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남양주에서 출발, 울산까지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게이트의 위치는 방어진이란 지명을 가진 곳에 있었다.
어선들이 오고 가는 작은 어항.
지금은 몬스터에 의해 초토화가 되어 버려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유령 항이었다.
“등대 근처라고 했는데, 등대가…….”
공중에 떠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에 붉은 점 하나가 포착됐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우뚝 솟은 건물 하나.
자료에 나온 등대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붉은 점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타오를 듯 이글거리며 빛나고 있는 진홍의 포탈.
레드 게이트였다.
“오케이. 사진에서 본 거랑 같아. 이 근방에 레드급은 이거 하나라고 했으니. 일단 이거부터 설치를 좀 해 볼까.”
길드에서 가지고 온 마법석 2개를 게이트 앞에 두자, 이내 진동하더니 돌이 게이트와 공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스크롤을 찢자 한차례 빛이 번쩍이며 돌에 서린 빛이 게이트를 뒤덮었다.
빛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보이는 하나 남은 돌.
“이걸 가지고 오라고 했지.”
2개 중 하나가 남으면 설치가 된 것이라 했으니, 나머지 돌을 챙겨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좋아. 그럼 밖에서 할 일은 다 끝났고. 어디 5급의 난이도는 얼마나 되나 한번 체험을 해 볼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드러난 배경은 굉장한 규모의 골짜기였다.
양옆으로 거대하게 솟아 있는 산의 뺨과 이름 모를 풀과 바위들이 무성한 협로.
길이 굉장히 좁아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는 협곡이었다.
“매복해 있다가 쏟아지면 답도 없겠어. 하늘로 솟으면 된다지만, 비행 몬스터들도 많다고 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태정은 일단 자신이 가진 순수 전투력으로 부딪쳐 보기로 했다.
이곳의 난이도를 알아야 다음 계획도 잡을 수가 있기 때문에 먼저 테스트를 해 보려는 것.
천신병은 그다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을 소환하는 일은 여타의 다른 스킬과 다르게 엄청난 마나가 필요했다.
현재 가진 마나를 모두 쏟아야 겨우 소환이 가능할 정도.
당연히 효율이 떨어지는 곳에 사용할 순 없었다.
게다가 최근 근접전에 재미를 붙인 그였기에,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보고 싶었다.
다른 클래스의 스페셜 무브라 할 수 있는 핵미사일과 전략폭격기, 천신병 등을 사용하지 않은 자신은 현재 어디까지 올라와 있을까.
850레벨의 파티 2개가 적정 수준인 이곳에서 혼자 감당이 가능하다면, 최소 그는 헌터 레벨로 899. 어쩌면 900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가 보자.”
태극 1호에 블라스터, 슈퍼 차저까지 장착한 태정은 양손에 스피어 블레이드를 쥐고 빠르게 앞을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전투는 그가 움직인 지 불과 3분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났다.
-우측 70도 화염 브레스입니다.
제라드의 말에 그의 고개가 우측 하늘로 꺾였다.
그러자 시커먼 대형 까마귀로부터 화염 스크류가 직선으로 쏘아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화르륵!
가볍게 피해 낸 태정이 출력을 높여 놈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그런 그를 향해 다시 한번 아가리를 벌리는 대형 까마귀.
하지만 놈의 브레스는 입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미 도달해 버린 태정의 자색 블레이드가 머리통부터 x구멍까지 세로로 갈라 버렸기 때문이다.
서걱-!
[블랙다이번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3,800만을 획득합니다.]
[블랙다이번의 깃털을 획득합니다.]
두 쪽이 나서 떨어져 내리는 처참한 놈의 사체.
그는 손에 들린 블레이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야? 5급 맞아? 한 방이잖아.”
블랙다이번.
드라이어드 협곡에서 최약체로 통하는 비행 몬스터였다.
하지만 약체도 약체 나름인 것이 이곳은 1급도, 2급도, 3급도 아닌 무려 5등급의 던전이었다.
레드 5급이면 사실상 제대로 사냥할 수 있는 길드는 기껏해야 국내에 20여 개 정도.
그런 엄청난 곳에서도 한 방 컷이 나온다는 것은 생각 외로 그의 레벨이 훨씬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같은 플라즈마 계열인데 광선 검이랑 블레이드의 격차가 심하구나. 광선 검으로는 1급에서 겨우 비볐던 것 같은데.”
요정의 숲을 떠올려 보던 태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배였다.
“시작이 좋은데.”
스타트를 기분 좋게 끊은 태정은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얼마나 날았을까.
흐린 좌측 하늘.
시커먼 새 떼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블랙다이번이었다.
“하나, 둘, 셋… 몇 마리냐, 저게.”
-보이는 것만 78마리입니다.
“시작된 건가.”
드라이어드의 협곡.
이곳은 웨이브 던전이 아님에도 그에 준하는 몬스터들이 서식을 하고 있었다.
어그로가 끌리는 순간, 사방에 숨어 있던 몬스터들이 떼로 튀어나와 공격을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새 떼는 그 일부였다.
“78마리면. 브레스가 한 번에 78. 볼만하겠는데?”
수가 꽤 많았지만 태정은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미 브레스는 경험해 봤고, 놈은 한 방 컷이었다.
곧장 속도를 높여 지나가는 놈들을 향해 mk4를 난사했다.
타타탕! 타타탕-! 타탕!
수백 발의 빛 에너지 탄이 허공을 가르며 다이번 떼를 향해 날아갔다.
그것에 직격당한 놈들이 이내 방향을 선회에 태정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이는 적색 화염 구체.
동그랗게 모이던 화염이 일제히 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화르륵!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78개의 화염 스크류를 보고 있는 태정은 순간 몸에 전율이 일었다.
