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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54화 (154/182)

154화

순식간에 일(?)을 마치고 나온 태정은 욕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박세아를 마주할 수 있었다.

“뭐, 뭐야?”

“괜찮으세요?”

“괜찮다 했잖아. 그 사람들은 갔어?”

“네. 괜히 시끄러우신 거 싫어하실까 봐, 오늘 일은 비밀로 해 달라고 했어요.”

“잘했어. 그럼 이제 자. 피곤하겠다.”

태정이 그리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자 뒤따라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를 몸으로 막은 태정이 눈짓했다.

“넌 거실에서 자.”

“네?”

“오늘은 생각… 좀 할 게 있어서.”

“그러다 또 숨이 멎으시면요? 제가 옆에 있을 게요.”

“그런 일 없어. 걱정하지 말고 자. 알았지? 잘 자라.”

강제로 그녀를 밀어낸 태정은 방문을 꼭 잠근 뒤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라드.”

-예, 주인님.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왜 숨이 멎은 거야?”

-숨이 완전히 멎진 않으셨습니다. 다만 심박수가 평균치를 훨씬 하회한 것은 맞습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 쟤는 왜 저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주인님을 검진하더니 패닉이 와서…….

“그래? 근데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이것도 무의식과 관련이 있는 건가.”

-무의식의 공간에서의 활동은 심력의 소모가 굉장히 큰일입니다. 너무 한 번에 오랫동안 계셔서 정신력이 고갈된 상태라 그렇습니다.

“정신력이라… 근데 제라드.”

-말씀하십시오, 주인님.

“혹시 말이야. 내가 정신을 잃은 동안, 박세아가 나한테 뭐 한 거 없나.”

-심폐 소생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거 말고.”

-그럼 어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나의…….”

태정은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제라드가 인공지능이라지만 그걸 어떻게 물어본단 말인가.

그런 그의 고민을 한 번에 박살 내 준 해결사가 있었다.

=네 젖은 그거? 그거 너 혼자 한 거야.

“뭐?”

=버티다 못한 네 분신이 자연사한 거라고.

“그럼 내가 몽… 그럴 리가. 그런 건 이미 옛날에 졸업했거늘.”

=졸업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네가 변변찮은 놈인 건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어. 나도 적지 않은 인간을 봐 왔는데, 그 나이에 자연사라니. 쯧쯧. 그것도 모르고 하루 3번을 하자고 졸랐으니. 그래도 양은 많더라. 난 오줌을 싼 줄 알았다니깐.

“피, 피곤하군.”

충격적인 프리지아의 말에 태정이 머리를 짚으며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다시 한번 들려오는 그녀의 말.

=너 살면서 합체는 해 봤냐?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다만 과도하게 큰 코골이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질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축 처진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온 태정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는지 소파 위에 앉아 꾸벅이고 있는 박세아를 볼 수 있었다.

얇은 이불이라도 덮어 주려 다시 방으로 향하는데, 그 인기척에 그녀가 벌떡 일어나 그를 불렀다.

“보스, 일어나셨어요?”

“깼어?”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지. 걱정 말고 자라니까. 밤새 이러고 있었던 거야?”

“그냥… 잠이 안 와서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세아의 얼굴엔 피곤이 쩔어 있었다.

눈이 퀭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

그런 그녀를 향해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하루 쉬어.”

“안 돼요. 오늘부터 지역대 총감사 기간이라…….”

“괜찮아. 사람이 너만 있는 것도 아니고.”

“보스와 관련된 건 제가 다 처리해서 다른 분들은…….”

“어허. 걱정하지 말고 하루 쉬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나도 짬이 있는데 그까짓 거 하나 못 할까. 이건 명령이야. 쉬어 그냥.”

반강제로 그녀를 집에 두고 나온 태정은 조금 늦은 시각 지역대로 출근했다.

그러자 이미 감사가 시작된 것인지 사무실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게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자, 한쪽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말끔한 차림의 사내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대장님 나오셨습니까. 감사팀 팀장 송민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지역대를 이끌고 있는 유태정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영광은요 무슨. 그보다 좀 어떤가요? 저희는 근태도 확실하고 워낙 일처리가 깔끔해서 회계 부분에 있어서도 별문제가 없을 겁니다.”

