대고 권하는 건…….”
태정이 원하면 얼마든지 자리에서 내려올 용의가 있는 총대장이었다.
그라면 자신보다 훨씬 병력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다른 이라면 생각을 좀 해 볼 필요가 있었다.
아직 아무런 정보도 없는 이에게 덜컥 자리를 맡기기엔 총대장이란 자리는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길드장 외, 전 길드원들을 통솔하는 자리니 말이다.
“내 생각도 다르지 않아. 그러고 보니, 욕심이 없는 지역대장이라 그냥 넘어갔지만 우리가 내세울 게 별로 없는 것 같군. 히든을 품기에 우리 길드는 그릇이 너무 작아.”
“돈으로 매수해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옆에서 함께 고민을 하고 있던 인사참모의 말이었다.
“돈? 그만한 인사에게 과연 돈이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있을 만큼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글쎄. 수천억을 준다 해도 구미가 당길지 의문이군.”
이후에도 갖가지 의견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메리트가 없는 것들로 히든을 영입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그만큼 히든이란 존재는 대단한 것이었다.
“복이 제 발로 굴러 들어왔는데, 잡을 손이 없구만.”
* * *
같은 시각.
태정의 비서실엔 의문의 전화 한 통이 들어왔다.
“유태정 지역대장 있습니까?”
날이 선 사내의 음성이었다.
전화를 받은 박세아가 물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금사자… 아니, 최다솜 부대장님 건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최다솜 부대장님… 아, 혹시 저희 대장님과 친구분이요?”
“예. 있습니까?”
“어쩌죠. 지금 자리에 안 계시는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저에게 알려 주시면…….”
“됐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뚝. 뚜- 뚜-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어 버린 사내.
무슨 일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박세아가 최다솜이란 이름을 떠올렸다.
보스의 전 여자 친구.
금사자 회담 때 숙소에서 잠깐 대화를 나눴던 인물이었다.
“무슨 일이지? 왜 직접 연락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연락을… 공적인 일인가?”
중얼거리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분명 최다솜 부대장님 건이라고 했잖아.”
금사자와의 모든 일이 해결된 지금, 그녀와 공적으로 얽힐 일은 없었다.
애초에 그녀의 직급은 회담과도 전혀 상관이 없는 공대의 부대장.
하지만 사적인 일이라면 굳이 이곳으로, 그것도 다른 이를 통해 연락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무슨 일일까. 혹시 그녀는 아직도…….’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비서 박세아가 아닌 여자 박세아가 가지는 불안감이었다.
하나, 그것도 잠깐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직업은 비서.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건 업무에 반하는 일이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업무용 태블릿으로 향했다.
‘특-최다솜 부대장 건으로 금사자에서 연락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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