일반 대형 개체라 브레스의 크기는 작았지만 일제히 쏟아지는 78개의 화염은 마치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피하셔야 합니다.
“널널해.”
장관이긴 했지만 브레스의 속도는 그렇지 못했다.
워낙 총기류에 적응이 된 탓도 있었지만, 다이번의 브레스는 마법의 한 종류로 여타의 보스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진심 전력의 브레스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 때문에 여러 번 사용은 할 수 있지만 위력과 속도가 반감이 되는 것.
구경을 하던 그의 신형이 출력을 높여 브레스의 사정권을 벗어났다.
이어 엄청난 스피드로 측방 선회를 해 뒤를 점한 그는 놈들을 신나게 토막 치기 시작했다.
서걱-! 스걱!
[블랙다이번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3,800만을 획득합니다.]
[블랙다이번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3,800만을 획득합니다.]
[블랙다이번의 깃털…….]
아직도 브레스를 뿜고 있는 놈들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78마리의 다이번을 모두 정리했을 때.
태정의 신형에서 광채가 피어올랐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플라즈마 컨트롤 스킬이 오픈됩니다.]
[재래식 무기 업그레이드 상점이 오픈되었습니다.]
“오호라. 이게 뭐야? 레벨 업에 스킬이 2개. 재수인데?”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스킬 2개를 획득한 태정은 들뜬 기분에 바로 확인에 들어가려 했다.
그때 제라드의 경고가 울려 퍼졌다.
-사방에서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가 주인님을 향해 접근 중입니다.
태정도 눈이 있기에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개미처럼 줄지어 나오고 있는 수많은 몬스터 무리들.
모습도 형태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수백 맞아? 내 눈엔 왜…….”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이 불가합니다.
“음.”
대충 봐도 바글바글한 숫자였다.
그나마 지상에 있는 놈들은 나은 편이었다.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해 마법이 닿지 않는 상황.
하지만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시커먼 새 떼들은 피할 재간이 없었다.
블라스터의 최대 고도보다 놈들의 고도가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이건 들어가기가 좀 난감하겠는데.”
아무리 블레이드의 파괴력이 강하다고 해도 수가 압도적이면 의미가 없었다.
뒈지면서 밀고 들어오는 걸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로봇 기지에서처럼 통로가 있어 뭉쳐 있다면 모를까.
이곳은 넓디넓은 하늘이었다.
게다가 브레스와 각종 마법도 신경을 써야 하니, 근접으론 부담이 되는 상황.
이래저래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엔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쓸 때가 온 것 같군.’
오늘의 메인 디시.
천신병을 꺼낼 순간이 온 것이다.
전투태세를 잡고 있던 태정이 경건한 마음으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곤 무의식 속 창고에 들어가 카이저를 불렀다.
“나와라, 카이저.”
[…….]
“나와, 인마.”
[…….]
태정의 부름에도 카이저는 묵묵부답이었다.
분명 놈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에 의식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몇 번을 더 불러 보던 그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 이거… 진짜 그 유치한 대사를 쳐야 되는 거냐.”
-그렇습니다. 한 자도 빠짐없이 그대로 읊으셔야 합니다.
“환장하겠군.”
놈이 설정해 놓은 접속 암호.
그것을 말해야 했다.
“크흠. 큼. 나와라 바실… 에휴.”
민망한 듯 말을 중얼거리던 태정은 몬스터와의 거리가 급속도로 줄어들자 결국 팔 하나를 위로 쳐들었다.
“나와라, 바실리스크의 천신병이여.”
-‘깨어나라’입니다.
“크흠. 깨어나라, 바실리스크의 천신병이여.”
우우웅-!
그의 언령에 대기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진이 난 것처럼 떨리는 그의 신형.
그 현상에 지상, 공중 할 것 없이 다가서던 괴수들이 일제히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자신의 발아래로 보이는 커다란 빛의 틈새.
그 갈라진 곳으로부터 무언가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것은 어지간한 바위보다 큰 미래 합금의 머리통이었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괴수들이 멈칫하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머리통이 솟자 다음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것이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산맥과 같이 쭉 뻗은 어깨와 그에 걸맞은 태산과도 같은 몸통.
그 모습이 마치 봉우리 하나가 솟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놈의 덩치는 비상식적이자, 몬스터들조차도 한숨 돌리며 공격 성향을 억제시킬 정도였다.
마침내 빛의 틈새가 사라지고.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이는 천신병의 모습이 현세에 등장했다.
“와. 이게…….”
다시 보게 된 놈의 완전한 모습.
로봇 기지에서 봤던 그 소름이 다시 한번 온몸을 강타하는 태정이었다.
그런 놈의 어깨에 사뿐히 내려앉은 그가 궁금한 듯 입을 열었다.
“너 대체 키가 몇이냐?”
[현재 모습으론 80미터쯤 될 거다.]
“파, 팔십?”
어지간한 아파트와 맞먹는 높이였다.
사실 말이 80미터지, 이런 물체가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선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길 가다가 타워크레인만 봐도 그 높이에 혀를 내두를 정도인데, 로봇이 80미터라니.
직접 보여 주지 않는다면 누구도 믿지 않을 엄청난 크기였다.
“하. 어이가 없어서 말이 다 안 나오네. 저거 보이냐? 다 얼었어.”
태정이 일시 정지 된 듯 멈춰 버린 몬스터 대군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들려오는 놈의 음성.
[너 같으면 덤빌 엄두가 나겠나.]
“하긴. 적당히 커야 말이지. 이건 좀… 많이 심해. 어쨌든 그럼 친구. 어디 네 솜씨를 한번 보자고. 전부, 쓸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