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초대를 해 주시는 겁니까?”
“그런 셈이죠.”
“저야 감사하지만, 은혜는 제가 입었는데 이래도 되는 건지.”
“누구 집인들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함께 잔을 기울일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듣고 보니 맞는 말씀 같습니다. 대신 술은 제가 사겠습니다. 그런데 댁이 어디십니까?”
“서울 근교입니다.”
“서울 근교라… 오랜만에 도시 나들이를 하게 생겼군요.”
“일단 나가죠.”
그렇게 둘의 동행이 시작됐다.
태정은 한상진을 길드에 가입시킬 생각이었다.
자신의 비밀 병기를 유일하게 본 인물.
마침 길드도없다 하니, 어떻게든 꾀면 넘어오지 않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었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게다가 히든 하나를 길드에 가입시키는 것. 이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히든이 있고 없고에 따라 길드의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국내 톱 텐에 있는 히든이라 해 봐야 길드당 한 명 내지는 두 명.
40위 끝자락에 머물러 있는 제닉스에 한상진이 들어오게 된다면, 이미 그것으로 제닉스는 톱 텐의 반열에 오른 것과 다름이 없었다.
태정을 포함에 히든이 두 명이나 되니까.
게다가 무인은 세계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초희귀 클래스로, 그가 아는 한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었다.
성사만 된다면 자신의 전력을 노출시키지 않음은 물론이고, 역대급의 스카웃이 되지 않을까.
비동을 빠져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한상진이 모두 쓸어버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굴을 빠져나와 절벽에 선 태정이 한상진을 향해 물었다.
“저는 돌파를 할 생각인데, 지상과 공중 어디가 편하십니까.”
“저는 지상이 편합니다. 천상제는 오래 쓸 수 있는 스킬이 아닌지라.”
“그럼 제가 공중을 맡고 상진 님께서 지상을 맡으시죠.”
“예.”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정의 말에 한상진이 지상으로 내려갔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그의 외침과 함께 한상진이 먼저 대지를 가르며 쏘아졌다.
“빠른데?”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의 신형을 보며 중얼거린 태정의 말이었다.
과연 히든은 히든이었다.
그 역시 뒤질세라 블라스터의 출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팟!
빠른 속도로 비행을 하고 있는 태정은 일부러 한상진과 속도를 맞추며 그를 관찰했다.
700레벨대의 초희귀 클래스는 얼마나 대단한 전투를 보여 줄까.
드라이어드를 통해 대충 보긴 했지만, 물량전은 또 다를 수가 있었다.
보고 배울 것이 있다면 눈에 익혀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확히 그의 머리 위에 선 태정이 속도계를 확인했다.
“시속 130. 확실히 히든이라 그런지 지상에서도 이 정도 속도가 나오는구나.”
블라스터의 속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속도지만 부스터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다.
다른 이들이 보면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의 스피드.
게다가 그는 장비가 아닌, 두 다리를 이용해 뛰고 있었다.
당연히 컨트롤이 훨씬 좋을 수밖에 없었다.
“무인이 괜히 근접전 원 톱이 아니야. 방향 전환도 자유자재에, 장애물도 의미가 없네.”
확실히 히든은 히든이었다.
지금까지 본 헌터들과는 완전히 다른 능력치.
그를 보고 있으니, 이제야 뭔가 비교할 만한 상대를 찾은 기분이었다.
‘700이라 했으니, 나보다 대충 80레벨에 등급은 한 단계 위야. 여기서 꿀리지 않으면 적어도 클래스에 대해선 내가 최고란 말이 되겠지.’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드디어 몬스터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몇 마리에 불과하던 놈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순식간에 대지를 장악했고, 곧이어 하늘 역시 수천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장벽을 쌓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해 볼까.”
양손에 블레이드를 소환한 태정은 곧장 놈들을 향해 쏘아졌다.
그러자 온갖 마법이 난무하며 형형색색의 빛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직선뿐인 공격은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가볍게 피한 그가 몬스터들 사이로 돌진했다.
주춤거리며 마법을 쏘지 못하는 놈들.
바로 근접전에 돌입한 태정이 몬스터들을 사정없이 베기 시작했다.
서걱-!
[팔콘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5,500만을 획득합니다.]
[에코몬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4,250만을 획득합니다.]
[재래식 업그레이드 포인트 1을 획득합니다.]
[팔콘의 깃털을 획득합니다.]
수많은 몬스터가 그를 둘러싸며 공격을 하고 있지만, 그의 유일한 기술이라 할 수 있는 무화곤을 뚫을 수가 없었다.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블레이드에 피 떡이 되어 흩어지는 놈들.
순식간에 장벽에 구멍이 생기며 그 범위만큼의 길이 형성됐다.
‘역시, 한번 해 봐서 그런지 더 쉬워. 이걸 먼저 배워 놓길 잘했다.’
그렇게 별다른 저지 없이 나아가고 있는 태정은 한상진이 있는 지상을 바라봤다.
그러자 언제 생겨났는지 타원형의 새하얀 구체가 몬스터 밭을 뚫고 쏘아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공중으로 흩날리는 수많은 고깃덩이.
구체가 지나간 자리에 멀쩡한 몬스터는 없었다.
속도 또한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그의 시선을 벗어나 버렸다.
“저게 장풍 같은 건가.”
태정은 구체가 장력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클래스가 무인이니 뭐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문제는 한상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제라드, 그 사람 어디 갔냐. 설마 당한 건 아니겠지?”
-방금 지나갔습니다.
“방금?”
-조금 전 호신강기를 두르고 지나간 것이 그 인간입니다.
“설마, 아까 그 하얀 구체가 사람이었어?”
-그렇습니다.
“호신강기는 보호막 같은 거 아냐? 근데 어떻게 지나가는 것만으로 몬스터가 다 갈려 나가냐.”