“압니다. 형식적인 업무라. 그냥 지나가는 절차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금방 끝내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박세아가 자료를 모두 정리해 놓아서 태정이 따로 설명을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다시 한번 박세아의 일처리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여기저기 다니느라 업무에 소홀했다지만, 결재는 꼬박꼬박 했던 그였다.

한데, 그녀가 정리해 놓은 자료는 그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감사 팀에서 요구하는 것도 생소한 것들이 많아, 자칫 난감했을 수도 있었을 상황.

‘이건 거의 뭐… 내가 대장을 할 게 아니라, 박세아가 해야겠네.’

그렇게 감사 팀이 돌아가고 집무실에 홀로 앉은 태정은 어젯밤 일을 복기했다.

기물 소환의 방.

제라드의 말에 따르면 천신병은 그곳 어딘가에 있다고 했다.

이미 공간은 특정이 되었으니, 시도를 해 봐야 할 때.

우선은 복습부터였다.

태정은 편안한 마음속 의식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번에 느껴지는 저장고의 위치.

그곳엔 20여 기의 마르시-1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를 골라 소환하고 싶단 생각을 하자, 그의 눈앞에 위풍당당한 마르시-1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이런 식이라. 어디 그럼 넣어도 볼까.”

잠시 후.

소환되어 있던 마르시-1이 빛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장고로 돌아간 것이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직까진 시간이 좀 걸리네.”

-적응하시면 간단한 생각만으로도 가능하실 겁니다.

“좋아. 이건 그렇다 치고. 지금 내 머릿속엔 저장고밖에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어제 들어왔던 통로나 나아갈 길은 보이지도 않아. 이게 정상인가?”

-정상입니다. 이미 공유된 방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외 모든 공간은 다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는 건 또 그 짓을 해야 한다는 건데…….”

약속이 되었으니 함께 자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박세아를 이 일에 끌어들이기 싫었다.

한 번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지만, 두 번이나 그러기엔 그녀에게 너무 몹쓸 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원래 한 번이 어려운 법이야. 난 이미 한 번 경험을 했으니, 분명 박세아의 도움 없이도 수월하게 접근이 가능할 거야. 더 이상 그녀를 힘들게 하지 말자.”

그날 밤.

“보일러가 고장이 났나 봐요.”

“내가 아까 봤는데 그런 것 같더라. 춥지? 내 이불 반 덮어.”

태정의 말에 박세아가 이불 속으로 스르르 들어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녀와 나란히 누운 태정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한 번을 안 쉬고 했는데, 통로의 통 자도 못 찾다니.’

오전부터 저녁까지 정신 수련에 매달린 그였지만 어제 봤던 통로는커녕, 미로의 구조조차도 볼 수가 없던 태정이었다.

결국 그는 다시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녀가 먼저 베개를 들고 찾아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얘기조차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어제처럼 박세아가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목석처럼 하늘만 보고 있는 그녀.

난관에 봉착한 태정이었다.

“저기. 자?”

“아뇨.”

“춥지 않아?”

“이불 덮으니 괜찮아요.”

“그래…….”

“추우세요?”

“응. 이러다 감기 걸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러면 안 되죠. 제가 그럼…….”

“너가 그럼 뭐?”

“아, 안아 드려도 될까요?”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태정이 그녀를 향해 몸을 밀착했다.

그러자 팔을 벌려 그를 꼬옥 안아 주는 그녀.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됐다. 아주 자연스러웠어.’

박세아의 품은 매우 포근했다.

그가 안고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

그렇게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그는 다시 통로에 들어섰다.

시작점은 저장고였다.

오전의 저장고와는 다르게 뒤쪽으로 길이 하나 나 있었다.

‘좋아. 어제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빨리 찾아야 돼.’

바로 달리기 시작한 태정은 점점 속도를 올리며 끝없이 나 있는 길을 내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쏘아지기도 잠시.

곧 그의 시야에 앞을 가로막고 있는 하나의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긴가?’

그가 다가가니 문이 자동으로 오픈됐다.

그리고 보이는 너른 광장과 4개의 또 다른 통로.

‘어디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넷 모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통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돌아 나오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제라드.’

-이건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럼… 1번이지.’