-호신강기는 방어 개념이고 몬스터를 해치운 건 그의 검입니다.
“그럼 검을 쓰는 속도가 얼마나 빠르다는 거야?”
-주인님의 무화곤과 비교하면 3배 정도는 빠른 것 같습니다.
제라드의 대답에 태정이 놀랬다.
“2배도 아니고 3배씩이나? 그게 가능해? 이것도 지금 말도 안 되게 빠른 건데.”
태정의 무화곤은 보통의 무화곤이 아니었다.
기술적 손색은 있을지언정, 돌리는 힘만큼은 어느 클래스에도 뒤지지 않았다.
힘의 원천이 바로 태극 1호였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기사들의 근력도 가뿐히 뛰어넘는 최첨단 슈트.
한데, 그것보다 휘두르는 속도가 무려 3배나 빠르다니.
창과 검의 특성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엄청난 차이였다.
‘그럼 내가 근접에서는 상대도 안 된다는 소린데. 클래스 특성 차이가 이렇게 심한가?’
사실 태정은 어떤 히든이 나와도 모든 전투에 있어 자신이 우위에 설 것이라 생각했다.
비록 주 스킬이 대부분 원거리 계열이지만, 근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판단.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남극 기지의 총사령관, 왕무영을 근접전에서 제쳤기 때문이다.
그때 태정의 레벨은 500대 후반이었다.
검사 계열이었던 왕무영은 900을 바라보는 꽉 찬 S급.
게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써서 신체적 능력이 대폭 증가한 상태였다.
그걸 검으로 찍어 누른 게 바로 태정이었다.
비록 클로킹이란 꼼수를 쓰긴 했지만, 정상적으로 싸웠어도 결국은 체력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자신이 이기지 않았을까.
한데, 같은 히든 계열을 놓고 보니 그 차이는 좁혀지다 못해 추월을 당해 버렸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3배나 빠르다는 건, 그만큼 방어가 제대로 되지 않을 거란 얘기니까.
“제대로 하면 나는 그의 검을 보지도 못하겠네. 확실히 클래스 특성빨은 무시를 못 하는구나. 대단한데?”
태정의 중얼거림에 카이저의 음성이 들려왔다.
[고작 저 정도 가지고 감탄을 하다니. 저런 건 내 발끝도 못 따라온다.]
“너한테는 그렇겠지. 근데 넌 내 말을 안 듣잖아? 그리고 기습이라도 당하면 내가 무슨 수로 널 소환하냐.”
[걱정도 팔자시군. 넌 우리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 생각하나? 넌 남들한테는 없는 눈이 3개나 있는 몸이다. 기습 따위는 당하려야 당할 수가 없지. 그리고 지금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 차차 해결이 될 문제다.]
“또 특이점 얘기냐.”
[그 전에도 어느 정도 균형은 맞출 수가 있지. 앞에 봐라.]
카이저의 경고에 잠깐 멈칫했던 그의 블레이드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레벨 업이 3번 즈음 되었을 때.
드디어 태정은 몬스터 밭을 뚫고 입구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한상진은 이미 도착을 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먼저 와 계셨군요.”
“선택이 좋았습니다. 지상은 기동을 하기가 편하니까요. 공중은 만만치 않으셨을 텐데, 이렇게 빨리 오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그럼 나가 볼까요?”
한상진의 말에 태정이 저 멀리 새카맣게 몰려오고 있는 대규모의 몬스터 군단을 바라봤다.
그리곤 이내 그를 향해 말했다.
“먼저 나가시겠습니까?”
태정의 말에 그가 별말 없이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동시에 그가 태극 1호를 해제 후 기체로 갈아탔다.
들어올 때 얻은 소이탄을 실험해 보고 가려는 것이다.
기체의 어깨 위에 단 한 발의 로켓이 장착됐다.
기존 천룡이나 아이언 스피어에 비해 월등히 큰 탄두.
그가 서둘러 제라드를 향해 지시했다.
“빨리 쏘고 나가자. 대충 중앙에 놓고 때려.”
태정의 명령에 제라드가 좌표를 설정했다.
이후 발사된 로켓이 대각으로 높게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점이 되어 멀어지는 발사체.
그렇게 구름 위로 사라진 로켓은 하늘에서 거대한 섬광을 일으켰다.
번쩍-!
뒤이어 들리는 천둥소리.
콰콰쾅!
이후 태정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포착됐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수천 개의 불꽃.
그것은 마치 빛이 달린 눈꽃을 보는 것만 같았다.
“예, 예쁘다.”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불꽃 축제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멋과 아름다움.
떨어지는 속도도 느긋해 왠지 모르게 로맨틱한 분위기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바닥에 닿았을 때, 태정의 생각은 180도 뒤바뀌었다.
쾅! 화르륵! 쾅! 화르륵!
동시다발적으로 크고 작은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이어 그의 눈을 의심케 할 만한 일이 또 한 번 일어났다.
반경 1km에 거대한 화염이 일며 협곡이 순식간에 불의 바다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떨어진 불꽃은 불을 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온 군데에 기생을 하며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
아니, 그것은 타는 것이 아니었다.
닿는 모든 것이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몬스터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쿠에에엑!
끼엑-!
까륵! 까륵!
불꽃에 맞은 놈들의 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뼈만 남은 놈들의 비참한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기생한 불꽃은 뼈까지 녹이며 계속 파고들었다.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꽃.
그 처참한 광경에 태정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거 밖에선 쓰면 안 되겠는데? 화염 탄 정도로 생각했더니, 거의 마그마 수준이잖아?”
-마그마보다 온도는 훨씬 높습니다.
“뭐?”
반문에 대한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수백 개에 달하는 알림음이 어지럽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