시간을 끌면 어제와 같은 민망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는 과감하게 첫 번째 통로를 향해 들어갔다.

‘빨리, 더 빨리.’

그의 신형이 의식에 따라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천장으로 보이는 수많은 형광등이 하나의 배경으로 보일 만큼 속도는 역대 최고로 빨랐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스피드에도 통로의 끝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점점 숨이 가빠진다. 어제와 같은 징조야.’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젯밤에도 처음은 이런 식으로 시작됐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거리를 달렸을까.

드디어 그의 눈앞에 거대한 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은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미리 열렸다.

그리고 들어선 공간엔.

‘없다. 아무것도 없어.’

내부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이었다.

좌우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공간.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도 존재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었음을 인지한 태정은 지체 없이 바로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내면의 태정이 통로를 빠져나가고 있을 때, 외부에선 몸이 용암처럼 들끓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몸이… 뜨거워요.”

“아직 견딜 만해.”

“네?”

“그대로 붙잡고 있어. 어제처럼 정신 잃어도 호들갑 떨지 말고.”

“그게 무슨 말씀…….”

이후 그에게서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거친 숨소리와 헉헉 대는 신음만이 그녀의 가슴을 뜨겁게 적실 뿐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제 한 번밖에 안 돼.’

어찌저찌 통로를 빠져나온 태정은 다시 광장에서 나머지 3개의 통로를 바라봤다.

이제 간다 해도 하나가 한계.

몸의 상태를 본다면 그 하나도 끝까지 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바로 그때.

프리지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이, 꼬마.

‘왜?’

=그거 생각나? 침실에서 내가 했던 제안. 내가 하루라도 일찍 네 몸을 떠날 수 있는 방법. 알려 줬잖아.

‘그게 지금 상황에 할 말… 잠깐.’

말을 뱉던 태정의 시선이 세 번째 문으로 향했다.

그녀가 했던 터무니없는 제안.

하루 세 번의 합체.

어이가 없어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는 태정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힌트를 준 것일까?

더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일단 달리고 봐야 한다.

그의 신형이 세 번째 통로로 향했다.

그렇게 막 속도를 높이는데, 태정의 시야에 흐릿한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그의 의식이 점차 꺼져 가고 있단 뜻이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더 흐릿해져 가는 시야.

‘아직 안 돼. 아니라도 좋으니 도착까지만… 버텨.’

어둠이 몰려들고 있었다.

환하게 밝히고 있는 통로의 빛은 사라지고 이제 정면을 제외한 모든 시야가 완벽하게 차단됐다.

왠지 이대로 눈 한 번 감으면 끝이 날 것만 같은 기분.

‘여기서 감으면 끝이다.’

계속 감기려는 눈을 부릅뜨고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던 그의 좁아진 시야에 드디어 통로의 끝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리는 대략 500미터.

발 몇 번 구르면 닿을 짧은 거리였지만, 지금 그에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조금만 더.’

스르륵.

콘크리트로 된 문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저곳에 발을 딛기만 하면 되는 상황.

마지막 의식을 짜내 겨우 내부로 골인한 태정의 시야가 완전한 어둠으로 잠식됐다.

진입과 동시에 의식이 꺼져 버린 것이다.

그런 태정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배어났다.

이후. 그의 모습은 공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곳엔 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높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형체.

조금 전까지 태정이 있던 자리를 내려다보던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시리우스는 2년을 내다봤는데, 두 달도 아니고 겨우 2주라니.]

그의 독백에 프리지아가 대답했다.

=그만큼 이 녀석은 굶주려 있다는 거지.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아무리 욕정이 폭발을 해도 이 정도까지 정신이 나갈 수는 없어. 욕구를 참다가 기절까지 할 정도면 녀석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거의 천연기념물 수준이야.

[천연기념물이라. 오래 살더니 인간의 은어도 알고 있군. 한데, 대체 어떻게 참은 거지?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군. 놈의 생체리듬과 뇌의 주파수를 보면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대단한 거지. 남들에 비해 수십 배에 달하는 성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집중력이 나올 수 있었던 거고. 이건 아무도 예상을 하지 못한 거야. 너나 나나 작은 고철이나, 시리우스까지도.

[아무튼. 이거 일찍부터 귀찮은 일이 생겨 버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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